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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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누구나 불행을 물리치고 행복을 찾아 이루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개인의 조그만 일로부터 역사를 좌우하는 큰일에 이르기까지 그것들은 결국 하나같이 보다 행복해지려는 삶의 표현인 것이다. 


 그러면 행복은 어떻게 해서 오는 것인가 ?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욕망이 이루어질 때 행복을 느끼게 된다욕망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그 본래의 의미를 흐려서 생각하기 쉽다. 그것은 그 욕망이 선보다도 악으로 나아가기 쉬운 생활환경 가운데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의를 맺는 욕망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본심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본심은 이러한 욕망이 자신을 불행으로 이끌어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악을 지향하는 욕망을 물리치고 선을 추구하는 욕망을 따라, 본심이 기뻐하는 행복을 찾으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망의 어두움을 헤치고 생명의 빛을 찾아 고달픈 길을 더듬고 있는 인생이다. 옳지 못한 욕망을 따라가서 본심이 기뻐하는 행복을 누려본 사람이 어디에 있었던가 ? 인간은 누구나 그러한 욕망을 채울 때마다 양심의 가책을 받아 고민하게 된다. 자식에게 악을 가르치는 부모가 어디 있으며, 제자에게 옳지 못한 것을 가르쳐 주는 스승이 어디 있을 것인가 ? 악을 미워하고 선을 세우고자 하는 것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본심에서 오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본심이 지향하는 욕망을 따라 선을 이루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이 바로 도인들의 생활 있지만,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그 본심대로만 살다 간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성서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로마서 3장 10 – 11절1))라고 하였으며, 또 인간의 이러한 비참한 형편에 직면하였던 바울은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 고한 사람이로다(로마서 7장 22 – 24절2))라고 개탄하였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여기에서 선한 욕망을 성취하려는 본심의 지향성과 이것과는 반대로 악의 욕망을 달성하려는 악한 마음의 지향성이, 동일한 개체 속에서 각기 서로 다른 목적을 앞세우고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다는 인간의 모순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 자체 안에 모순성을 갖게 돌  파멸된다. 따라서 이와 같이 모순성을 가지게 된 인간 자체는 바로 파멸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의 모순성은 당초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을 리는 만무하다. 왜냐 하면 어떠한 존재도 모순성을 지니고서 생겨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생겨나기 전부터 이러한 모순성을 지닌 운명적인 존재였다면, 애당초 생겨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그러한 모순성은 후천적인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인간의 이러한 파멸상태를 일컬어 기독교에서는 타락이라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인간이 타락되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며, 누구도 이것을 반박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인간은 이와 같이 타락되어 자기 파멸에 이르고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악한 마음으로부터 오는 악의 욕망을 물리치고 본심으로부터 일어나는 선의 욕망을 물리치고 본심으로부터 일어나는 선의 욕망을 따라 하나의 목적을 지향하는 것으로써 그 자체의 모순성을 제거하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는 궁극에 있어서 선과 악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다. 이를테면 유신론과 무신론을 두고 볼 때 그 중의 어느 하나가 선이라고 하면 다른 하나는 악이 도리 것인데, 우리는 아직까지 이에 대한 절대적인 정설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더구나 인간들은 선의 욕망을 일으키는 본심이 무엇이고 이 본심을 거슬러 악의 욕망을 일으키는 악한 마음은 어디로부터 온 것이며, 인간으로 하여금 이러한 모순성을 갖게 하여 파멸을 초래한 한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 등의 문제에 대하여는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 악의 욕망을 물리치고 선의 욕망을 따라 본심이 지향하는 선의 생활을 하기 위하려는 이 무지를 완전히 극복함으로써 선과 악을 판별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타락을 지적인 면에서 본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이 무지에 떨어진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인간은 마음과 몸의 내외 양면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지적인 면에 있어서도 내 외 양면의 지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무지에도 내적인 무지와 외적인 무지의 두 가지가 있게 된다내적인 무지란 종교적으로 말하자면 영적인 무지를 말하는 것으로서, 인간은 어디로부터 왔으며, 삶의 목적은 무엇이며, 죽은 뒤에는 어떻게 되는가 ? 그리고 내세와 하나님에 대한 존재 여부, 또 위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선과 악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 등에 대한 무지인 것이다. 그리고 외적인 무지나 인간의 육신을 비롯한 자연계에 대한 무지를 말하는 것으로서, 모든 물질 세계의 근본은 무엇이며 그 모든 현상은 각각 어떠한 법칙에 따라 일어나는가 하는 것 등에 대한 무지인 것이다. 인간은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쉽지 않고 무지에서 지에 도달하기 위하여 진리를 찾아 나왔다. 그리하여 내적인 무지에서 내적인 지에 도달하기 위하여 내적인 진리를 찾아 나온 것이 종교요, 외적인 무지에서 외적인 지에 도달하기 위하여 외적인 진리를 찾아 나온 것이 과학이다. 이와 같이 알고 보면 종교와 과학은 인생의 양면의 무지로부터 양면의 지에 도달하기 위하여 양면의 진리를 찾아 나온 방편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 무지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가지고 본심의 욕망이 지향하는 선한 방향으로만 나아가 영원한 행복을 누리기 위하려는, 종교와 과학이 통일된 하나의 과제로서 해결되어 내 외 양면의 진리가 상통하게 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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