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가톨릭 교회를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정당화하는 간접적 방법(상)



5. 가톨릭 교회를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정당화


     하는 간접적 방법


   유대의 기초신학의 학문론적 방법은 역사 실증적이였다.  그러나 이 방법이 너무나 많은 어려운 역사적 물음과 증명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통 가톨릭 신자가 실제로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의 범위 내에서는 진리에 대한 성실한 양심에 비추어보아 불가능한 길일 것이다.  그러므로 간접적인 길을 택하고자한다.  이는 우리의 고유하고 구체적으로 실제로 살아 있는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더 직접으로 출발하기 때문에 어쩌면 훨씬 훌륭한 방법일 수 있겠다.  이런 의향을 가지고 먼저 약간의 형식상의 원칙을 고려해야 한다.  그 다음 고찰에서 이 원칙적인 것을 구체적인 교회 문제에 적용하고 거기서 가톨릭적 그리스도교 신앙의 자기 반성과 정당화를 위해 과연 무엇이 귀결되는지 물어야 한다.


   1) 교회는 없어서는 안된다.  :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교 신앙은 본질적으로 교회적인 것이다.  적어도 그리스도교 신앙이 정말로 자기 자신의 모습에 이르고, 또 진정한 구원사의 연속성을 계속하는 한에서 그렇다.  그리스도교는 내가 만들어 낸 종교가 아니라 하느님이 당신 자신의 창의로써, 인간쪽에서는 도달할 수 없는 창의에 의해서 주어지는 구원사건이다.  그리고 이 하느님의 구원사건은 만일 다만 양심의 어느 깊은 곳에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실존의 구체성에서 실현되어야 하는 것이라면 그때 나에게 요구를 제기하고, 내가 만들어 낸 것도 발견한 것도 아닌 하느님의 구체성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체적인 나에게 이러한 방식으로 더욱 요구를 계속하는 교회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교회가 존재해야 됨을 이해할 수 있겠다.


   2)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라야 한다.  : 두번째 고찰할 원칙은 교회가 오직 하나이어야 한다는 통찰이다.  그리스도의 교회,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 그리스도의 몸, 하느님의 백성은 구체적인 지역 공동체에서 실현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개개의 지역공동체가 제각기 독립해서 존재하다가 후에 가서 어떤 이념적 근거에 의해서 더 큰 연맹에 가입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의 교회가 그 자체로 개개의 공동체에서 실현되고, 거기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지역공동체는 정말로 완전한 의미에서 교회라면 처음부터 서로 결합된 것이다.  교회가 오직 하나라야만 한다는 것, 그리고 다만 하나의 교회냐, 그렇지 않으면 많은 임의의 그리스도교적 종교 사회가 존재하느냐 하는 물음은 그리스도인의 자의에 맡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이것은 오늘날의 그리스도교의 공통된 확신이다.  교회는 오직 하나라야 한다.  그리고 유일한 교회로서만 그리스도교의 본질에 정말로 맞는 것이다. 


   3) 자기의 교회 공동체에 대한 신뢰는 정당하다. : 개개의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속하고 있는 역사적 제약을 받은 교회가 우선은 정당한 것으로 보고, 그것에 기초해서 생각하고, 그 반대가 증명되기 까지는 이 교회에 머무를 권리를 가지고 있다.  일단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은 역사적 제약하에 자기에게 주어지고 자기가 받아들인 그리스도교적, 교회적 상황을 그대로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일 권리를 가지는 것이다.  이런 원칙을 솔직히 인정한다면 로마 가톨릭 교회는 종래 다른 그리스도인에 대해서 제시해 온 호교론으로서의 가톨릭 기초신학은 이제는 어려운 것이 될 것이다.  참된 호교론을 주장하려면 다른 교파에서 누리는 신앙체험의 사실과도 대결해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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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가톨릭 교회를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정당화하는 간접적 방법(상)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5. 가톨릭 교회를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정당화

         하는 간접적 방법

       유대의 기초신학의 학문론적 방법은 역사 실증적이였다.  그러나 이 방법이 너무나 많은 어려운 역사적 물음과 증명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통 가톨릭 신자가 실제로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의 범위 내에서는 진리에 대한 성실한 양심에 비추어보아 불가능한 길일 것이다.  그러므로 간접적인 길을 택하고자한다.  이는 우리의 고유하고 구체적으로 실제로 살아 있는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더 직접으로 출발하기 때문에 어쩌면 훨씬 훌륭한 방법일 수 있겠다.  이런 의향을 가지고 먼저 약간의 형식상의 원칙을 고려해야 한다.  그 다음 고찰에서 이 원칙적인 것을 구체적인 교회 문제에 적용하고 거기서 가톨릭적 그리스도교 신앙의 자기 반성과 정당화를 위해 과연 무엇이 귀결되는지 물어야 한다.

       1) 교회는 없어서는 안된다.  :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교 신앙은 본질적으로 교회적인 것이다.  적어도 그리스도교 신앙이 정말로 자기 자신의 모습에 이르고, 또 진정한 구원사의 연속성을 계속하는 한에서 그렇다.  그리스도교는 내가 만들어 낸 종교가 아니라 하느님이 당신 자신의 창의로써, 인간쪽에서는 도달할 수 없는 창의에 의해서 주어지는 구원사건이다.  그리고 이 하느님의 구원사건은 만일 다만 양심의 어느 깊은 곳에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실존의 구체성에서 실현되어야 하는 것이라면 그때 나에게 요구를 제기하고, 내가 만들어 낸 것도 발견한 것도 아닌 하느님의 구체성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체적인 나에게 이러한 방식으로 더욱 요구를 계속하는 교회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교회가 존재해야 됨을 이해할 수 있겠다.

       2)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라야 한다.  : 두번째 고찰할 원칙은 교회가 오직 하나이어야 한다는 통찰이다.  그리스도의 교회,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 그리스도의 몸, 하느님의 백성은 구체적인 지역 공동체에서 실현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개개의 지역공동체가 제각기 독립해서 존재하다가 후에 가서 어떤 이념적 근거에 의해서 더 큰 연맹에 가입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의 교회가 그 자체로 개개의 공동체에서 실현되고, 거기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지역공동체는 정말로 완전한 의미에서 교회라면 처음부터 서로 결합된 것이다.  교회가 오직 하나라야만 한다는 것, 그리고 다만 하나의 교회냐, 그렇지 않으면 많은 임의의 그리스도교적 종교 사회가 존재하느냐 하는 물음은 그리스도인의 자의에 맡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이것은 오늘날의 그리스도교의 공통된 확신이다.  교회는 오직 하나라야 한다.  그리고 유일한 교회로서만 그리스도교의 본질에 정말로 맞는 것이다. 

       3) 자기의 교회 공동체에 대한 신뢰는 정당하다. : 개개의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속하고 있는 역사적 제약을 받은 교회가 우선은 정당한 것으로 보고, 그것에 기초해서 생각하고, 그 반대가 증명되기 까지는 이 교회에 머무를 권리를 가지고 있다.  일단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은 역사적 제약하에 자기에게 주어지고 자기가 받아들인 그리스도교적, 교회적 상황을 그대로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일 권리를 가지는 것이다.  이런 원칙을 솔직히 인정한다면 로마 가톨릭 교회는 종래 다른 그리스도인에 대해서 제시해 온 호교론으로서의 가톨릭 기초신학은 이제는 어려운 것이 될 것이다.  참된 호교론을 주장하려면 다른 교파에서 누리는 신앙체험의 사실과도 대결해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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