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1.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1.1. 교회론의 쇄신


  19세기는 중앙집권적 교황권이 강화된 시기이다. 교회는 격변하는 시대에 이러한 방법을 통해 대항하고자 했던 것이다. 우리는 1차대전 이전까지의 시기에서 이러한 몇 가지 예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1870)에서는 교황의 수위권, 무류직권이 교의로 반포되었다. 이 논리에 따른 당시의 교회론은 ‘교회는 제도로서의 교회이며 교황 중심의 제도국가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으로서, ‘교황론’, ‘교계제도론’ 위주로 돌아간 것이었다. Trient 공의회(1545-1563) 이후 법제적인 교회론의 흐름에 쇄신을 요구한 것이 독일의  Tübingen 학파(19세기 초)였다. 그러나, 제1차 바티칸 공의회가 이 개혁운동에 찬물을 끼얹었다.


  1차대전 직후부터 새로운 각성들이 다시 시작된다. 독일에서는 ‘신비’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었고, 프랑스에서는 실천적․사목적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 1차대전 – 2차대전 사이의 신학적 개혁운동들

① 성서운동 : 성서읽기, 사목에의 적용, 성서연구, 성서모임…

               → 주도 세력 없이 각지에서 자연스럽게 발생

② 전례 & 교부 : 희랍교부들에 대한 관심 증대

               → 독일의 전례운동, 평신도의 전례 차며, 모국어 미사 연구…

③ 현대 세계에 대한 개방 : 세상을 ‘인류구원의 동반자’로 새롭게 인식

④ 종교일치운동 : 특히, 동방교회와의 일치에 주목, 반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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