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자료
마리아에 관한 보고들 가운데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신빙성 있는 사료들은 다음 세단락이다.
⑴ 마르 6, 1-6
객지에서 활동하던 예수는 한 번 고향 나자렛 회당에서 설교를 하게 되었다. 예수의 설교 내용이 대단히 파격적인 것에 놀란 고향 사람들이 빈정대고 있다. “··· 그런 모든 것이 어디서 생겨났을까? 저 사람은 목수가 아닌가? 그 어머니는 마리아요,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다 우리와 같이 여기서 살고 있지 않은가?(6, 2-3)”
평소에 자기들과 똑같이 살던 예수가 객지 물을 좀 먹고 오더니 너무나 변한 모습에 보인 고향 사람들의 반응이다.
첫째, 이스라엘 관행에 따르면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하고 물었어야 했는데도 그 어머니 마리아의 아들로 보고 있는 것이 뜻밖이다. 아마도 요셉은 오래 전에 타계하여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듯하다.
둘째, 예수에게 남자 형제 넷과 누이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형제, 자매들이라고 하면 친형제, 자매들을 뜻하기도 하고, 친척 형제, 자매들을 뜻하기도 했다. 개신교에서는 이들을 친형제, 자매로 이해하는 반면 가톨릭에서는 친척, 형제 자매로 알아듣고 있다. 아마도 마리아의 동정성을 믿어 온 때문일 것이다.(아마도 마리아의 평생 동정 신조가 없었다면 친 형제자매로 이해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⑵ 마르 3, 20-21 ; 31-35
세례 이후 예수는 정처 없이 하늘나라의 도래를 선포하고 회개를 촉구하고 다녔다. 그러자 친족들은 예수를 정신병자 취급을 하고 예수를 붙잡아 강제로라도 고향으로 데려오고자 했다.(3,21)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를 찾아왔다는 말을 듣자 예수는 매정하게도 쏘아붙이고 있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형제들입니까?” 그러고는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이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입니다.”(3,34-35)하고 말한다. 순 인간적인 차원으로 본다면 아무래도 예수는 효자 축에는 들지 못했다. 예수의 말은, 혈연관계보다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이 갖는 영적 관계에 주목하고 있다. 혈연 가족보다 영적 가족을 주목한 것이 예수의 의도로 보여지고 있다.
⑶ 루가 11, 27-28
예수의 설교에 감복한 어느 부인이 큰 소리로 “당신을 낳아서 젖을 먹인 여인은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11.27)하자 예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행복하다.“ 고 대답한다. 낳아 주고 길러 준 생모가 즉시 복된 것이 아니다. 이 예수의 말로 미루어 보아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 축에 들지 못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처럼 역사 안에서의 마리아를 정직하게 살펴보면 어머니 마리아는 아들 예수를 이해하지 못했고, 아들은 어머니를 멀리 했다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