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서 론 


무속(巫俗)의 목적은 인간이 현세에서 무병장수하고 많은 재물을 가지고 편히 살고, 등등 현세의 행복과 내세의 행복을 영구지속(永久持續)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무속제의(巫俗祭儀)를 통해 이것을 성취하려 하는 것이다. 이렇게 무속은 인간 행복의 영구지속을 그 목적으로 한다. 무속의 제의는 존재(存在)의 획득지속(獲得持續)을 위한 실천적(實踐的)인 현상이다. 그러므로 모든 무속제의는 어떤 존재의 결핍된 상태를 다시 채워 인간 존재의 충족성을 다시 채우려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러한 무속현상을 있게 하였는가? 무속이 제의를 통해 어떻게 존재의 결핍을 충족시키려 하는가?


그래서 여기서는 무속의 구심점(求心點)이 되는 “원본사고”를 찾아내어 모든 무속현상의 바탕이 되는 무속의 사상적 배경을 살펴보겠다. 


먼저 구체적인 제의 현상에서 나타나는 특성을 살펴보아 그 특성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고 무속의 “원본사고”(原本思考, arche pattern)가 되는 “입체적(立體的) 존재사고”(存在思考)와 기구(祈求)의 대상이 되는 신(神)에 대해서도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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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서론


    구원의 보편적 성사인 교회는 전 인류의 구원을 위한 복음선포(福音宣布)를 그 사명으로 하고 있는데, 교회가 강조하는 복음 선포는 三位一體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사명이다. 곧 사랑 자체이신 聖父의 구원계획에 따른 聖子와 聖靈의 파견에 근원을 두고 있는 것으로서, 교회에 있어 복음 선포는 가장 본질적인 의무이자, 교회의 본질 그 자체인 것이다. 

    그런데 복음이 현대의 다양한 문화와 생활환경에 뿌리를 내리고 생활화되려면, 교회의 복음선포의 태도는 그리스도 강생(降生)의 신비에 맞갖는 것이어야 한다. 즉 그리스도께서 직접 人性을 취하시어 구체적인 時空안에 함께 하신 것처럼, 교회도 각 지역교회의 구체적인 문화환경으로 들어가 각 개별문화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하여 그 문화자체를 복음화(福音化)해야 한다. 복음의 메시지는 우리 시대에 우리 땅에서 재해석되고 새롭게 표현되어 실제로 생활화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국교회는 한국의 문화상황에 대한 이해 위에 서 있어야 하며, 특히 한국사회를 복음화시키기 위해서는 한국인의 민족적․종교적인 심성과 종교현상에 대해서도 이해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한국인이 무엇을 원하고 있고, 또 우리는 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고 그 소망을 어떻게 그리스도교적인 차원에서 승화(昇華)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방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사회는 세계종교의 전시장, 종교백화점이라고 할 수 있는 다종교상황(多宗敎狀況)에 처해 있으며 저마다의 성장을 시도하고 있다.1) 그 중 동학(東學) 이후 한국사회에 등장한 최초의 체계화된 신흥종교인 증산교(甑山敎)를 살펴보려 한다. 그 이유는 70년대 들어 학자들이 증산교의 교리와 사상속에 한국의 전통문화(傳統文化)와 종교적 유산(宗敎的 遺産)이 내포되어 있음을 주목하고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며,2) 이러한 지식층의 흡수로 인해 그 영향력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80년대를 前後해서는 증산교의 사상속에 민중해방(民衆解放)․현세개혁(現世改革)․인간존중(人間尊重)․만민평등(萬民平等) 등의 사상에 공감한 대학생들의 관심과 참여가 높아져 발전 가능성 있는 젊은 종교로서의 위상(位相)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증산교는 우리 민족의 종교적(宗敎的) 심성(心性)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한(恨)과, ‘恨으로부터의 解放’인 解寃(解怨)3)을 중심축으로 삼고 있다. 본 연구는 이 점에 주목하여, 해원(解寃)의 기저(基底)에 흐르고 있는 現世的인 성격을 중심으로 하여 논지(論旨)를 전개시키고자 한다. 현세적인 성격 역시 우리 민족정서(民族情緖)를 대변(代辯)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결국 민족종교로 인정받고자 나름대로 노력하는 증산교의 구원관에 대한 연구는 한국 사회의 복음화를 위한 기초작업이자, 한국교회의 정체성 확립과 자아반성을 위한 하나의 시도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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