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성서에 나타난 하느님 체험
“하느님께서는 예전에는 여러번 여러 모양으로 예언자들을 통해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으나 이 마지막 날에는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아들을 만물의 상속자로 삼으셨고, 또한 그를 통하여 온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이 아들은 그분 영광의 광채요 그분 본체의 표상이시며 자신의 힘찬 말씀으로 만물을 보존하십니다”(히브 1,1-3).
神-學(Theo-logia)은 글자 그대로 하면 神에 관한 언사라는 뜻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리스도교의 이해에 다르면 신학은 하느님 자신이 말씀을 하심으로써, 즉 우리 인간에게 건내신 말씀을 통해서 비로소 신학은 가능하게 된다. 하느님께서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신 방식과 이 백성의 신앙에 대한 구약성서의 증언은 우리의 신인식을 위한 지속적인 원천이다. 또한 이는 나자렛 예수의 하느님 나라 선포의 배경을 이루고 이 배경을 전제로 해서 예수의 하느님 선포의 특색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끝으로 위에서 인용한 히브리서는 예수의 말씀과 행적을 통해서 하느님이 어떤 분인가에 대한 것만 밝혀진 것이 아니라 예수 자신이 “마지막 날에”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로고스,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이 밝혀졌다는 것을 암시한다. 즉 예수는 하느님 계시의 ‘도구’나 매체에 지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 자신이 계시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2.1. 구약성서에 나타난 하느님 체험
인간의 말로 증거될 수 있는 하느님 체험은 항상 역사적으로 중개되고 구체적 장소와 특정한 시간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이스라엘의 하느님 체험 역시 구체적인 시간에서 특정한 장소에서 이루어진 역사적 사건을 통해서 매개되었다.
2.1.1. 이스라엘 선조들의 하느님 체험: 가족신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등의 이스라엘 시조들의 종교를 재구성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부족시조의 역사는 그들이 종교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시대에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단편적인 것들은 남아있다. 이렇게 단편적으로 남아있는 증언에 따르면 부족시조들은 유목민이었고 종교적 관점에서는 가족신에 의존하였다. 즉 오늘날의 개념으로 하면 그들은 다신론자들이었다.
이스라엘의 선조들은 다신론적 사고 속에서 살았는데, 그들의 다신론은 많이 숙고되고 이론화된 형태는 물론 아니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베두인들(다른 모든 다신론적 집단과 마찬가지로) 사이에서는 여러 신들 중에서 특정한 신에게 최고의 숭배를 드리는 一神숭배(monolatry: monos+latreia)적 경향이 있었다. 이 셈족 계통의 유목민 많은 수의 신들을 섬겼다. 예를 들어서 특정한 오아시스와 관련된 거주 신들에게 제물을 봉헌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정서적으로 유일한 신, 즉 엘(El)을 선호하였다. 십중발구는 시리아와 팔레스티나 지역에서 엘은 신들의 임금, 세상의 창조자, 모든 신들과 인간들의 아버지로서 숭배되었고, 부인 아쉐라(Aschera)와 함께 옥좌에 머물러 있으며 한 장소 묶여있지 않다고 여겨졌다. 언어적인 고찰에 의하면 족장들은 엘을 가족신으로 간주하였다. 즉 엘은 족장들의 가족에게 땅과 후손을 보장하고, 유목민의 유랑생활을 보호하며, 목초지를 바꿀 때 길잡이가 되고, 풍요함을 선사하였다. 가족이 외적인 반대자들을 거슬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두려움을 자아내는 가족신 ‘엘 샤다이’(El Shaddaj), 즉 ‘전능하신 분’의 덕분으로 간주되었다. 전문서적에 의하면 사람의 이름과 장소명 그리고 도자기 유물에서 이스라엘의 고대 종교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구약성서에는 하느님이 약 6500번 ‘야훼’(Jahwe)로 지칭된 것에 비해서 약 2500번가량 ‘엘’(El)로 표기되었다. 엘-종교의 흔적은 ‘엘은 강하시다’라는 뜻을 지닌 이스라-엘(Isra-El)에서 발견되다. 아브라함의 이름 ‘abram’은 ‘아버지는 높으시다’라는 의미로서 엘의 아버지 역할을 암시한다. 엘 샤다이(El Shadadaj)는 그리스어로 ‘전능하신 분’(pantokrator)으로 번역되었다.
가족신은 ‘인격적 신’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서 ‘인격’(persona)이란 말은 후대의 신학에서 논의되는 하느님의 인격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 가족신은 집단과 개개인에게 수호신으로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할 뿐이다. 신의 보호를 받은 사람이나 집단은 항상 사제적 중개 없이 그들의 하느님께 다가갔다. 그들은 축제력이나 성소도 없이 그들의 단순한 삶의 세계에서 특별한 사건을 (탄생, 목초지 변경) 경축하였는데, 이때 그들의 신에게 소박한 제물을 바쳤다 (이를 사회적 요인인 가족 내에서 이루어진다는 뜻에서 소규모의 종교 예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당시 도시국가와 그 주변의 문명국에서 성행하던 종교는 신화적이고, 자연을 신격화하였다. 자연의 진행과정은 신적 영역의 진행과정의 모상으로 이해되었다. 그리고 이런 신적인 영역의 진행과정은 종교 예식을 통해서 되풀이 되었다(성소에서의 큰 종교 예식, 사제들 그리고 날자가 규정된 축제들). 인간의 삶은 신들에게 봉사해야 한다는 확신이 지배적이었다. 즉 인간이 우주의 질서를 돌보면 신들을 인간이 평안하게 살도록 보살핀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시조설화(창세 12-50)가 설명하는 하느님 체험들은 – 오늘날의 텍스트 형태에 반영되는 – 이스라엘의 신앙전통에서 언어상으로는 물론 계보적으로도 모세 백성의 야훼-신앙과 결부된다. 분명히 야훼-이름은 그와 결부된 역사적 기억을 통해서 큰 통합적 위력을 발휘하게 되었고, 그래서 떠돌아 다니는 개별 씨족의 체험도 그에 접합할 수 있게 되었다.
2.1.2. 야훼-종교의 기원과 발전
2.1.2.1. 야훼 이름의 계시
모세오경의 야훼스트 전승은 하느님 이름 “야훼”를 이미 창조설화(창세 2,4b-24)에 기입하고 인류의 첫세대부터 이런 이름으로 하느님을 공경하기 시작했다(창세 4,26)고 기술한다. 반면에 출애급기 3장의 엘로히스트 전승과 출애급기 6장 2절 이하의 제관계 전승에서 하느님 이름의 계시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에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시키는 지도자로 소명을 받는 것과 연관되어 이루어진다. 최근의 역사적 성서연구에 따르면 후자의 경우가 역사적 사실에 더 충실한 것으로 판명된다.
구약성서에서 가장 오래된 텍스트 중의 하나로 인정받는 판관기 5장의 드보라의 노래는 야훼 이름의 시나이의 사막과 산악지역에서 유래되었음을 드러낸다. 즉 야훼는 시나이산에서 오신 분으로(판관 5,5; 시편 68,9), 그곳에서 오셔서 이스라엘에 자신을 계시하시는 분으로 불렀다(판관 5,4 이하; 신명 33,2이하; 하바꾹 3,7).
모세-야훼 전승도 시나이 지역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모세의 유래에 대해서 과연 역사적으로정확하게 규정할 수 있느냐에는 이론이 있지만, 그가 출애 3,1에서 미디안의 사제 이드로의 사위로 소개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시나이 산악지방은 미디안 사람들이 다니면서 양치는 지역이었다고 추측된다(출애 18장 참조). 하느님이 모세를 만나서 자신의 이름을 선포하면서 그와 결부된 메시지를 설명하는 것을 전하는 출애 33,18-23 그리고 34,5 이하의 기사 또한 계약을 갱신하는 사건을 시나이-호렙산에 국한시킨다.
이렇게 구약성서에의 많은 대목에서는 야훼 이름의 계시가 시나이 전승과 긴밀하게 결부되어서 나타난다.
야훼 이름의 계시 증언(출애 3,14-15)은 예언자의 소명설화를 본따서 구성된 것이다. 즉 하느님은 불꽃이 이는데도 타지 않는 가시덤불의 모습으로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그에게 자신의 맥성을 에집트의 종살이에서 이끌어내어 새로운 땅으로 인도하라는 사명을 맡긴다. 출애 3,13에서 모세는 자신에게 이런 사명을 위탁한 이를 어떤 이름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소개해야겠느냐고 질문한다. 궁동인들에게 이름이란 단순히 어떤 사람을 다른 사람과 구별하는 기능만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선 그 이름을 지닌 사물이나 인물, 혹은 어떤 신의 본질을 나타내 주거나 그 본질을 암시해주는 것이다. 이름을 묻는 모세의 질문에 대해서 하느님은 15절에 가서야 “야훼”라는 이름으로 대답한다. 중간의 14절은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있는 나다’(ehyeh asher ehyeh)라고 대답하시고”라는 내용인데, 이는 하느님의 이름 야훼에 대한 설명으로 여겨진다(하느님 이름 “Jahweh)”는 “hajah” 동사의 3인칭 단수의 미완료형). ehyeh는 히브리어 “hajah”(to be) 동사의 일인칭 단수로서 영어로 옮기면 “I am” 또는 “I will be”이다. asher은 관계대명사이다. 그래서 서양 번역본들은 “I am that/ who I am”, “I am who I will be”, “ I will be what I will be” 등으로 옮긴다. 그런데 “나는 있는 나다”라는 수수께끼 같은 이 문장의 뜻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 문장은 “먼저 ‘나는 내가 누구인지 말하고 싶지 않다, 또는 말할 수 없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주님의 천사가 이름 밝히기를 거부하는 창세 32,30; 판관 13,18 참조). 이 해석에 따르면 15절에 계시된 “야훼”라는 이름도 하느님의 신비를 완전히 표현해 낼 수 없다는 것이다. 하느님을 말 속에 가두어둘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이 문장은 존재하는 않는 (이사 43,10), 또는 아무것도 아닌(이사 41,24) 다른 신들과 반대되시는 분, 즉 존재 자체이신 분을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칠십인역 성서(septuaginta)가 이렇게 옮긴다”. 탈출기, 레위기, 임승필 번역,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6, 29.
현재 통용되는 해석은 ehyeh가 파생된 hajah 동사는 단순히 ‘이다’ 혹은 ‘있다’만을 뜻하지 않고 관계적이고 역동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에 주목한다. 즉 hajah 동사는 ‘거기 있다’, ‘함께 있다’, ‘자신을 드러낸다’, ‘자신을 생생하게 체험케하다’ 등의 뜻을 포함한다. 그리고 여기에 사용된 동사 형태는 미래와 현재의 의미를 함께 지니고 있는데, 이런 것을 종합하면 출애 3,14은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다: ‘나는 (너희를 위해) 함께 있을 자로서 함께 있을 것이다’. ‘혹은 나는 자신을 드러내는 이로서 내 자신을 (능력있게, 강력하게) 드러내 보일 것이다’. “결국 ‘나는 있는 나다’는 하느님의 실존적, 실천적 현존 곧 사람들을 위하여 계시는 그분의 존재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들에게 구원 역사로써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조금씩 드러내 보이신다. 다른 본문들도 이와 같은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이사 52,6; 호세 1,9; 묵시 1,4.8)”. 같은 곳.
하느님은 당신의 이름을 인간에게 알려주면서 소위 자신의 ‘형이상학적’ 본질을 계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당신 실존의 ‘자기 구성’을 계시하시는 것이다.
야훼 이름의 계시에 관한 내용을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야훼-전승은 역사적으로 신빙성 있게 에집트와의 경계 구역인 시나이의 광야와 산악 지역과 연결되어 있다.
(2) 하느님 계시의 사건은 야훼가 인간에게 자신의 “본질”, 즉 자신의 행동의 내적인 동력(動力)을 열어보이고 선사한다. 하느님은 본질적으로 자신만을 위해서, 자신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인간을 위하여, 인간과 함께 하시는 생동적인 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은 당신의 이름을 인간에게 알리면서 자신을 부를 수 있도록, 즉 당신과 친교를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신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3) 야훼 계시의 내용은 하느님이 능력과 함께 실제적으로 현존하는 동시에 여전히 멀리 있는 분이라는 긴장을 그대로 유지한다. 하느님에 대한 체험은 단 한 번에 현재화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안에서 거듭 새롭게 이루어져야 한다.
기원전 4세기부터는 “야훼”라는(히브리말에서는 자음으로만 표기된 YHWH) 이름으로 발음하지 않고 “아노나이(주님)”로 읽는 관습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현재로서는 이 이름의 원발음이 정확하게 어떠했는지 분명하지 않다(대부분의 경우 “야훼”로 발음하지만 다른 의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야훼”를 “주님”으로 부르는 이러한 관습은 그리스말 번역본인 칠십인역을 통해서 (“퀴리오스”= 주님) 신약성서로도 이어진다(사도 2,36; 필립 2,11 참조). “야훼”의 단축형 ‘야, 아후’ 등은 매우 오래된 것으로서 찬미의 환성인 ‘할렐루-야(너희는 주님을 찬미하여라)’, ‘엘리-야후(=엘리야: 나의 하느님은 주님이시다)’, 그리고 여후슈아(=여후수아, 예수: 주님께서는 도움이시다, 또는 주님께서는 구원하신다)‘와 같은 여러 인명을 만드는 데에 사용되었다. 같은 책, 30.
2.12.2. 출애급 체험: 야훼는 구원하고 해방한다.
야훼와 그 백성과의 역사는 출애급 체험으로 시작한다. 출애급기 1장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모두가 에집트에서 종살이를 했다고 전한다. 요셉의 이야기는(창세 37; 39-47; 50)는 부족시조와 에집트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연결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오늘날 출애급 전승의 역사적 배경으로서 다음과 같은 사실이 인정된다: 기원전 1500년에서 1200년 사이에 많은 수의 아시아 계통의 백성들이 집단적으로 에집트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이는 성서 외의 사료에 의해서 분명하게 증명된다. 모세와 함께한 무리는 이미 기원전 14세기에 에집트로 이주해서 목초지를 발견하고 파라오의 목자로 일하였던 셈족 유목민들이었다고 추측된다. 람세스(Ramses) 2세 치하(기원전 1301-1234)의 새로운 왕조 시대에 비에집트 민족들이 거대한 건축공사에서 강제 노동에 동원되었다. 그러던 중에 한 유목민 집단이 지도자(모세)의 지도하에 국경 수비를 뚫고 에집트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모세의 무리”는 탈출 후에 시나이 지역의 유목민인 미디안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지원을 받았다.
출애급 전승에서의 집약된 하느님 체험은 갈대바다에서의 하느님의 구원업적에 대해 이야기 안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 이야기는 상당히 압축된 텍스트 형태인 “바다의 노래”(출애 15)를 통해서 전해진다. 출애 13,17-14,31의 야훼스트 전승층은 갈대바다에서의 구원업적은 이른바 “상황적 기적”, “자연 기적”일 것이라는 판단을 가능케 한다. 즉 (그 지역에서는 종종 있어왔던) 동쪽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이 여울의 바닥을 드러내어서 모세와 백성이 건너갈 수 있었지만, 에집트의 추격자들은 다시 몰려들어오는 바닷물에 빠지게 되었다. 모세가 영도하는 백성은 이 희귀한 자연의 사건을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기적적으로 개입하신 사건으로 체험하였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체험을 신앙적 차원으로 해석하였던 것이다.
갈대바다에서의 구원사화가 지닌 중점적인 신학적 내용은 야훼께서 모세에게 당신의 이름을 계시하면서 한 약속을 성취했다는 것이다. 야훼는 강력한 행동을 통해서 그를 신뢰했던 이들을 에집트에서 이끌어 내었다. 야훼는 그들을 노예살이에서 해방시키고 곤경에서 구해냈다. 여기에 본질적으로 귀속되는 체험은 야훼가 당신의 백성이 가는 길을 동반하고 그 백성이 야훼의 뚜렷한 현존 속에서 머물 수 있는 곳에로 인도됐다는 것이다(출애 19; 2사무 7,6 이하 참조).
“출애급 사건 안에서 이제부터 야훼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하느님 체험이 결정적인 구조를 형성한다: 야훼는 출애급의 하느님, 즉 그는 생명과 자유를 선사하는 신인데, 왜냐하면 그 자신이 생명과 자유 자체로서 사람들이 거기에 참여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서적 전통에서 야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과거든 현재이든 혹은 미래이든 참으로 해방하고 구원하는 체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E.Zenger, Die Mitte der alttestamentlichen Glaubensgeschichte, in: KatBl 101(1976), 6.
출애급의 체험은 이스라엘에서 하느님 공경과 밀접히 연결되었는데, 즉 출애급 체험을 기억하는 것이 하느님을 인식하는 표지가 되었다. 이는 언어적으로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나타난다: “너희 하느님은 나 야훼다. 바로 내가 너희를 에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하느님이다”(출애 20,2; 신명 5,6). 이스라엘 백성은 해마다 파스카 잔치에서 에집트에서의 탈출을 기억(zikkaron)함으로써 항상 현재에,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이 체험했던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사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서 출애급의 체험은 이스라엘의 야훼께 대한 신앙고백의 또 다른 근본적 특성을 드러낸다. 즉 출애급 사건을 통해서 야훼는 바람과 바다도 순종케 하는 분, 자연을 지배하는 분으로 나타나고 그러기에 역사도 지배하는 분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랑의 시간을 견디어 낸 것은 오직 자연과 역사를 주관하면서 생명을 베푸시는 하느님 야훼의 도움 덕분이었다. 이렇게 볼 때 구약성서의 해석에서 나타난 역사신학적 접근은 창조신학적 요소를 포함한다. 모세오경의 최종 편집은 창조설화를 야훼의 역사적 업적에 관한 이야기보다 앞세움으로써 이런 내용을 표현하였다.
2.1.2.3. 영토 점유의 체험: 야훼는 자신의 백성 편에서 싸운다.
늦어도 기원전 1100년경 에집트를 탈출한 집단의 후손들이 팔레스티나에 진입하게 되면서 이른바 영토 점유가 시작된다. 이스라엘 부족의 형성은 오늘날까지도 모든 세부 사항을 다 설명할 수 없이 다양한 과정 속에서 실현되었다. 오늘날 학계의 통설에 의하면 가나안의 도시국가들은 현저한 사회적 차별을 특징으로 하는 봉건적 사회질서를 지니고 있었다. 즉 도시 내의 부유하고 정치적으로 특권을 지닌 층과 도시 외곽에서 농사를 짓던 상당수의 빈민층으로 분리되었다. 국경에서 점차로 가나안 땅 내에로 스며 들어오던 베두인들은 거주지와 목초지를 찾으면서 억압받던 가난한 주민들과 연대를 맺고서 도시 주민과 왕을 대상으로 투쟁하게 되었을 것이다. 투쟁은 정착민과 이주자들 사이에서가 아니라 지배계층과 (이주자들 포함해서) 피지배계층과의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이런 추론을 바탕으로 베두인들이 믿었던 야훼가 토착민의 신 엘을 대치하지 않고 둘이 서로 공존하면서 동일시 된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이름들은 엘과 야훼가 평화적으로 공존하였다는 것을 증언해준다. 즉 이스라엘이나 대천사들의 이름 혹은 다니엘과 같이 엘이 홀로 지칭되는 이름, 엘리야, 요엘과 같은 혼합 형태의 이름, 그리고 예수(요슈아), 요셉과 같이 야훼만 나오는 이름들이 발견된다. 초기의 야훼-종교에서는 아마도 야훼가 아셰라(Aschera)와 결혼하였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O.Keel, Monotheismus(Anm. 1), 170.
이렇게 야훼와 엘을 동일시하였기 때문에 가나안 땅을 점유한지 200년이 지 난다음에 유명한 성소 벧엘(엘의 집)이 야훼의 주요 성소들 중의 하나로 인정되었다. 또한 농부들의 축제(무교절, 주간축제, 초막절)이 중요한 야훼의 축제가 되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여호수아서에서 기록된 것처럼 이스라엘의 영토 점유가 단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추측된다. 각 씨족들이 시와 진실에 뿌리를 둔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후기의 전승에서는 영토점유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을 자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런 이야기들은 필연적으로 서로 닮았기 때문만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구약성서의 사화(史話)는 역사책이라기 보다는 야훼가 이스라엘에 행한 강력한 행동, 즉 에집트에서 이끌어 낸 것과 같이 문명의 땅에로 인도한 행동에 대한 증언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사실상 역사적인 다양성 대신에 신학적으로 밑받침된 단일한 묘사가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 영토점유에 관한 여러 가지 묘사들 중에서 부족 전체가 관련되고 영토점유에 대한 전형적인 형태로 전래된 묘사 하나만이 수용되었다. 이는 중부 팔레스티나의 부족들 사이에 전래된 영토점유에 관한 이야기이다… 중부 팔레스티나 부족들의 영토점유 이야기가 수용된 이유는 명백하다. 이 부족들은 모세의 무리과 함께 야훼-신앙을 받아들였는데, 야훼-신앙은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을 일치시키는 끈이 되었다”. G.Fohrer, Geschichte Israels, Heidelberg, 21979, 45.
영토점유와 연결된 하느님 체험은 근동지방 전체의 사고 세계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즉 야훼 또한 (다른 민족들의 신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권리와 자기 백성을 권리를 평화롭지 못한 투쟁을 통해서 이룩할 준비가 되어있다. “주님은 용사, 그 이름 야훼이시다”(출애 15,3). 그러나 나중에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과 남쪽의 유다 왕국의 변화무쌍한 정치적 운명은 망상에서 깨어나 이런 하느님상을 정화하고 순화하게 하였다. 즉 이스라엘과 유다의 정치적 운명을 통해서 야훼 하느님은 자신의 백성을 반대하고 고난에 처하게 하면서도 자신의 뜻과 의지를 관철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났던 것이다.
2.1.2.4. 다윗 왕조 시대: 야훼는 왕으로 영원히 다스리신다.
초기 이스라엘 전승에서는 왕으로서의 하느님에 대한 관념이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비로소 영토점유 이후에 야훼의 왕권을 찬양하는 대목들(시편 29,10; 145,13; 146,10 참조)이 점차로 늘어난다. 그러나 신의 왕이 정점을 이루는 신들의 가족에 관한 믿음은 고대 근동의 종교들, 특히 가나안 전통에는 잘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야훼의 왕권에 관한 말은 가나안에서 물려받는 것이라는 주장은 충분히 근거가 있다고 하겠다. 이런 표상의 수용은 다층적인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졌는데, 이 과정 중에 기존의 관념이 독특한 내용으로 새롭게 해석된 것을 주목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 가장 오래된 대목인 이사 6,1-5의 예언자 소명 환시는 아직도 완전히 이스라엘의 주변 종교의 상상의 지평 속에 머물고 있다. 즉 천상의 궁정은 왕이신 야훼께 영광을 드린다(시편 29,1 이하; 9; 97,7). 신들 중의 왕이 거룩한 산에 거주한다는 생각 또한 야훼에게 전용(轉用)된다. 예루살렘의 시온산이 야훼의 거처라고 보는 전통(시편 48,3; 이사 14,13 이하 참조)은 바로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느님이 왕으로서 보편적인 주권를 지닌다는 신앙은 가나안의 종교의 특색이었는데, 인격적인 기본 구조의 이스라엘의 야훼-체험은 이런 관념을 이스라엘 백성이 (그리고 개개인이)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는다는 방향으로 심화하였다. “모든 신들을 거느리시는 임금님”(시편 95,3; 참조.: 시편 96,4; 97,7.9), “모든 민족과 모든 시대의 왕”(시편 145,13 참조)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사 33,22 참조)이 된다. 바빌론 유배 기간과 그 이후에 이민족으로부터 억압을 받던 시절에 야훼의 왕권에 대한 선포는 점점 더 미래의 실재에 대한 약속으로 옮겨 간다(이사 52,7-9 참조).
이스라엘은 주변 종교들의 관념세계에 연계해서 야훼를 왕으로 섬겼다. 이런 수용이 쉬웠던 것은 이미 가나안에 왕이신 하느님이 보편적인 주권을 지니고 다른 모든 신보다 우월하다는 신앙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스라엘은 자신과 야훼와의 인격적인 결합을 야훼가 왕으로 다스리신다는 생각에 수용하여서 자신들이 외세로부터 위협을 받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왕이신 야훼께 대한 희망을 간직하였다.
2.1.2.5. 정치적 파국의 체험: 야훼는 심판하고 용서한다.
종래의 지배적인 이스라엘의 하느님관(觀)이 근본적으로 의문에 처하게 된 역사적 사건들 중에서 두 가지가 특별히 부각된다. 즉 기원 전 722년 아시리아와의 전쟁에 패한 결과로 북왕조 이스라엘이 멸망한 사건과 느부갓네살이 남왕조 유다에 승리한 후에 시작된 바빌론 유배(기원후 587-538년)이다. 바빌론 유배는 가족과 백성의 범위에 머무른 이전까지의 순진하고 소박한 하느님 신앙을 고통 속에서 새롭게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신학적 성찰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던 이들은 신명기와 신명기계의 저자, 제2 이사야 그리고 제관계 문헌의 저자들이다.
북왕조의 멸망 전에 아모스와 호세아가, 남왕조의 패망 전에는 예레미아가 미구에 닥칠 이스라엘 백성의 운명을 하느님의 심판으로 표현하였다. 즉 그들은 현재의 죄가 하느님의 개입을 유발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혔다. 여기에서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평가기준은 이스라엘 백성이 야훼와의 계약 체결에서 받아들인 종교적, 사회적 의무들이다: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 것, 정치적 동맹 체계가 아니라 오직 야훼께만 신뢰를 둘 것, 모든 이를 위한 정의와 생명이 그것이다.
기원전 587년에 결정적인 파국이 이스라엘에게 닥쳤다. 바빌론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성전을 파괴하였으며, 야훼의 약속으로 보증된 다윗 왕조를 소멸시키고, 지도층의 사제들을 살해하고, 주민의 대다수를 팔레스티나에서 바빌론으로 끌고 갔다. 시련에 처한 이스라엘의 신앙이 당면한 문제는 하느님께 걸었던 모든 희망이 깨어진 이 체험을 야훼 신앙에 어떻게 수용하느냐는 것이었다. 이런 수용 작업은 이미 예레미아가 행한 심판의 설교로 시작되었고(예레 15,2-4 참조), 무엇보다도 유배 기간의 예언자인 에제키엘과 제2 이사야와 신명기 계통의 역사 서술에 의해서 신학적으로 수행되었다. 이스라엘의 “수난체험”에 대한 신학적 작업은 여러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1) 신명기 계통의 역사서는 본질적으로 죄의 고백이다. 이 역사서의 최종편집은 기원전 587년의 사건에서 받은 체험 속에서 이루어졌다. 어떻게 해서 이런 파국이 올 수 있었는가? 신명기계 학파는 이에 대해서 이스라엘 왕국의 성립과 구체적인 형성, 그리고 야훼만을 홀로 섬기라는 제1 계명을 어긴 것에 대한 벌이라고 대답하였다.
(2) 야훼의 능력 범위는 이방 민족까지도 포함한다. 이런 인식은 이미 유배 이전의 예언서에서(아모 9장; 이사 10장 참조)도 찾아 볼 수 있는데, 완전한 수용은 비로소 바빌론 유배 시절에 이루어진다. 즉 야훼는 타향 땅에서도 구원의 능력이 가득하게 현존할 수 있고, 자신이 정한 방향으로 역사를 진행시키기 위해서 이방인의 지배자들(바빌론의 느브캇네살, 페르시아의 키로스)을 이용할 수도 있다.
(3) 바빌론에서의 유배 상황은 구조적으로 에집트에서의 종살이와 비교된다. 첫 번째 출애급에서 체험한 야훼의 해방 행동은 용서와 구원에 대한 희망의 징표가 된다. “제2 이사야 메시지가 선포되는 상황은 출애급기에 보도된 상황과 아주 유사하여서 예언자는 자신이 선포하는 구원을 새로운 출애급으로 표현할 정도였다. 구약성서 신학, 즉 구약성서가 하느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의 통일성은 바로 이 두 지점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이스라엘은 고난과 억압의 시간 시작에 야훼를 자신들의 구원자로 만난다; 패망 이후 심연 속에 놓인 이스라엘에 야훼는 구원자로 선포된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그 사이의 장구한 역사에는 이스라엘의 누적된 잘못으로 채워져 있고, 그래서 구원과 용서의 연계가 필연적으로 요청된다”. C.Westermann, Theologie des Alten Testaments in Grundzügen, Göttigen, 1978, 127.
하느님은 역사적인 파국을 넘어서 자신의 활동을 계속함으로써 자신이 하느님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예언자들의 심판의 말에서 하느님이 스스로 유발한 자기 백성의 운명에 대해 슬퍼하는 것이 나타나는데(호세 11,8 이하; 예레 9,10-12.17-22 참조), 이는 하느님의 구원의지와 하느님 행동의 최종적 추진력으로서의 자비를 드러낸다.
이스라엘은 바빌론 유배라는 고난의 시간을 겪으면서 야훼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정화하고 시각을 더 넓히게 되었다. 이런 점은 한 개인의 신앙생활에서도 실현되야 할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
2.1.2.6. 창조 신앙: 야훼 홀로 모든 것을 창조하고 존재하도록 유지한다.
유배시대에 이르러서 비로소 유일신 신앙이 확고하게 되는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야훼신앙이 약화되어 바빌론 종교에 흡수되지 않기 위한 방어책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빌론 종교에 정항하면서 유일한 신 야훼를 통해서 세상이 창조되었다는 창조신앙이 강조된다. 즉 유일한 하느님 이외의 모든 것, 다른 곳에서는 신으로 받드는 천체(天體)도 야훼 하느님이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본래 이스라엘의 신앙 역사에서 역사신학과 창조신앙은 독특하게도 서로 밀접히 연결되어 나타난다: 야훼는 역사와 자연을 지배하는데, 왜냐하면 그는 세계와 세계 질서의 창조적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훼를 창조주로 소개하는 텍스트 중에서 분명 유배 이전의 것도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창조신앙에 대한 문학적 증언이 증가하고 상세하게 되는 것은 바빌론 유배시대의 일이다.
창조신앙은 유배살이를 하면서 정치적, 종교적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원에 대한 희망을 주었다. 그래서 이 시기에 저술된 제관계의 창조설화가 성서의 첫머리에 위치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제2 이사야는 하느님께서 온 세상과 모든 민족들을 그 시초부터 지금까지의 역사 속에서 장악하셨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장악하시면서 미래의 구원을 열어주실 것이라고 선포함으로써 바빌론에서 타향살이를 하는 자기 민족을 위로한다. “야훼께서는 영원하신 하느님, 땅의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힘이 솟구쳐 피곤을 모르시고, 슬기가 무궁하신 분이시다. 힘이 빠진 사람에게 힘을 주시고 기진한 사람에게 기력을 주시는 분이시다” (이사 40,28 이하). 이렇게 강력한 창조자 야훼께 대한 신앙고백은 구원자 야훼께 대한 (새로운) 신뢰를 가능케 한다.
구약성서에서 구원사적 야훼 체험과 창조주에 대한 찬양의 연결은 특별히 시편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서 시편 136편은 창조와 역사의 행동에서 드러나는 야훼의 은총을 감사도문(禱文)의 형태로 찬양한다. 구약성서 후기의 지혜문학에서는 -점점 더 그리스 정신에 물든 이스라엘 주변의 영향을 추가로 받아서- 독특한 전환이 이루어진다. 이스라엘의 창조신앙을 드러내는 전형적인 텍스트에서는 생각이 하느님으로부터 인간에게로 흘러갔다. 즉 야훼가 모든 것의 창조자라는 사실은 심연에 직면해서도 전적으로 그에게 신뢰를 둘 수 있는 데에 대한 일반적인 논거였다. 지혜서(지혜 13,1-9)에서는 역방향으로 나간다: 사물의 아름다움은 하느님의 자취이고 감명을 주는 창조계는 그를 지으신 강력한 하느님께 대한 길을 열어준다.
2.1.2.7. 묵시문학적 역사 환시: 야훼는 구원에 가득찬 미래에 대해서 스스로 보증을 선다.
실존을 깊이 위협하는 체험과 바닥을 알 수 없는 불행은 바빌론의 유배로 끝나지 않았다. 유배 이후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번갈아 가면서 이민족의 지배 하에 놓였는데, 처음에는 정치적 관계에 국한되던 이민족의 지배가 그리스의 침략 이후에는 종교적 분야에까지 확장되었다. 이 체험은 하느님 신앙을 새로운 위기에 처하게 했다: 새 지배자들은 율법과 야훼 공경을 방해하거나 아주 금지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들의 권력이 야훼로부터 주어진 것이 아닐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다 역사의 진행은 세계적인 강대국들에 의해서 정해지는 반면 이스라엘은 강대국들의 경쟁에서 아무 것도 아니라는 통찰이 그들을 압박해왔다. 이런 통찰은 유배 이후에 점점 더 파고 들어서 이제는 완전히 거부할 수 없는 듯 보였다. 역사의 하느님은 어디 있었나? 그의 능력의 증명은 어디에 있나? 역사의 흐름이 그의 손에서 빠져나갔나? 세상의 세력들은 하느님을 반대하고 나서면서 활동 규범을 그의 손에서 빼았을 수 있다고 주장해도 되는가?”. J.Schreiner, “…wird der Gott des Himmels ein Reich errichten, das in Ewigkeit nicht untergeht” (Dan 2,44). in: N.Lohfink u.a., “Ich will eiuer Gott werden”, Stuttgart, 1981, 126.
이스라엘이 받는 압제는 점점 더 증가되어서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Antiochus IV. Epiphanes, 기원전 175-164)의 치하에서 야훼께 충성하는 이들이 공개적으로 박해를 받기에 이르렀다. 이런 시대사적 배경에서 묵시문학적 역사 해석이 형성되었는데, 구약의 정경에서는 다니엘서가 이를 받아들였다. 事後豫言(Vaticinium ex eventu)의 표현형식을 빌어서 지금까지의 역사의 진행이 하느님께로부터 계획되고 미리 예고된 것으로 서술하였다. 이렇게 하느님이 역사를 지배하신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현재의 고난 속에서 예언된 미래의 구원이 실현되리라는 것에 대한 신뢰를 일깨우려는 것이다. 다니엘서 7장에 선포된 종말은 “새로운 시대”의 특징을 지닌다. 즉 새로운 시대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왕국으로서 모든 낡은 세계의 제국들을 대치할 것이다(다니 9,26; 11,27; 12,13 참조).
구약성서의 묵시문학적 전통은 2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비록 현재의 고난에 찬 역사의 체험 때문에 그렇지 않게 보이더라고 야훼는 역사를 뒤에서 조정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로 지금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 하느님의 구원 행동에 신뢰를 두고 살도록 요청받고 있다. 확고한 신앙 때문에 목숨을 잃은 의인들에 대해서 숙고하면서 하느님께서 이들을 부활시키실 것이라는 희망이 싹트게 된다(다니 12,2; 2 마카 7,23 참조).
2. 성서에 나타난 하느님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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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서에 나타난 하느님 체험
“하느님께서는 예전에는 여러번 여러 모양으로 예언자들을 통해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으나 이 마지막 날에는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아들을 만물의 상속자로 삼으셨고, 또한 그를 통하여 온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이 아들은 그분 영광의 광채요 그분 본체의 표상이시며 자신의 힘찬 말씀으로 만물을 보존하십니다”(히브 1,1-3).
神-學(Theo-logia)은 글자 그대로 하면 神에 관한 언사라는 뜻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리스도교의 이해에 다르면 신학은 하느님 자신이 말씀을 하심으로써, 즉 우리 인간에게 건내신 말씀을 통해서 비로소 신학은 가능하게 된다. 하느님께서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신 방식과 이 백성의 신앙에 대한 구약성서의 증언은 우리의 신인식을 위한 지속적인 원천이다. 또한 이는 나자렛 예수의 하느님 나라 선포의 배경을 이루고 이 배경을 전제로 해서 예수의 하느님 선포의 특색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끝으로 위에서 인용한 히브리서는 예수의 말씀과 행적을 통해서 하느님이 어떤 분인가에 대한 것만 밝혀진 것이 아니라 예수 자신이 “마지막 날에”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로고스,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이 밝혀졌다는 것을 암시한다. 즉 예수는 하느님 계시의 ‘도구’나 매체에 지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 자신이 계시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2.1. 구약성서에 나타난 하느님 체험
인간의 말로 증거될 수 있는 하느님 체험은 항상 역사적으로 중개되고 구체적 장소와 특정한 시간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이스라엘의 하느님 체험 역시 구체적인 시간에서 특정한 장소에서 이루어진 역사적 사건을 통해서 매개되었다.
2.1.1. 이스라엘 선조들의 하느님 체험: 가족신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등의 이스라엘 시조들의 종교를 재구성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부족시조의 역사는 그들이 종교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시대에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단편적인 것들은 남아있다. 이렇게 단편적으로 남아있는 증언에 따르면 부족시조들은 유목민이었고 종교적 관점에서는 가족신에 의존하였다. 즉 오늘날의 개념으로 하면 그들은 다신론자들이었다.
이스라엘의 선조들은 다신론적 사고 속에서 살았는데, 그들의 다신론은 많이 숙고되고 이론화된 형태는 물론 아니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베두인들(다른 모든 다신론적 집단과 마찬가지로) 사이에서는 여러 신들 중에서 특정한 신에게 최고의 숭배를 드리는 一神숭배(monolatry: monos+latreia)적 경향이 있었다. 이 셈족 계통의 유목민 많은 수의 신들을 섬겼다. 예를 들어서 특정한 오아시스와 관련된 거주 신들에게 제물을 봉헌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정서적으로 유일한 신, 즉 엘(El)을 선호하였다. 십중발구는 시리아와 팔레스티나 지역에서 엘은 신들의 임금, 세상의 창조자, 모든 신들과 인간들의 아버지로서 숭배되었고, 부인 아쉐라(Aschera)와 함께 옥좌에 머물러 있으며 한 장소 묶여있지 않다고 여겨졌다. 언어적인 고찰에 의하면 족장들은 엘을 가족신으로 간주하였다. 즉 엘은 족장들의 가족에게 땅과 후손을 보장하고, 유목민의 유랑생활을 보호하며, 목초지를 바꿀 때 길잡이가 되고, 풍요함을 선사하였다. 가족이 외적인 반대자들을 거슬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두려움을 자아내는 가족신 ‘엘 샤다이’(El Shaddaj), 즉 ‘전능하신 분’의 덕분으로 간주되었다. 전문서적에 의하면 사람의 이름과 장소명 그리고 도자기 유물에서 이스라엘의 고대 종교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구약성서에는 하느님이 약 6500번 ‘야훼’(Jahwe)로 지칭된 것에 비해서 약 2500번가량 ‘엘’(El)로 표기되었다. 엘-종교의 흔적은 ‘엘은 강하시다’라는 뜻을 지닌 이스라-엘(Isra-El)에서 발견되다. 아브라함의 이름 ‘abram’은 ‘아버지는 높으시다’라는 의미로서 엘의 아버지 역할을 암시한다. 엘 샤다이(El Shadadaj)는 그리스어로 ‘전능하신 분’(pantokrator)으로 번역되었다.
가족신은 ‘인격적 신’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서 ‘인격’(persona)이란 말은 후대의 신학에서 논의되는 하느님의 인격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 가족신은 집단과 개개인에게 수호신으로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할 뿐이다. 신의 보호를 받은 사람이나 집단은 항상 사제적 중개 없이 그들의 하느님께 다가갔다. 그들은 축제력이나 성소도 없이 그들의 단순한 삶의 세계에서 특별한 사건을 (탄생, 목초지 변경) 경축하였는데, 이때 그들의 신에게 소박한 제물을 바쳤다 (이를 사회적 요인인 가족 내에서 이루어진다는 뜻에서 소규모의 종교 예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당시 도시국가와 그 주변의 문명국에서 성행하던 종교는 신화적이고, 자연을 신격화하였다. 자연의 진행과정은 신적 영역의 진행과정의 모상으로 이해되었다. 그리고 이런 신적인 영역의 진행과정은 종교 예식을 통해서 되풀이 되었다(성소에서의 큰 종교 예식, 사제들 그리고 날자가 규정된 축제들). 인간의 삶은 신들에게 봉사해야 한다는 확신이 지배적이었다. 즉 인간이 우주의 질서를 돌보면 신들을 인간이 평안하게 살도록 보살핀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시조설화(창세 12-50)가 설명하는 하느님 체험들은 – 오늘날의 텍스트 형태에 반영되는 – 이스라엘의 신앙전통에서 언어상으로는 물론 계보적으로도 모세 백성의 야훼-신앙과 결부된다. 분명히 야훼-이름은 그와 결부된 역사적 기억을 통해서 큰 통합적 위력을 발휘하게 되었고, 그래서 떠돌아 다니는 개별 씨족의 체험도 그에 접합할 수 있게 되었다.
2.1.2. 야훼-종교의 기원과 발전
2.1.2.1. 야훼 이름의 계시
모세오경의 야훼스트 전승은 하느님 이름 “야훼”를 이미 창조설화(창세 2,4b-24)에 기입하고 인류의 첫세대부터 이런 이름으로 하느님을 공경하기 시작했다(창세 4,26)고 기술한다. 반면에 출애급기 3장의 엘로히스트 전승과 출애급기 6장 2절 이하의 제관계 전승에서 하느님 이름의 계시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에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시키는 지도자로 소명을 받는 것과 연관되어 이루어진다. 최근의 역사적 성서연구에 따르면 후자의 경우가 역사적 사실에 더 충실한 것으로 판명된다.
구약성서에서 가장 오래된 텍스트 중의 하나로 인정받는 판관기 5장의 드보라의 노래는 야훼 이름의 시나이의 사막과 산악지역에서 유래되었음을 드러낸다. 즉 야훼는 시나이산에서 오신 분으로(판관 5,5; 시편 68,9), 그곳에서 오셔서 이스라엘에 자신을 계시하시는 분으로 불렀다(판관 5,4 이하; 신명 33,2이하; 하바꾹 3,7).
모세-야훼 전승도 시나이 지역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모세의 유래에 대해서 과연 역사적으로정확하게 규정할 수 있느냐에는 이론이 있지만, 그가 출애 3,1에서 미디안의 사제 이드로의 사위로 소개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시나이 산악지방은 미디안 사람들이 다니면서 양치는 지역이었다고 추측된다(출애 18장 참조). 하느님이 모세를 만나서 자신의 이름을 선포하면서 그와 결부된 메시지를 설명하는 것을 전하는 출애 33,18-23 그리고 34,5 이하의 기사 또한 계약을 갱신하는 사건을 시나이-호렙산에 국한시킨다.
이렇게 구약성서에의 많은 대목에서는 야훼 이름의 계시가 시나이 전승과 긴밀하게 결부되어서 나타난다.
야훼 이름의 계시 증언(출애 3,14-15)은 예언자의 소명설화를 본따서 구성된 것이다. 즉 하느님은 불꽃이 이는데도 타지 않는 가시덤불의 모습으로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그에게 자신의 맥성을 에집트의 종살이에서 이끌어내어 새로운 땅으로 인도하라는 사명을 맡긴다. 출애 3,13에서 모세는 자신에게 이런 사명을 위탁한 이를 어떤 이름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소개해야겠느냐고 질문한다. 궁동인들에게 이름이란 단순히 어떤 사람을 다른 사람과 구별하는 기능만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선 그 이름을 지닌 사물이나 인물, 혹은 어떤 신의 본질을 나타내 주거나 그 본질을 암시해주는 것이다. 이름을 묻는 모세의 질문에 대해서 하느님은 15절에 가서야 “야훼”라는 이름으로 대답한다. 중간의 14절은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있는 나다’(ehyeh asher ehyeh)라고 대답하시고”라는 내용인데, 이는 하느님의 이름 야훼에 대한 설명으로 여겨진다(하느님 이름 “Jahweh)”는 “hajah” 동사의 3인칭 단수의 미완료형). ehyeh는 히브리어 “hajah”(to be) 동사의 일인칭 단수로서 영어로 옮기면 “I am” 또는 “I will be”이다. asher은 관계대명사이다. 그래서 서양 번역본들은 “I am that/ who I am”, “I am who I will be”, “ I will be what I will be” 등으로 옮긴다. 그런데 “나는 있는 나다”라는 수수께끼 같은 이 문장의 뜻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 문장은 “먼저 ‘나는 내가 누구인지 말하고 싶지 않다, 또는 말할 수 없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주님의 천사가 이름 밝히기를 거부하는 창세 32,30; 판관 13,18 참조). 이 해석에 따르면 15절에 계시된 “야훼”라는 이름도 하느님의 신비를 완전히 표현해 낼 수 없다는 것이다. 하느님을 말 속에 가두어둘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이 문장은 존재하는 않는 (이사 43,10), 또는 아무것도 아닌(이사 41,24) 다른 신들과 반대되시는 분, 즉 존재 자체이신 분을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칠십인역 성서(septuaginta)가 이렇게 옮긴다”. 탈출기, 레위기, 임승필 번역,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6, 29.
현재 통용되는 해석은 ehyeh가 파생된 hajah 동사는 단순히 ‘이다’ 혹은 ‘있다’만을 뜻하지 않고 관계적이고 역동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에 주목한다. 즉 hajah 동사는 ‘거기 있다’, ‘함께 있다’, ‘자신을 드러낸다’, ‘자신을 생생하게 체험케하다’ 등의 뜻을 포함한다. 그리고 여기에 사용된 동사 형태는 미래와 현재의 의미를 함께 지니고 있는데, 이런 것을 종합하면 출애 3,14은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다: ‘나는 (너희를 위해) 함께 있을 자로서 함께 있을 것이다’. ‘혹은 나는 자신을 드러내는 이로서 내 자신을 (능력있게, 강력하게) 드러내 보일 것이다’. “결국 ‘나는 있는 나다’는 하느님의 실존적, 실천적 현존 곧 사람들을 위하여 계시는 그분의 존재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들에게 구원 역사로써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조금씩 드러내 보이신다. 다른 본문들도 이와 같은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이사 52,6; 호세 1,9; 묵시 1,4.8)”. 같은 곳.
하느님은 당신의 이름을 인간에게 알려주면서 소위 자신의 ‘형이상학적’ 본질을 계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당신 실존의 ‘자기 구성’을 계시하시는 것이다.
야훼 이름의 계시에 관한 내용을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야훼-전승은 역사적으로 신빙성 있게 에집트와의 경계 구역인 시나이의 광야와 산악 지역과 연결되어 있다.
(2) 하느님 계시의 사건은 야훼가 인간에게 자신의 “본질”, 즉 자신의 행동의 내적인 동력(動力)을 열어보이고 선사한다. 하느님은 본질적으로 자신만을 위해서, 자신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인간을 위하여, 인간과 함께 하시는 생동적인 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은 당신의 이름을 인간에게 알리면서 자신을 부를 수 있도록, 즉 당신과 친교를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신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3) 야훼 계시의 내용은 하느님이 능력과 함께 실제적으로 현존하는 동시에 여전히 멀리 있는 분이라는 긴장을 그대로 유지한다. 하느님에 대한 체험은 단 한 번에 현재화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안에서 거듭 새롭게 이루어져야 한다.
기원전 4세기부터는 “야훼”라는(히브리말에서는 자음으로만 표기된 YHWH) 이름으로 발음하지 않고 “아노나이(주님)”로 읽는 관습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현재로서는 이 이름의 원발음이 정확하게 어떠했는지 분명하지 않다(대부분의 경우 “야훼”로 발음하지만 다른 의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야훼”를 “주님”으로 부르는 이러한 관습은 그리스말 번역본인 칠십인역을 통해서 (“퀴리오스”= 주님) 신약성서로도 이어진다(사도 2,36; 필립 2,11 참조). “야훼”의 단축형 ‘야, 아후’ 등은 매우 오래된 것으로서 찬미의 환성인 ‘할렐루-야(너희는 주님을 찬미하여라)’, ‘엘리-야후(=엘리야: 나의 하느님은 주님이시다)’, 그리고 여후슈아(=여후수아, 예수: 주님께서는 도움이시다, 또는 주님께서는 구원하신다)‘와 같은 여러 인명을 만드는 데에 사용되었다. 같은 책, 30.
2.12.2. 출애급 체험: 야훼는 구원하고 해방한다.
야훼와 그 백성과의 역사는 출애급 체험으로 시작한다. 출애급기 1장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모두가 에집트에서 종살이를 했다고 전한다. 요셉의 이야기는(창세 37; 39-47; 50)는 부족시조와 에집트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연결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오늘날 출애급 전승의 역사적 배경으로서 다음과 같은 사실이 인정된다: 기원전 1500년에서 1200년 사이에 많은 수의 아시아 계통의 백성들이 집단적으로 에집트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이는 성서 외의 사료에 의해서 분명하게 증명된다. 모세와 함께한 무리는 이미 기원전 14세기에 에집트로 이주해서 목초지를 발견하고 파라오의 목자로 일하였던 셈족 유목민들이었다고 추측된다. 람세스(Ramses) 2세 치하(기원전 1301-1234)의 새로운 왕조 시대에 비에집트 민족들이 거대한 건축공사에서 강제 노동에 동원되었다. 그러던 중에 한 유목민 집단이 지도자(모세)의 지도하에 국경 수비를 뚫고 에집트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모세의 무리”는 탈출 후에 시나이 지역의 유목민인 미디안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지원을 받았다.
출애급 전승에서의 집약된 하느님 체험은 갈대바다에서의 하느님의 구원업적에 대해 이야기 안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 이야기는 상당히 압축된 텍스트 형태인 “바다의 노래”(출애 15)를 통해서 전해진다. 출애 13,17-14,31의 야훼스트 전승층은 갈대바다에서의 구원업적은 이른바 “상황적 기적”, “자연 기적”일 것이라는 판단을 가능케 한다. 즉 (그 지역에서는 종종 있어왔던) 동쪽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이 여울의 바닥을 드러내어서 모세와 백성이 건너갈 수 있었지만, 에집트의 추격자들은 다시 몰려들어오는 바닷물에 빠지게 되었다. 모세가 영도하는 백성은 이 희귀한 자연의 사건을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기적적으로 개입하신 사건으로 체험하였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체험을 신앙적 차원으로 해석하였던 것이다.
갈대바다에서의 구원사화가 지닌 중점적인 신학적 내용은 야훼께서 모세에게 당신의 이름을 계시하면서 한 약속을 성취했다는 것이다. 야훼는 강력한 행동을 통해서 그를 신뢰했던 이들을 에집트에서 이끌어 내었다. 야훼는 그들을 노예살이에서 해방시키고 곤경에서 구해냈다. 여기에 본질적으로 귀속되는 체험은 야훼가 당신의 백성이 가는 길을 동반하고 그 백성이 야훼의 뚜렷한 현존 속에서 머물 수 있는 곳에로 인도됐다는 것이다(출애 19; 2사무 7,6 이하 참조).
“출애급 사건 안에서 이제부터 야훼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하느님 체험이 결정적인 구조를 형성한다: 야훼는 출애급의 하느님, 즉 그는 생명과 자유를 선사하는 신인데, 왜냐하면 그 자신이 생명과 자유 자체로서 사람들이 거기에 참여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서적 전통에서 야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과거든 현재이든 혹은 미래이든 참으로 해방하고 구원하는 체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E.Zenger, Die Mitte der alttestamentlichen Glaubensgeschichte, in: KatBl 101(1976), 6.
출애급의 체험은 이스라엘에서 하느님 공경과 밀접히 연결되었는데, 즉 출애급 체험을 기억하는 것이 하느님을 인식하는 표지가 되었다. 이는 언어적으로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나타난다: “너희 하느님은 나 야훼다. 바로 내가 너희를 에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하느님이다”(출애 20,2; 신명 5,6). 이스라엘 백성은 해마다 파스카 잔치에서 에집트에서의 탈출을 기억(zikkaron)함으로써 항상 현재에,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이 체험했던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사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서 출애급의 체험은 이스라엘의 야훼께 대한 신앙고백의 또 다른 근본적 특성을 드러낸다. 즉 출애급 사건을 통해서 야훼는 바람과 바다도 순종케 하는 분, 자연을 지배하는 분으로 나타나고 그러기에 역사도 지배하는 분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랑의 시간을 견디어 낸 것은 오직 자연과 역사를 주관하면서 생명을 베푸시는 하느님 야훼의 도움 덕분이었다. 이렇게 볼 때 구약성서의 해석에서 나타난 역사신학적 접근은 창조신학적 요소를 포함한다. 모세오경의 최종 편집은 창조설화를 야훼의 역사적 업적에 관한 이야기보다 앞세움으로써 이런 내용을 표현하였다.
2.1.2.3. 영토 점유의 체험: 야훼는 자신의 백성 편에서 싸운다.
늦어도 기원전 1100년경 에집트를 탈출한 집단의 후손들이 팔레스티나에 진입하게 되면서 이른바 영토 점유가 시작된다. 이스라엘 부족의 형성은 오늘날까지도 모든 세부 사항을 다 설명할 수 없이 다양한 과정 속에서 실현되었다. 오늘날 학계의 통설에 의하면 가나안의 도시국가들은 현저한 사회적 차별을 특징으로 하는 봉건적 사회질서를 지니고 있었다. 즉 도시 내의 부유하고 정치적으로 특권을 지닌 층과 도시 외곽에서 농사를 짓던 상당수의 빈민층으로 분리되었다. 국경에서 점차로 가나안 땅 내에로 스며 들어오던 베두인들은 거주지와 목초지를 찾으면서 억압받던 가난한 주민들과 연대를 맺고서 도시 주민과 왕을 대상으로 투쟁하게 되었을 것이다. 투쟁은 정착민과 이주자들 사이에서가 아니라 지배계층과 (이주자들 포함해서) 피지배계층과의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이런 추론을 바탕으로 베두인들이 믿었던 야훼가 토착민의 신 엘을 대치하지 않고 둘이 서로 공존하면서 동일시 된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이름들은 엘과 야훼가 평화적으로 공존하였다는 것을 증언해준다. 즉 이스라엘이나 대천사들의 이름 혹은 다니엘과 같이 엘이 홀로 지칭되는 이름, 엘리야, 요엘과 같은 혼합 형태의 이름, 그리고 예수(요슈아), 요셉과 같이 야훼만 나오는 이름들이 발견된다. 초기의 야훼-종교에서는 아마도 야훼가 아셰라(Aschera)와 결혼하였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O.Keel, Monotheismus(Anm. 1), 170.
이렇게 야훼와 엘을 동일시하였기 때문에 가나안 땅을 점유한지 200년이 지 난다음에 유명한 성소 벧엘(엘의 집)이 야훼의 주요 성소들 중의 하나로 인정되었다. 또한 농부들의 축제(무교절, 주간축제, 초막절)이 중요한 야훼의 축제가 되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여호수아서에서 기록된 것처럼 이스라엘의 영토 점유가 단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추측된다. 각 씨족들이 시와 진실에 뿌리를 둔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후기의 전승에서는 영토점유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을 자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런 이야기들은 필연적으로 서로 닮았기 때문만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구약성서의 사화(史話)는 역사책이라기 보다는 야훼가 이스라엘에 행한 강력한 행동, 즉 에집트에서 이끌어 낸 것과 같이 문명의 땅에로 인도한 행동에 대한 증언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사실상 역사적인 다양성 대신에 신학적으로 밑받침된 단일한 묘사가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 영토점유에 관한 여러 가지 묘사들 중에서 부족 전체가 관련되고 영토점유에 대한 전형적인 형태로 전래된 묘사 하나만이 수용되었다. 이는 중부 팔레스티나의 부족들 사이에 전래된 영토점유에 관한 이야기이다… 중부 팔레스티나 부족들의 영토점유 이야기가 수용된 이유는 명백하다. 이 부족들은 모세의 무리과 함께 야훼-신앙을 받아들였는데, 야훼-신앙은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을 일치시키는 끈이 되었다”. G.Fohrer, Geschichte Israels, Heidelberg, 21979, 45.
영토점유와 연결된 하느님 체험은 근동지방 전체의 사고 세계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즉 야훼 또한 (다른 민족들의 신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권리와 자기 백성을 권리를 평화롭지 못한 투쟁을 통해서 이룩할 준비가 되어있다. “주님은 용사, 그 이름 야훼이시다”(출애 15,3). 그러나 나중에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과 남쪽의 유다 왕국의 변화무쌍한 정치적 운명은 망상에서 깨어나 이런 하느님상을 정화하고 순화하게 하였다. 즉 이스라엘과 유다의 정치적 운명을 통해서 야훼 하느님은 자신의 백성을 반대하고 고난에 처하게 하면서도 자신의 뜻과 의지를 관철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났던 것이다.
2.1.2.4. 다윗 왕조 시대: 야훼는 왕으로 영원히 다스리신다.
초기 이스라엘 전승에서는 왕으로서의 하느님에 대한 관념이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비로소 영토점유 이후에 야훼의 왕권을 찬양하는 대목들(시편 29,10; 145,13; 146,10 참조)이 점차로 늘어난다. 그러나 신의 왕이 정점을 이루는 신들의 가족에 관한 믿음은 고대 근동의 종교들, 특히 가나안 전통에는 잘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야훼의 왕권에 관한 말은 가나안에서 물려받는 것이라는 주장은 충분히 근거가 있다고 하겠다. 이런 표상의 수용은 다층적인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졌는데, 이 과정 중에 기존의 관념이 독특한 내용으로 새롭게 해석된 것을 주목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 가장 오래된 대목인 이사 6,1-5의 예언자 소명 환시는 아직도 완전히 이스라엘의 주변 종교의 상상의 지평 속에 머물고 있다. 즉 천상의 궁정은 왕이신 야훼께 영광을 드린다(시편 29,1 이하; 9; 97,7). 신들 중의 왕이 거룩한 산에 거주한다는 생각 또한 야훼에게 전용(轉用)된다. 예루살렘의 시온산이 야훼의 거처라고 보는 전통(시편 48,3; 이사 14,13 이하 참조)은 바로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느님이 왕으로서 보편적인 주권를 지닌다는 신앙은 가나안의 종교의 특색이었는데, 인격적인 기본 구조의 이스라엘의 야훼-체험은 이런 관념을 이스라엘 백성이 (그리고 개개인이)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는다는 방향으로 심화하였다. “모든 신들을 거느리시는 임금님”(시편 95,3; 참조.: 시편 96,4; 97,7.9), “모든 민족과 모든 시대의 왕”(시편 145,13 참조)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사 33,22 참조)이 된다. 바빌론 유배 기간과 그 이후에 이민족으로부터 억압을 받던 시절에 야훼의 왕권에 대한 선포는 점점 더 미래의 실재에 대한 약속으로 옮겨 간다(이사 52,7-9 참조).
이스라엘은 주변 종교들의 관념세계에 연계해서 야훼를 왕으로 섬겼다. 이런 수용이 쉬웠던 것은 이미 가나안에 왕이신 하느님이 보편적인 주권을 지니고 다른 모든 신보다 우월하다는 신앙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스라엘은 자신과 야훼와의 인격적인 결합을 야훼가 왕으로 다스리신다는 생각에 수용하여서 자신들이 외세로부터 위협을 받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왕이신 야훼께 대한 희망을 간직하였다.
2.1.2.5. 정치적 파국의 체험: 야훼는 심판하고 용서한다.
종래의 지배적인 이스라엘의 하느님관(觀)이 근본적으로 의문에 처하게 된 역사적 사건들 중에서 두 가지가 특별히 부각된다. 즉 기원 전 722년 아시리아와의 전쟁에 패한 결과로 북왕조 이스라엘이 멸망한 사건과 느부갓네살이 남왕조 유다에 승리한 후에 시작된 바빌론 유배(기원후 587-538년)이다. 바빌론 유배는 가족과 백성의 범위에 머무른 이전까지의 순진하고 소박한 하느님 신앙을 고통 속에서 새롭게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신학적 성찰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던 이들은 신명기와 신명기계의 저자, 제2 이사야 그리고 제관계 문헌의 저자들이다.
북왕조의 멸망 전에 아모스와 호세아가, 남왕조의 패망 전에는 예레미아가 미구에 닥칠 이스라엘 백성의 운명을 하느님의 심판으로 표현하였다. 즉 그들은 현재의 죄가 하느님의 개입을 유발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혔다. 여기에서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평가기준은 이스라엘 백성이 야훼와의 계약 체결에서 받아들인 종교적, 사회적 의무들이다: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 것, 정치적 동맹 체계가 아니라 오직 야훼께만 신뢰를 둘 것, 모든 이를 위한 정의와 생명이 그것이다.
기원전 587년에 결정적인 파국이 이스라엘에게 닥쳤다. 바빌론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성전을 파괴하였으며, 야훼의 약속으로 보증된 다윗 왕조를 소멸시키고, 지도층의 사제들을 살해하고, 주민의 대다수를 팔레스티나에서 바빌론으로 끌고 갔다. 시련에 처한 이스라엘의 신앙이 당면한 문제는 하느님께 걸었던 모든 희망이 깨어진 이 체험을 야훼 신앙에 어떻게 수용하느냐는 것이었다. 이런 수용 작업은 이미 예레미아가 행한 심판의 설교로 시작되었고(예레 15,2-4 참조), 무엇보다도 유배 기간의 예언자인 에제키엘과 제2 이사야와 신명기 계통의 역사 서술에 의해서 신학적으로 수행되었다. 이스라엘의 “수난체험”에 대한 신학적 작업은 여러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1) 신명기 계통의 역사서는 본질적으로 죄의 고백이다. 이 역사서의 최종편집은 기원전 587년의 사건에서 받은 체험 속에서 이루어졌다. 어떻게 해서 이런 파국이 올 수 있었는가? 신명기계 학파는 이에 대해서 이스라엘 왕국의 성립과 구체적인 형성, 그리고 야훼만을 홀로 섬기라는 제1 계명을 어긴 것에 대한 벌이라고 대답하였다.
(2) 야훼의 능력 범위는 이방 민족까지도 포함한다. 이런 인식은 이미 유배 이전의 예언서에서(아모 9장; 이사 10장 참조)도 찾아 볼 수 있는데, 완전한 수용은 비로소 바빌론 유배 시절에 이루어진다. 즉 야훼는 타향 땅에서도 구원의 능력이 가득하게 현존할 수 있고, 자신이 정한 방향으로 역사를 진행시키기 위해서 이방인의 지배자들(바빌론의 느브캇네살, 페르시아의 키로스)을 이용할 수도 있다.
(3) 바빌론에서의 유배 상황은 구조적으로 에집트에서의 종살이와 비교된다. 첫 번째 출애급에서 체험한 야훼의 해방 행동은 용서와 구원에 대한 희망의 징표가 된다. “제2 이사야 메시지가 선포되는 상황은 출애급기에 보도된 상황과 아주 유사하여서 예언자는 자신이 선포하는 구원을 새로운 출애급으로 표현할 정도였다. 구약성서 신학, 즉 구약성서가 하느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의 통일성은 바로 이 두 지점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이스라엘은 고난과 억압의 시간 시작에 야훼를 자신들의 구원자로 만난다; 패망 이후 심연 속에 놓인 이스라엘에 야훼는 구원자로 선포된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그 사이의 장구한 역사에는 이스라엘의 누적된 잘못으로 채워져 있고, 그래서 구원과 용서의 연계가 필연적으로 요청된다”. C.Westermann, Theologie des Alten Testaments in Grundzügen, Göttigen, 1978, 127.
하느님은 역사적인 파국을 넘어서 자신의 활동을 계속함으로써 자신이 하느님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예언자들의 심판의 말에서 하느님이 스스로 유발한 자기 백성의 운명에 대해 슬퍼하는 것이 나타나는데(호세 11,8 이하; 예레 9,10-12.17-22 참조), 이는 하느님의 구원의지와 하느님 행동의 최종적 추진력으로서의 자비를 드러낸다.
이스라엘은 바빌론 유배라는 고난의 시간을 겪으면서 야훼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정화하고 시각을 더 넓히게 되었다. 이런 점은 한 개인의 신앙생활에서도 실현되야 할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
2.1.2.6. 창조 신앙: 야훼 홀로 모든 것을 창조하고 존재하도록 유지한다.
유배시대에 이르러서 비로소 유일신 신앙이 확고하게 되는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야훼신앙이 약화되어 바빌론 종교에 흡수되지 않기 위한 방어책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빌론 종교에 정항하면서 유일한 신 야훼를 통해서 세상이 창조되었다는 창조신앙이 강조된다. 즉 유일한 하느님 이외의 모든 것, 다른 곳에서는 신으로 받드는 천체(天體)도 야훼 하느님이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본래 이스라엘의 신앙 역사에서 역사신학과 창조신앙은 독특하게도 서로 밀접히 연결되어 나타난다: 야훼는 역사와 자연을 지배하는데, 왜냐하면 그는 세계와 세계 질서의 창조적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훼를 창조주로 소개하는 텍스트 중에서 분명 유배 이전의 것도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창조신앙에 대한 문학적 증언이 증가하고 상세하게 되는 것은 바빌론 유배시대의 일이다.
창조신앙은 유배살이를 하면서 정치적, 종교적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원에 대한 희망을 주었다. 그래서 이 시기에 저술된 제관계의 창조설화가 성서의 첫머리에 위치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제2 이사야는 하느님께서 온 세상과 모든 민족들을 그 시초부터 지금까지의 역사 속에서 장악하셨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장악하시면서 미래의 구원을 열어주실 것이라고 선포함으로써 바빌론에서 타향살이를 하는 자기 민족을 위로한다. “야훼께서는 영원하신 하느님, 땅의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힘이 솟구쳐 피곤을 모르시고, 슬기가 무궁하신 분이시다. 힘이 빠진 사람에게 힘을 주시고 기진한 사람에게 기력을 주시는 분이시다” (이사 40,28 이하). 이렇게 강력한 창조자 야훼께 대한 신앙고백은 구원자 야훼께 대한 (새로운) 신뢰를 가능케 한다.
구약성서에서 구원사적 야훼 체험과 창조주에 대한 찬양의 연결은 특별히 시편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서 시편 136편은 창조와 역사의 행동에서 드러나는 야훼의 은총을 감사도문(禱文)의 형태로 찬양한다. 구약성서 후기의 지혜문학에서는 -점점 더 그리스 정신에 물든 이스라엘 주변의 영향을 추가로 받아서- 독특한 전환이 이루어진다. 이스라엘의 창조신앙을 드러내는 전형적인 텍스트에서는 생각이 하느님으로부터 인간에게로 흘러갔다. 즉 야훼가 모든 것의 창조자라는 사실은 심연에 직면해서도 전적으로 그에게 신뢰를 둘 수 있는 데에 대한 일반적인 논거였다. 지혜서(지혜 13,1-9)에서는 역방향으로 나간다: 사물의 아름다움은 하느님의 자취이고 감명을 주는 창조계는 그를 지으신 강력한 하느님께 대한 길을 열어준다.
2.1.2.7. 묵시문학적 역사 환시: 야훼는 구원에 가득찬 미래에 대해서 스스로 보증을 선다.
실존을 깊이 위협하는 체험과 바닥을 알 수 없는 불행은 바빌론의 유배로 끝나지 않았다. 유배 이후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번갈아 가면서 이민족의 지배 하에 놓였는데, 처음에는 정치적 관계에 국한되던 이민족의 지배가 그리스의 침략 이후에는 종교적 분야에까지 확장되었다. 이 체험은 하느님 신앙을 새로운 위기에 처하게 했다: 새 지배자들은 율법과 야훼 공경을 방해하거나 아주 금지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들의 권력이 야훼로부터 주어진 것이 아닐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다 역사의 진행은 세계적인 강대국들에 의해서 정해지는 반면 이스라엘은 강대국들의 경쟁에서 아무 것도 아니라는 통찰이 그들을 압박해왔다. 이런 통찰은 유배 이후에 점점 더 파고 들어서 이제는 완전히 거부할 수 없는 듯 보였다. 역사의 하느님은 어디 있었나? 그의 능력의 증명은 어디에 있나? 역사의 흐름이 그의 손에서 빠져나갔나? 세상의 세력들은 하느님을 반대하고 나서면서 활동 규범을 그의 손에서 빼았을 수 있다고 주장해도 되는가?”. J.Schreiner, “…wird der Gott des Himmels ein Reich errichten, das in Ewigkeit nicht untergeht” (Dan 2,44). in: N.Lohfink u.a., “Ich will eiuer Gott werden”, Stuttgart, 1981, 126.
이스라엘이 받는 압제는 점점 더 증가되어서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Antiochus IV. Epiphanes, 기원전 175-164)의 치하에서 야훼께 충성하는 이들이 공개적으로 박해를 받기에 이르렀다. 이런 시대사적 배경에서 묵시문학적 역사 해석이 형성되었는데, 구약의 정경에서는 다니엘서가 이를 받아들였다. 事後豫言(Vaticinium ex eventu)의 표현형식을 빌어서 지금까지의 역사의 진행이 하느님께로부터 계획되고 미리 예고된 것으로 서술하였다. 이렇게 하느님이 역사를 지배하신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현재의 고난 속에서 예언된 미래의 구원이 실현되리라는 것에 대한 신뢰를 일깨우려는 것이다. 다니엘서 7장에 선포된 종말은 “새로운 시대”의 특징을 지닌다. 즉 새로운 시대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왕국으로서 모든 낡은 세계의 제국들을 대치할 것이다(다니 9,26; 11,27; 12,13 참조).
구약성서의 묵시문학적 전통은 2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비록 현재의 고난에 찬 역사의 체험 때문에 그렇지 않게 보이더라고 야훼는 역사를 뒤에서 조정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로 지금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 하느님의 구원 행동에 신뢰를 두고 살도록 요청받고 있다. 확고한 신앙 때문에 목숨을 잃은 의인들에 대해서 숙고하면서 하느님께서 이들을 부활시키실 것이라는 희망이 싹트게 된다(다니 12,2; 2 마카 7,23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