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3 章 교회의 현재와 미래
3.1 교회의 위기
3.1.1 공의회 이후의 교회
R.Guardini의 말대로 교회가 영혼들 사이에서 깨어나고 있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교회는 새로운 경향에 직면하고 있다.
다원주의와 개인주의가 오늘날 세상의 전형적인 시대정신을 구축하고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통해 제시되는 가치 체계와 세상이 내어놓는 가치 체계 사이에서 긴장과 갈등을 경험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교회와 세상과의 관계 안에 가로놓은 이 간격을 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교회는 새로운 시대적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현대 세계로의 적응(Aggiornamento)’이라는 Moto 아래 대화와 자성이라는 구호로 교회 스스로에 먼저 세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첫째, 도대체 오늘의 인간을 새롭게 교회와 하느님과의 관계에로 이끈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둘째, 도대체 일치를 잃지 않으면서 중앙집권체재를 없앤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셋째, 도대체 전례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을 상호간의 새로운 이해에로 이끈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이러한 질문을 토대로 개혁과 쇄신이 현대 교회의 절박한 과제로 부각되었다. 사실 라틴어 표어대로 교회는 늘 개혁을 요한다(Ecclesia semper refomanda). 비록 “교회가 성신의 힘으로 주의 충실한 정배로 머물렀고 또한 끊임없이 세상 안에서 구원의 표지 구실을 하였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성직자건 평신도이건 그 멤버들 가운데는 천주 성신께 불충실한 사람도 없지 않았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오늘도 교회에서 선포하는 메시지와 복음을 위탁받은 사람들의 인간적 나약성 사이에서 상당한 거리가 상존하고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런 결함에 대한 역사의 판단이 어떻든 간에, 우리는 이런 잘못을 자인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함으로써 복음선포에 지장이 되지 않도록 힘써야 하겠다.”1)
근본적인 공의회는 교회의 인간과 세상에 대한 개방을 천명, 현대의 인간과 세상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그 고찰의 전제로 삼고 있다. 도대체 오늘날의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도대체 오늘날의 세상은 무엇인가.2)
첫째, 공의회는 먼저 현대인간이 처한 상황을 직시하고 새로운 인간상의 정립을 그 고찰의 전제로 삼고 있는데, 우선적으로 공동 존재의 필연성과 인간 상호간에 대한 책임이라는 도덕을 먼저 추구하고 있다. 현대의 과학기술은 더이상 교회의 뒷바라지를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앞서가 버렸고 이러한 과학기술을 가능케 한 현대 인간은 더욱더 많은 자유를 요구하는 동시에 자기 욕망을 추구하는데 제한을 받지 않게 되었다. 인간은 이제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고 이러한 자신감은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을 정도의 자만심에 찰 정도가 되었다. 가히 인간은 이제 그 누구로 부터도 간섭이나 제한을 받고 싶어하지 않을 만큼 커버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인간은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여러 가지로 심각한 인간의 근본 문제로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인간은 자기가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잡을 수 있게 되었지만 아무리 채워도 다 채워지지 않는 텅빈가슴 또한 속일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늘 인간의 저 깊은 곳에 따라다니는 인간의 근본 문제,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고통은 왜 있는가, 왜 병에 시달려야 하는 가, 이 지상 생활이 끝나면 무엇이 인간을 기다리고 있는가 등등의 문제다. 이렇게 현대의 인간은 과학과 자유로부터 얻는 무한한 희망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꼭같은 비중으로 인간의 근본 문제로 부터 당하는 불안,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안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희망과 불안, 이것이 현대인간이 처한 딜리마이다.
둘째로, 공의회는 세상을 그 고찰의 전제로 삼고 있다.
과거의 교회는 스스로를 거룩한 유일 존재로 생각하고 온갖 악이 들끓는 세속으로부터 교회자신을 방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옛부터 3구라하여 세속․마귀․육신을 이야기했다. 이렇게 사상은 교회에 대하여 극히 부정적인 대개념이었다.
‘현대세계로의 적응’이라는 공의회 구호가 표현하고 있듯, 교회는 이제 세상을 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세상과 협력하고자 한다. 세상이 자꾸만 교회를 외면하고 떠나가는 현대에서 교회의 세상을 향한 개방과 호소는 당연한 시대적 요청이라 하겠다. 전세계가 역전되었다. 예전에는 교회가 세상을 향해 이래라 저래라 하면 그만이었는데, 이제는 교회가 변덕스럽고 고분고분하지 않게 되어버린 세상에 대해 호소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렇게 교회의 세상에로의 개방이란 말의 토대는 하느님께서 고집스럽고 불충한 인간에게 스스로를 개방하시고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는 사실에 있다. 이렇게 해서 이제 세상은 교회가 타도해야할 것이 아니라 대화의 파트너가 되었다. 사실 교회의 이러한 변신은 교회의 생존을 위해서는 절박한 문제였다. 가만 있다가는 아무도 교회를 주목하지 않게된 세상에서 교회가 오히려 서둘러야 했다.
이 두요소, ‘인간과 세상’에 대한 고찰을 전제로하고 공의회의 사목헌장은 대담하게도 이렇게 선언하고 있다.
“현대 인간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는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다.”(GS1) 나아가 교회는 현대세계에 있어서 교회의 존재와 활동을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모든 사람에게 설명하고자 한다. 이러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교회는 시대의 특징을 탐구하고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 인류와 더불어 대화하고 복음의 빛으로 해명해줄 의무를 지니고 있다.“(GS3)
이제 공의회와 더불어 사람들은 교회에 대한 이해를 바르게 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역사안에서 전개된 교회이해의 여러 불균형의 곡예가 공의회를 통하여 비로서 균형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즉시 낙관주의가 도래했다. 후에 교황 Paul 6세가 된 Montini 추기경은 “다른 공의회들과는 달리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화롭고 신앙의 열정으로 가득찬 교회의 삶에로 젖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교황과 공의희를 주도했던 추기경․주교․신학자들은 이제 새로운 희망에 젖어 있었다. 교회 개혁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함께 새로운 가툴릭의 일치과 진일보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공의회 이후 전개된 일련의 시기는 가톨릭 교회에 극히 부정적으로 진행되었다. 일치 대신에 분열일 찾아오게 되었고 새로운감격이 기대되었는데 무력감에 빠져버리게 되었다. 일보전진이 기대되었는데 그러난 것은 붕괴의 과정이었다. 개방이라는 구호아래 저마다 자기 준거점에 따라 각자가 자기목소리를 내게 되면서 진보와 보수․좌파와 우파․개방과 전통이라는 관점으로 서로 대립하게 되었고 2000년동안 유지되어온 가톨릭 교회의 일치자체가 뿌리채 흔들리게 되었다. 과거에는 교황청의 결정이 즉시 일사불란하게 각 지역교회로 전파되어 적어도 외형적인 일치는 견고하게 유지되었는데, 이제는 지역교회들도 저마다 자기목소리를 내면서 외형적인 일치를 유지하는 것도 간단치 않게 되었다(해방신학, 대화신학, 민중신학…). “교회가 영혼들 사이에서 깨어나고 있다”는 Gardini의 희망찬 구호는 정반대가 되었다. “오히려 교회가 영혼들 사이에서 사라지고 있고 공동체 안에서 파괴되고 있다.”
이러한 공의회 이후의 노선은 뚜렷이 세가지 경향을 띠고 있다.
첫째로, 진보주의(개방주의): 공의회는 완전히 한물간, 그래서 더이상 현대에는 적합치 않는 과거 지사이다. 우리는 또 다른 공의회를 원한다(H.Küng).
둘째로, 전통주의(진보주의): 공의회는 현대 교회 붕괴의 원인이 되었고 제1차 바티칸 공의회와 Trient공의회를 파괴시켰다. 무분별한 개방과 변화에로의 적응으로 교회의 전통이 파괴되었다(프페브르 대주교와 추종자).
세째로, 중도: 성서와 교부에 근거하여 전통을 토대로 현대 세계의 요구를 수용하고 적응하려는 노선(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가능케 했던 주류).
현대는 인간의 정신적 가치가 현저한 퇴조하고 물질세계가 인간정신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다. 역사의 어느 시기에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인류의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있고, 인류는 과학기술을 통해 영원한 행복을 보장받고 있는 것처럼 여기고 있다. 물질세곙를 정복해온 인간은 이제 더이산 진리니, 사랑이니, 희생 같은 정신적 가치에는 눈을 돌릴만한 여유가 없게 되었다. 가히 현대의 인간은 힘과 경쟁의 논리라는 세상의 논리안에서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다.
한편 60년대 말부터 태동하여 이 시대의 정신사조를 주도하고 있는 소위 Post-Modernism은 강력하게 인간 삶의 형태를 바꾸어 놓고 있다. 우리는 우리시대의 정신사조 Post-Modernism에 대해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아주 간단하게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탈전통주의 : 기존의 교리, 윤리, 도덕 거부 자기의 준거점이 판단의 기준.
– 기존의 가족․사회체계 붕괴 : 예전에 남․녀 결혼 가정을 이루고 자녀교육을 하는 것이 기존 가족․사회체계. 이것이 붕괴. 이혼급증, 독신급증.
– 사회의 무제한적인 구조적 기능적 분리.
– 극단의 개인화.
– 극단의 이기주의․자유주의.
– 다원주의.
한마디로 Post-Modernism은 ‘개인주의와 제 쪼대로’ 특징(문학, 예술(음악이나 미술)등 전반에 소위 신세대 삶의형태 규정, 머리모양, 배꼽티, 바지 쭉째서 입고 다니는거…)
이러한 가치체계의 혼란은 신앙 자체를 교회를 뿌리채 흔들고 있다. 단순히 교회개념에 대한 이해만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앙자체가 문제되게 되었다. 교회내애서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통해 제시되는 가치체계와 세상의 가치체계 사이에서 긴장과 갈등을 겪고 있다. 교회는 오늘날 완전히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 이 위기는 점차 그리고 확실히 가톨릭 신앙의 정체성을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공의회 이후의 혼란을 독일주교회의 의장이었떤 Julius Dōpfnes 추기경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 “공의회 이후의 교횐는 하나의 거대한 건축공사장과 같다. 교회는 건축공사장, 그러나 설계도를 잃어버린 공사장, 그래서 각자가 자기 생각대로 계속 작업해 나가는 공사장과 같다.”
이 상황은 가톨릭 내부에 잠재해 있던 다우너적이고 원심저깅ㄴ 여러 긍정적인 힘이 개방을 통해 전면에 부각되는 과도기라 할 수 있지만, 갑작스런 무분별한 개방, 여과되지 않은 개방, 절제되지 않은 개방, 저마다 자기 준거점에 따른 개방에 더 큰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적어도 한가지는 분명하게 되었다. 공의회가 의도했던 참된 정신은 아직 구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시대를 규정짓는 무대요 시대상황이다.
이제 우리는 교회의 위기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것은 지역간에도 다를 수 있고 나라간에도 편차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교회가 직면한 위기를 일률적으로 추출해 내기란 간단치 않다. 우리는 여기서 어느정도 전세계 교회가 골고루 직면하고 있는 위기를 몇가지 대표적으로 짚어보고자 한다. 물론 교회의 위기는 이 밖에도 다른 관점에서 얼마든지 더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을 미리 가정하기로 한다.

第 3 章 교회의 현재와 미래
3.1 교회의 위기
3.1.1 공의회 이후의 교회
R.Guardini의 말대로 교회가 영혼들 사이에서 깨어나고 있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교회는 새로운 경향에 직면하고 있다.
다원주의와 개인주의가 오늘날 세상의 전형적인 시대정신을 구축하고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통해 제시되는 가치 체계와 세상이 내어놓는 가치 체계 사이에서 긴장과 갈등을 경험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교회와 세상과의 관계 안에 가로놓은 이 간격을 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교회는 새로운 시대적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현대 세계로의 적응(Aggiornamento)’이라는 Moto 아래 대화와 자성이라는 구호로 교회 스스로에 먼저 세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첫째, 도대체 오늘의 인간을 새롭게 교회와 하느님과의 관계에로 이끈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둘째, 도대체 일치를 잃지 않으면서 중앙집권체재를 없앤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셋째, 도대체 전례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을 상호간의 새로운 이해에로 이끈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이러한 질문을 토대로 개혁과 쇄신이 현대 교회의 절박한 과제로 부각되었다. 사실 라틴어 표어대로 교회는 늘 개혁을 요한다(Ecclesia semper refomanda). 비록 “교회가 성신의 힘으로 주의 충실한 정배로 머물렀고 또한 끊임없이 세상 안에서 구원의 표지 구실을 하였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성직자건 평신도이건 그 멤버들 가운데는 천주 성신께 불충실한 사람도 없지 않았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오늘도 교회에서 선포하는 메시지와 복음을 위탁받은 사람들의 인간적 나약성 사이에서 상당한 거리가 상존하고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런 결함에 대한 역사의 판단이 어떻든 간에, 우리는 이런 잘못을 자인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함으로써 복음선포에 지장이 되지 않도록 힘써야 하겠다.”1)
근본적인 공의회는 교회의 인간과 세상에 대한 개방을 천명, 현대의 인간과 세상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그 고찰의 전제로 삼고 있다. 도대체 오늘날의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도대체 오늘날의 세상은 무엇인가.2)
첫째, 공의회는 먼저 현대인간이 처한 상황을 직시하고 새로운 인간상의 정립을 그 고찰의 전제로 삼고 있는데, 우선적으로 공동 존재의 필연성과 인간 상호간에 대한 책임이라는 도덕을 먼저 추구하고 있다. 현대의 과학기술은 더이상 교회의 뒷바라지를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앞서가 버렸고 이러한 과학기술을 가능케 한 현대 인간은 더욱더 많은 자유를 요구하는 동시에 자기 욕망을 추구하는데 제한을 받지 않게 되었다. 인간은 이제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고 이러한 자신감은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을 정도의 자만심에 찰 정도가 되었다. 가히 인간은 이제 그 누구로 부터도 간섭이나 제한을 받고 싶어하지 않을 만큼 커버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인간은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여러 가지로 심각한 인간의 근본 문제로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인간은 자기가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잡을 수 있게 되었지만 아무리 채워도 다 채워지지 않는 텅빈가슴 또한 속일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늘 인간의 저 깊은 곳에 따라다니는 인간의 근본 문제,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고통은 왜 있는가, 왜 병에 시달려야 하는 가, 이 지상 생활이 끝나면 무엇이 인간을 기다리고 있는가 등등의 문제다. 이렇게 현대의 인간은 과학과 자유로부터 얻는 무한한 희망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꼭같은 비중으로 인간의 근본 문제로 부터 당하는 불안,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안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희망과 불안, 이것이 현대인간이 처한 딜리마이다.
둘째로, 공의회는 세상을 그 고찰의 전제로 삼고 있다.
과거의 교회는 스스로를 거룩한 유일 존재로 생각하고 온갖 악이 들끓는 세속으로부터 교회자신을 방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옛부터 3구라하여 세속․마귀․육신을 이야기했다. 이렇게 사상은 교회에 대하여 극히 부정적인 대개념이었다.
‘현대세계로의 적응’이라는 공의회 구호가 표현하고 있듯, 교회는 이제 세상을 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세상과 협력하고자 한다. 세상이 자꾸만 교회를 외면하고 떠나가는 현대에서 교회의 세상을 향한 개방과 호소는 당연한 시대적 요청이라 하겠다. 전세계가 역전되었다. 예전에는 교회가 세상을 향해 이래라 저래라 하면 그만이었는데, 이제는 교회가 변덕스럽고 고분고분하지 않게 되어버린 세상에 대해 호소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렇게 교회의 세상에로의 개방이란 말의 토대는 하느님께서 고집스럽고 불충한 인간에게 스스로를 개방하시고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는 사실에 있다. 이렇게 해서 이제 세상은 교회가 타도해야할 것이 아니라 대화의 파트너가 되었다. 사실 교회의 이러한 변신은 교회의 생존을 위해서는 절박한 문제였다. 가만 있다가는 아무도 교회를 주목하지 않게된 세상에서 교회가 오히려 서둘러야 했다.
이 두요소, ‘인간과 세상’에 대한 고찰을 전제로하고 공의회의 사목헌장은 대담하게도 이렇게 선언하고 있다.
“현대 인간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는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다.”(GS1) 나아가 교회는 현대세계에 있어서 교회의 존재와 활동을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모든 사람에게 설명하고자 한다. 이러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교회는 시대의 특징을 탐구하고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 인류와 더불어 대화하고 복음의 빛으로 해명해줄 의무를 지니고 있다.“(GS3)
이제 공의회와 더불어 사람들은 교회에 대한 이해를 바르게 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역사안에서 전개된 교회이해의 여러 불균형의 곡예가 공의회를 통하여 비로서 균형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즉시 낙관주의가 도래했다. 후에 교황 Paul 6세가 된 Montini 추기경은 “다른 공의회들과는 달리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화롭고 신앙의 열정으로 가득찬 교회의 삶에로 젖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교황과 공의희를 주도했던 추기경․주교․신학자들은 이제 새로운 희망에 젖어 있었다. 교회 개혁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함께 새로운 가툴릭의 일치과 진일보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공의회 이후 전개된 일련의 시기는 가톨릭 교회에 극히 부정적으로 진행되었다. 일치 대신에 분열일 찾아오게 되었고 새로운감격이 기대되었는데 무력감에 빠져버리게 되었다. 일보전진이 기대되었는데 그러난 것은 붕괴의 과정이었다. 개방이라는 구호아래 저마다 자기 준거점에 따라 각자가 자기목소리를 내게 되면서 진보와 보수․좌파와 우파․개방과 전통이라는 관점으로 서로 대립하게 되었고 2000년동안 유지되어온 가톨릭 교회의 일치자체가 뿌리채 흔들리게 되었다. 과거에는 교황청의 결정이 즉시 일사불란하게 각 지역교회로 전파되어 적어도 외형적인 일치는 견고하게 유지되었는데, 이제는 지역교회들도 저마다 자기목소리를 내면서 외형적인 일치를 유지하는 것도 간단치 않게 되었다(해방신학, 대화신학, 민중신학…). “교회가 영혼들 사이에서 깨어나고 있다”는 Gardini의 희망찬 구호는 정반대가 되었다. “오히려 교회가 영혼들 사이에서 사라지고 있고 공동체 안에서 파괴되고 있다.”
이러한 공의회 이후의 노선은 뚜렷이 세가지 경향을 띠고 있다.
첫째로, 진보주의(개방주의): 공의회는 완전히 한물간, 그래서 더이상 현대에는 적합치 않는 과거 지사이다. 우리는 또 다른 공의회를 원한다(H.Küng).
둘째로, 전통주의(진보주의): 공의회는 현대 교회 붕괴의 원인이 되었고 제1차 바티칸 공의회와 Trient공의회를 파괴시켰다. 무분별한 개방과 변화에로의 적응으로 교회의 전통이 파괴되었다(프페브르 대주교와 추종자).
세째로, 중도: 성서와 교부에 근거하여 전통을 토대로 현대 세계의 요구를 수용하고 적응하려는 노선(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가능케 했던 주류).
현대는 인간의 정신적 가치가 현저한 퇴조하고 물질세계가 인간정신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다. 역사의 어느 시기에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인류의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있고, 인류는 과학기술을 통해 영원한 행복을 보장받고 있는 것처럼 여기고 있다. 물질세곙를 정복해온 인간은 이제 더이산 진리니, 사랑이니, 희생 같은 정신적 가치에는 눈을 돌릴만한 여유가 없게 되었다. 가히 현대의 인간은 힘과 경쟁의 논리라는 세상의 논리안에서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다.
한편 60년대 말부터 태동하여 이 시대의 정신사조를 주도하고 있는 소위 Post-Modernism은 강력하게 인간 삶의 형태를 바꾸어 놓고 있다. 우리는 우리시대의 정신사조 Post-Modernism에 대해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아주 간단하게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탈전통주의 : 기존의 교리, 윤리, 도덕 거부 자기의 준거점이 판단의 기준.
– 기존의 가족․사회체계 붕괴 : 예전에 남․녀 결혼 가정을 이루고 자녀교육을 하는 것이 기존 가족․사회체계. 이것이 붕괴. 이혼급증, 독신급증.
– 사회의 무제한적인 구조적 기능적 분리.
– 극단의 개인화.
– 극단의 이기주의․자유주의.
– 다원주의.
한마디로 Post-Modernism은 ‘개인주의와 제 쪼대로’ 특징(문학, 예술(음악이나 미술)등 전반에 소위 신세대 삶의형태 규정, 머리모양, 배꼽티, 바지 쭉째서 입고 다니는거…)
이러한 가치체계의 혼란은 신앙 자체를 교회를 뿌리채 흔들고 있다. 단순히 교회개념에 대한 이해만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앙자체가 문제되게 되었다. 교회내애서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통해 제시되는 가치체계와 세상의 가치체계 사이에서 긴장과 갈등을 겪고 있다. 교회는 오늘날 완전히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 이 위기는 점차 그리고 확실히 가톨릭 신앙의 정체성을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공의회 이후의 혼란을 독일주교회의 의장이었떤 Julius Dōpfnes 추기경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 “공의회 이후의 교횐는 하나의 거대한 건축공사장과 같다. 교회는 건축공사장, 그러나 설계도를 잃어버린 공사장, 그래서 각자가 자기 생각대로 계속 작업해 나가는 공사장과 같다.”
이 상황은 가톨릭 내부에 잠재해 있던 다우너적이고 원심저깅ㄴ 여러 긍정적인 힘이 개방을 통해 전면에 부각되는 과도기라 할 수 있지만, 갑작스런 무분별한 개방, 여과되지 않은 개방, 절제되지 않은 개방, 저마다 자기 준거점에 따른 개방에 더 큰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적어도 한가지는 분명하게 되었다. 공의회가 의도했던 참된 정신은 아직 구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시대를 규정짓는 무대요 시대상황이다.
이제 우리는 교회의 위기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것은 지역간에도 다를 수 있고 나라간에도 편차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교회가 직면한 위기를 일률적으로 추출해 내기란 간단치 않다. 우리는 여기서 어느정도 전세계 교회가 골고루 직면하고 있는 위기를 몇가지 대표적으로 짚어보고자 한다. 물론 교회의 위기는 이 밖에도 다른 관점에서 얼마든지 더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을 미리 가정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