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신약성서에서의 교회
신약성서의 교회상은 매우 다양하게 전해지고 있다. 이미 제도적인 교회가 존재하며, 교회는 주교, 사제, 부제를 가지고 조직화되어 있다. 교회 안에서의 특정한 직무나 권능이 특정한 권위와 진리를 차지하고 있다. 개개의 공동체는 조직상으로도 어떠한 모습으로 서로 의존하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특히 은총과 신앙에서 파악되는 교회의 내적인 현실을 보는 교회신학도 있다. 예를 들면, 교회는 “유랑하는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부르고, “그리스도 아래 모인 공동체”라고 부르고, “증언자들”이라 부르고,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그리스도의 몸안에 한사람이 세례에 의해서 편입되고, 그리스도의 몸은 항상 되풀이해서 성찬을 통해서 소생되고 구성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발전된 견해에 따른 다양한 교회상들이 제기되지만, 신약성서 안에는 궁극적으로 더 심오한 차원에서 교회상이 통일된 모습을 보인다. 유대 그리스도교인의 원시 교단과 유대 헬레니스트 교단, 더욱이 헬레니즘의 그리스도교등 사이에도 그리고 바울로나 루가나 사목서간에서 볼 수 있는 소위 초기 가톨릭시즘 사이에도 다리를 놓을 수 없는 균열이 있다고 주장할 수 없고, 또 주장할 필요도 없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곳에 같은 근본적 확신, 같은 신학적 근본구조가 보인다. 그것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창설되고, 그리스도에 의하여 얻어지고, 그리스도와 결합된 하나인 교회이다. 이 교회는 볼 수 있는 것임과 동시에 볼 수 없는 것이고, 지상적 존재양식을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천상적 존재양식을 가지고, 외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내적으로 영에 충만한 신비적 본질을 가지고 있다. 실존적이고 직접 종교적인 강조 방식에 관해서 말하면 어느 경우에도 동일한 교회상이 존재한다는 따위를 주장할 필요는 없다. 당시 교회는 이교적, 희랍적 환경세계 전체에 정면으로 대립되었다. 다만 신앙과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과 세례가 그리스도인 생활의 중심적인 사건이었다. 후대에는 교회가 이미 커다란 사회를 형성하게 되고, 그 사회적 전제에서 당연히 다른 관점이 중시된 것이다.
더욱이 우리는 가톨릭적 교회 이해에 따라 다음과 같은 사실도 고려해야 한다. 즉, 교회의 법적인 구성은 사도시대에서 1세기가 끝날 때까지는 아직 확립되어 있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2세기 초, 또는 그 이후였다는 사실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것은 결코 가톨릭 교회 이해에 모순된 것은 아니다. 즉, 교회의 구조가 근본적인 여러 점에서는 신법에 의해서 제정되었다고는 말해도 사도시대에 있었던 모든 발전들이 교회의 초석이 되는 모든 것들과 함께 모두 전개되어 내려온 것은 아니라는 관찰도 가톨릭적 교회 개념에 부합한다. 따라서 어쩌면 헬레니즘의 공동체가 더 “민주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렇다고 해서 1세기의 끝에 인정되는 개개 교회의 주교제도가 잘못된 발전, 또는 다만 자의에 의한 발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교회의 구조가 이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어도 좋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3.신약성서에서의 교회
신약성서의 교회상은 매우 다양하게 전해지고 있다. 이미 제도적인 교회가 존재하며, 교회는 주교, 사제, 부제를 가지고 조직화되어 있다. 교회 안에서의 특정한 직무나 권능이 특정한 권위와 진리를 차지하고 있다. 개개의 공동체는 조직상으로도 어떠한 모습으로 서로 의존하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특히 은총과 신앙에서 파악되는 교회의 내적인 현실을 보는 교회신학도 있다. 예를 들면, 교회는 “유랑하는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부르고, “그리스도 아래 모인 공동체”라고 부르고, “증언자들”이라 부르고,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그리스도의 몸안에 한사람이 세례에 의해서 편입되고, 그리스도의 몸은 항상 되풀이해서 성찬을 통해서 소생되고 구성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발전된 견해에 따른 다양한 교회상들이 제기되지만, 신약성서 안에는 궁극적으로 더 심오한 차원에서 교회상이 통일된 모습을 보인다. 유대 그리스도교인의 원시 교단과 유대 헬레니스트 교단, 더욱이 헬레니즘의 그리스도교등 사이에도 그리고 바울로나 루가나 사목서간에서 볼 수 있는 소위 초기 가톨릭시즘 사이에도 다리를 놓을 수 없는 균열이 있다고 주장할 수 없고, 또 주장할 필요도 없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곳에 같은 근본적 확신, 같은 신학적 근본구조가 보인다. 그것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창설되고, 그리스도에 의하여 얻어지고, 그리스도와 결합된 하나인 교회이다. 이 교회는 볼 수 있는 것임과 동시에 볼 수 없는 것이고, 지상적 존재양식을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천상적 존재양식을 가지고, 외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내적으로 영에 충만한 신비적 본질을 가지고 있다. 실존적이고 직접 종교적인 강조 방식에 관해서 말하면 어느 경우에도 동일한 교회상이 존재한다는 따위를 주장할 필요는 없다. 당시 교회는 이교적, 희랍적 환경세계 전체에 정면으로 대립되었다. 다만 신앙과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과 세례가 그리스도인 생활의 중심적인 사건이었다. 후대에는 교회가 이미 커다란 사회를 형성하게 되고, 그 사회적 전제에서 당연히 다른 관점이 중시된 것이다.
더욱이 우리는 가톨릭적 교회 이해에 따라 다음과 같은 사실도 고려해야 한다. 즉, 교회의 법적인 구성은 사도시대에서 1세기가 끝날 때까지는 아직 확립되어 있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2세기 초, 또는 그 이후였다는 사실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것은 결코 가톨릭 교회 이해에 모순된 것은 아니다. 즉, 교회의 구조가 근본적인 여러 점에서는 신법에 의해서 제정되었다고는 말해도 사도시대에 있었던 모든 발전들이 교회의 초석이 되는 모든 것들과 함께 모두 전개되어 내려온 것은 아니라는 관찰도 가톨릭적 교회 개념에 부합한다. 따라서 어쩌면 헬레니즘의 공동체가 더 “민주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렇다고 해서 1세기의 끝에 인정되는 개개 교회의 주교제도가 잘못된 발전, 또는 다만 자의에 의한 발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교회의 구조가 이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어도 좋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