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원천-신비로서의교회에대한재발견-신 비로운그리스도의몸으로서의교회(양차 세계대전)

 

2.2.1.3. 양차 세계대전 사이 시기의 교회론 동향


1) 사상의 쇄신


신비에 대한 교회 이해는 학자들로 하여금 교부학적, 그리스도론적 차원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촉구 Möhler에 의해 이미 각성되었던 교회의 영혼으로서의 성령을 부각시키는 것은 필연적으로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고찰하게 한다. 그리스도로부터의 파견이 그 전제인 것이다. 그리스도로부터 파견된 성령이 교회의 심장으로서 신앙인을 초월적 삶의 실재에로 이끌고 교회의 구성원이 되게 하며 교회를 성장시키도록 이끄시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교회 내에서의 그리스도의 역할이 전면에 부각되었다.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자신의 인간성을 중재로 신앙인들을 신성으로 이끄신다. 이러한 신성과 인간성을 포함하는 그리스도는 교회를 결코 자연적이고 사회적인 세력의 총화만으로 제한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회에서의  그리스도의 역할에 대한 재각성은 양차대전 사이에 신비로운 몸 사상에 대한 놀라운 발전을 초래했다. 이리하여 이시기 교회론의 쇄신은 교회를 신비로운 그리스도의 몸으로 이해하게 했다. 그러나 교회의 진정한 본질은 무엇인가? 어떻게 이전 교회론의 다만 사회학적 이해를 극복하고 교회를 정의 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당시 교회론 쇄신의 학자들은 답변하기가 어려웠다. 신비로서의 교회라는 내적인 측면과 가시적인 은총의 도구로서의 총화인 교회라는 외적인 측면을 모두 포함하는 동시에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삶의 공동체인 교회를 종의 하는 것이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요소로 간단히 교회를 정의한다 : 구원의 장소로서의 교회와 신비로운 몸의로서의 교회가 그것이었다.


2) 교회론적 반성


– 교회론적 쇄신의 한 방향은 특히 독일에서 전례의 쇄신과 결합되어 발전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교회를 예배 공동체로 이해한다. 성사성이 교회의 본질적인 특성으로 교회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데, 이러한 성사성은 한편으로 그리스도와의 관계 안에서(Casel,Solmgen), 또 한편으로 세상과의 관계 안에서(Meister, Bauhoger) 가시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리스도를 추종하면서 교회는 인간에 대한 최상의 역할을 실현하게 되는데 희생, 모든 것들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역할이 그것이다. 성체 성사가 교회의 이러한 역할의 중심이다. 모든 신자는 세례로서 예배에 참여하게 되고 공통 사제직을 형성하게 된다.


– 교회론적 쇄신의 또다른 방향은 특히 벨기에와 프랑스에서 개진되었는데 교회 내에서의 평신도 역할의 각성 곧 평신도 사도직 부흥이라는 특성을 띠게 되었다. 평신도의 사제직에 대한 연구, 평신도의 교회 내에서의 파견과 능동적 역할의 기초에 대한 연구, 전례에 있어서 평신도의 능동적인 참여에 대한 연구 등이 진전되면서 평신도의 세상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또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증인으로서의 주요한 역할이 각성되게 되었다.


– 선교 영역에서도 교회 인식의 각성이 보편성이라는 범주 안에서 일어났다. 당시 주목할 만한 일은 1926년 처음으로 6명의 중국 주교를 서품한 일이었다. 당시는 유럽 식민주의와 제국주의가 최고조로 있던 때로 그러한 사상은 교회 선교에 장애가 된다는 것을 이미 간파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선교가 교회론적 반성의 주요한 과제로 부각되면서 선교학이 새로운 신학의 학문으로 태동하게 된다. 선교에 대한 새로운 신학적 사상의 형태는 ‘교회의 접목(또는 부식)’이 선교의 목표라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이교 문화의 박멸, 교회의 건설) 교회를 접목시킨다는 말은 신비로운 그리스도의 몸을 서로 다른 문화적 토양에 접목시킨다는 것을 뜻한다. 토착화시킨다는 것이다. 중국에 있어서는 중국적으로, 한국에서는 한국적으로 토착화, 사실 그리스도교는 유럽에 정착되면서 유럽이라는 토양에서 토착화되었다. 이러한 교회의 접목이라는 사상은 “적응” 이라는 테마와 결합된다. 여기에는 전례, 자국 언어 , 신학, 교회 구조 등이 포함된다.


– 이 시기의 교회론적 반성은 마침내, 비그리스도인들의 구원에 대한 문제까지 발전, ‘성령은 원하는 데로 작용하신다’는 성령 활동에 대한 인식은 이렇게 완전히 새로운 문제. 금기시 되었던 문제까지 제기 하게 되었다.


– 신비로서의 교회에 대한 재각성, 단순한 제도 교회에 대한 비판적 반성, 보편성에 대한 보다 깊은 인식은 또한 종교 일치 운동을 눈뜨게 했다. 가톨릭 교회내에서 이러한 종교 일치 운동은 대단히 느리게 개진되었는데 이 문제 자체가 가진 여러 가지 미묘한 문제들이 얽혀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가톨릭 교회는 장구한 세월 동안 유지해 온 절대성, 구원의 유일성을 포기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먼저 동방 교회 전례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고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가톨릭과 개신교 신자들간의 교류가 시작되었다. 종교 일치 운동은 비가톨릭 그리스도교 내에서도 점차 확산. 사람들은 이전처럼 가능한 신앙 신조에 대한 고백 같은 문제는 거론하지 않고 먼저 함께 만나고 서로를 이해하면서 서로 다른 영역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 일하여 과거 종교 분열은 어느 일방이 아니라 상호간 모두의 책임임을 점차 인식하게 되었고 또 여기에는 서로 다른 문화적 차이, 서로 다른 종교적 심성도 한 몫을 했다는 것을 이식하게 되었다.


– 교회론적 반성의 마지막 분야는 교계 제도 문제에 대한 성찰이었다.


두 가지 질문이 제기 되었다.


첫째, 교회 권력에 대한 문제, 무엇보다 교황권에 대한 문제


둘째, 교회와 국가간의 관계에 대한 문제


이 두 가지는 새로운 문제가 아니었으나 학자들은 역사 안에서의 과정을 성찰하고 오늘날의 상황에서의 정당한 인식과 처방을 토론했다.  이것은 최근  교회론 학자들 사이에서도 관점에 따라 의견이 분분 하지만 이러한 논의 자체가 가능케 되었다는 것은 교회의 본질을 추구하는데 결국에는 긍정적인 요인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탐구 속에서 교회는 살아 움직이면서 스스로의 본질을 재발견, 본연의 신원에 충실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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