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시대의 문헌(2세기 중엽- 4세기 초)
2세기 중엽에 들어서면서 교회의 상황이 변하게 되자 그리스도교 문헌의 내용도 근본적으로 변하였다. 사도시대와 사도시대 이후에 씌어진 작품들의 내용은 주로 예수의 기쁜 소식을 보존하고 정확히 전하며, 공동체와 신자 각자의 그리스도교적 삶에 필요한 제도와 원칙을 규정하는 데 한정되었다. 교회는 메시아가 곧 재림할 것이라는 기대를 바탕으로 세상과 관련된 제도를 지속시키는 것을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에, 주위의 비그리스도교 세계와 관계를 맺는 분야는 일상생활과 선교 및 국부적으로 되풀이되는 박해에 대한 영적 극복에 한정되었다. 여기서 박해는 올바른 그리스도인 여부에 대한 검증 시험으로 해석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이교인 주위세계도 그리스도교와 정신적․문학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았다. 이교인 공공생활에서 그다지 비중을 차지하지 않은 그리스도교는 로마제국의 수많은 종교 집단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사람들은 유다교에서 생겨는 그리스도교를 유다교와 구분되지 않는 하나의 종파로 여겼다.
예수가 죽고 부활한 뒤 100년이 지나서야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재림이 예상할 수 없는 시기로 연기되고, 이때문에 지상에서 그리스도교의 제도적인 조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와 더불어 활발한 선교활동으로 도시에서는 그리스도인이 늘어났으며, 사람들은 그리스도교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 사이에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그리스도교에 들어왔다. 이교인 지식층의 비판에 따르면,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에는 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과 쉽게 미혹된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교양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철학적․수사학적 학식을 교회의 입장에서 활용하여, 신자들의 믿음에 확신을 주고, 기존 종교들과 벌인 논쟁에서 신앙의 합리성을 논증하고 변론하기 시작하였다. 그리스도교를 논박하는 이들과 이교인 지식인들은 – 반대되는 많은 진술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의 논증을 인정하였으며, 이러한 논증은 문학적으로도 가치 있는 답변이었다. 반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스승인 치르타의 프론토는 공개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논박하는 연설을 하였으며, 소피스트 사모사타의 루치아누스는 170년경 자신의 풍자서 「페레그리누스의 죽음」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이웃을 사랑하고 희생을 꺼리지 않는다며 그들을 조롱하였다.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플라톤주의자 첼수스는 178년경 그리스도인들을 논박하는 「참된 가르침」이라는 논쟁서를 저술하였다. 오리게네스는 자신의 방대한 작픔 「첼수스 논박」에서 이 작품을 반박하였다.
그리스도교-호교 작품들은 교회에 대한 이교 국가의 실질적 공격인 박해에 반론을 제기해야만 했다. 동시에 이러한 작품들은 그리스도교의 합리성과 무해성을 입증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가 진리만 추구한다는 점을 논증하고, 신자들의 모범적 태도를 바탕으로 그리스도교가 국가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리스도인에 대한 박해, 이교인과 그리스도교의 논쟁이 2세기 중엽부터 4세기 초까지 그리스도교의 모든 문헌을 특징짓는 주요 내용이었다. 이때문에 이 시기를 먼저 “박해시대의 문헌”이라는 문학적 개념보다 교회사적 개념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소송이 이 시기에 씌어진 문헌의 소재가 되었다. 3세기 중엽부터 전 제국에 걸쳐 일어난 대규모의 박해들은 교회 내부에 중대한 문제와 신학적 문제를 일으켰다. 많은 논문이 이러한 문제들을 다루고 이에 신학적으로 답변하였다.
고대의 철학적․수사학적 교육이 교회에 미친 영향은 당연히 외부에 대한 논쟁뿐만 아니라 교회의 내적인 발전(성서주석, 설교, 최초의 전성기에 이른 교의 등)으로 나아갔다. 성서가 문학적 형식과 양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비난받기는 했지만, 그리스도교 저서들은 이제 고대의 문학적 기교가 곁들인 질적으로 뛰어난 작품으로 향상되었다. 신자수가 늘어난 그리스도교가 신학적으로 나아가야 하는 방향에 관한 교회 내부의 문학적 토론, 곧 무엇이 정통신학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고, 무엇이 이단(비정통신앙)으로 배제되어야 하는지 결정하는 기준도 교회에서 발전되었다. 사람들은 3세기의 전환기에 그리스도교가 고대 헬레니즘 세계에서 토착화하는 이러한 복잡한 과정을, 물론 성서에 기록된 예수의 본질적이고 순수한 가르침이 변조되었다는 의미에서, 그리스도교의 “헬레니즘화”라는 개념으로 특징지었다. 해석학의 복잡한 문제점들을 여기서 상세히 다룰 수는 없다. 그렇지만 최근의 연구가 명백히 밝혀냈듯이, 그리스도교를 전 세계에 전파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과정은 불가피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의 기쁜 소식이 다른 언어와 문화로 번역되거나 전해지면, 이러한 과정은 결코 일방적으로 일어나지 않으며 헬레니즘 시대에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매번 일어났다고 말 할 수 있다. 이 경우 신앙을 위하여 잃은 것과 얻은 것이 어느 정도인지는 결코 올바로 평가할 수 없다.
이러한 배경에서 생겨난 2․3세기의 그리스도교 문헌은, 먼저 2세기 말까지 로마제국의 대중어인 그리스어로 저술된 문헌과 2세기 말부터 북아프리카와 로마에서 라틴어로 씌어진 문헌으로 분류된다. 내용과 문학적 유형에 따라 그리스도교 문헌은 호교서, 순교 보고서 및 신학서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정통신앙을 변론하는 논쟁서 및 편지, 전례서, 도덕서처럼 공동체의 실제적인 삶과 직접 관련된 작품들이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