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 보고서 , 유스티누스 행전, 쉴리움의 순교자들 행전,치프리아누스 행전,

 

4. 순교 보고서

박해시대의 두번째 문학 장르로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를 직접 체험한 순교자들에 관한 작품이 2세기 중엽부터 생겨났다. 이 작품들은 세 부류, 곧 행전, 순교록과 수난기, 성인 전기로 구분된다. 행전에서는 보통 전집정관 앞에서 이루어진 재판 절차에 관한 기록이 중요하다. 따라서 행전은 법원 서기의 기록에 의존하며 신문의 내용을 그대로 베낀다. 이 기록은 교회의 전승에만 남아 있기 때문에 후대의 그리스도교 편집자가 기록을 보완하거나 수정하였다는 사실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달리 순교록과 수난기에서는 그리스도교 저자가 종종 일정한 신학적 의미를 부언하면서 순교자들의 마지막 생애와 죽음을 서술한다. 성인 전기는 역사적 내용 외에 공상적인 경건한 이야기에 관한 많은 소재를 싣고 있다. 성인 전기는 성인전 문헌의 효시이지만 이 문헌은 4세기에 이르러 생겨났기 때문에 여기서 다루지 않는다.

순교자 행전은 보통 날짜 표기, 재판관과 피고인 이름, 고발 내용으로 시작한다. 그리스도교 저자는 서술되는 인물들을 “거룩한 순교자” 또는 “극악무도한 황제”로 묘사하며, 법률은 “불공정한” 것으로 표현된다. 전집정관은 피고인들의 신원 확인으로 신문을 시작하며, 피고인들은 신분 확인 때 이따금 그들의 이름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유일하고 참된 명칭인 “그리스도인/-임”이라는 고백만을 진술한다. 재판의 절차를 보면, 재판관은 그리스도교에 관한 내용을 다루지 않고 그리스도인들의 진술로 범죄를 증명하려 하였다. 그는 단지 황제의 수호신에게 맹세할 것을 요구하거나, 황제를 위한 기원제물을 바칠 것을 명하거나 예부터 전해오는 로마인들의 이성적인 종교로 돌아올것을 권유하였다. 전집정관은 피고인들에게 그들의 청춘, 고령, 가정에서의 의무 등에 관하여 설명하고, 부, 명예, 관직 등을 약속하거나 고문 또는 죽음으로 위협하면서 그들을 회유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 노력은 일반적으로 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오히려 순교자들이 그들 측에서 주도권을 잡아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설파하려 하였으며, 재판관과 청중에게 하느님께서 복수하실 것이라고 위협하였다. 따라서 재판은 “그리스도인/-임”이라는 신앙고백과 이교인의 제의를 거부하는 결과로 끝나 사형이 선고되었다. 판결은 세 개의 작은 판자에 유죄, 사면, 미결정이라고 씌어진 선고판으로 이루어진다. 곧, 판결은 준비되어 있었고 사전에 유죄로 결정되어 있었다.

순교록과 수난기는 행전에 들어 있는 내용을 바꾼다. 곧, 이 기록에서 그리스도교 저자는 사건 전체를 서술한다. 저자는 여기에 신학적․영적인 고찰을 덧붙이고, 성서를 인용하며, 무엇보다도 뒤에 순교할 신자들의 교화와 신심을 강화하기 위한 전승 의도를 명백히 나타낸다.

다음 서술은 순교자 보고서들의 문학 장르의 특성을 나타낸다. 곧, 2-3세기의 다른 모든 작품이 문헌사적 연관성에 따라 여러 언어군과 저자들로 분류될수 있는 반면, 순교자 보고서들은 언어와 저자가 전반적으로 일치하므로 함께 다루어야 한다.

빌라모비츠-묄렌도르프가 이름 붙인 「이교인 순교자 행전들」은 그리스도교 순교자 행전들과 동일시될 수 없고, 후자의 전형도 아니며 내용도 다르다. 이 행전들에서는 1-3세기의 22개 파피루스에 남아 있는,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 시민이 로마 통치에 대해 저항하는 선전서가 중요하다. 선전서가 법정 기록의 양식을 취하고, 시민이 그들의 이상 때문에 죽음을 무릅쓰고 국가 권력에 저항하였다고 보고하는 점에서는 그리스도교의 순교자 행전들과 유사하다. 이 작품들이 그리스도교를 위해 지니는 다른 의미는 테르툴리아누스가 비그리스도교 영웅들도 모범으로 삼을만하다고 언급하였듯이, 기껏해야 그리스도인이 이들을 본보기로 삼아 영향받았다는 점이다. 이와 달리 이미 유스티누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오한 크리소스토무스는 그들이 신앙 때문에 죽은 순교자가 아니며, 죽음의 동기도 그리스도인과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명백히 제시한다. 이러한 문헌 유형을 중립적으로 「알렉산드리아 사람들 행전」으로 부른다.



4.1. 행전

4.1.1. 「유스티누스 행전」

「부활절 연대기」에 따르면 유스티누스는 165년 로마에서 순교하였다. 「유스티누스 행전」에 따르면, 로마 시의 총독인 퀸투스 유니우스 루스티쿠스는 유스티누스와 그의 제자인 남자 다섯 명, 여자 한 명을 재판하였다. 남아 있는 세 편의 수정본 행전 가운데 가장 짧은 수정본은 그리스도교의 편집자가 처음에 날짜와 이름을 기록하고 끝에서 처형에 관해 짧게 기록한 법정 기록의 전형을 제시하고 있어 최초의 행전으로 여겨진다. 여기서 로마의 반그리스도교적 법률은 불법으로, 피고인들은 성인으로 묘사된다. 그리스도인을 대상으로 제신에게 제물을 바칠 것을 명한 특별법은 데치우스 황제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따라서 수정본에서 이 법률을 언급한다는 것은 뜻밖의 일이다.

신문은 매우 간단하게 진행되었다. 총독은 피고인들에게 다음의 질문을 한다. 여러분은 어떻게 삽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가르칩니까? 여러분은 어디에 모입니까?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 그리스도인이 제신에게 제물을 바치라는 황제의 법률을 따르지 않을 경우, 총독은 태형이나 참수형으로 위협하면서 피고인들에게 내리는 형벌을 정당화하기 이하여 부활을 실제로 믿는지 묻는다. 그들이 이를 시인하면 사형을 선고하였다.

피고인들의 답변과 질문은 간단한 신문 뒤에 숨어 있는 양측의 생각을 드러낸다. 따라서 유스티누스는 그리스도인의 생활방식에 관한 질문에 “저희는 죄를 짓지 않고 삽니다”하고 대답한다. 이 답변 두에는 대중이 그리스도인을 죄를 짓는 집단으로 비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르침에 관한 질문에 유스티누스는 자신이 모든 철학을 알았지만, 마침내 그리스도교에서 참다운 진리를 확신하게 되었다고 대답하였다. 이와 함께 그는 총독에게 자신을 뛰어난 교양인이 아닌 것처럼 소개하며, 그리스도교 신앙의 특징(세상의 창조자인 하느님, 하느님의 아들인 그리스도, 세상의 구원자와 선한 사람들의 스승인 그리스도와 그를 선포한 예언자들)에 대한 설명을 듣지 않고 곧바로 그리스도인이 모이는 장소에 관하여 물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에 관한 실질적인 토론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총독은 그들이 범죄자라는 사실만을 증명하려 하였다. 그리스도인의 범죄 행위가 생활방식에서 증명되지 않으면, 명백히 모반죄라 할 수 있는 몰래 만나는 장소를 묻는다. 유스티누스는 이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이 모임은 항상 공개적이며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모든 사람이 올 수 있습니다.” 이에 총독은 마지막으로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 하고 물었다.

이로써 총독과 유스티누스 사이에 질문과 답변이 끝난 뒤, 총독은 계속해서 다른 피고인들에게 같은 질문을 되풀이하였다. 물론 총독은 유스티누스가 그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느냐고 질문하였다. 이와 같은 질문으로 그는 다른 피고인들에게 배교의 가능성과 그들의 일부만이라도 미신을 멀리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놓았다. 신문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면, 총독은 각 피고인에게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 하고 묻고서 사형선고로 신문을 끝냈다. 그러나 판결은 그리스도인이라는 고백이 아니라 법률에 따라 황제에게 제물을 바치지 않았다는 암묵적 가정 아래에서 구체적인 법률을 증거로 끌어냈다. 물론 알려진 사료에 따르면 그러한 법률이 있었는지, 또는 다른 범죄행위가 증명되지 않았을 경우 오직 그리스도인이라는 고백 때문에 사형에 처하는 것을 합법화하였는지는 불확실하다.

행전의 수정본 B는 본문에 대한 설명을 부연하여 내용을 확대한다. 법률은 명백히 황제에 대한 제물 규정이었으며, 총독은 그리스도인에게 이 규정을 이행할 것을 명령하였다. 유스티누스는 만남의 장소에 관한 질문에 하느님께서는 어디서나 항상 존재하신다는 말로 답변을 회피하였다. 수정본 C는 문학적으로 일치된 작품만으로 행전을 구성하였다. 황제와 총독은 악하고 불경스러운 인물로 특징지어지며, 순교자들의 의지를 꺾기 위한 잔인한 태형이 상세히 묘사되었다. 이 수정본에서는 정확한 사망 일자와 순교자들의 영예로운 매장을 보고하며 그들에게 바치는 마침기도가 실려 있다. 지금까지는 수정본 B와 C가 A를 따른다는 의견이 정설이었으나, 최근 비스비는 A와 B가 아마도 같은 원전에서 유래했을 것이라는 지금까지 다루지 않은 논제를 제시하였다.



4.1.2. 「쉴리움의 순교자들 행전」

「쉴리움의 순교자들 행전」은 고대교회의 남아 있는 라틴어 문서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이 행전은 라틴어 성서 번역을 처음으로 언급하기 때문에, 성서 번역이 행전보다 앞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이 성서 번역은 틀림없이 가장 오래된 라틴-그리스도교 문헌이다. 쉴리움이 어디였는지는 아직도 확인되지 않았지만 북아프리카의 어느 장소로 국한할 수 있다. 이와 달리 순교록의 연도는 행전의 도입 문장을 바탕으로 180년 7월 17일로 정확히 산정할 수 있다.

행전에서는 17단락으로 이루어진 짧고 믿을 만한 법정 기록이 중요하다. 이 기록은 양식이 개작된 것이 확실하지만 집정관의 원본 기록과 다를 바 없다. 열여섯번째 단락에 따르면 일곱명의 남자와 다섯명의 여자가 재판을 받았다. 그들 가운데 스페라투스와 사투르니누스라는 두 사람만 대변인 역할을 하며, 여섯 사람은 신문에서는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바로 이 여섯 사람의 이름이 처음에 언급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이름이 나중에 첨가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으나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았다.

행전은 조서 형식과 같이 날짜, 재판관의 이름, 피고인들의 이름, 심리 소재에 대한 진술로 시작된다. 조서 형식대로 전집정관과 두 대변인 사이에 대화가 서서히 전개된다. 대화는 그들의 사고방식과 표현방법을 예로 들면서 소송의 근본 이유도 밝힌다. 전집정관은 그리스도교를 정신이상과 사악한 신념으로 여기지만 짐작건대 무신론으로 생각한 것 같지는 않다. 로마인의 종교가 황제의 수호신에게 맹세할 것과 그에게 기원제물을 바칠 것을 규정하였을지라도, 피고인들이 불법행위를 하지 않았고 황제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였다고 증언하였기 때문에, 전집정관은 이러한 증언을 종교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전집정관과 대변인들의 진술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는 mysterium simplicitatis(= 황제에게 바치는 제물/그리스도교), imperium(= 황제의 제국/하늘나라), mala persuasio(= 그리스도교/살인과 거짓 맹세), 황제에게 “존경”honor과 “경외”timor/황제에게 honor, 하느님께만 timor와 같은 개념에서 이어진다. 전집정관의 유일한 목표가 그리스도인들을 배교시키고 그들을 “미몽에서 깨어나도록”하는 것임이 신문을 통해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는 피고인들과 실제로 논쟁을 벌이지는 않았다. 결국 신문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고백으로 끝난다. 유예 기간 없이, 선고판에 적힌 참수형이라는 판결이 났다. 이에 대해 유죄선고를 받은 사람들은 하느님께 감사하였다. 이후 행전의 그리스도교측 편집자는 처형 집행을 덧붙였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곧바로 참수되었습니다. 아멘.”



4.1.3. 「치프리아누스 행전」

카르타고의 주교 치프리아누스의 소송에 관한 행전은 두 개의 다른 신문과 판결을 전하는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발레리아누스 황제는 257년 8월 칙령에서 그리스도교의 모든 집회, 더구나 공동묘지에서 여는 모임까지도 금지하였으며, 그리스도인들의 화합을 깨뜨리고 교인들에 대한 지도력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주교들에게 추방령을 내렸다. 제1단락에서는 257년 8월 30일 카르타고의 전집정관 아스파시우스 파테르누스가 치프리아누스에게 신문한 내용을 싣고 있다. 편집자가 행전의 첫 부분을 수정한 것 같지는 않다. 다른 행전과 마찬가지로 첫 부분은 날짜, 인물, 심리의 소재들로 시작된다. 이후 전집정관은 치프리아누스에게 그리스도교를 계속 빋을 것인지 묻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치프리아누스의 답변에 그를 키레나이카 지방 쪽의 북아프리카 해안가에 있는 도시 쿠르비스로 추방하라고 판결한다. 물론 이전에 치프리아누스에게 장로들의 이름을 대라고 하였지만, 그는 당연히 이를 거절하였다.

발레리아누스가 258년 7월 두번째로 공포한 칙령은 한층 더 강화되어 주교, 사제, 부제들을 곧바로 처형하도록 결정하자, 카르타고에 새로 임명된 전집정관 갈레리우스 막시무스는 치프리아누스에게 추방지에서 돌아오도록 명령하였다. 신문은 258년 9월 14일 전집정관이 요양하기 위해 머물던 영지에서 열렸다. 행전의 두번째 부분은 편집자의 종합적인 내용이 삽입되며, 맨 먼저 추방지에서 데려오는 과정을 묘사한다. 신문은 일반적인 경우와 같이 피고인의 신분 확인으로 시작한다. 그러고 나서 전집정관은 치프리아누스에게 황제의 법률 제정에 따라 제신에게 제물을 바칠 것을 명령하였지만, 치프리아누스는 이를 거부하였다. 전집정관은 다시 한번 제물을 바칠 것을 요구하였으나 치프리아누스는 다시 이를 거부하자 판결이 선고되었다. 신 모독, 범죄자들과의 음모, 로마 제신의 적, 따라서 참수에 해당하는 “극악무도한 범죄”라는 판결의 논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편집자는 치프리아누스의 순교를 보고하면서 행전을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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