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원천에로의 회귀

 

  2. 원천에로의 회귀


  Tübingen학파의 대표적 학자였던 J.A. Möhler는 “교회는 본질적으로 성령의 창조물이다”라고 말하면서, 성령이 교회활동의 원천이라는 ‘신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러한 관점에서의 교회인식의 새로운 원칙은 “원천에로의 회귀”였다.


  ◎ 1차대전 –  2차대전


  이 시기에 와서는 교회에 있어서의 그리스도의 역할이 부각되었다. 이러한 사상적 움직임은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몸”이라는 사상에 영향을 주었다.


독일에서는 교회론의 쇄신에 있어서 ‘교회가 성사’, ‘교회는 구원의 도구․표지’라는 것이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했으며, 성체성사 중심의 사상이 일어났다. 또한 ‘선교’는 ‘교회를 접목시키는 것’이라는 개념이 새롭게 등장했다.(‘토착화’ 개념의 등장)


벨기에, 네덜란드 등에서는 평신도 사도직 부흥, 선교에의 새로운 인식이 발돋움하면서, 식민주의(제국주의)가 선교에 악영향을 미쳤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토착화’와 함께 ‘적응’이란 개념이 함께 등장했다. 이러한 개념의 적용이라고 할 수 있는 예로써 전례에서의 모국어 사용, 교회제도의 변화 등을 들 수 있겠다.


또한, 교회론의 반성은 ‘非그리스도인의 구원문제“에까지 생각하게 했다.(ex : 종교 일치의 문제, 교류, 동방전례에 대한 관심과 연구…) 또한, 교회의 분열에는 상호간에 책임이 있으며, 많은 원인이 있음을 인식했으며, 교계제도에 대한 반성, 특히 ‘교황권’과 ‘교회와 국가간의 관계’에 대한 반성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노력들은 교회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 큰 밑거름이 되었고, 그 결실이 “그리스도 신비체”(1943) 회칙1)의 반포로 나타났다.


  ◎ 2차 세계 대전 이후(1945- ) : ‘하느님의 백성’ 개념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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