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하느님 나라를 준비하기 위해서 인간은 하느님의 뜻에 철저히 복종하는 자세를 취해야 하는데, 그 하느님의 뜻은 율법과 성전에 대한 예수의 태도에서 드러나듯이 인간에 대한 봉사에 있다. 그래서 예수는 하느님의 모든 계명을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중 계명(마태 22,37-40)으로 요약한다. 구약성서에서도 단편적으로나마 사랑을 이중 의미로 얘기하였다. 그러나 예수에 이르러서는 전례 없이 모든 계명들이 이 이중 계명으로 귀착, 집중되면서 동시에 하느님 사랑과 인간 사랑이 불가분의 관계로 결합되어 하나가 된다. 이렇게 예수에게 하느님 사랑과 인간 사랑은 함께 속하여서 둘을 대립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하느님 사랑과 인간 사랑이 불가분의 관계 속에 있지만, 똑같다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바로 인간에 대한 관심 속에서 예수는 하느님의 절대 우위권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예수가 인간에게 하느님께 대한 나뉨 없는 사랑을 요구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 “‘네 온 마음으로, 네 온 영혼으로, 네 온 정신으로 너의 하느님이신 주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입니다”(마태 22,38). 다시 말해서 하느님 사랑이 인간 사랑으로 대치될 수 없고, 전자가 후자의 기반이 된다. 다시 말해서, 예수는 하느님 사랑과 인간 사랑을 갈라 놓을 수 없는 연관 관계로 규정하는데, 여기에서 하느님은 무조적적인 우선권을 보유하면서 인간 사랑을 근거지우고 요구하는 분으로 나타난다.
예수에게 인간 사랑이란 추상적이나 감상적인 사랑이 아니라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사랑이고, 인간 일반이나 멀리 떨어진 사람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으로 가까이 있는 사람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이웃 사랑 안에서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참되다는 것이 드러난다. 아니 이웃 사랑이 하느님 사랑의 정확한 척도이다” 그런데 예수에게서 이러한 이웃 사랑은 모든 경계를 넘어서 무한히 열린 형태로 나타난다. 예수가 레위 19,18에 의거해서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태 22,39)고 말함으로써 인간이 자신에 대한 당연한 사랑의 태도를 이웃 사랑의 척도로 삼는다. 이는 실제로 이웃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웃 사랑에 대한 정도에서만이 아니라 이웃에 대한 규정에 관해서도 예수는 한계를 두지 않는다. 누가 이웃이냐는 물음에 예수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루가 10,29-37)를 통해서 대답하는데, 이 비유에 따르면 이웃이란 바로 강도를 만나서 다친 사람을 가르킨다. 즉 이웃이란 “당장에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같은 책, 178.
그러므로 예수의 가르침에 의하면 이웃은 단순히 자신에게 가까운 사람, 즉 자신의 가족, 친구, 동료, 당파, 민족만이 아니라 얼마든지 낯선 사람일 수도 있다.
예수는 이렇게 구약에 계시된 하느님을 선포하였지만 그 당시의 종교 지도층과 심각한 마찰과 충돌을 일으키게 된다. 이는 예수가 이해한 하느님은 구약과의 연계 선상에 있으면서도 무엇인가 새롭고 다른 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2. 성서에 나타난 하느님 체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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