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2 교회일치 문제
3.5.2.1 교회와 교회들
1963년 가을 공외회의 한 회의 중에 개신교 참관인으로 초청된 신학자 EdmundSchlink(Heidelburg대학 신학교수)가 공의회 테마였던 ‘교회에 대하여’에 대해 개신교 입장에서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에 따르면 로마가톨릭 교회는 스스로를 배타적으로 하나요 거룩하며 공번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와 동일시하고 있다고 하였다. Schlink에 따르면 이 비가톨릭 그리스도인들은 은총과 구원에 힘입어 그들 ‘교회들’의 구성원들이며, 로마 가톨릭교회의 구성원들로 해석될 수 없다. “로마 가톨릭교회가 말하는 종교일치가 뜻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지금까지 비가톨릭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시각들이 ‘갈라진 형제들’이라는 인식 대신에 과거처럼 이교도(Schismatiker)니, 열교도(Häretiker)하는 말들은 무슨 뜻인가? 지금까지 비가토릭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준 영적인 열매들이나 그리스도교 증인으로서의 역할, 경건한 생활들은무엇을 의미하는가? 로마가톨릭교회의 종교일치는 비가톨릭 그리스도인들을 모두 로마가톨릭교회로 흡수 통일 하려는 의도가 아닌가?”1) 그리고는 Schlink는 하나의 전혀 새로운 종교일치 운동의 개념을 제안하였다. 즉 종교일치 운동은 하나의 기준교회로 갈라진 그리스도인들을 흡수하려는 것이 아니라, 갈라진 교회들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E.Sschlink의 제안은 다음의 사실을 포함하고 있다. 즉 하나의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르게형성된 교회들이 존재하고 이 교회들은 서로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교회들은 하나인 교회의 서로 다른 형태의 구체적인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에는 무엇보다도 교회에 대한 복수개념이 그 출발점으로 가정된다. 가톨릭신학도 복수의 교회들에 대해서 알고 있으나 Schlink가 말하는 복수개념, 즉 서로 다른 신앙고백이 동등한 차원으로 인정되는 복수개념과는 전혀 다르다. 즉 하나의 교회안에 여러 교회드이 있으나 여러 교회들은 교회의 전체를 이루고 있고 같은 신앙을 고백하며 성찬을 통해 하나의 교회를 이루는 개념인 것이다. 로마와 고린토 필립비에 하느님의 교회가 존재하였듯이 지금은 대구와 서울, 광주에 하느님의 교회가 존재한다. 각각의 지역교회는 그들의 주교와 함께 식탁에 모여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성찬을 나눔으로써 이미 교회 전체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지역교회들도 주님의 말씀과 몸안에 현존하는 교회의 근본적 실재 이기에 교회라 불리우는 것이다.
교회의 복수개념에 대해 우리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은 세가지 차원을 말할 수 있다.
첫째, 신약성서에서도 복수의 교회들이 있엇다. 신약성서가 복수의 교회들에 대해 언급할 때, 그것은 서로 다른 신앙을 고백하는 교회들이 아니라 교회 전체를 이루며 교회라는 단수 개념안에 함께 일치안에 머무는 교회들을 의미하고 있다.
둘째, 이 복수 개념은 가톨릭신학에서는 원칙적으로 항상 주교를 중심으로 하는 교회들을 지칭하고 있다.
셋째, 이 복수개념은 가톨릭 신학에서는 또한 로마의 지역교회가 다른 모든 지역교회를 자기 통제 안으로 끌어들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일치개념을 축소하여 획일화 하는 그런 중앙집권식의 체제를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Schlink가 제기한 질문에 이렇게 답할 수 있다.
우리가 획일화와 일치를 동일하게 보는 시각을 극복할 때, 현재 교회의 모습안에서 종교일치라는 말을 정확하게 이해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로 교회안에 교회들이 존재한다.
①먼저, 가톨릭 그리스도인은 가톨릭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 믿어왔고, 이 자기들의 가토릭 교회는 일치안에서의 다양성의 현상들과 또한 이러한 현상들에 적응해가야하는 과제에 대해 미처 준비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이 사실은 자기 개방의 과정을 요구하고 있고 인내의 시간을 촉구하고 있다. 또한 다른 그리스도인들도 자신들의 정당함을 가지고 있기에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단순히 흡수 할 수 있는 아무런 권한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가톨릭교회의 다양성에 대한 내적인 결핍은 가톨릭교회로 하여금 교회일치운동에대한 개방된 과제와 가능성을 촉구하고 있다.
②그 다음으로, 각자의 양심을 가지고 있는 개개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러한 전환을 촉구하는 사상은 그드이 여러교회에 머무르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하나의 교회를 이루는 교회일치를 호소한다. 교회일치는 하나의 교회는 다수의 교회들에 스스로를 개방해야 하며 다수의 교회는 하나의 교회를 이루고 하나의 교횐안에서 비로서 교회가 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③가톨릭교회는 Schlink가 제안한 교회일치에 대한 개념을 단순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Schlink는 모든 갈라진 교회들을 동등한 차원에서 교회의 합법적인 구체적 실현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④비록 가톨릭교회가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자부하지만, 가톨릭교회는 자신의 역사적인 부족함을 알고 있다. 특히 교회내부에서 복수의 교회들이 역사안에서 존재했고 또 오늘날 교회 밖에서도 복수의 교회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이에대한 시각의 출발점은 다음과 같다. 즉 신약성서에 있어서 복수교회에 대한 개념은 다만 하나인 교회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인식되고 있고 서로다른 신앙 고백으로 갈라진 교회형태는 아니라는 것이다. 공의회는 이러한 성서의 이해에 주목하였고 또한 역사적으로 갈라진 교회의 현시렝 대해서도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다. 신약성서는 다만 하나의 교회를 말하고 있고 이에 반해 역사는 여러교회들에 대해 알고 있기에 이러한 딜렘마 앞에 공의회는 역사상 처음으로 교회일치라는 테두리밖에 있는 복수의 교회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2) 이것은 새로운 진일보였다. 즉 교회 공식문헌이 일치에 대해 신앙적인 선언뿐 아니라 동시에 복수의 교회들에 대한 역사적인 실재에 대해 진지하게 다루고, 신앙적인 차원에서 하나의 교회라는 단수 테두리 밖에서 복수로서의 교회를 신학적인 의미로 고찷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 밖의 다른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은 이른바 교회가 아니라 교회들로 표현되고 있다. 이 표현은 하나인 유일한 교회로서가 아니라 교회들로 이러한 공동체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그 교회들의 단수를 지향하는 복수이며 단수를 잃어버린 복수를 의미하고 있다. 이러한 공의회의 중요한 진일보는 앞으로 더욱 개진되어야 할 것이다.

3.5.2 교회일치 문제
3.5.2.1 교회와 교회들
1963년 가을 공외회의 한 회의 중에 개신교 참관인으로 초청된 신학자 EdmundSchlink(Heidelburg대학 신학교수)가 공의회 테마였던 ‘교회에 대하여’에 대해 개신교 입장에서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에 따르면 로마가톨릭 교회는 스스로를 배타적으로 하나요 거룩하며 공번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와 동일시하고 있다고 하였다. Schlink에 따르면 이 비가톨릭 그리스도인들은 은총과 구원에 힘입어 그들 ‘교회들’의 구성원들이며, 로마 가톨릭교회의 구성원들로 해석될 수 없다. “로마 가톨릭교회가 말하는 종교일치가 뜻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지금까지 비가톨릭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시각들이 ‘갈라진 형제들’이라는 인식 대신에 과거처럼 이교도(Schismatiker)니, 열교도(Häretiker)하는 말들은 무슨 뜻인가? 지금까지 비가토릭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준 영적인 열매들이나 그리스도교 증인으로서의 역할, 경건한 생활들은무엇을 의미하는가? 로마가톨릭교회의 종교일치는 비가톨릭 그리스도인들을 모두 로마가톨릭교회로 흡수 통일 하려는 의도가 아닌가?”1) 그리고는 Schlink는 하나의 전혀 새로운 종교일치 운동의 개념을 제안하였다. 즉 종교일치 운동은 하나의 기준교회로 갈라진 그리스도인들을 흡수하려는 것이 아니라, 갈라진 교회들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E.Sschlink의 제안은 다음의 사실을 포함하고 있다. 즉 하나의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르게형성된 교회들이 존재하고 이 교회들은 서로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교회들은 하나인 교회의 서로 다른 형태의 구체적인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에는 무엇보다도 교회에 대한 복수개념이 그 출발점으로 가정된다. 가톨릭신학도 복수의 교회들에 대해서 알고 있으나 Schlink가 말하는 복수개념, 즉 서로 다른 신앙고백이 동등한 차원으로 인정되는 복수개념과는 전혀 다르다. 즉 하나의 교회안에 여러 교회드이 있으나 여러 교회들은 교회의 전체를 이루고 있고 같은 신앙을 고백하며 성찬을 통해 하나의 교회를 이루는 개념인 것이다. 로마와 고린토 필립비에 하느님의 교회가 존재하였듯이 지금은 대구와 서울, 광주에 하느님의 교회가 존재한다. 각각의 지역교회는 그들의 주교와 함께 식탁에 모여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성찬을 나눔으로써 이미 교회 전체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지역교회들도 주님의 말씀과 몸안에 현존하는 교회의 근본적 실재 이기에 교회라 불리우는 것이다.
교회의 복수개념에 대해 우리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은 세가지 차원을 말할 수 있다.
첫째, 신약성서에서도 복수의 교회들이 있엇다. 신약성서가 복수의 교회들에 대해 언급할 때, 그것은 서로 다른 신앙을 고백하는 교회들이 아니라 교회 전체를 이루며 교회라는 단수 개념안에 함께 일치안에 머무는 교회들을 의미하고 있다.
둘째, 이 복수 개념은 가톨릭신학에서는 원칙적으로 항상 주교를 중심으로 하는 교회들을 지칭하고 있다.
셋째, 이 복수개념은 가톨릭 신학에서는 또한 로마의 지역교회가 다른 모든 지역교회를 자기 통제 안으로 끌어들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일치개념을 축소하여 획일화 하는 그런 중앙집권식의 체제를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Schlink가 제기한 질문에 이렇게 답할 수 있다.
우리가 획일화와 일치를 동일하게 보는 시각을 극복할 때, 현재 교회의 모습안에서 종교일치라는 말을 정확하게 이해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로 교회안에 교회들이 존재한다.
①먼저, 가톨릭 그리스도인은 가톨릭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 믿어왔고, 이 자기들의 가토릭 교회는 일치안에서의 다양성의 현상들과 또한 이러한 현상들에 적응해가야하는 과제에 대해 미처 준비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이 사실은 자기 개방의 과정을 요구하고 있고 인내의 시간을 촉구하고 있다. 또한 다른 그리스도인들도 자신들의 정당함을 가지고 있기에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단순히 흡수 할 수 있는 아무런 권한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가톨릭교회의 다양성에 대한 내적인 결핍은 가톨릭교회로 하여금 교회일치운동에대한 개방된 과제와 가능성을 촉구하고 있다.
②그 다음으로, 각자의 양심을 가지고 있는 개개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러한 전환을 촉구하는 사상은 그드이 여러교회에 머무르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하나의 교회를 이루는 교회일치를 호소한다. 교회일치는 하나의 교회는 다수의 교회들에 스스로를 개방해야 하며 다수의 교회는 하나의 교회를 이루고 하나의 교횐안에서 비로서 교회가 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③가톨릭교회는 Schlink가 제안한 교회일치에 대한 개념을 단순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Schlink는 모든 갈라진 교회들을 동등한 차원에서 교회의 합법적인 구체적 실현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④비록 가톨릭교회가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자부하지만, 가톨릭교회는 자신의 역사적인 부족함을 알고 있다. 특히 교회내부에서 복수의 교회들이 역사안에서 존재했고 또 오늘날 교회 밖에서도 복수의 교회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이에대한 시각의 출발점은 다음과 같다. 즉 신약성서에 있어서 복수교회에 대한 개념은 다만 하나인 교회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인식되고 있고 서로다른 신앙 고백으로 갈라진 교회형태는 아니라는 것이다. 공의회는 이러한 성서의 이해에 주목하였고 또한 역사적으로 갈라진 교회의 현시렝 대해서도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다. 신약성서는 다만 하나의 교회를 말하고 있고 이에 반해 역사는 여러교회들에 대해 알고 있기에 이러한 딜렘마 앞에 공의회는 역사상 처음으로 교회일치라는 테두리밖에 있는 복수의 교회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2) 이것은 새로운 진일보였다. 즉 교회 공식문헌이 일치에 대해 신앙적인 선언뿐 아니라 동시에 복수의 교회들에 대한 역사적인 실재에 대해 진지하게 다루고, 신앙적인 차원에서 하나의 교회라는 단수 테두리 밖에서 복수로서의 교회를 신학적인 의미로 고찷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 밖의 다른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은 이른바 교회가 아니라 교회들로 표현되고 있다. 이 표현은 하나인 유일한 교회로서가 아니라 교회들로 이러한 공동체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그 교회들의 단수를 지향하는 복수이며 단수를 잃어버린 복수를 의미하고 있다. 이러한 공의회의 중요한 진일보는 앞으로 더욱 개진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