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아를 위한 기대

  ㄷ. 메시아를 위한 기대


 이스라엘 민족은 정탐 40일의 사탄분립 기간을 세우지 못하여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실패하고, 이 기간을 재탕감하기 위하여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여, 광야에서 40년을 유리하고 다시 가데스바네아로 돌아왔다.


 이 대의 모세는 제3차 노정을 위한 믿음의 기대를 조성하였고, 이스라엘 민족은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불신과 그에 따르는 모세의 반석 2타로 말미암아 이 두 기대는 모두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모세를 중심하고 애급에서 떠난 외적 이스라엘은 모두 광야에서 섬멸되었으나,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은 모세가 세웠던 제2차 노정의 믿음의 기대와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 위에서, 정탐 40일의 사탄분립기간을 믿은과 충성으로 찾아 세웠기 때문에 성막을 위한 기대를 조성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모세를 중심한 외적 이스라엘은 모두 광야에서 쓰러지고 말았으나, 성막을 받드는 광야생활 가운데서 출생한 내적 이스라엘은, 모세를 대신한 여호수아를 중심하고 충성을 다하여 법궤를 모시고 요단을 건너 여리고성을 무지르고 소망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되어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실체기대가 이루어지고, 그에 따라서 이 노정의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이룩됨으로써, 아브라함 때에 이루어졌던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는 그의 제물 실수로 인하여 400년 애급고영의 탕감노정을 지나서야,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조성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그러나 이미 후편 제1장 제3절 Ⅲ에서 자세히 논한 바와 같이, 그 때는 이미 타락인간들이 사탄을 중심하고 애급왕국 등의 굳건한 왕국을 건설하여, 하늘편의 복귀섭리에 대결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호수아를 중심하고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는 세워졌을 지라도, 그 터전 위에 사탄에 대결할 수 잇는 하늘편의 왕국이 건설되기까지는 메시아가 강림하실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가나안으로 들어간 내적 이스라엘도 또다시 불신으로 흘러, 이 섭리는 다시 연장을 거듭하여 예수님 때까지 밀려 나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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