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원천-역사적 실재로서의 교회에 대한 재발견 –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교회(당시 교회)

 

2.2.2.3 당시 교회론의 주요 동향


교회 내면의 신비에 대한 탐구는 교회를 하나의 인격 공동체로 파악하고 그리스도와 성령으로부터 생명과 활력을 얻는다는 인식을 깨우쳤다. 또한 한편으로 교회는 위계적으로 조직된 사회임을 인식하게 하였는데 이러한 교회의 가시적인 실재에 대한 인식은 과거처럼 교회가 단순히 하나의 제도 또는 하나의 정치사회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교회에 대한 내적 외적인  정확한 이해는 교회가 인격적인 공동체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교회가 보이지 않는 신비의 측면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가시적인 실재라는 측면 또한 필연적인 사실이다. 역사에서 종종 이 신비의 측면이 무시되었고(R.bellarmin)가시적인 실재라는 측면 또한 정치 사회적 요소로 혼합된 하나의 제도와 조직이라는 의미로 왜곡되어 고착화되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러한 고착화된 제도적 측면은 신비체 회칙에서까지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데 아직까지 교회의 가시적 실재에 대한 인식이 부정확한 탓이었다. 교회의 가시적인 실재로서의 측면에 대한 보다 정확한 반성은 신비체 회칙 이후 교회를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표상으로 이해하기 시작하는데서 본격적으로 개진되었다. 4가지가 주요한 반성의 주제였다.


1)현세의 교회는 단순히 하느님 나라와 동일시되지 않는다. 하느님 백성은 종말론적 완성을 지향하는 도정에 있다.


2)하느님 백성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빵을 함께 나누기 위해 모여 있는 곳에 구체적으로 현존하며 이러한 모임으로 교회를 형성하고 스스로를 건설해 나가는 백성이다. 교회는 제도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교회가 ‘모임’으로써 가시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3)세상 안에서 하느님 백성의 증거는 단순한 제도를 넘어서서 실재적인 활동과 책무를 실현하는 데 있다. 하느님 백성은 자신의 본질 안에서 교회와 세상과의 관계를 새롭게 조망하고 자연의 초자연에 대한 관계를 실재적인 범주 안에서 새롭게 형성시켜 나가야 한다.


4)교회가 하느님의 백성이라면 이것은 하나의 백성 즉 스스로를 끊임없이 쇄신해 나가야 하는 백성인 것이다. 이러한 쇄신의 요청은 개인이나 제도의 차원 모두에게 필연적이다.


이러한 진지한 반성을 통하여 교회에 대한 이해는 한 발짝 전진하게 된다. 즉 교회의 성사성과 보편성에 대한 인식이 그것이었다.


성사성은 교회 내의 가시적인 요소와 비가시적인  요소의 종합이다. 교회는 영적인 실재인 동시에 가시적인 표지라는 의미이며 또한 교회는 육적인 실재인 동시에 예수가 실현한 구원을 지상에서 효과적으로 상징적으로 계속 드러내는 하느님 백성이라는 의미이다.


보편성에 대한 인식은 다원성과 상대성에 대한 이해를 전재로 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교 안에 서로 다른 형태의 종교적 감정이 존재하고 있으며 지역 교회의 문화적 특성에 따라 토착화를 인정하는 선교에로의 적응이 불가피하다는 깨우침에서 교회의 보편성이 인식되었다. 또한 이는 서구와 비서구 지역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에 대한 가시적 실재를 솔직하게 수용하는 성찰에서 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교회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여러 분야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계속되었다.


-복음을 선포하는 문제 : 과거에는 쉬웠다. 그냥 그리스도교화 되어 있는 사회에서 구원에 관한 복음을 알리고 가르치기만 하면 되었다. 그리스도교 사회에서 당연시 되었던 것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기만 하면 되었다. 이제는 완전히 달라졌다. 세계의 인간화로 사람들은 이제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판단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하느님이 거부되고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세상에서 복음을 알리고 선포하는 일은 간단치 않게 되었다. 또한 선교 지역에서의 경험, 이미 다른 고유한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회에서 복음 선포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복음을 선포해야 하고 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논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 제도 교회의 문제 : 가톨릭 교회에서는 특히 이 제도의 문제가 심각하게 거론. 과거에는 간단했다. 엄정한 위계질서 안에서 교회 정책 담당자들의 결정은 즉시 일사불란하게 아래로 전달되어 하나의 체제 안에 일치를 유지 할 수 있었다. 또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자유가 고개를 들면서 사람들은 선택을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스스로의 판단과 결정에 따라 살 수 있는 자유에 대한 인식은 제도라는 틀에 대한 거부와 외면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교회의 근본 요소로서의 제도가 역사 안에서 여러 다른 요소가 개입되면서 다양성이 무시되고 통일과 중앙집권화로 경직화되었던 사실이 반성되고 올바른 제도, 나아가 가톨릭의 보편성 문제가 모색되었다.


– 평신도 역할과 위치 : Y. Congar의 저작 ‘평신도’ (‘Des laie.enrwurf.einer Theologie des laienrums’)는 주요한 연구가 되었다. 19c 말까지만 해도 교회 내에서 평신도에게 사도직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평신도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교회 내의 적극적인 역할이 논의되고 특별히 그리스도의 사제직의 참여에 대한 연구가 계속. 이는 세례를 통해 평신도 지위의 성사적 근거가 교회 내에 가시적이 된다는 의미. K. Rahner 는 복음의 증거라는 평신도 사도직에 크게 기여. 평신도들의 복음 선포 역할. 세계 내에서의 봉사에 대한 활발한 연구의 분위기는 결국 제2차 Vatikan 공의회로 이어져 결실을 맺게 된다. 수동적인 평신도 위상이 능동적으로 전환되게 된다.


– 사제들의 역할 : 오늘날의 세상에 사제들이 어떻게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는가의 문제도 진지하게 반성. 당연하게 교회와 세상 사이 대화의 부재가 지적. 이와 함께 사제들의 인간화 경향 주목. 즉 과거에 사제들과 교회는 우선적으로 하느님을 찾았는데 오늘날은 우선적으로 인간들과 인간들의 문제점에로 시선을 돌리게 되는 데서 파생되는 문제가 그것이다.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서도 안되고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서도 안되겠다는 데 오늘날 사제들이 처한 딜레마가 있다. 또한 사제 직무에 대한 숙고가 진행 – ‘하느님 백성’ 이라는 이해의 범주 안에서 고찰, 사제직이라는 직무는 백성들을 위한 기능과 역할로 이해


-종교 일치 문제 : 가톨릭교회와 비가톨릭 그리스도교인들 사이의 관계 문제도 주요한 논제로 대두. 종교 일치 위원회가 설립되었고 종교 일치 운동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된다. 이와 함께 갈라진 형제들의 교회에 대한 귀속성 즉 당연히 교회의 구성원이 되는가의 문제가 논의되었고 가톨릭 교회의 강력한 교황권 교황의 수위권은 이러한 종교 일치의 커다란 장애가 된다는 사실이 조심스럽게 논의. ( – 사실 로마 가톨릭, 동방 가톨릭, 동방교회:그리스정교, 곱트교 가톨릭, 성공회, 개신교 그룹 ··· ) — 역사 안에서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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