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축복 복귀의 현상

    3. 제3축복 복귀의 현상




 하나님의 제3축복은 아담과 해와가 완성되어, 피조세계에 대한 주관성을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피조세계에 대한 인간의 주관성은 내 외 양면의 주관성이 있다.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이 양면의 주관성을 상실하였던 것인데, 현세에 이르러 이것이 복귀되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아, 현세는 말세라는 것을 알수 있는 것이다.


 내적 주관성이라는 것은 심정적 주관성을 의미한다. 인간이 개성을 완성하면 하나님과 심정적인 일체를 이루어 하나님의 심정을 그대로 체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이 완성됨으로써, 피조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심정과 동일한 심정을 가지고, 피조세계에 대하여 사랑을 주고 그로부터 미를 돌려 받게 될 때, 인간은 피조세계에 대한 심정적인 주관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타락되어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심정으로써 피조세계를 대할 수 없게 되었었다. 그러나 종교 철할 윤리 등에 의한 하나님의 복귀섭리로 말미암아 하나님에 대한 타락인간의 심령이 점차로 밝아지게 되어, 현세에 이르러는 피조세계에 대한 심정적인 주관자의 자격을 복귀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외적 주관성은 과학에 의한 주관성을 의미한다. 만일 인간이 완성되어 피조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의 심정과 동일한 심정을 가지고 피조세계를 대하여 내적 주관을 할 수 있었다면, 인간의 영감은 고차적으로 발달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과학의 발달도 극히 단시일에 최고도에 달하게 되었을 것이었다.


 인간은 그렇게 됨으로써 피조물에 대한 외적인 주관을 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따라서 인간은 일찍이 천체를 비롯한 자연계 전체를 완전히 정복하였을 뿐만 아니라, 과학의 발달에 따르는 경제발전으로 말미암아, 지극히 안락한 생활환경을 이루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심령이 어두워짐으로써, 피조물에 대한 내적인 주관성을 상실하게 되어, 동물과 같이 영감이 둔한 미개인으로 연락되었기 때문에, 피조물에 대한 외적인 주관성도 상실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의하여 심령이 밝아짐에 따라, 피조물에 대한 내적인 주관성도 복귀되어 왔고, 그에 따라 피조물에 대한 외적인 주관성도 점차로 복귀되어 왔기 때문에, 현세에 이르러서는 과학의 발달도 최고도에 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과학의 발달에 따르는 경제발전으로 말미암아, 현대인은 극도로 안락한 생활환경을 이룩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같이 타락인간이 피조세계에 대한 주관성을 복귀함에 따라, 하나님의 제3축복이 복귀되어 가는 현상을 볼 때, 우리는 현세가 말세임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이미 위에서 여러 번 보아 온 바와 같이, 문화권의 발전도 하나의 종교를 중심하고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해 가고있고, 국가형태도 하나의 세계적인 주권기구를 지향하여, 국제연맹에서 국제 연합으로, 그리고 오늘에 이르러는 세계정부를 모색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경제발전을 놓고 보더라도 세계는 하나의 공동시장을 이루어 가는 추세에 있으며, 극도로 발달된 교통기관과 통신기관은 시간과 공간을 단축시켜서 인간으로 하여금 지구를 하나의 정원과 같이 거닐고 또 교통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리하여 인류는 사해동포의 형제애를 부르짖고 있다. 그러나 가정은 부모가 있음으로써만 이루어지며, 또 거기에서만 진정한 형제애는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인류의 부모 되신 예수님만 재림하시면 전 인류는 하나의 정원에서 하나의 대가족을 이루어 가지고 단란하게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것을 보더라도 현세는 말세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흘러온 역사가 인류에게 주어야 할 최후의 선물이 한 가지 있으니, 그것은 목적 없이한 정원에 모여 웅성거리고 있는 낯선 이 나그네들을, 한 부모를 중심한 한 식구로 묶어 줄 수 있는 천주 적인 이념인 것이다.




이 글은 카테고리: catholicdictionary3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