ㄷ. 성막을 중심한 복귀섭리
우리는 먼저 석판과 성막과 법궤를 받게 된 경위를 알아야겠다. 이스라엘 민족은 아말렉과 싸워서 승리한 후 제3월 초에 시내광야에 이르렀다(출애굽기 19장 1절1)). 여기에서 모세는 장로 70인을 거느리고 시내산으로 올라가 하나님을 뵈었다(출애굽기 24장 9~10절2)). 하나님은 특별히 모세를 시내산정으로 부르시사, 석판에 기록한 십계명을 받기 위하여 40주야의 금식을 하라고 명하시었다(출애굽기 24장 18절3)). 모세는 시내산에서 금식을 하는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법궤와 성막에 대한 지시를 받았다(출애굽기 25장 31장4)). 그리고 40일간의 금식이 끝났을 때 모세는 십계명을 기록한 두 석판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던 것이다(출애굽기 31장 18절5)).
모세가 이 석판을 가지고 시내산에서 내려와 이스라엘 백성 앞으로 나아갔을 때, 그들은 아론을 시켜 금송아지를 만들어 가지고, 그것이 이스라엘 민족을 애급에서 인도한 신이라고 섬기고 있었다(출애굽기 32장 4절6)). 이것을 본 모세는 크게 노하여 손에 들었던 석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려버리고 말았던 것이다(출애굽기 32장 19절7)).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모세에게 나타나시어, 처음것과 같은 석판을 깎아 만들어 오면 거기에 다시 십계명의 말씀을 써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출애굽기 34장 1절8)). 이 말씀을 받은 모세가 다시 40주야를 금식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의 석판에 다시 십계명을 기록하여 주셨다(출애굽기 34장 28절9)). 모세가 이 석판을 가지고 다시 이스라엘 민족 앞에 나타났을 때 비로소 그들은 모세를 받들게 되어 법궤를 만들고 성막을 건축하였던 것이다(출애굽기 35장 ~ 40장10)).
(1) 성판 성막 법궤 등의 의의와 그 목적
석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모세가 말씀을 기록한 두 석판을 받았다는 것은, 타락으로 인하여 제물로만 하나님을 대해 오던 복귀기대섭리시대는 지나가고, 타락인간이 말씀을 복귀하여 그것으로 하나님을 대할 수 있는 복귀섭리시대에로 들어왔따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후편 서론에서 밝힌 바와같이, 말씀으로 창조되었던 아담과 해와가 완성되었더면, 그들은 말씀의 완성실체가 되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타락됨으로 인하여 말씀을 잃어버린 존재가 되었다. 이제 모세가 40일 사탄분립기간으로써 말씀을 기록한 두 석판을 찾았다는 것은, 사탄세계로부터 잃어버렸던 아담과 해와를 상징적인 말씀의 실체로 복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말씀을 기록한 두 석판은 복귀한 아담과 해와의 상징체로서, 장차 말씀의 실체로 오실 예수님과 성신을 상징했던 것이다. 성경에 예수님을 흰 돌로 상징하였고(요한계시록 2장 17절11)) 또 반석은 곧 그리스도(고린도전서 10장 4절12))라고 하신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두 석판은 예수님과 성신을 상징하기 때문에, 결국 이것들은 또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것이되기도 한다.
다음으로, 성막의 의의는 무엇이었던가 ?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성전을 자기의 몸으로 비유하셨다이스라엘 민족이 제1차 가나안복귀에 성공하였더면,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 곧 성전을 짓고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준비를 하였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제1차 노정은 출발조차도 해 보지 못하였고, 제2차노정에서는 홍헤를 건너 광야에서 떠돌아다니게 되었으므로 성전은 건축하지 못하고 그 대신 성막을 지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성막을 지을 것을 명하실 때에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출애굽기 25장 8절13))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성막은 지성소와 성소의 두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지성소는 대제사장만이 1년에 한 번씩 들어가 헌제를 하는 곳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법궤가 안치되어 있어서 하나님이 친히 임재하시는 곳이므로, 이것은 예수님의 영인체를 상징한 것이었고, 성소는 보통 제사 때에 들어가는 곳으로서, 이것은 예수님의 몸을 상징한 것이었다. 따라서 지성소는 무형실체세계를, 성소는 유형 실체세계를 상징하기도 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있는 휘장이 위로부터 둘로 갈라졌다는 것은(마태복음 27장 51절14)),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한 영적 구원섭리의 완성으로 말미암아, 영인체와 육신 또는 하늘과 땅이 서로 교통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법궤는 무엇이었던가 ?
법궤는 지성소에 안치하는 언약궤로서, 그 속에는 예수님과 성신, 따라서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두 석판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또 거기에는 광야노정에 있어서 잇그라엘 민족의 생명의 양식이었고, 또한 예수님의 몸을 상징하는 만나가 하나님의 영광을 표상하는 금항아리에 담긴 것이 들어 있었으며, 또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었던 아론의 싹난 지팡이(히브리서 9장 4절15))가 거기에 들어 있었다. 이런 점으로 보아 법궤는 크게는 천주의, 작게는 성막의 축소체였던 것이다.
그리고 법궤 위에는 속죄소가 덮였었는데,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금으로 두 그룹을 쳐서 만들어 속죄소의 좌우에 덮으면, 두 그룹 사이에 여호와 하나님이 친히 나타나시어, 이스라엘족속에게 전할 모든 말씀을 주시겠다고 하셨다(출애굽기 25장 26~22절16)). 이것은 장차 두 석판으로 표시된 예수님과 성신이 오시어 역사하시게 됨으로써 속죄가 성립되면, 그 속죄소에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동시에,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생명나무에로 나아가는 길을 막았던(창세기 3장 24절17))이 좌우로 갈라져서 누구든지 생명나무 되시는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석판과 성막과 법궤를 주신 목적은 어디에 있었는가 ? 이스라엘민족은 아브라함의 상징헌제 실수로 초래된 400년 탕감기간을 마치자 3대기적과 10재앙으로 애급민족을 치고, 추격해 오던 애급의 수 많은 군사와 병거를 물속에 장사지내고 홍해를 건너 광야길로 나섰다. 하나님의 뜻으로 보아서도 그러하지만, 이처럼 원수를 맺고 떠난 애급이었기에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입장에 있었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가나안 복귀는 기필코 이루어져야 하는 노정이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출발을 위한 섭리’를 그처럼 기사와 이적으로 하셨고, 또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홍해를 건너게 하여,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환경 가운데로 몰아넣으셨던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민족은 모두 불신으로 흘러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최후에는 모세마저 불신의 행동을 취할지도 모르는 터이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비록 사람은 변하여도 변할 수 없는 그 어떠한 신앙의 대상을 세워놓으시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즉 언제나 단 한사람만이라도 이것을 절대로 믿고 받드는 사람이 있으면, 그러한 사람들로 하여금 그 신앙의 대상을 마치 바톤과 같이 이어받게 하면서 섭리의 뜻을 이루어 나아가려 하셨던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신앙의 대상을 무엇으로 세워야 할 것이었던가 ? 석판이 들어있는 법궤를 안치함으로써 메시아를 상징하였던 성막이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민족이 성막을 지었다는 것은, 벌써 메시아가 상징적으로 강림하셨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민족이, 이 성막을 메시아와 같이 충성으로 받들어 가나안 복지로 복귀하면, 민족적인 실체기대는 그 때에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모두 불신으로 돌아가더라도, 모세 한 사람만이라도 남아서 그 성막을 지키면, 그 민족은 다시 탕감조건을 세워가지고 성막을 모시는 모세를 중심한 그 기대 위에 복귀할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설혹 모세마저 불심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그 민족 중의 어느 한 사람이라도 모세를 대신하여 끝까지 성막을 지킨다면, 또 그를 중심하고 불신으로 돌아간, 나머지 전민족을 복귀하는 섭리를 하실 수 있는 것이었다.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이스라엘 민족이 불신으로 돌아가지 않았더면, 모세의 가정은 성막 대신이요, 모세는 석판과 법궤 대신이며, 또 모세의 가법은 천법 대신이 되었을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석판이나 법궤나 성막이 필요 없이 가나안으로 들어가 성전을 지었을 것이었다. 그러므로 석판과 성막과 법궤는 이스라엘이 불신으로 돌아감에 따라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방편으로 주신 것이었다. 성막은 예수님과 성신의 상징적인 표시체로서 성전을 지을 때까지 필요한 것이었고, 성전은 예수님과 성신의 형상적 표시체로서, 실체성전이신 메시아가 강림하실 때까지 필요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