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 근대의 혼란
이러한 중세의 교회개념은 종교개혁 과정을 거치면서 개신교에 대항하여 더욱 강조되었다. 가톨릭 교회의 교회론은 교황권 옹호론이 되었고 위계조직론이 되었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이러한 면을 더욱 경직시켰다. 이때의 사상은 R. Bellarmin의 표현대로 교회는 가시적인 실재, 즉 국가 공동체와 같은 실재라는 것이다.
19세기에 유럽의 정신사조는 변화되었다. 헤겔에 의한 국가와 역사개념의 발견, 낭만주의 사조에 의한 유기체 사상의 개진이 그것이다. 특히 낭만주의 사조는 교회 내에서 오랫동안 잊혀졌던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근본 개념을 회복시켰다. 튀빙엔 학파의 Mohler는 성령의 활동을 토대로 교회사상을 개진하며 회복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는 “교회는 죄악이 완전히 극복되어 완전한 사랑 안에 있는 이 세상의 영역이 아니다. 오히려 죄악과의 전투를 계속하는 영역 안에 있고 구원에 봉사하는 도구이다.”고 말했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를 Bellarmin식의 제국개념과 Mohler식의 유기체적-신비적인 개념으로 대비해 볼 수 있다. 이러한 대비와 함께 오랫동안 가시적/비가시적, 제도/성령, 직무/은총의 선물 이라는 대비어가 통용되게 되었다.
Mohler의 사상은 제1차 바티칸 공의회를 준비한 학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공의회 교회 테마의 초안은 교회를 신비로운 그리스도의 몸으로 정의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공의회 교부들은 이를 개신교적 이해(제국개념의 교회에 대한 저항)로 받아들여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았다. 오히려 교황의 수위권과 교황직무의 무류성만이 채택되었다. 결국 제1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론은 하느님 백성 개념을 사회적인 교회 이해와 결합하여 교회를 이해하였고 백성에게 위계조직에 대한 종속성과 순명을 강조했으며 이로써 그리스도의 몸 개념은 사라졌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신학적 부흥운동이 일어났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1920년 이후 가톨릭 교회론에는 다시 Mohler를 통해 쇄신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개념이 부각되었다. 사상 운동의 중심점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이러한 운동의 정점이 바로 1943년 Pius 12세의 회칙 ‘그리스도의 신비체’였다. 이 회칙은 그리스도의 몸을 두 가지로 고찰한다. 첫째, 호교론적 입장에서 교회를 ‘완전한 사회’로 보는 법적인 고찰. (둘째, 교회의 여러 방향에 대한 영적, 신비적인 고찰.) 하지만 이 회칙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하나의 표상으로만 이해했다고 수많은 비판에 직면했다. 이러한 비판과 함께 하느님 백성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 일어났다. 가톨릭 역사 안에서 사실 이 두 개념은 교회이해에 있어서 균형을 갖지 못하고 시대상황과 사회여건에 따라 일방적으로 잘못 사용되어왔다.
끝으로 우리는 근대의 교회이해를 신비로운 그리스도의 몸, 즉 신비로운 그리스도의 유기체로 규정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