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재림주님을 중심한 실체적 가나안 복귀노정
제3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이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과 같이 실체노정으로 출발하지 못하고 영적노정으로 출발하게 된 이유에 대하여는 이미 위에서 논술한 바이다. <메시아를 위한 영적인 기대> 위에서, 영적 메시아로 계시는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는 것으로 출발한 제3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의 영적 섭리는, 2천년의 유구한 역사노정을 지나서, 오늘날 세계쩍으로 그 영적 판도를 이루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치 모세의 영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여호수아가 대신하여 실체노정으로 걸어서 민족적 가나안 복귀를 완수하였던 것과같이, 예수님은 지금까지의 영적 가나안 보귀노정을 재림하셔서 실체노정으로 걸으시어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완수하심으로써, 지상천국을 이루셔야 하는 것이다. 이와같이 재림주님은 처음 오셨을 때에 실체로서 이루시려던 지상천국을 그대로 이루셔야 하기 때문에, 실체인간으로 지상에서 탄생하셔야 되는 것이다(후편 제6장 제2절 Ⅱ 참조).
그러나 재림주님은 초림 때의 복귀섭리노정을 탕감복귀하셔야 하기 때문에, 마치 그의 초림 때에 유대임족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영적 복귀섭리의 고난의 노정을 걸으셨던 것과 같이, 재림때에 있어서도 만일 제2 이스라엘인 기독교 신도들이 불신으로 돌아가면, 그 영적인 고난의 노정을 다시 실체로써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그러나 그(예수님)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 버린 바 되어야 할찌니라”(누가복음 17장 25절1))고 말씀하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초림 때에, 그를 위하여 소명되었던 제1 이스라엘 선민을 버리시고, 기독교 신도들을 제2 이스라엘 선민으로 세워가지고 새로이 영적인 섭리노정을 이루어 나올 수밖에 없으셨던 것과같이, 재림 때에도 기독교 신도들이 불신으로 돌아가면, 그들을 버리시고 새로이 제3 이스라엘을 세우시어 실체적인 섭리노정을 이루어 나아가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다시 오실 때에도 처음 오셨을 때와 같이, 그의 길을 곧게 하기 위한, 세례요한의 사명(요한복음 1장 23절2)을 가지고 올 선구자들이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하게 되면, 재림주님 자신이 또 세례요한의 입장에서 제3차 세계쩍 가나안 복귀섭리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실체적으로 만드셔야 하기 때문에, 고난의 길을 걷지 않으실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재림주님은 아무리 고난의 길을 걸으신다 하여도, 처음 오셨을 때와 같이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시게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인류의 참 부모님을 세우시어(전편 제7장 제4절 Ⅰ.1) 창조목적을 이루시려는 섭리는, 아담에서 예수님을 거치어 재림주님에 이르기까지 세번째인 재림 때에는 당연히 그 섭리를 이루시게 되어 있으며, 더구나 후편 제4장 제7절에 논술되어 있는 바와 같이, 예수님 이후 2,000년의 영적 복귀섭리는, 그를 위한 사회 조성을 위하여 민주주의 시대를 이루어 놓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 초림때에는 유대교의 반역자로 몰려서 돌아가셨지만, 그가 재림하시는 민주주의 사회에 있어서는 설혹 그가 이단자로 몰리우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죽음의 자리에까지 나아가게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재림주님이 아무리 고난의 길을 걸으신다 할지라도, 그가 세우시는 실체적인 <믿음의 기대> 위에 그를 절대로 믿고 따라 모시는 성도들이 못여서, 제3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의 실체노정을 위한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 <실체기대>를 조성함으로써, <메시아를 위한 실체적인 기대>를 이루게 될 것만은 확실하다.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모세 때에는 반석을 중심하고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게 되어 있었고, 여호수아 때에는 반석보다 더 내적인 그 샘물을 중심하고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초림 때에는 기사이적으로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지만, 재림 때에는 그의 내적인 ‘말씀’을 중심하고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전편 제3장 제3절 Ⅱ에서 논한 바와 같이, ‘말씀’으로 창조된 인간이(요한복음 1장 3절3)) 타락으로 인하여 ‘말씀’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하나님은 이 목적을 다시 이루시기 위하여 ‘말씀’의 외적인 조건을 세우시어 복귀섭리를 이루어 나오시다가, 섭리역사의 종말에 이르러는 ‘말씀’의 실체되신 예수님(요한복음 1장 14절4))을 다시 보내시어 ‘말씀’을 중심하고 구원섭리를 하셔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심정의 인연을 중심하고 보면, 하나님은 영적인 부모로서 인간을 실체의 자녀로 창조하셨다. 그리고 최초로 하나님의 이성성상의 형상적 실체대상으로 창조된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제1 실체대상으로서 인류의 부모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부부를 이루고 자녀를 번식하여, 부모의 심정과 부부의 심정과 자녀의 심정으로 맺어진 가정을 이루게 되어 있었던 것이니, 그것이 바로 3대상 목적을 이룬 4위기대인 것이다(전편 제1장 제2절 Ⅲ 참조).
이와같이 하나님은 하늘의 혈통을 이어받은 직계의 자녀들로써 지상천국을 이루시려 하셨다. 그러나 이미 타락론에서 자세히 말한 바와 같이, 인간시조가 천사장과 혈연관계를 맺음으로 인하여, 온 인류는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아서 모두 마귀의 자식이 되고 말았다(마태복음 3장 7절5), 마태복음 23장 32절6), 요한복음 8장 44절7)). 그리하여 인간시조는 하나님과 혈통관계가 끊어진 입장에 떨어지고 말았으니 이것이 바로 타락이다(전편 제2장 참조).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목적은, 이와 같이 하나님과 혈통관계가 끊어진 타락인간을 복귀시켜 가지고, 하나님 직계의 혈통적 자녀로 세우시려는데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비밀을 성서에서 찾아보기로 하자. 위에서 논한바와 같이, 타락되어 살육행위를 마구했던 아담가정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었던 것이다. 그러나 노아 때에 이르러, 그의 둘째 아들로서 아벨의 입장이었던 함은 그의 실수로 인하여 비록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데까지 이르지는 못하였으나, 노아가 충성을 다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종들의 종’(창세기 9장 25절8))의 입장에 서게 됨으로써 하나님과 간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약 전 시대에 있어서의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였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 이르러, 그는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이루어서 하나님의 선민을 일으켰기 때문에, 그들은 비로소 하나나미의 종의 입장으로 복귀하게 되었던 것이니(레우기 25장 55절9)), 이것이 바로 구약시대에 있어서의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였다. 예수님이 오신 후, 세례요한의 입장에서 세우신 그의 <믿음의 기대> 위에 섰던 제자들은, 비로소 구약시대의 종된 입장에서 양자의 입장으로 복귀되었었다. 그들이 하늘의 직계의 혈통적 자녀가 되기 위하여는, 예수님에게 절대로 순종하여 <실체기대>를 이룸으로써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여, 그 기대 위에 선 예수님에게 영 육 아울러 접붙임을 받아서(로마서 11장 17절10)) 그와 일체를 이루어야 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혈통적 직계의 원죄 없는 독생자로 오셔서, 타락한 온 인류를 그에게 접붙이어 일체가 되게 하심으로서, 타락한 온 인류를 그에게 접붙이어 일체가 되게 하심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원죄를 벗고 하나님 직계의 혈통적 자녀로 복귀케 하시기 위하여 오셨던 것이다. 예수님과 성신이 인류의 참 부모로서, 이와 같이 타락인간을 접붙이어 원죄를 벗게 하심으로써, 하나님과 창조본연의 혈통적인 인연을 맺게 되는 것을 우리는 중생이라고 한다(전편 제7장 제4절 참조). 그러므로 예쑤님은 돌 감람나무 된 타락인간으로 하여금 접붙이게 하시기 위하여 참 감람나무의 중심으로 오셨던 분이심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제자들마저 불신으로 돌아갔으므로,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입장에서, 메시아의 자리에 서 보지도 못하고 십자가에 돌아가셨다. 그리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이 영적 세례요한의 입장에서, 부활 40일 사탄분립기간으로써 영적인 <믿음의 기대>를 세우신 후, 회개하고 돌아온 제자들의 신앙과 중절로 말미암아 영적인 <실체기대>가 세워짐으로써, 비로소 <메시아를 위한 영적인 기대>가 조성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 영적인 기대 위에 영적인 메시아로 서신 예수님에게 영적인 접붙임을 받음으로써, 비로소 성도들은 영적인 자녀로서만 설 수 있게 된 것이니, 이것이 바로 예수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영적 복귀섭리에 의한 하나님과 타락인간과의 관계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 이후의 영적 부활섭리는, 마치 하나님이 영계를 먼저 창조하셨던 것과 같이 그러한 형의 영적세계를 먼저 복귀하여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타락인간은 아직 영적으로만 하나님의 대상으로 설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잘 믿는 성도라 할지라도, 육적으로 내려오는 원죄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사탄의 혈통을 벗어나지 못한 점에서는 구약시대의 성도들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전편 제4장 제1절 Ⅳ). 이와 같이 기독교 신도들은 하나님 앞에 혈통이 다른 자녀이기 때문에 양자가 되는 것이다. 일찌기 바울이,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도 탄식하여 양자 되기를 기다린다고 한 이유는 실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로마서 8장 23절11)).
그러므로 예수님은 온 인류를 하나님의 혈통적 직계의 자녀로 복귀케 하시기 위하여 재림하셔야 한다. 따라서 그는 초림 때와 같이 육신을 쓰시고 지상에서 탄생하셔서 초림 때의 노정을 다시 걸으심으로써 그것을 탕감복귀하시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위에서 이미 논술한 바와 같이, 재림 예수님은 ‘말씀’을 중심한 ‘출발을 위한 섭리’에 의하여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실체적으로 조성하시어, 그 기대 위에서 온 인류를 영 육 아울러 접붙이심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원죄를 벗고 하나님의 혈통적 직계의 자녀로 복귀케 하셔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초림 때에,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의 중심인물이었던 야곱의 입장을 탕감복귀하시기 위하여, 세 제자를 중심한 12제자를 세우심으로써 가정적인 기대를 세우셨고, 다시 70문도를 세우심으로써 그 기대를 종족적인 기대에로 넓히려 하셨던 것과 같이, 그는 재림하셔서도 그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실체적으로 가정적인 것에서 출발하여,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 세계적 천주적인 것으로 복귀하시어, 그 기대 위에 천국을 이루는데까지 나아가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장차 예수님이 탄생하시어 천국 건설의 목적을 빨리 이루게 하시기 위하여, 제1차 이스라엘 선민을 세우심으로써 그 터전을 예비하셨었으나, 그들이 배반함으로 인하여 기독교 신도들을 제2 이스라엘로 세우셨던 것과 같이, 만일 재림 예수님의 천국건설 이상을 위하여 제2 이스라엘로 세워진 기독교 신도들이 또 그를 배반하면, 하나님은 부득이 그 제2 이스라엘 선민을 버리시고, 새로이 제3 이스라엘 선민을 택하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세에 천한 기독교 신도들은 예수님 초림 당시의 유대민족들과 같이, 가장 행복된 환경 가운데 있으면서도 한편 가장 불행하게 될 수 있는 처지에 놓여 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