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인 교회 건설-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4.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 교황 요한 23세(1881-1963)

안젤로 론깔리(Angelo Roncalli)는 이태리 농부의 집에서 태어났다. 1904년에 사제 서품을 받고 교구 신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쳤고, 현대주의자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는 현대주의 혐의로 고발당했다. 1925년부터 그는 교황의 외교관으로서 불가리아, 터키 그리고 그리스에서 근무했는데 이때 그는 정교회들을 가까이서 접촉할 수 있었다. 1944년에 그는 파리의 교황 대사로 임명되었는데 마침 파리의 대주교 수하드(Suhard)는 프랑스를 탈 그리스도교화한 사회로 선언하고 복음 전파를 위한 새로운 종류의 전교 방법을 개발했다. 1953년 론깔리는 추기경에 서임되었고 베니스의 총 대주교가 되었다.

1958년 77세에 교황에 선출되었을 때 그는 관리인으로 선택되었음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할 기회를 잡았고 3개월 내에 공의회 소집을 선언했다. 그가 택한 공의회 안건은 자신이 언급 한대로 그의 생애가 말해 주는 것이었다: ‘나와 같이 오래 산 사람들은 금세기 초기에 사회 질서 안의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게 되었다. 나처럼 20여년 동안이나 동방에 살았고 8년 동안이나 프랑스에 살았던 사람들은 서로 다른 문화와 전통을 비교하게 되어 있고, 시대의 징표(signs of the times)를 식별하며, 기회를 이용하고 멀리 앞을 내다봐야 하는 순간이 왔음을 안다.’

공의회는 신앙의 원천을 뒤돌아 보고 나서 현대세계의 변화된 상황 안에서 이것을 다시 표현하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 관점이 공의회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심이 된다. 공의회 이전의 교회의 양식이나 언어는 16세기의 종교개혁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대응으로까지 거슬려 올라가는 깊은 전통에 뿌리를 박고 있다. 당시 교황은 동시에 두 방향으로 갈라지는 가톨릭의 삶의 방식을 찾고 있었다. 첫째로 그는 ‘원천으로 복귀’하기를 원했다; 16세기를 훨씬 더 지나, 초대교회의 삶과 성서의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원에까지 되돌아가는 것이고, 둘째로 앞을 내다보고, ‘시대의 징표’를 읽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교적인 이해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데 있어 교황은 그리스도교의 일치를 증진시키기 위해 특별한 관심을 두고자 했다. 이 새로운 관점은 공의회 기간과 공의회 후에 극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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