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적 가난이란?

 

그리스도교적 가난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까지 이 주제를 놓고 그 참된 의미와 실천의 문제에 대해서 고찰해 보았다. 제 1장에서는 먼저 그리스도교의 가난이라는 단어가 어느 한 의미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애매모호성한 단어로서 여러 가지 의미를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고, 제 2장에서는 성서적 관점에서 가난의 개념을 살펴 보았는데 그것은 결국 복음적 가난에로 귀착됨을 알 수 있었다. 제 3장에서는 초대 교회의 가난의 모습을 살펴보았는데 결국 초대교회는 예수의 지상명령으로 인해 내부적인 결속력을 굳게 다진 공동체였기 때문에 불가능해 보이던 ‘소유공동체’가 예루살렘 모교회에서 기적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초대교회의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은 오늘날 같이 척박한 세상에서 오히려 큰 위로가 되고 희망을 던져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제 4장에서는 가난에 대한 신학적인 의미를 남미 해방신학자들의 의견들을 종합하여 제시하였으며, 끝으로 제 5장에서는 결국 오늘날 그리스도교적 가난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 나름대로 방향을 제시해 보았다.


이러한 고찰을 통하여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교적 가난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겠다. 즉 그리스도교적 의미의 가난이란 복음적 가난으로서 우리를 위하여 스스로 당신 자신을 낮추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과 당신을 따르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요구하신 그분의 권고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그리고 그것의 동기는 가난하신 그리스도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사랑에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적 가난은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그리고 강요된 가난을 퇴치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취하는 의지적 가난이며 또한 정신적이며 동시에 물질적인 가난인 것이다. 이러한 그리스도교적 가난은 개인적 차윈에서 뿐만 아니라 공동체적 차원에서 실천되어야 하며 더 나아가 사회적 차원에서도 실천되어야 한다. 그때 그리스도교적 가난은 참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현대의 교회가 세상에 대해 점차 그 영향력을 상실해가는 이유는 바로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한국 교회는 그동안 지나치게 양적 증가에만 치우쳐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한국교회는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교인이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룩이 되는 열심한 그리스도인이 있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참으로 복음을 생활로써 증거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때 그리스도교인의 숫자는 저절로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적 가난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가난 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가난하신 그리스도를 보다 철저히 따르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충실한 제자가 되고자 하는 모든 그리스도교인들은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나 가난의 참된 의미를 알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해 나가고자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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