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3. 결론
이제 한 가지 사실이 분명해졌다.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이 아직까지 개화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항상 되돌아 가야 한다. 과연 무엇이 그리스도교이면 무엇이 그리스도교 신앙인가? 교회 임무의 준거점은 바로 “인간에 대한 연민”이다. 그것은 익명의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익명의 타인들까지도 배려하려는 태도이다. 결국 인간 문제에 대한 마지막 해답은 하느님의 불가사이성 안에서만 유일한 해결책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은 결국 자기 자신의 유한성 안으로 질식되고 인간의 존엄성, 인간의 고상한 과제에 대해서 아무리 말을 많이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공허한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교회는 아직도 너무나 경직된 교의 안에서 삭막하게 교리화된 하느님을 말하고 있고, 여기에는 진정한 생명력이 없다. 오늘날 교회는 너무나 지쳐있다. 생명력을 필요로 한다. 결국에는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하느님의 신비 안에 맡기는 태도. 하느님의 성스러운 불가지론 즉 신비 앞에서 승복하고 불가사이한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태도 이것이 교회의 태도이다. 끊임없이 항상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 가야겠다. 무엇이 그리스도교인가, 무엇이 신앙인가, 무엇이 교회인가?
교회의 미래전망-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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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 결론
이제 한 가지 사실이 분명해졌다.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이 아직까지 개화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항상 되돌아 가야 한다. 과연 무엇이 그리스도교이면 무엇이 그리스도교 신앙인가? 교회 임무의 준거점은 바로 “인간에 대한 연민”이다. 그것은 익명의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익명의 타인들까지도 배려하려는 태도이다. 결국 인간 문제에 대한 마지막 해답은 하느님의 불가사이성 안에서만 유일한 해결책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은 결국 자기 자신의 유한성 안으로 질식되고 인간의 존엄성, 인간의 고상한 과제에 대해서 아무리 말을 많이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공허한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교회는 아직도 너무나 경직된 교의 안에서 삭막하게 교리화된 하느님을 말하고 있고, 여기에는 진정한 생명력이 없다. 오늘날 교회는 너무나 지쳐있다. 생명력을 필요로 한다. 결국에는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하느님의 신비 안에 맡기는 태도. 하느님의 성스러운 불가지론 즉 신비 앞에서 승복하고 불가사이한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태도 이것이 교회의 태도이다. 끊임없이 항상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 가야겠다. 무엇이 그리스도교인가, 무엇이 신앙인가, 무엇이 교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