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신원에 대하여

 

사제의 신원에 대하여




함원식 부제




  찬바람을 맞으며 봉덕동 신학교에 입학한지도 어느덧 10년이 흘러 사제 서품을 목전에 둔 지금, 사제의 신원에 대해 자연스레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어디를 향하여 달리는지, 무엇 때문에 달리는지를 모른 채 달리다가 결국 지쳐 쓰러지는 우매한 사람이 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사제는 누구인가? 사제는 당신 친히 희생제물이 되심으로써 갈라진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대사제이신 그리스도로부터 그분의 사제직무 수행을 지속하도록 파견된 자이다. 곧 구원사업에 봉사하도록 파견된 자이다. 물론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사람(그리스도인)이라는 신분을 갖게 된 모든 사람들이 구원사업을 위해 그리스도로부터 파견된 자들임에 틀림이 없지만, 사제는 성품 성사를 통하여 특별하게 파견된 자이다. 여기서 ‘특별’이라는 말은 우월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독특함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는 말이다. 다시 말해 사제와 평신도들 사이에는 차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말이다.


   그 차이는 그리스도의 세 가지 직무, 곧 예언직, 사제직, 왕직을 수행해 나가는 데 있어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복음을 선포하는 예언직을 수행하지만 미사 전례 중에서 복음을 읽고 강론을 하는 것은 사제이다. 또 모든 그리스도인이 온 세상의 성화를 위해 사제직을 수행하지만 성체 성사를 거행하는 것은 사제이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넓은 의미에서의 사목 활동을 하지만 사목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사제이다.


   다시 이전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사제는 그리스도로부터 파견된 자이다. 곧 자신의 인격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인격으로(in persona christi) 살아가는 사람인 것이다. 파견되기 위해서는 먼저 그리스도와 함께 있어야 한다. 그분과 함께 있지 않고서는 결코 파견될 수 없다. 만일 그리스도와 함께 있지 않고서도 자기가 파견되었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파견된 자가 아니라 자칭 파견된 자일 것이다.


   자칭 파견된 자는 그리스도의 인격이 아니라 자신의 인격으로 살아간다. 그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아니라 자기의 말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가 아니라 자기의 만족을 위한 행위를 한다. 그리스도의 양떼를 자기의 사람들로 만든다. 하느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신의 영광을 추구한다. 그는 말을 할수록, 활동을 할수록 밀려드는 허탈감을 잊기 위해 인기에 영합한다. 그는 사람들의 구미에 맞추기 위해 늘 바쁘다. 그 결과로 그의 주위에는 항상 소수의 추종자들이 맴돈다. 그들의 울타리는 강력하여 다른 사람들은 함부로 사제에게 다가오지 못한다. 때로는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진리를 왜곡할 때도 있다. 사목적 배려라는 허울좋은 빌미로 기도시간보다, 미사시간보다 테니스 치고 술 마시는 일을 앞세운다. 세심증을 고쳐야 한다면서 이완된 양심을 자랑하고, 현대 세계로의 적응을 외치며 교회의 전통을 깡그리 무너뜨린다. 사람들의 슬픔과 번뇌, 기쁨과 희망을 함께 한다면서 소위 유지들과 함께 하는 동안 교회의 문턱은 자꾸만 높아간다. 그는 자신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활동하시도록 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빌려 자신의 활동을 하고자 한다. 현대 신학을 한다면서 거룩한 것을 속되게 비아냥거린다. 교회는 낮아져야 한다며 교황을, 주교들을 끌어내리고 그 자리에 자기를 올려놓는다. 이 모두가 자칭 파견된 자의 특징이다. 이것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지 않았기에 드러나는 현상들이다. 참으로 파견된 사제가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어야 한다.


   동트기 전 산으로 올라 기도하셨던 그리스도와 함께 해야 하고, 그분의 성체 앞에서 함께 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발치에 겸손 되이 앉아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최후의 만찬 석상에 그분과 함께 앉아 있어야 한다. 이렇게 먼저 그분과 함께 있어야 사제는 파견된 자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자신의 인격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살아가게 된다. 제가 하고 싶은 일,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위를 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어내는 사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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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 신원에 대하여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사제의 신원에 대하여


    함원식 부제


      찬바람을 맞으며 봉덕동 신학교에 입학한지도 어느덧 10년이 흘러 사제 서품을 목전에 둔 지금, 사제의 신원에 대해 자연스레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어디를 향하여 달리는지, 무엇 때문에 달리는지를 모른 채 달리다가 결국 지쳐 쓰러지는 우매한 사람이 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사제는 누구인가? 사제는 당신 친히 희생제물이 되심으로써 갈라진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대사제이신 그리스도로부터 그분의 사제직무 수행을 지속하도록 파견된 자이다. 곧 구원사업에 봉사하도록 파견된 자이다. 물론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사람(그리스도인)이라는 신분을 갖게 된 모든 사람들이 구원사업을 위해 그리스도로부터 파견된 자들임에 틀림이 없지만, 사제는 성품 성사를 통하여 특별하게 파견된 자이다. 여기서 ‘특별’이라는 말은 우월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독특함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는 말이다. 다시 말해 사제와 평신도들 사이에는 차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말이다.

       그 차이는 그리스도의 세 가지 직무, 곧 예언직, 사제직, 왕직을 수행해 나가는 데 있어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복음을 선포하는 예언직을 수행하지만 미사 전례 중에서 복음을 읽고 강론을 하는 것은 사제이다. 또 모든 그리스도인이 온 세상의 성화를 위해 사제직을 수행하지만 성체 성사를 거행하는 것은 사제이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넓은 의미에서의 사목 활동을 하지만 사목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사제이다.

       다시 이전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사제는 그리스도로부터 파견된 자이다. 곧 자신의 인격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인격으로(in persona christi) 살아가는 사람인 것이다. 파견되기 위해서는 먼저 그리스도와 함께 있어야 한다. 그분과 함께 있지 않고서는 결코 파견될 수 없다. 만일 그리스도와 함께 있지 않고서도 자기가 파견되었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파견된 자가 아니라 자칭 파견된 자일 것이다.

       자칭 파견된 자는 그리스도의 인격이 아니라 자신의 인격으로 살아간다. 그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아니라 자기의 말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가 아니라 자기의 만족을 위한 행위를 한다. 그리스도의 양떼를 자기의 사람들로 만든다. 하느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신의 영광을 추구한다. 그는 말을 할수록, 활동을 할수록 밀려드는 허탈감을 잊기 위해 인기에 영합한다. 그는 사람들의 구미에 맞추기 위해 늘 바쁘다. 그 결과로 그의 주위에는 항상 소수의 추종자들이 맴돈다. 그들의 울타리는 강력하여 다른 사람들은 함부로 사제에게 다가오지 못한다. 때로는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진리를 왜곡할 때도 있다. 사목적 배려라는 허울좋은 빌미로 기도시간보다, 미사시간보다 테니스 치고 술 마시는 일을 앞세운다. 세심증을 고쳐야 한다면서 이완된 양심을 자랑하고, 현대 세계로의 적응을 외치며 교회의 전통을 깡그리 무너뜨린다. 사람들의 슬픔과 번뇌, 기쁨과 희망을 함께 한다면서 소위 유지들과 함께 하는 동안 교회의 문턱은 자꾸만 높아간다. 그는 자신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활동하시도록 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빌려 자신의 활동을 하고자 한다. 현대 신학을 한다면서 거룩한 것을 속되게 비아냥거린다. 교회는 낮아져야 한다며 교황을, 주교들을 끌어내리고 그 자리에 자기를 올려놓는다. 이 모두가 자칭 파견된 자의 특징이다. 이것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지 않았기에 드러나는 현상들이다. 참으로 파견된 사제가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어야 한다.

       동트기 전 산으로 올라 기도하셨던 그리스도와 함께 해야 하고, 그분의 성체 앞에서 함께 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발치에 겸손 되이 앉아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최후의 만찬 석상에 그분과 함께 앉아 있어야 한다. 이렇게 먼저 그분과 함께 있어야 사제는 파견된 자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자신의 인격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살아가게 된다. 제가 하고 싶은 일,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위를 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어내는 사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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