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귀섭리

    2. 복귀섭리의 목적




 그러면 복귀섭리의 목적은 무엇이겠는가 ? 그것은 본래 하나님의 창조목적이었던 선의 대상인 천국을 이루는 것이다. 원래 하나님은 인간을 지상에 창조하시고, 그들을 중심하고 먼저 지상천국을 이루시려 하셨다. 그러나 인간시조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 뜻을 이루지 못하셨던 것이기 때문에, 복귀섭리의 제1차적인 목적도 역시 지상천국을 복귀하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복귀섭리의 목적을 완성하기 위하여 오셨던 예수님이,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라고 하신 말씀이나(마태복음 6장 10절1)), 천국이 가까웠으니 회개하라고 하신 말씀(마태복음 4장 17절2))등은 모두 복귀섭리의 목적이 지상천국을 복귀하시려는 데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3. 인류역사는 곧 복귀섭리역사다




 우리는 위에서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바로 복귀섭리라는 것을 밝혔다. 그러므로 인류역사는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여, 그들로 하여금 창조본연의 선의 세계를 복귀케 하시려는 섭리역사인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인류역사는 곧 복귀섭리 역사라는 것을 여러 면으로 고찰해 보기로 하자.


 첫째로 문화권 발전사의 입장에서 고찰해 보기로 하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무리 악한 인간일지라도 악을 버리고 선을 따르려는 본심만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것이 선이며, 어떻게 해야 선을 이룰 것인가 하는 것은 지능에 속하는 것이어서, 시대와 장소와 사람에 따라 각각 다르기 때문에, 선을 찾아 세우려는 그들의 근본목적만은 모두 동일하다. 그러면 어찌하여 인간은 본심은 누구도 막을 수없는 힘을 가지고 시공을 초월하여 선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한 선의 실체대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으므로, 비록 타락인간은 사탄의 역사로 말미암아 선의 생활은 할 수 없게 되었지만, 선을 추구하는 그 본심만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들로써 이어져 내려오는 역사의 갈 곳은 결국 선의 세계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본심이 아무리 선을 지향하여 노력한다고 하여도, 이미 악주권 아래 놓여진 이 세계에서는 그 선의 실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인간은 시공을 초월한 세계에서 그 선의 주체를 찾으려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니, 이러한 필연적인 요구에 의하여 탄생된 것이 바로 종교인 것이다. 이와 같이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모르게 된 인간은, 종교를 세워 끊임없이 선을 찾아 나아감으로써 하나님을 만나려고 한 것이었기 때문에, 설혹 종교를 받들고 있었던 개인이나 민족이나 국가는 망하였다 할지라도, 종교 그 자체만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 남아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국가흥망사를 중심하고 더듬어 보기로 하자.


 먼저 중국의 여사를 보면, 춘추전국의 각 시대를 거치어 진 통일 시대가 왔고, 전한, 신, 후한, 삼국, 서진, 동진, 남북조의 각 시대를 거치어 수 당 통일시대가 왔으며, 오대, 북송, 남송, 원, 명, 청의 시대를 거치어 오늘의 중화민국에 이르기까지 복잡다양한 국가의 흥망과 정권의 교체를 거듭하여 내려왔으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 불, 선의 극동종교만은 엄연히 그대로 남아져 있다.


 다음으로 인도의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마우리아, 안드라, 굽다, 바루다나, 사만, 가즈니, 무갈 제국을 거쳐서 오늘의 인도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변천은 거듭되어 내려왔으나 힌두교만은 쇠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나아가 유럽사의 주류에서 그 실증을 찾아보기로 하자.


 유럽의 주도권은 그리스, 로마, 프랑크, 스페인과 폴투갈을 거쳐 일시 프랑스와 네덜란드를 지나 영국으로 옮겨갔고, 오늘에 이르러서는 그것이 미국과 소련으로 나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만은 그대로 융흥해 왔으며, 유물사관 위에 세워진 전제정체하의 소련에서마저 기독교는 아직도 멸할 수 없는 것으로서 남아져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 모든 국가 흥망의 발자취를 깊이 더듬어 보면, 종교를 박해하는 나라는 망하였고, 종교를 보호하고 육성시킨 나라는 흥하였으며, 그 나라의 주권은 보다 더 종교를 숭앙하는 나라에로 넘겨져간 역사적인 사실을 우리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종교를 박해하고 있는 공산주의 세계가 괴멸될 날이 기필코 오리라는 것은 종교사가 실증적으로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역사상에는 많은 종교가 생멸되었다. 그 가운데서 영향력이 큰 종교는 반드시 문화권을 형성하여 왔는데, 문헌에 나타나 있는 문화권만 해도 21 내지 26개나 된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에 따라, 점차로 열등한 것은 보다 우수한 것에 흡수되었거나 또는 융화되어 왔다. 그리하여 근세에 이르러서는 위에서 열거한대로 수다한 국가 흥망의 굽이침 속에서, 결국 극동문화권, 인도교문화권, 회회교문화권, 기독교문화권 등의 4대 문화 군이 남아지게 되었고, 이것들은 다시 기독교를 중심한 하나의 세계적인 문화군을 형성해 가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선을 지향해 온 모든 종교의 목적을 함께 달성해야 할 초종교적인 사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역사적인 귀추로 보아서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문화권의 발전사가, 수많은 종교의 성쇠 또는 융합에 딸, 결국 하나의 종교를 중심한 세계적인 문화권을 형성해 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은, 인류역사가 바로 하나의 통일된 세계에로 복귀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둘째로, 종교와 과학의 동향으로 보아도, 우리는 인류역사가 복귀섭리의 여사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타락인간의 양면의 무지를 극복하기 위한 종교와 과학이, 오늘에 이르러서는 통일된 하나의 과제로서 해결되어야 할 때가 되었다 함은 이미 총서에서 논술하였다. 이와 같이 역사이래 서로 관련이 없이 독자적으로 발달해 온 종교와 과학이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각각 제 갈 곳을 다 가서, 한 자리에서 서로 만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은, 인류역사가 이제까지 창조본연의 세계를 복귀하는 섭리노정을 걸어나왔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만일 인간이 타락되지 않았다면, 인간의 지능이 영적인 면에서 최고도에까지 향상하였었을 것이기 때문에, 육적인 면에서도 최고도로 발달되어, 과학은 그 때 극히 단시일 내에 놀라울 정도로 향상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과 같은 과학사회는 벌써 인간시조 당시에 이루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무지에 빠지게 되면서, 그러한 사회를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유구한 역사의 기간을 두고 과학으로써 그 무지를 타개하면서 창조본연의 이상적 과학사회를 복귀하여 나왔다.


 그런데 오늘의 과학사회는 극도로 발달되어, 외적으로는 이상사회에로 전환될 수 있는 그 전 단계에까지 복귀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셋째로, 투쟁역사의 귀추로 보아도, 인류역사는 복귀섭리역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재물을 빼앗고 땅을 빼앗으며 사람을 빼앗으려는 싸움은, 인류사회의 발달과 더불어 벌어져,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구한 역사의 기간을 두고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 되어왔다. 그리고 이 싸움은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중심한 싸움으로 그 범위를 넓혀 나와, 오늘에 이르러는 민주와 공산 두 세계가 마지막 싸움을 겨루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제 인류역사의 종말을 고하는 이 마지막 때에 있어서, 천륜은 드디어 재물이나 땅이나 사람을 빼앗아 가지고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해 온 역사의 단계를 지나서,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띠고 이 땅에 찾아왔다. 1차대전이 끝난 후에도 패전국가가 식민지를 내놓더니, 2차대전이 끝나고 나서는 전승국가들이 차례로 식민지를 내놓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편 오늘의 강대국들은, 그들의 일개 도시만도 못한 약소국가들을 유엔에 가입시키고, 그들을 먹여 살릴 뿐 아니라, 자기와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주어, 모두 형제국가들을 만들고 있다.


 그러면 이 마지막 싸움이란 어떠한 싸움일 것인가 ? 그것은 이념의 싸움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유물사관을 완전히 전복시킬 수 있는 진리가 나오지 않는 한, 민주와 공산의 두 세계의 싸움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와 과학을 통일된 하나의 과제로 해결할 수 있는 진리가 나올 때, 비로소 종교를 부인하고 과학편중의 발달을 꾀해 나온 공산주의 사상은 전복되고, 두 세계는 하나의 이념 아래 완전히 통일될 것이다. 이와 같이 투쟁역사의 귀추로 보아도 인류역사는 창조본연의 세계를 복귀하는 섭리역사임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넷째로, 우리는 성서를 중심하고 좀더 이 문제를 알아보기로 하자. 인류역사의 목적은 ‘생명나무’(창세기 2장 9절)를 중심한 에덴동산을 복귀하려는 데 있다(전편 제2장 제1절 1). 그런데 에덴동산은 아담과 해와가 창조된 어떤 국한지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 전체를 의미한다. 만일 에덴동산이, 인간시조가 창조되었던 그 어느 한정된 지역만을 말한다면, 이 땅에 충만하도록 번성하라 하신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창세기 1장 28절)에 의하여 번식될 그 숱한 인류가 어떻게 그 좁은 곳에서 다 살 수 있을 것인가 ?


 인간조상이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생명나무’를 중심하고 세우려던 에덴동산은 사탄에게 내주게 되었었다(창세기 3장 24절). 그래서 알파로 시작된 인류 죄악역사가 오메가로 끝날 때의 타락인간의 소망은, 죄악으로 물든 옷을 깨끗이 빨아 입고, 복귀된 에덴동산으로 다시 들어가, 잃어버렸던 그 ‘생명나무’를 다시 찾아 나아가는 데 있다고 요한계시록 22장 13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면 이 성서의 내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이미 타락론에서 밝혀진 바이지만, ‘생명나무’는 완성한 아담 곧 인류의 참 아버지를 말하는 것이다. 부모가 타락되어 그의 후손도 원죄를 가진 자녀들이 되었으니, 이 죄악의 자녀들이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복귀되기 위하여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모두 거듭나지(중생) 않으면 아니된다(중생론 참조). 그러므로 역사는 인류를 다시 낳아 주실 참 아버지 되시는 예수님을 찾아 나온 것이니, 역사의 종말 기에 들어 성도들이 소망하고 찾아 나아가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요한계시록의 ‘생명나무’는 바로 예수님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성서의 기록을 보아도, 역사의 목적은 ‘생명나무’로 오실 예수님을 중심한 창조본연의 에덴동산을 복귀하려는 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한계시록 21장 1절 내지 7절에도, 역사의 종말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바로 사탄의 주관 하에 있던 옛 하늘과 옛 땅으로 복귀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로마서 8장 19절 내지 22절에는 사탄의 주관 하에서 탄식하고 있는 말세에 불에 타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창조본연의 입장으로 복귀함으로써 새롭게 되기 위하여(요한 계시록 21장 5절), 자기를 주관해 줄 수 있는 창조본연의 하나님의 아들들이 복귀되어 나타나기를 고대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여러 면으로 고찰하여 볼 때, 인류역사는 창조본연의 세계에로 복귀하는 섭리역사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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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귀섭리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2. 복귀섭리의 목적


     그러면 복귀섭리의 목적은 무엇이겠는가 ? 그것은 본래 하나님의 창조목적이었던 선의 대상인 천국을 이루는 것이다. 원래 하나님은 인간을 지상에 창조하시고, 그들을 중심하고 먼저 지상천국을 이루시려 하셨다. 그러나 인간시조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 뜻을 이루지 못하셨던 것이기 때문에, 복귀섭리의 제1차적인 목적도 역시 지상천국을 복귀하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복귀섭리의 목적을 완성하기 위하여 오셨던 예수님이,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라고 하신 말씀이나(마태복음 6장 10절1)), 천국이 가까웠으니 회개하라고 하신 말씀(마태복음 4장 17절2))등은 모두 복귀섭리의 목적이 지상천국을 복귀하시려는 데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3. 인류역사는 곧 복귀섭리역사다


     우리는 위에서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바로 복귀섭리라는 것을 밝혔다. 그러므로 인류역사는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여, 그들로 하여금 창조본연의 선의 세계를 복귀케 하시려는 섭리역사인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인류역사는 곧 복귀섭리 역사라는 것을 여러 면으로 고찰해 보기로 하자.

     첫째로 문화권 발전사의 입장에서 고찰해 보기로 하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무리 악한 인간일지라도 악을 버리고 선을 따르려는 본심만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것이 선이며, 어떻게 해야 선을 이룰 것인가 하는 것은 지능에 속하는 것이어서, 시대와 장소와 사람에 따라 각각 다르기 때문에, 선을 찾아 세우려는 그들의 근본목적만은 모두 동일하다. 그러면 어찌하여 인간은 본심은 누구도 막을 수없는 힘을 가지고 시공을 초월하여 선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한 선의 실체대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으므로, 비록 타락인간은 사탄의 역사로 말미암아 선의 생활은 할 수 없게 되었지만, 선을 추구하는 그 본심만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들로써 이어져 내려오는 역사의 갈 곳은 결국 선의 세계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본심이 아무리 선을 지향하여 노력한다고 하여도, 이미 악주권 아래 놓여진 이 세계에서는 그 선의 실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인간은 시공을 초월한 세계에서 그 선의 주체를 찾으려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니, 이러한 필연적인 요구에 의하여 탄생된 것이 바로 종교인 것이다. 이와 같이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모르게 된 인간은, 종교를 세워 끊임없이 선을 찾아 나아감으로써 하나님을 만나려고 한 것이었기 때문에, 설혹 종교를 받들고 있었던 개인이나 민족이나 국가는 망하였다 할지라도, 종교 그 자체만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 남아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국가흥망사를 중심하고 더듬어 보기로 하자.

     먼저 중국의 여사를 보면, 춘추전국의 각 시대를 거치어 진 통일 시대가 왔고, 전한, 신, 후한, 삼국, 서진, 동진, 남북조의 각 시대를 거치어 수 당 통일시대가 왔으며, 오대, 북송, 남송, 원, 명, 청의 시대를 거치어 오늘의 중화민국에 이르기까지 복잡다양한 국가의 흥망과 정권의 교체를 거듭하여 내려왔으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 불, 선의 극동종교만은 엄연히 그대로 남아져 있다.

     다음으로 인도의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마우리아, 안드라, 굽다, 바루다나, 사만, 가즈니, 무갈 제국을 거쳐서 오늘의 인도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변천은 거듭되어 내려왔으나 힌두교만은 쇠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나아가 유럽사의 주류에서 그 실증을 찾아보기로 하자.

     유럽의 주도권은 그리스, 로마, 프랑크, 스페인과 폴투갈을 거쳐 일시 프랑스와 네덜란드를 지나 영국으로 옮겨갔고, 오늘에 이르러서는 그것이 미국과 소련으로 나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만은 그대로 융흥해 왔으며, 유물사관 위에 세워진 전제정체하의 소련에서마저 기독교는 아직도 멸할 수 없는 것으로서 남아져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 모든 국가 흥망의 발자취를 깊이 더듬어 보면, 종교를 박해하는 나라는 망하였고, 종교를 보호하고 육성시킨 나라는 흥하였으며, 그 나라의 주권은 보다 더 종교를 숭앙하는 나라에로 넘겨져간 역사적인 사실을 우리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종교를 박해하고 있는 공산주의 세계가 괴멸될 날이 기필코 오리라는 것은 종교사가 실증적으로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역사상에는 많은 종교가 생멸되었다. 그 가운데서 영향력이 큰 종교는 반드시 문화권을 형성하여 왔는데, 문헌에 나타나 있는 문화권만 해도 21 내지 26개나 된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에 따라, 점차로 열등한 것은 보다 우수한 것에 흡수되었거나 또는 융화되어 왔다. 그리하여 근세에 이르러서는 위에서 열거한대로 수다한 국가 흥망의 굽이침 속에서, 결국 극동문화권, 인도교문화권, 회회교문화권, 기독교문화권 등의 4대 문화 군이 남아지게 되었고, 이것들은 다시 기독교를 중심한 하나의 세계적인 문화군을 형성해 가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선을 지향해 온 모든 종교의 목적을 함께 달성해야 할 초종교적인 사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역사적인 귀추로 보아서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문화권의 발전사가, 수많은 종교의 성쇠 또는 융합에 딸, 결국 하나의 종교를 중심한 세계적인 문화권을 형성해 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은, 인류역사가 바로 하나의 통일된 세계에로 복귀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둘째로, 종교와 과학의 동향으로 보아도, 우리는 인류역사가 복귀섭리의 여사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타락인간의 양면의 무지를 극복하기 위한 종교와 과학이, 오늘에 이르러서는 통일된 하나의 과제로서 해결되어야 할 때가 되었다 함은 이미 총서에서 논술하였다. 이와 같이 역사이래 서로 관련이 없이 독자적으로 발달해 온 종교와 과학이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각각 제 갈 곳을 다 가서, 한 자리에서 서로 만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은, 인류역사가 이제까지 창조본연의 세계를 복귀하는 섭리노정을 걸어나왔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만일 인간이 타락되지 않았다면, 인간의 지능이 영적인 면에서 최고도에까지 향상하였었을 것이기 때문에, 육적인 면에서도 최고도로 발달되어, 과학은 그 때 극히 단시일 내에 놀라울 정도로 향상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과 같은 과학사회는 벌써 인간시조 당시에 이루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무지에 빠지게 되면서, 그러한 사회를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유구한 역사의 기간을 두고 과학으로써 그 무지를 타개하면서 창조본연의 이상적 과학사회를 복귀하여 나왔다.

     그런데 오늘의 과학사회는 극도로 발달되어, 외적으로는 이상사회에로 전환될 수 있는 그 전 단계에까지 복귀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셋째로, 투쟁역사의 귀추로 보아도, 인류역사는 복귀섭리역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재물을 빼앗고 땅을 빼앗으며 사람을 빼앗으려는 싸움은, 인류사회의 발달과 더불어 벌어져,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구한 역사의 기간을 두고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 되어왔다. 그리고 이 싸움은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중심한 싸움으로 그 범위를 넓혀 나와, 오늘에 이르러는 민주와 공산 두 세계가 마지막 싸움을 겨루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제 인류역사의 종말을 고하는 이 마지막 때에 있어서, 천륜은 드디어 재물이나 땅이나 사람을 빼앗아 가지고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해 온 역사의 단계를 지나서,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띠고 이 땅에 찾아왔다. 1차대전이 끝난 후에도 패전국가가 식민지를 내놓더니, 2차대전이 끝나고 나서는 전승국가들이 차례로 식민지를 내놓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편 오늘의 강대국들은, 그들의 일개 도시만도 못한 약소국가들을 유엔에 가입시키고, 그들을 먹여 살릴 뿐 아니라, 자기와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주어, 모두 형제국가들을 만들고 있다.

     그러면 이 마지막 싸움이란 어떠한 싸움일 것인가 ? 그것은 이념의 싸움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유물사관을 완전히 전복시킬 수 있는 진리가 나오지 않는 한, 민주와 공산의 두 세계의 싸움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와 과학을 통일된 하나의 과제로 해결할 수 있는 진리가 나올 때, 비로소 종교를 부인하고 과학편중의 발달을 꾀해 나온 공산주의 사상은 전복되고, 두 세계는 하나의 이념 아래 완전히 통일될 것이다. 이와 같이 투쟁역사의 귀추로 보아도 인류역사는 창조본연의 세계를 복귀하는 섭리역사임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넷째로, 우리는 성서를 중심하고 좀더 이 문제를 알아보기로 하자. 인류역사의 목적은 ‘생명나무’(창세기 2장 9절)를 중심한 에덴동산을 복귀하려는 데 있다(전편 제2장 제1절 1). 그런데 에덴동산은 아담과 해와가 창조된 어떤 국한지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 전체를 의미한다. 만일 에덴동산이, 인간시조가 창조되었던 그 어느 한정된 지역만을 말한다면, 이 땅에 충만하도록 번성하라 하신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창세기 1장 28절)에 의하여 번식될 그 숱한 인류가 어떻게 그 좁은 곳에서 다 살 수 있을 것인가 ?

     인간조상이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생명나무’를 중심하고 세우려던 에덴동산은 사탄에게 내주게 되었었다(창세기 3장 24절). 그래서 알파로 시작된 인류 죄악역사가 오메가로 끝날 때의 타락인간의 소망은, 죄악으로 물든 옷을 깨끗이 빨아 입고, 복귀된 에덴동산으로 다시 들어가, 잃어버렸던 그 ‘생명나무’를 다시 찾아 나아가는 데 있다고 요한계시록 22장 13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면 이 성서의 내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이미 타락론에서 밝혀진 바이지만, ‘생명나무’는 완성한 아담 곧 인류의 참 아버지를 말하는 것이다. 부모가 타락되어 그의 후손도 원죄를 가진 자녀들이 되었으니, 이 죄악의 자녀들이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복귀되기 위하여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모두 거듭나지(중생) 않으면 아니된다(중생론 참조). 그러므로 역사는 인류를 다시 낳아 주실 참 아버지 되시는 예수님을 찾아 나온 것이니, 역사의 종말 기에 들어 성도들이 소망하고 찾아 나아가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요한계시록의 ‘생명나무’는 바로 예수님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성서의 기록을 보아도, 역사의 목적은 ‘생명나무’로 오실 예수님을 중심한 창조본연의 에덴동산을 복귀하려는 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한계시록 21장 1절 내지 7절에도, 역사의 종말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바로 사탄의 주관 하에 있던 옛 하늘과 옛 땅으로 복귀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로마서 8장 19절 내지 22절에는 사탄의 주관 하에서 탄식하고 있는 말세에 불에 타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창조본연의 입장으로 복귀함으로써 새롭게 되기 위하여(요한 계시록 21장 5절), 자기를 주관해 줄 수 있는 창조본연의 하나님의 아들들이 복귀되어 나타나기를 고대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여러 면으로 고찰하여 볼 때, 인류역사는 창조본연의 세계에로 복귀하는 섭리역사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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