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순교영성

 

3.4. 순교영성


우리는 지난호에서 안티오키아의 아냐시오 주교의 생애와 그가 맹수형의 선고를 받고 로마로 압송되어 가던 중에 쓴 7개 서간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가 지녔던 순교에 대한 열망은 여러 서간에 나타나 있다. 그는 순교를 그리스도께 대한 불붙는 사랑 그분과의 완전한 일치로 표현하고 있다. 「지금 왜 내가 목숨을 바치려는 것입니까? — 내가 맹수들 가까이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가까이 있는 것입니다. 그분의 수난에 동참하기 위하여 나는 모든 것을 참아낼 수 있는데 완전한 인간이 되신 그분께서 나에게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스미 4,2). 「나는 아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완전한 자가 못됩니다. 그런데 지금에야 비로소 그분의 제자가 되기 시작했습니다」(에페 3,1). 순교에 대한 그의 열망은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더욱 생생히 표현되 있다. 「불도 좋고 십자가도 좋고 맹수의 무리도 좋으며 사지를 짓이기고 찢어도 좋고 배를 갈라도 좋으며 팔다리를 자르고 온몸을 나도질 해도 좋습니다. 가장 잔인한 형벌도 좋습니다. 다만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로 갈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쾌락도 지상의 모든 왕국도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 이 세상 극변까지를 다스리는 것보다 그리스도 예수와 일치하기 위해 죽는 것이 나에게는 더 좋습니다. 내가 찾고 있는 것은 우리를 위해 죽으신 바로 그분이며 내가 원하는 것은 우리를 위해 부활하신 바로 그분입니다. 내 출산의 때가 가까왔습니다.」(로마 5,3-6,1) 여기서는 순교는 영원한 생명을 위한 「출산」으로 표현되어 있다. 해산의 고통을 통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기쁨을 얻듯이 이냐시오는 순교의 수난을 통해 하느님 안에 새로 태어나는 부활의 기쁨을 얻게된다는 확고한 믿음에서 자신의 순교일을 애타게 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냐시오의 이러한 믿음에 따라 교회는 순교자들의 순교일을 「천상 탄일」(dies natalis)이라고 부르고 순교일을 그들의 축일로 정하고 있다.


이냐시오 주교가 로마로 압송되어 온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로마교회는 휼륭한 지도자를 구해내기 위한 구명운동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이냐시오 주교는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이 좋은 기회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자기를 위한 어떠한 호의도 베풀지 말아달라고 간청한다. 「보이는 것이거나 보이지 않는 것이거나 아무것도 내가 그리스도께 가는 길을 질투해서 방해하지 말 것입니다」(로마 5,3). 「나는 하느님께 도달할 수 있는 이런 기회를 다시는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만일 침묵을 지켜준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을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나의 육신을 사랑하게 되면 나는 또 다시 달음질을 해야 합니다. 하느님께 제물로 바쳐지는 것 외에 아무것도 나를 위해 하지 마십시요. 제대는 준비되어 있습니다」(로마 2,1-2). 그는 한시라도 빨리 순교하고 싶은 열망을 이렇게 표현한다. 「나 때문에 마련된 맹수떼를 빨리 만나고 싶습니다. 그 맹수들이 나에게 성급히 달려들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맹수들이 겁을 먹어 달려들지 못한 경우가 있지만 나는 그들과는 달리 나를 급히 잡아 먹도록 유인하겠습니다. 그리고 맹수가 나를 거절하면 나는 강요하겠습니다」(로마 5,2). 「나는 더 살려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동의하면 내 원의는 이루어질 것입니다. 동의하십시오—. 나의 원의가 채워지도록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요」(로마 8,1-2).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순교자들이 있다. 우리는 성 이냐시오의 생생한 글을 통해 우리 순교자들이 지녔던 열정과 기쁨을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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