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원죄론의 교의적 발전

3장 원죄론의 교의적 발전

오늘날과 같은 원죄, 본죄의 구별은 초기에는 없었다. 초기에는 成人들에 대한 세례만 행해지고 점차로 유아에게로 발전되었다. 교회는 또한 영지주의 사상에도 반대해야 했다.

1. 원죄에 대한 교부들의 견해

교부들은 원죄의 근거를 창세기 3, 1-20과 로마서 5,12-19에 둔다. 문제의 발단은 유아세례와 그리스도론적 구원론의 문제였다. 초기교부 특히
유스티누스; 아담-그리스도, 하와-마리아, 죽음-삶을 대조시킨다.
샤르데스의 멜리똔; 죄는 모든 영혼위에 흔적을 남긴다. 그들은 죽음으로 운명지워진다. 모든 육체는 죽음에 떨어진다.
이레네우스; 모든 인간이 아담과 그리스도와 연대성을 지니고 있음을 암시하였다. 그는 「이단을 거스려」에서 말하길 ꡔ첫 아담에서 하느님의 계명을 버림으로써 하느님을 모욕하였고, 두번째 아담에서 죽음에 순명하여 하느님과 화해되었다.ꡕ 그러나 이때 까지도 각 개인에 해당되는 원죄의 구별은 명확치 않았다. 단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절대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여기서 이레네오가 유아세례를 주장한 첫 교부이다. 그는 「이단을 거스려」에서 ꡔ그리스도는 당신의 활동을 통하여 모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 모두가 하느님에로 다시 태어나는 활동(세례)을 통하여 구원되도록 하기 위하여 오셨다.ꡕ라고 말하고 있다.


유스띠누스 역시 모든 세례가 모든이를 위해 베풀어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떼르뚤리아누스는 ꡔ왜 무죄한 어린이에게 성급하게 세례를 주는가?ꡕ라고 질문한다. 반면 치쁘리아누스는 대답하길 ꡔ비록 유아는 자기 잘못은 없더라고 다른이로 인한 죄를 사함받아야 한다ꡕ라고 했다. 그는 유아는 생후 8일 이내에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한 중죄인에게도 세례는 죄사함을 베푼다고 가르쳤다. 떼르뚤리아누스는 유아세례에 대해서는 호의적이지 못했다. 그는 아담의 죄와 관련하여 모든 인간이 가진 결함(Vitium Orginis)를 이야기하면서, 그 결함은 악마의 활동을 통하여 자연적인 성향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아담의 기본 결함에 물들지 않은 인간이 되셨다. 따라서 그리스도외의 모든 인간은 이 옛죄에 오염되어 있다.
오리제네스는 유아세례의 정당성을 따른다. 그는 ꡔ교회는 어린이에게 세례주는 것을 사도로부터 이어 받았다ꡕ(로마서 주해 5,9)라고 말한다. 이는 유아에게도 세례를 베풀어야 하는 무엇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는 「죄의 오점」을 이야기하고, 아담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
동서방이 이렇게 해석이 다른 이유는 성서의 불가타 번역에서 잘못된 것을 서방교부는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아담에 대한 강조). 물론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죄로서의 연관성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짓는 죄로써 아담과 연관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치릴로; ꡔ모두가 범죄한 이상 모두는 아담의 위법을 모방하는 자가 되었다.ꡕ 즉 죄로 말미암아 아담과 연계성을 지닌다.
오리제네스는 ꡔ모든이의 죄ꡕ를 입증하기 위해 성서 인물들의 죄를 열거한다. 그는 로마서 5장 주해에서 ꡔ인간은 본성에 의해 죄의 죽음에 처한다ꡕ고 하면서 ꡔ우리는 아담의 불순종을 따름으로 죄인이 되었다. 그 불순한 욕망이 육의 본성에 들어왔다. 그리하여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본성이 오염되었고, 이 오염된 본성으로 많은 이들이 죄인이 되었다ꡕ고 말한다. 그는 또 우리가 어떻게 죄인이 되었는가 보다, 어떻게 죽게 되었는가에 더 관심을 가지고 원죄, 본죄를 모든이에게 적용시키기를 꺼려하고 대신에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즉 아담에게 떨어진 죽음은 그를 통하여 모든이에게 전해져 내려왔다. 이렇게 동방 교부들이 자주 언급하는 죽음은 영원한 죽음을 의미한다. 즉 신체적 죽음은 영혼의 죽음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이들이 말하는 것은 영혼의 죽음이다. 또한 자신의 죄 때문에 판결받는 것이다.

다음 세대는 시리아, 알렉산드리아에서 나타난다.
아타나시오는 아리아즘을 거스려, 아담의 죄가 출생을 통하여 후손에 전해진다고 말하며, 그리스도만이 예외인데 그것은 동정녀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로써 원죄는 형벌과 결점의 유전이라는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원죄론은 마니케이즘과 논쟁하는 과정에서 발전한다. 뻴라지아니즘은 아담의 죄는 일종의 표본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카르타고의 주교는 죽음이 아담으로 인한 것인지, 또 그 결함이 출생으로 인해 전해지는 것인지 질문하고, 뻴라지오의 제자 첼레스티우스는 이를 부정함으로써 단죄받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뻴라지아니즘의 원죄 거부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면서 결론적으로 원죄론은 원론적 질문이라고 얘기한다. 왜냐면 원죄는 그리스도인의 구원과 의화에 연관되기 때문이다.

2.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 신학

아담과 그리스도안에서 인간의 모든 역사가 이루어진다. 원죄는 모방으로서가 아니라 출생을 통해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원죄역시 의지적 차원을 지닌다(아담의 의지). 따라서 모두는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되는 것처럼 아담안에서 하나된다. 즉 모두는 인격적 협력없이 물려받은 것이다. 그는 세상의 악과 그 결과에 대해 자세히 다룬다. 그가 주장한 것은 은총이 죄의 권세보다 더 크다는 것이다. 악을 윤리적, 물리적 악으로 구분한다. 물리적 악은 의도가 없는 것이고, 윤리적 악(하위善의 관점에서 상위善을 거부하는 것)은 의도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악은 ꡔ존재와 선의 결핍ꡕ이다. 이 정의로 모든 것을 규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이를 규명하는데 관심이 있었다. 세상은 모두 조화를 이루려하고 있고, 이에 역행하는 것이 악이다. 이러한 죄의 결과는 하느님과의 격리를 가져온다.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이는 아담의 죄에 의해 이꿀어졌는데 그에 의해 후손 전체가 불행하게 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원죄의 상속성에 대해 언급한다. 이는 로마법의 가부장제도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미 암브로시오가 언급한 적이 있다.
Lapsus sum in Adam
Mortus sum in Adam
불가타 번역에서는 모든이가 아담의 죄를 이어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도 이를 받아들여 모두가 아담의 죄를 이어받았기에 모두가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가르친다. 성서에 의하면 아담의 죄는 본질적으로 모든 후손의 죄를 결정짓는 가장의 역할을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를 강력히 주장하는 것은 뻴라지오의 사상에 반대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그것은 그의 생활 체험에서도 나온 것이다. 즉 뻴라지오가 인간의 의지를 강조한 반면에 그는 자기체험으로 인해서 인간의 의지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뻴라지오에 있어서 그리스도는 하나의 표양일 뿐 나머지는 인간이 책임져야 한다.
뻴라지오는 로마서 5,12을 주석하면서 아담과 그리스도이 행동은 하나의 표양으로 보는 것이다. 5,19에서는 ꡔ아담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들이 죄를 지었듯이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모든이가 구원되었다.ꡕ 여기서 순종, 불순종은 표양으로 이해된다. 그는 죄의 유전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다. ꡔ만약 아담의 죄가 모든이에게 유전된다면 그리스도의 은총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에게 까지 영향을 미쳐야 하지 않는가? 인간 자신의 죄를 용서하신 하느님이 어찌 아담의 죄를 후손에게까지 씌우겠는가?ꡕ 따라서 유아세례는 필요없다. 그의 제자 첼레스티우스는 ①아담은 죽을 운명으로 창조되었다. ②아담의 죄는 단순히 자신을 해친 죄이다. ③복음과 마찬가지로 율법은 인간을 하느님 나라로 데려다 준다. ④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기전에 죄없는 인간들이 있었다. ⑤유아는 아담이 범죄하기 이전의 상태에 있다. ⑥죽음과 아담의 죄로 인해 전 인류가 죽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전인류가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또한 세례를 안받아도 유아는 영생을 얻는다 라고 주장한다. 즉 그리스도안에서 ꡔ다시남ꡕ의 불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런 뻴라지오의 사상을 정면 반대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체험을 통해 주장을 펼친다(하느님의 은총). 이 속에서 뻴라지오의 사상은 당연히 거부되었다. 그래서 그는 아담이 자신의 죄로 온 인류를 더럽혔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이렇게 죄가 전해지는 이유는 출생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따라서 한 사람의 죄로 「많은 이가 더럽혀졌다」는 바오로의 말은 아우구스티누스에 이르러 「모든이가 더럽혀졌다」고 변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ꡔ그렇게 높은 의지의 자유를 지닌 원조의 타락은 그 본성으로 말미암아 온 인류가 타락할 만큼 큰 것이었다ꡕ라고 아담의 죄를 이야기 한다. 즉 완전한 상태에서 하느님을 거스르는 죄로 모든 인류에게 충분히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지닌 것이다. 따라서 아담은 모든 죄의 원조이다. 그러나 아담의 죄가 자연적이 아닌 것과 같이 그 죄를 유전받는 것도 ꡔ단순한 출생ꡕ에 의해서는 아니다. 즉 세례받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도, 그 부모가 욕정안에서 아이를 낳기에 아이는 원죄를 갖게 된다. 따라서 그는 욕정을 악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세례받은 이는 모든 죄에서 해방되었지만 모든 악에서 해방된 것은 아니다. 바로 이 욕정이 유아에게 죄책성을 남기고 따라서 많은 유아는 죄지은채 죽는 것이다. 그러나 그 죄는 가장 가볍다. 인간은 죄에서 해방되기 위해 은총을 필요로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원죄와 본죄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고찰한다. 이런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은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① 교회 교도권으로부터 인정된 부분; 모든 인간은 죄의 상태이므로, 은총이 필요하고 유아세례 역시 필요하다. 출산에 의한 죄의 유전.
② 후대에 삭제된 부분; 유아의 죽음후의 벌, 성행위에 의한 원죄의 유전.


3. 토마스 아퀴나스의 원죄 신학

신학대전 1권 2부 질문 81-85에서 원죄론을 다룬다.
81문 – 죄의 원인에 의한 인간의 역할
1항; 모든 아담의 후예는 아담을 머리로 하는 집단이고 아담은 죄에 물들었고, 그 본성밖에 물려줄 수 없었다. 따라서 후예는 모두 원죄를 갖게 되었다.
2항; 아담의 죄는 인격에 해당되기에 나머지 죄는 유전되지 않는다.
3항; 원죄는 자연적 출산을 통해 유전된다.
4항; 만일 누가 기적적으로 출생될 수 있다면 그는 원죄를 지니지 않는다.
5항; 인간 출산의 활동적 원인은 남자다. 그러므로 하와만 죄지었다면 원죄는 없었을 것이다.
82문 – 원죄의 본질
1항; 원죄는 본성적 습성이다. 이는 본체적 조화의 해소에서 나온 무질서한 성품이다.
2항; 원죄는 개인적으로, 종적으로 하나이다. 왜냐하면 원인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3항; 본래적 정의를 형성하던 조화의절정은 인간의지의 순명이다. 인간의 의지가 하느님을 기피하는 것이 죄악이다. 인간 기능의 내적 혼란은 질료적인 부분이다.
4항; 원죄는 모두에게 있다.
83문 – 원죄의 주체
1항; 탓으로서의 원죄는 영혼속에 있고, 결과는 육에도 있다.
2항; 원죄는 인간본성의 죄이다. 영혼이 육의 형상인 것은 영혼의 본질을 통해서이다. 원죄는 영혼을 주체로 삼는다.
3항; 원죄는 특별히 의지에 관련된다.
4항; 출산욕처럼 부패된 인간본성이 원죄에서 가장 크다.
85문 – 죄의 결과
1항; 우리에서 선을 빼앗았다. 현행죄는 덕에의 경향을 감소시킨다. 하지만 본성은 다만 위축되는 것이다.

토마스는 교부들의 입장을 이어받는다. 즉 아담은 본래적 정의(조화)를 지니고 있었다. 1권 95문 1항에서 ꡔ첫인간에서 육이영혼에, 이성은 하느님에 복종하였다. 이는 본성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은총으로 이런 상태를 가지고 있었다(군인이 임금으로부터 봉토를 받은 비유). 그래서 이성이 하느님에 불복종했을 때 무질서를 초래했다ꡕ라고 말한다.
후손에게 부여되는 원죄는 하느님이 주신 조화를 상실한 상태이다. 토마스는 단순한 인간본성의 유대안에서가 아니라, 인간들의 구체적인 공동체안에서 유대성을 찾았다. 즉 손이 죄를 지으면 그 손 때문에 개인 전체가 벌을 받는 것 같이.
그러나 후대 신학자들은 이를 알맞지 않은 비유로 보고 법적인 개념으로 대체한다. 하느님이 아담과 대표적 계약을 맺었다. 이로 인해 아담은 후손의 구원을 책임지고, 우리의 행동은 그의 행동안에 내포되어 있다(연대성). 그러나 역시 원죄는 아담의 죄를 후손에게 전가시킨 느낌을 받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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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원죄론의 교의적 발전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3장 원죄론의 교의적 발전

    오늘날과 같은 원죄, 본죄의 구별은 초기에는 없었다. 초기에는 成人들에 대한 세례만 행해지고 점차로 유아에게로 발전되었다. 교회는 또한 영지주의 사상에도 반대해야 했다.

    1. 원죄에 대한 교부들의 견해

    교부들은 원죄의 근거를 창세기 3, 1-20과 로마서 5,12-19에 둔다. 문제의 발단은 유아세례와 그리스도론적 구원론의 문제였다. 초기교부 특히
    유스티누스; 아담-그리스도, 하와-마리아, 죽음-삶을 대조시킨다.
    샤르데스의 멜리똔; 죄는 모든 영혼위에 흔적을 남긴다. 그들은 죽음으로 운명지워진다. 모든 육체는 죽음에 떨어진다.
    이레네우스; 모든 인간이 아담과 그리스도와 연대성을 지니고 있음을 암시하였다. 그는 「이단을 거스려」에서 말하길 ꡔ첫 아담에서 하느님의 계명을 버림으로써 하느님을 모욕하였고, 두번째 아담에서 죽음에 순명하여 하느님과 화해되었다.ꡕ 그러나 이때 까지도 각 개인에 해당되는 원죄의 구별은 명확치 않았다. 단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절대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여기서 이레네오가 유아세례를 주장한 첫 교부이다. 그는 「이단을 거스려」에서 ꡔ그리스도는 당신의 활동을 통하여 모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 모두가 하느님에로 다시 태어나는 활동(세례)을 통하여 구원되도록 하기 위하여 오셨다.ꡕ라고 말하고 있다.

    유스띠누스 역시 모든 세례가 모든이를 위해 베풀어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떼르뚤리아누스는 ꡔ왜 무죄한 어린이에게 성급하게 세례를 주는가?ꡕ라고 질문한다. 반면 치쁘리아누스는 대답하길 ꡔ비록 유아는 자기 잘못은 없더라고 다른이로 인한 죄를 사함받아야 한다ꡕ라고 했다. 그는 유아는 생후 8일 이내에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한 중죄인에게도 세례는 죄사함을 베푼다고 가르쳤다. 떼르뚤리아누스는 유아세례에 대해서는 호의적이지 못했다. 그는 아담의 죄와 관련하여 모든 인간이 가진 결함(Vitium Orginis)를 이야기하면서, 그 결함은 악마의 활동을 통하여 자연적인 성향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아담의 기본 결함에 물들지 않은 인간이 되셨다. 따라서 그리스도외의 모든 인간은 이 옛죄에 오염되어 있다.
    오리제네스는 유아세례의 정당성을 따른다. 그는 ꡔ교회는 어린이에게 세례주는 것을 사도로부터 이어 받았다ꡕ(로마서 주해 5,9)라고 말한다. 이는 유아에게도 세례를 베풀어야 하는 무엇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는 「죄의 오점」을 이야기하고, 아담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
    동서방이 이렇게 해석이 다른 이유는 성서의 불가타 번역에서 잘못된 것을 서방교부는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아담에 대한 강조). 물론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죄로서의 연관성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짓는 죄로써 아담과 연관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치릴로; ꡔ모두가 범죄한 이상 모두는 아담의 위법을 모방하는 자가 되었다.ꡕ 즉 죄로 말미암아 아담과 연계성을 지닌다.
    오리제네스는 ꡔ모든이의 죄ꡕ를 입증하기 위해 성서 인물들의 죄를 열거한다. 그는 로마서 5장 주해에서 ꡔ인간은 본성에 의해 죄의 죽음에 처한다ꡕ고 하면서 ꡔ우리는 아담의 불순종을 따름으로 죄인이 되었다. 그 불순한 욕망이 육의 본성에 들어왔다. 그리하여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본성이 오염되었고, 이 오염된 본성으로 많은 이들이 죄인이 되었다ꡕ고 말한다. 그는 또 우리가 어떻게 죄인이 되었는가 보다, 어떻게 죽게 되었는가에 더 관심을 가지고 원죄, 본죄를 모든이에게 적용시키기를 꺼려하고 대신에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즉 아담에게 떨어진 죽음은 그를 통하여 모든이에게 전해져 내려왔다. 이렇게 동방 교부들이 자주 언급하는 죽음은 영원한 죽음을 의미한다. 즉 신체적 죽음은 영혼의 죽음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이들이 말하는 것은 영혼의 죽음이다. 또한 자신의 죄 때문에 판결받는 것이다.

    다음 세대는 시리아, 알렉산드리아에서 나타난다.
    아타나시오는 아리아즘을 거스려, 아담의 죄가 출생을 통하여 후손에 전해진다고 말하며, 그리스도만이 예외인데 그것은 동정녀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로써 원죄는 형벌과 결점의 유전이라는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원죄론은 마니케이즘과 논쟁하는 과정에서 발전한다. 뻴라지아니즘은 아담의 죄는 일종의 표본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카르타고의 주교는 죽음이 아담으로 인한 것인지, 또 그 결함이 출생으로 인해 전해지는 것인지 질문하고, 뻴라지오의 제자 첼레스티우스는 이를 부정함으로써 단죄받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뻴라지아니즘의 원죄 거부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면서 결론적으로 원죄론은 원론적 질문이라고 얘기한다. 왜냐면 원죄는 그리스도인의 구원과 의화에 연관되기 때문이다.

    2.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 신학

    아담과 그리스도안에서 인간의 모든 역사가 이루어진다. 원죄는 모방으로서가 아니라 출생을 통해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원죄역시 의지적 차원을 지닌다(아담의 의지). 따라서 모두는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되는 것처럼 아담안에서 하나된다. 즉 모두는 인격적 협력없이 물려받은 것이다. 그는 세상의 악과 그 결과에 대해 자세히 다룬다. 그가 주장한 것은 은총이 죄의 권세보다 더 크다는 것이다. 악을 윤리적, 물리적 악으로 구분한다. 물리적 악은 의도가 없는 것이고, 윤리적 악(하위善의 관점에서 상위善을 거부하는 것)은 의도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악은 ꡔ존재와 선의 결핍ꡕ이다. 이 정의로 모든 것을 규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이를 규명하는데 관심이 있었다. 세상은 모두 조화를 이루려하고 있고, 이에 역행하는 것이 악이다. 이러한 죄의 결과는 하느님과의 격리를 가져온다.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이는 아담의 죄에 의해 이꿀어졌는데 그에 의해 후손 전체가 불행하게 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원죄의 상속성에 대해 언급한다. 이는 로마법의 가부장제도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미 암브로시오가 언급한 적이 있다.
    Lapsus sum in Adam
    Mortus sum in Adam
    불가타 번역에서는 모든이가 아담의 죄를 이어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도 이를 받아들여 모두가 아담의 죄를 이어받았기에 모두가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가르친다. 성서에 의하면 아담의 죄는 본질적으로 모든 후손의 죄를 결정짓는 가장의 역할을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를 강력히 주장하는 것은 뻴라지오의 사상에 반대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그것은 그의 생활 체험에서도 나온 것이다. 즉 뻴라지오가 인간의 의지를 강조한 반면에 그는 자기체험으로 인해서 인간의 의지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뻴라지오에 있어서 그리스도는 하나의 표양일 뿐 나머지는 인간이 책임져야 한다.
    뻴라지오는 로마서 5,12을 주석하면서 아담과 그리스도이 행동은 하나의 표양으로 보는 것이다. 5,19에서는 ꡔ아담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들이 죄를 지었듯이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모든이가 구원되었다.ꡕ 여기서 순종, 불순종은 표양으로 이해된다. 그는 죄의 유전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다. ꡔ만약 아담의 죄가 모든이에게 유전된다면 그리스도의 은총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에게 까지 영향을 미쳐야 하지 않는가? 인간 자신의 죄를 용서하신 하느님이 어찌 아담의 죄를 후손에게까지 씌우겠는가?ꡕ 따라서 유아세례는 필요없다. 그의 제자 첼레스티우스는 ①아담은 죽을 운명으로 창조되었다. ②아담의 죄는 단순히 자신을 해친 죄이다. ③복음과 마찬가지로 율법은 인간을 하느님 나라로 데려다 준다. ④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기전에 죄없는 인간들이 있었다. ⑤유아는 아담이 범죄하기 이전의 상태에 있다. ⑥죽음과 아담의 죄로 인해 전 인류가 죽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전인류가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또한 세례를 안받아도 유아는 영생을 얻는다 라고 주장한다. 즉 그리스도안에서 ꡔ다시남ꡕ의 불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런 뻴라지오의 사상을 정면 반대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체험을 통해 주장을 펼친다(하느님의 은총). 이 속에서 뻴라지오의 사상은 당연히 거부되었다. 그래서 그는 아담이 자신의 죄로 온 인류를 더럽혔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이렇게 죄가 전해지는 이유는 출생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따라서 한 사람의 죄로 「많은 이가 더럽혀졌다」는 바오로의 말은 아우구스티누스에 이르러 「모든이가 더럽혀졌다」고 변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ꡔ그렇게 높은 의지의 자유를 지닌 원조의 타락은 그 본성으로 말미암아 온 인류가 타락할 만큼 큰 것이었다ꡕ라고 아담의 죄를 이야기 한다. 즉 완전한 상태에서 하느님을 거스르는 죄로 모든 인류에게 충분히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지닌 것이다. 따라서 아담은 모든 죄의 원조이다. 그러나 아담의 죄가 자연적이 아닌 것과 같이 그 죄를 유전받는 것도 ꡔ단순한 출생ꡕ에 의해서는 아니다. 즉 세례받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도, 그 부모가 욕정안에서 아이를 낳기에 아이는 원죄를 갖게 된다. 따라서 그는 욕정을 악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세례받은 이는 모든 죄에서 해방되었지만 모든 악에서 해방된 것은 아니다. 바로 이 욕정이 유아에게 죄책성을 남기고 따라서 많은 유아는 죄지은채 죽는 것이다. 그러나 그 죄는 가장 가볍다. 인간은 죄에서 해방되기 위해 은총을 필요로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원죄와 본죄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고찰한다. 이런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은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① 교회 교도권으로부터 인정된 부분; 모든 인간은 죄의 상태이므로, 은총이 필요하고 유아세례 역시 필요하다. 출산에 의한 죄의 유전.
    ② 후대에 삭제된 부분; 유아의 죽음후의 벌, 성행위에 의한 원죄의 유전.

    3. 토마스 아퀴나스의 원죄 신학

    신학대전 1권 2부 질문 81-85에서 원죄론을 다룬다.
    81문 – 죄의 원인에 의한 인간의 역할
    1항; 모든 아담의 후예는 아담을 머리로 하는 집단이고 아담은 죄에 물들었고, 그 본성밖에 물려줄 수 없었다. 따라서 후예는 모두 원죄를 갖게 되었다.
    2항; 아담의 죄는 인격에 해당되기에 나머지 죄는 유전되지 않는다.
    3항; 원죄는 자연적 출산을 통해 유전된다.
    4항; 만일 누가 기적적으로 출생될 수 있다면 그는 원죄를 지니지 않는다.
    5항; 인간 출산의 활동적 원인은 남자다. 그러므로 하와만 죄지었다면 원죄는 없었을 것이다.
    82문 – 원죄의 본질
    1항; 원죄는 본성적 습성이다. 이는 본체적 조화의 해소에서 나온 무질서한 성품이다.
    2항; 원죄는 개인적으로, 종적으로 하나이다. 왜냐하면 원인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3항; 본래적 정의를 형성하던 조화의절정은 인간의지의 순명이다. 인간의 의지가 하느님을 기피하는 것이 죄악이다. 인간 기능의 내적 혼란은 질료적인 부분이다.
    4항; 원죄는 모두에게 있다.
    83문 – 원죄의 주체
    1항; 탓으로서의 원죄는 영혼속에 있고, 결과는 육에도 있다.
    2항; 원죄는 인간본성의 죄이다. 영혼이 육의 형상인 것은 영혼의 본질을 통해서이다. 원죄는 영혼을 주체로 삼는다.
    3항; 원죄는 특별히 의지에 관련된다.
    4항; 출산욕처럼 부패된 인간본성이 원죄에서 가장 크다.
    85문 – 죄의 결과
    1항; 우리에서 선을 빼앗았다. 현행죄는 덕에의 경향을 감소시킨다. 하지만 본성은 다만 위축되는 것이다.

    토마스는 교부들의 입장을 이어받는다. 즉 아담은 본래적 정의(조화)를 지니고 있었다. 1권 95문 1항에서 ꡔ첫인간에서 육이영혼에, 이성은 하느님에 복종하였다. 이는 본성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은총으로 이런 상태를 가지고 있었다(군인이 임금으로부터 봉토를 받은 비유). 그래서 이성이 하느님에 불복종했을 때 무질서를 초래했다ꡕ라고 말한다.
    후손에게 부여되는 원죄는 하느님이 주신 조화를 상실한 상태이다. 토마스는 단순한 인간본성의 유대안에서가 아니라, 인간들의 구체적인 공동체안에서 유대성을 찾았다. 즉 손이 죄를 지으면 그 손 때문에 개인 전체가 벌을 받는 것 같이.
    그러나 후대 신학자들은 이를 알맞지 않은 비유로 보고 법적인 개념으로 대체한다. 하느님이 아담과 대표적 계약을 맺었다. 이로 인해 아담은 후손의 구원을 책임지고, 우리의 행동은 그의 행동안에 내포되어 있다(연대성). 그러나 역시 원죄는 아담의 죄를 후손에게 전가시킨 느낌을 받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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