간화선과 묵조선의 논쟁

3) 看話禪과 黙照禪의 논쟁 


이제 앞에서 잠깐 언급하였던 看話禪과 黙照禪의 논쟁에 대하여 살펴보자. 흔히 看話禪의 大慧의 비판이 黙照禪의 宏智에 대한 비판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이것에 대한 근거는 없다. 단지 大慧의 비판은 본각적(本覺的)인 원리에 떨어져 이원적이고 점수적(漸修的)인 고좌(姑坐)에 집착되어 있는 사선(邪禪)에 대한 비판이다. 또한 문헌적으로도 大慧가 굉지(宏智)에 대해 비판하였다기보다는 宏智와 같은 黙照禪의 진헐청료(眞歇淸了)의 黙照禪에 대하여 지적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眞歇淸了는 당시 따르는 사대부들이 많고 그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기에, 문헌에 나타난 大慧의 黙照禪에 대한 비난과 大慧가 귀양을 간 후에도 편지로서 사대부들에게 공안선의 참구법을 가르친 점 등을 보아 眞歇淸了 주변의 黙照姑坐에 대한 비판이라고 보아야 하겠다. 그렇기에 大慧의 비난은 黙照禪의 전체적인 것이라 볼 수 없겠다. 만약 大慧가 黙照禪 전체에 대하여 비난을 할 경우, 大慧 역시 2가지 관점에서의 오류를 범하게 되기때문이다.


첫번째는 조사선의 역사로 볼 때 달마 벽관(壁觀)의 기본정신아래, 본각적인 頓悟禪의 입장을 계승하고 있는 黙照禪이 정통적인 입장이라고 인정받기에 黙照가 邪禪이라면 달마나 혜능,마조나 임제의 禪도 邪禪이 되는 것이다.


두번째는 宏智가 찬술한 「지유암명(至遊庵銘)」에서 宏智는 至遊禪이라 불릴 수 있는 그의 선사상을 전하고 있다. 여기에서 나오는 至遊는 원래 열자(列子)에서 나오는 말로서, 여기에선 깨달음의 경지에서 法界에 자유롭게 거니는 유희삼매(有戱三昧)의 경지를 말하는 것으로 黙照禪이 단순한 좌선의 정적인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72>


지금까지 비교해본 黙照禪과 看話禪에 있어서 그 특징은 黙照禪은 坐禪修行을 수단으로 삼는 것이 아닌 그 목적으로 삼아, 坐禪修行의 行함안에서 見性成佛을 이루는 禪수행의 실천적인 면을 보여주는 반면, 看話禪은 ‘無’자 公案의 참구를 통한, 즉 현실적 실천적인 면에 있어서 사변으로서 修行證得을 행하며 단지 坐禪을 見性成佛하기 위한 수단방법으로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후대에 黙照禪은 일본으로 전래되어 독자적인 일본의 曹洞禪에 그 영향을 주었으며, 看話禪의 ‘無’자 公案은 그 후 無門關에 이르러 그 극치를 이루며, 일찌기 북종선에서 주장한 간심간정(看心看淨)의 坐禪과 남종선에서 주장한 見性主義 禪思想을 새롭게 조화시키고 있다.73>      


이 글은 카테고리: catholicdictionary3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