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일반적 역사와 구원의 역사 사이의 관계성
지금까지 우리는 역사적인 신적 계시의 전개과정을 몇 개의 관점으로 나누어 고찰해 봄으로 보다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하엿다. 그런데 이 구원의 역사가 인류의 전반적 역사과정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고찰해 봄으로써 우리는 하느님의 구원적 계시의 역사를 한층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구원의 역사(구세사)라는 말은 19세기부터 쓰이기 시작하였는데, 이 말의 개념은 아직도 분명히는 규명되어 있지 않고 학자들간에 논란이 분분하다. 이 말의 정확한 의미는 <역사>라는 말과 <구원>이라는 말을 어떻게 알아듣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구세사(구원의 역사)를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하여, 이것을 다음과 같이 두 가지 형태로 구분하는 것이 유용하며 또한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구세사 그 자체가 현실적으로 따로 분리되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그렇게 구분해서 생각해 봄으로써 그것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례적으로 우리는 구세사를 <일반구세사>와 <특별 구세사>로 구분하여 말하곤 한다. 특별 구세사는 아브라함의 부르심에서 시작하여 모세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그 절정에 도달한 일련의 신적 계시과정을 말하고, 일반 구세사는 특별 구세사 이전에 그리고 그와 함께 전개되어 온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의한 계시 과정을 말한다. 이 두 구세사 사이의 차이점은 자연과 초자연의 차이도 아니고 또한 단순한 어떤 외형적 계시양상의 차이도 아니다. 그 차이점은 오직 특별 구세사에는 이것을 <만들어 내며 밝혀 주는> 하느님의 말씀이 있고 일반 구세사에는 그러한 하느님의 말씀이 없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일반 구세사라는 말의 개념은 일반적인 세상의 역사가 바로 구원의 역사라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특별 구세사 밖에서도 신적 구원이 있다는 것을 전제할 때야 비로소 그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런데 특별 구세사 밖에서도 신적 구원이 있다는 주장은,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원하시며 (보편적 구원의지) 세상만물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여 창조되었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존속한다는 성서적 증언들에 의하여 정당화된다. 따라서 특별 구세사 밖에소도 구원은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일종의 구원의 역사가 존재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두 구세사 사이의 관계성을 규명하는 일이다. 그 관계성을 우리는 역사적 관계성과 객관적 관계성으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있는데, 먼저 역사적 관계성에 대하여 언급하면 특별 구세사는 역사적으로 일반 구세사 안에 그 기반을 가지고 있고 또한 일반 구세사에서부터 발전되어 나왔으며 일반 구세사는 특별 구세사를 통하여 그 완성에 도달한다는 것에 대하여는 논란의 여지가 없이 확실하다. 즉 창세기에 따르면 온 세상의 진화발전이 모두가 구원의 역사이다. 하느님께서는 처음부터 아주 용의주도하게 인간의 구원을 계획하시고 그것을 계획대로 실현해 오셨다. 세상의 창조과정이 바로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구원적 대화를 준비하고 실현하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이 구원적 대화(부르심, 말을 건넴)는 점점 더 그 강렬성에 있어 밀도가 짙어져 가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 대화의 범위는 점점 더 좁혀져 드디어 아브라함에게로 집중된다. 마침내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그를 특히 부르시고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으신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도 예언자들의 시대에는 그 범위가 <충실한 남은 무리>에로 축소되고 드디어 한 인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그 결정적 절정에 이른다. 그러나 다시 이 구원적 대화는 예수 그리스도를 분기점으로 해서 다시 온 인류에게로 확산되어 나아간다.
그런데 일반 구세사와 특별 구세사 사이의 객관적 (논리적) 관계성을 규명하는 일은 간단치가 않다. 특히 일반 구세사는 특별 구세사로써 이미 역사적 완성에 도달했고 이제 전자는 후자를 통해서만 구원의 역사로서의 유효성과 존재이유가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즉, 이 경우에 아직도 특별 구세사 밖에 수많은 사람들이 머물어 있는데 그들의 구원은 불가능한 것인가? 그러나 반대로 일반 구세사는 이것이 특별 구세사로써 이미 완성된 이후에도 그 이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구원의 역사로서의 유효성(효력)을 갖고 있다고 말하면 특별 구세사의 절대적 성격이 손상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을 전통적 말마디로 표현하면 교회 밖에서도 구원이 있느냐 하는 문제로 귀착된다.
이 문제에 대하여 지금까지 여러 신학적 해결방안이 시도되었으나(예컨데 카알 라너의 <익명의 그리스도인> 등) 미카엘 슈마우스의 견해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최종적이고 결정적이며 보편적 의미가 있는 하느님의 자기계시이며 일반 및 특별 구세사의 절대적 완성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모든 사람들의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이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구원될 수 없다. 그러므로 다른 모든 일반 구세사에 속하는 종교들은 이 그리스도의 계시와 관련되는 한에 있어서만 그 잠정적 유효성이라도 누리게 된다. 즉, 일반 구세사에 속하는 그 종교들의 존재이유 내지 합법적 유효성은 그리스도의 계시(교회의 창립)로써 원칙상으로는 끝나버렸다. 그러나 실제상으로는 그리스도의 계시가 먼저 <세상 끝까지> 선포되어야 하고 또한 다른 모든 종교들의 오류와 남용을 그리스도의 계시가 정화 및 보완하면서 그 종교들의 종교적 가치들을 수용하여 그리스도교를 풍요케 할 때에야 비로소 끝나게 된다. 그렇다면 이 복음선포와 정화․보완․완성은 언제 그리고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이것은 한꺼번에 기계적으로 즉 종교대 종교 사이의 제도적 결합이나 통합을 통하여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점진적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선포자와 여타 종교의 신봉자들 사이에 인간 대 인간의 만남과 회개로써만 가능하다. 그리고 이러한 만남과 회개를 통한 그리스도교의 복음선포 활동은 이 세상 역사의 안에서가 아니면 적어도 그 역사의 종말에 가서는 이루어지고야 말 것이다. 그러므로 비그리스도교적인 모든 종교들(일반 구세사)의 존재이유와 합법적 유효성은 원칙상으로는 그리스도교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이미 끝나 버렸지만, 그러나 실제상으로는 복음선포와 비그리스도교인들의 회개로써 그리스도교가 완성될 때까지는 잠정적(조건부적)인 유효성을 누리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비그리스도교인들의 구원에 대하여 지금 당장이라는 입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해도 좋은 것이다 : 그들은 자신들이 신봉하는 그 종교의 구성원 자격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더 정확히 말하면 아직도 잠정적인 조건부 유효성을 가진 일반 구세사를 통하여 그리고 그 종교의 구성원 자격 덕분에 구원에 이를 수가 있다. 즉, 그들은 그 종교 안에서 그들이 실천한 그 신앙행위와 신앙내용의 덕분에 구원에 이를 수가 있다. 왜냐하면 그 신앙 행위와 내용의 밑바탕에는 진실로 말하거니와 세상만ㄴ물의 중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며, 만일 누가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가 자기의 자유로운 자아결단으로써 핑계 댈 수 없을 만큼 그리스도를 배척했을 때뿐이다.
이러한 해결방안에 대하여 아마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질문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 첫째는 이 경우에 그리스도교의 절대적 성격이 손상되지 않는가, 즉 반그리스도교적인 무차별주의를 조장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고 ; 둘째는 이 경우에 복음선포 활동을 애써 실천할 필요가 있는가, 즉 선교활동이 무의미하게 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첫째 질문에 대하여 우리는 이렇게 대답한다 : 위에 말한 해결방안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교회의 절대적 성격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정확히 알아야 한다. 교회의 절대적 성격은 그리스도의 절대성을 말하는 것이며 여기서 <절대>라는 말은 그 글자가 암시하는 것처럼 다른 모든 것과 아무런 관계성이 없는 그런 절대적 독존 내지 독립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창조사업 전체를 놓고 볼 때 다른 모든 것들의 근본 밑바탕(핵심)이시며 따라서 그 모든 것들과 가장 강렬한 관계성을 소유하고 계신 분이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은 당신 자신을 창조물들에게 통교전달하여 주시기 위하여 세상만물을 그분을 통하여 아무런 조건도 없이 받아들이고 계실 뿐만 아니라 또한 사실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은 당신 자신을 창조물들에게 남김없이 증여하셨다. 그러므로 교회의 절대성은 그리스도의 절대성을 말하며 그리스도의 절대성은 만민이 구원되기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데 있다. 따라서 일반 구세사를 통해서 구원된다. 해도 그것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기 때문에 이 경우에도 역시 그리스도의 절대성과 교회의 절대성은 살아 남게 된다.
둘째 질문에 대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우리가 방금 제시한 해결방안은 결코 그리스도 교회의 선교활동은 없어도 괜찮은 것으로 여기게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경우에 일반 구세사는 특별 구세사와 나란히 존속하면서 잠정적인 조건부 구원기능을 수행하게 되어 있지만, 그러나 역시 특별 구세사는 일반 구세사에 비교해 볼 때 보다 더 확실하고 은혜로운, 그래서 한층 더 쉬운 구원의 통로이므로 우리는 이 <사이> 기간 동안에 마침내는 모든 인간들이 이 특별한 구원통로를 통하여 구원받을 수 있도록 확장하지 않으면 안되며, 우리 그리스도교는 사실로 이 선교임무를 우리 주 그리스도께로부터 직접 받았기 때문이다. 선교활동이야말로 교회가 주님께 직접 받은 가장 본질적인 임무이다. 따라서 교회가 복음선포를 해야 할 필요성은 특별 구세사를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이 전혀 불가능하기 때문이 아니라, 특별 구세사에는 여러가지 특별한 신적 도우심(예컨대 성사들)이 준비되어 있고 따라서 보다 더 충만한 구원에 이를 수가 있으므로 이웃 형제(동료인간)을 도와주는 데 있는 것이며, 교회가 주님께 직접 받은 그 본연의 임루를 수행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방금 말한 그 해결방안은 교회의 선교활동을 위축시키거나 없어도 괜찮은 것으로 여기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의 선교활동은 인간을 위한 보다 더 위대한 봉사활동임을 보여주며 또한 선교활동이 권태와 좌절에 쉽게 빠지지 않도록 격려해 주고 있다.
세상의 일반적 역사와 구원의 역사 사이의 관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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