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Ulrich Zwingli(1484-1531)

2.4. Ulrich Zwingli(1484-1531)

Zwingli는 1484 스위스 Toggenburg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Basel, Bern, Wien등지에서 신학을 공부하여 1506년 Konstanz에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스위스 Glarus(1506-1516)와  Einsiedeln(1516-1518)에서 본당신부로, 1519년 Zürich본당신부로 있었다. 1524년 오래 전부터 동거 생활을 하던 한 부유한 과부와 결혼하였으며, 이때부터 Zürich의 종교분열을 주도하기 시작하였다. 내용은 모든 예식과 축성의 폐지, 성당의 성화상제거, 미사의 폐지, 수도회의 해산, 교회 성직록 개편 등이었다. 스위스 의회는 절대 다수로 가톨릭교회를 옹호하였다. Zürich는 Bern을 가담시키는데 성공하여 동맹을 결성하고 Konstanz, St Galen, Basel, Shaßburg까지 동맹을 맺었다. 가톨릭을 옹호하는 다른 주들과 전쟁을 개시하였다. 여기서 가톨릭주들이 승리하고 Zwingli는 전사(1531)하였다. Zwingli의 개혁운동은 남부독일 등지로 파급되었다. Zwingli는 Luther와 결합하려 했으나 성체의 실체변화에 이견이 있었다. Luther는 실체변화를 고수하였으며, Zwingli는 상징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둘은 결별하였다. Luther는 죽기까지 Zwingli를 미워하고 거절했다.




이 글은 카테고리: catholicdictionary3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