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개념의 근본 요소-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교회(이스라엘과의 연속성)

 

3.1.2 이스라엘과의 연속성


하느님 백성 사상은 무엇보다 이스라엘과 교회 사이의 연속성을 드러내 주고 있다. 교회는 바로  이 연속성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인류 구원의 실현은 하나의 구원 공동체를 형성함으로써 이루어졌다. 그 첫단계가 이스라엘 백성의 선택과 이끄심이었다. 이스라엘을 통해 하느님 백성은 하나의 역사적인 백성공동체안에서 인간적 사회적  그리고 민족적인 구별성을 가지게 된다. 하느님 백성과의 계약으로 인한 시나이산모임이 구약 성서적 백성 공동체의 원표상이 되었는데 이스라엘백성은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를 듣기 위해 모인 공동체, 하느님과의 계약으로 모인 공동체로 하느님의 약속과 선택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 선택과 계약은 최종적인 것이 아니었다. 새로운 계약에 대한 예언적 약소 (예컨대, 예레 31, 31-33)은 흩어진 이스라엘 안에 선택된 새로운 백성의 최종적 형성에 대한 종말론적 희망을 밝혀 주고 있다. 이러한 하느님의 행위는 결국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 이로써 인간과 함께 사는 계약과 구세사의 일치가 실재로 실현되었고 옛계약으로 부터 새 계약으로의 전환구세사는 새로운 차원을 가지게 된 것이다. 옛 백성 이스라엘은 성조 아브라함과 함께 혈통이라는 유대로 하나가 되었지만 새 백성은 새로운 차원 즉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신앙과 사랑을 통해서 하나가 된다. 이 신앙과 사랑은 세례와 성찬이라는 성사적 결과를 통해 역사적인 구체성을 가진다. 이스라엘과 맺은 옛 계약은 ‘조건부’계약이라는 특징을 가지게 되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키는 조건으로 이루어진 계약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예컨대 신명 11, 22- 31;“너희는 내가 내리는 이 모든 명을 성심껏 지켜 그대로 실천하여라 ….. 그리하면 야훼께서 이 모든 민족들을 너희앞에서 쫓아 내실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계약은 “절대적”계약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하느님 스스로가 인간이 되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인간을 선택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으로서 교회는 이스라엘처럼조건부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하느님께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러한 전환에서 옛백성을 계승하는 이 새로운 백성은 혈통을 통해서가 아니라 세례와 식탁공동체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가 됨을 통해서 하느님 백성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옛계약의 그리스도적 재해석이 필연적이다. 교회는 구약성서적인 하느님백성 개념의 신약 성서적인 전환이요 변형이다. 이 사실은 그리스도안에서의 새로운 출생이 백성을 새로운 백성이 되게 한다. 이스라엘은 하느님께로 향하는 충실성에 머물러 있는 한에서 하느님 백성인 것이다. 이스라엘은 단순히 스스로 자신의 힘으로가 아니라 하느님과 의 관계를 실현하고 스스로를 넘어 가는 한에서 하느님 백성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약 성서적인 전환도 같은 의미를 가지는데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백성의 의미가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단순히 하느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다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됨으로써 하느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그리스도론적 이해가 교회이해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으로부터 형성된 하느님 백성이외의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이스라엘은 구세산안에서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로마서 9-11장은 이에대한 해답을 어느정도 밝혀 주고 있다. 이스라엘공동체로부터 그리스도공동체의 분리를 통해 지금까지의 하느님계약이 옛계약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동시에 새로운 인식이 자리잡게 되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안에서 옛 희망이 실제로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그것은 예언자들을 통해 약속된 하느님의 종말론적 계약이 실현된 것이고 이 계약은 인간과 함께 하느님의 최종적 취소할수 없는 계약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모든인간이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으로 불림을 받게 되었다. 모든 백성들로부터 하나의 유일한 백성의 선택은 하나의 백성만의 편애가 아니라 모든 다른 백성들을 위한 하나의 백성의  선택임이 드러났다. 로마서 9-11장은 하느님의 계약에 대한 충실성과 이스라엘의 운명에 대한 사도 바오로의 구세사적인 반성을 계속 전개하고 있는데 , 결국은 이스라엘도 구원의 범주안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이방인의 이스라엘이라는 귀한 올리브 나무에 접목된것이지 (로마 11,17) 그반대가 아니다.(로마 11,18)


이방인백성들은 선교를 통해 믿음을가지게 되었고 이와 함께 종말적인 구원의 이스라엘공동체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그자체로 은총을 입은 차원으로 동일시 되지 않는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선택과 배척의 봉사는 교회의 존재가 구원을 위한 도구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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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개념의 근본 요소-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교회(이스라엘과의 연속성)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3.1.2 이스라엘과의 연속성

    하느님 백성 사상은 무엇보다 이스라엘과 교회 사이의 연속성을 드러내 주고 있다. 교회는 바로  이 연속성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인류 구원의 실현은 하나의 구원 공동체를 형성함으로써 이루어졌다. 그 첫단계가 이스라엘 백성의 선택과 이끄심이었다. 이스라엘을 통해 하느님 백성은 하나의 역사적인 백성공동체안에서 인간적 사회적  그리고 민족적인 구별성을 가지게 된다. 하느님 백성과의 계약으로 인한 시나이산모임이 구약 성서적 백성 공동체의 원표상이 되었는데 이스라엘백성은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를 듣기 위해 모인 공동체, 하느님과의 계약으로 모인 공동체로 하느님의 약속과 선택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 선택과 계약은 최종적인 것이 아니었다. 새로운 계약에 대한 예언적 약소 (예컨대, 예레 31, 31-33)은 흩어진 이스라엘 안에 선택된 새로운 백성의 최종적 형성에 대한 종말론적 희망을 밝혀 주고 있다. 이러한 하느님의 행위는 결국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 이로써 인간과 함께 사는 계약과 구세사의 일치가 실재로 실현되었고 옛계약으로 부터 새 계약으로의 전환구세사는 새로운 차원을 가지게 된 것이다. 옛 백성 이스라엘은 성조 아브라함과 함께 혈통이라는 유대로 하나가 되었지만 새 백성은 새로운 차원 즉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신앙과 사랑을 통해서 하나가 된다. 이 신앙과 사랑은 세례와 성찬이라는 성사적 결과를 통해 역사적인 구체성을 가진다. 이스라엘과 맺은 옛 계약은 ‘조건부’계약이라는 특징을 가지게 되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키는 조건으로 이루어진 계약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예컨대 신명 11, 22- 31;“너희는 내가 내리는 이 모든 명을 성심껏 지켜 그대로 실천하여라 ….. 그리하면 야훼께서 이 모든 민족들을 너희앞에서 쫓아 내실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계약은 “절대적”계약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하느님 스스로가 인간이 되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인간을 선택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으로서 교회는 이스라엘처럼조건부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하느님께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러한 전환에서 옛백성을 계승하는 이 새로운 백성은 혈통을 통해서가 아니라 세례와 식탁공동체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가 됨을 통해서 하느님 백성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옛계약의 그리스도적 재해석이 필연적이다. 교회는 구약성서적인 하느님백성 개념의 신약 성서적인 전환이요 변형이다. 이 사실은 그리스도안에서의 새로운 출생이 백성을 새로운 백성이 되게 한다. 이스라엘은 하느님께로 향하는 충실성에 머물러 있는 한에서 하느님 백성인 것이다. 이스라엘은 단순히 스스로 자신의 힘으로가 아니라 하느님과 의 관계를 실현하고 스스로를 넘어 가는 한에서 하느님 백성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약 성서적인 전환도 같은 의미를 가지는데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백성의 의미가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단순히 하느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다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됨으로써 하느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그리스도론적 이해가 교회이해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으로부터 형성된 하느님 백성이외의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이스라엘은 구세산안에서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로마서 9-11장은 이에대한 해답을 어느정도 밝혀 주고 있다. 이스라엘공동체로부터 그리스도공동체의 분리를 통해 지금까지의 하느님계약이 옛계약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동시에 새로운 인식이 자리잡게 되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안에서 옛 희망이 실제로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그것은 예언자들을 통해 약속된 하느님의 종말론적 계약이 실현된 것이고 이 계약은 인간과 함께 하느님의 최종적 취소할수 없는 계약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모든인간이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으로 불림을 받게 되었다. 모든 백성들로부터 하나의 유일한 백성의 선택은 하나의 백성만의 편애가 아니라 모든 다른 백성들을 위한 하나의 백성의  선택임이 드러났다. 로마서 9-11장은 하느님의 계약에 대한 충실성과 이스라엘의 운명에 대한 사도 바오로의 구세사적인 반성을 계속 전개하고 있는데 , 결국은 이스라엘도 구원의 범주안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이방인의 이스라엘이라는 귀한 올리브 나무에 접목된것이지 (로마 11,17) 그반대가 아니다.(로마 11,18)

    이방인백성들은 선교를 통해 믿음을가지게 되었고 이와 함께 종말적인 구원의 이스라엘공동체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그자체로 은총을 입은 차원으로 동일시 되지 않는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선택과 배척의 봉사는 교회의 존재가 구원을 위한 도구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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