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2章 敎會의 役割 –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정식(현재의 상황-객관적 요소)

 

2.1.2.2. 객관적 요소


우리가 주목하는 객관적 요소는 예수의 구원을 위한 봉사 행위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사랑으로 초대되지만 자기 안에 깊이 감추어진 이기심은 항상 사랑에로의 초대를 방해하고 자기 자신을 내세우게 한다.


얼마나 적게 인간이 자기의 이기심을 극복하고 사랑을 실현하는지. 따라서 하느님의 구원 의지에 따른 예수의 봉사는 필연적이다. 교회의 역할은 이 예수의 봉사 행위에 참여하는 것이며, 또 그것뿐이다.


그것은 예수의 봉사 행위를 현존시키는 것이다. 이것의 보다 근본적인 의미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존재하기를 원하는 것, 인간이 자기 자신을 위한 존재로부터 벗어나 인간이 타인을 위한 존재로 넘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인식을 토대로 우리는 다음의 질문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구태여 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만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오히려 타인을 위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 첫 번째 의미이다. 교회 또한 모든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것을 위하여 있는 존재이다. 교회는 하느님께서 ‘모든’인류를 위해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우신 도구인 것이다. 여기에서 또한 교회 선교의 올바른 의의가 도출될 수 있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타자를 위해 존재한다. 교회는 스스로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를 위해 개방된 존재이어야 하는 것이니, 선교는 바로 교회의 존재를 실현하는 것이다. 타자를 위한 하느님 사랑의 표지로서 교회는 스스로 열린 공간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교회에 맡겨진 복음은 스스로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로 향해야 한다. 선교는 바로 신적인 이웃사랑의 표현인 것이다. ‘내가 복음을 전한다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1고린 9,16)



교회는 결코 고정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다. 선교는 결코 하나의 교회 제국을 건설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도 교회의 객관적 요소로부터 강요될 수 없다. 여기에 교회는 현명성을 요청한다. 무엇보다 그리스도교가 전파되지 않은 지역에서 그렇다. 물론 대화와 조화가 필연적임은 당연하다. 선교 역사가 보여주듯, 그리스도교의 승리주의, 유럽중심주의는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실제로 유럽중심주의는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에서 많은 것을 파괴시켰다. 용서와 관대함이 요구된다.



우리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아직도 많은 사제나 수도자들 평신도들이 ‘세례 받지 않으면 지옥 간다’는 단선적이고도 편협한 사고에 물들어 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양자택일’이라는 사상에 만연되어 있다. 이런 시각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태도로 현대에 적응할 수 없다. 어느 누구라도 최종적 의미에서 적으로 대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이웃사랑의 참의미라면, 교회의 변두리에 있는 사람들을 우리의 형제로 바라보는 것 – 당연히 요청되는 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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