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아 재강림 준비시대 2

      Ⅰ. 문예부흥(Renaissance)


 중세 사회인들의 본성의 외적인 추구에 의하여 헬라사상의 복고운동이 제기되었고, 이 운동으로 말미암아 문예부흥이 일어났다는 것은 이미 위에서 논술한 바이다.


 그러면 그 본성의 외적인 추구는 무엇이었으며, 또 어떻게 되어 인간이 그것을 추구하게 되었는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창조원리에 의하면, 인간은 하나님도 간섭할 수 없는 인간 자신의 책임분담을 그의 자유의지에 의하여 완수함으로써만 완성되도록 지어졌기 때문에,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유를 추구하게 된다. 또 인간은 자유의지로써 자기의 책임분담을 완수하여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어 개성을 완성함으로써 인격의 절대적인 자주성을 갖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간은 본성적으로 그 인격의 자주성을 추구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개성을 완성한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어떠한 계시를 받지 않아도, 그의 이지와 이성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알고 생활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간은 또한 본성적으로 이지와 이성을 추구하게된다. 인간은 또 자연계를 주관하도록 창조되었으므로, 과학으로써 그 속에 숨겨진 원리를 찾아 현실생활의 환경을 스스로 개척하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연과 현실과 과학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중세 사회인들은 그 봉건제도에 의한 사회환경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본성이 억압당하고 있었기 대문에, 그 본성의 외적인 욕망에 의하여 위와 같은 것들을 더욱 추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미 위에서 말한 바와같이, 중세인들은 십자군 전쟁이래 동방으로부터 흘러 들어온 헬라사상의 고전을 연구하게 되었는데, 헬라의 고대정신이 바로 인간의 자유와, 인격의 자주성과, 이지와 이성의 존엄성과, 자연을 숭상하고 현실에 치중하며 과학을 세우는 것 등 인간 본성의 이적인 추구에 의한 것이어서, 이것들이 그대로 중세인의 본성적인 욕망에 부합되었으므로, 헬라사상의 복고운동은 불길 같이 일어나 드디어 인본주의가 대두하게 되었던 것이다.


 르네상스는 프랑스어로서, 재생 또는 부흥이라는 뜻이다. 이 르네상스는 14세기 경부터 헬라사상에 관한 고전 연구의 본산인 이탈리아에서 태동되었었다. 이 인본주의운동은 처음에는 중세인으로 하여금 그리이스의 고대로 돌아가 그 정신을 모방케 하려는 운동으로 시작되었으나, 더 나아가 이 운동은 그 고전문화를 재생하여 중세적인 사회생활에 대한 개혁운동으로 옮겨지게 되었고, 또 이것은 비단 문화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종교 등 사회 전반에 걸친 혁신운동으로 확대되어, 사실상 근대사회를 이루는 외적인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 본성의 외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시대적인 사조였던 인본주의(혹은 인문주의)로 말미암아, 봉건사회 전반에 대한 외적인 혁신운동으로 전개된 현상을 르네상스(문예부흥)라고 부른다.




         Ⅱ. 종교개혁


 중세사회에 있어서의 교황을 중심한 복귀섭리는 교황과 승려의세속적인 타락으로 말미암아 이룰 수 없게 되었었다. 그리하여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중세인들이 인본주의를 부르짖게 됨에 따라,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는 형식적인 종교의식과 규범에 반항하게 되었고, 인간의 자주성을 유린하는 봉건계급제도와 교황권에 대항하게 되었던 것이다. 나아가 그들은 또 인간의 이성과 이지를 무시하고, 무엇이든지 교황에 예속시키는 데서만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고루한 신앙생활에 반발하게 되었으며, 자연과 현실과 과학을 무시하는 둔세적, 타계적, 금욕적인 신앙태도를 배격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되어 마침내 중세 기독교인들은 교황정치에 반항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중세 사회인들이 그 본성의 외적인 욕망을 추구함에 따라서, 억압되었던 그 본성의 내적인 욕망도 추구하게 되어, 드디어 사도들을 중심하고 하나님의 뜻만을 따르기에 열렬했던 초대 기독정신에로의 복고를 부르짖게 되었으니, 이것이 곧 중세에 있어서의 히브리사상의 복고운동이다. 그리하여 14세기에 영국 옥스포드대학의 신학교수 위클리프(Wycliffe, John 1324~1384)는 성서를 영어로 번역하여, 신앙의 기준을 교황이나 승려에게 둘 것이 아니고 성서 자체에다 둬야 한다고 주장하는 동시에, 교회의 제도나 의식이나 규범은 성경에 아무런 근거도 없는 것이라고 증언하면서, 승려의 윤락과 그들의 민중에 대한 착취 및 남용을 통렬히 공박하였다.


 이와같이 종교개혁운동은 십자군전쟁에 의하여 교황의 위신이 떨어진 후, 14세기부터 이미 영국에서 움텄고, 15세기 말엽에는 이탈리아에서도 이 운동이 일어났으나 모두 실패하여 주동했던 사람들이 처형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1517년 교황레오 10세가 성베드로 사원의 건축기금을 모으기 위하여, 죽은 후에 구원을 받는 속죄의 표라고 선전하면서 면죄부를 팔게 되자, 이 폐해에 대한 반대운동이 도화선이 되어 결국 독일에서 비텐베르크 대학의 신학교수로 있던 마르틴루터를 중심하고 종교개혁운동은 폭발되었다. 그리하여 이 개혁운동의 불길은 점차로 확대되어 프랑스에서는 칼빈, 스위스에서는 쯔빙글리 등을 중심으로 활발히 진전되어 갔고, 그것은 영국 네덜란드 등 여러 나라로 확대되었다.


 이와 같이되어 신교운동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국제간의 싸움은 백여 년간이나 계속되어 오다가, 마침내 독일을 중심하고 일어났던 30년전쟁이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으로 인하여 끝나면서, 신․구 종파의 싸움은 일단락을 짓게 되었다. 그 결과 북구는 게르만민족을 중심한 신교의 승리로 돌아갔고, 남구는 라틴민족을 중심한 구교의 판도로서 나아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 30년전쟁은 독일을 중심하고 프로테스탄트와 카톨릭 교도간에 일어났던 싸움이었다. 그러나 이 전쟁은 단순한 종교전쟁에 그치지 않고, 독일제국의 존폐를 결정하는 정치적인 내란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 전쟁을 종식시킨 베스트팔렌 강화회의는, 신․구 교파에 동등한 권한을 부여하는 종교회의인 동시에, 곡일 프랑스 스페인 스웨덴 등 제국간의 영토문제를 해결하는 정치적인 국제회의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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