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봉사자로서 오신 주 예수님
(1) 봉사자이시며 종의 모습을 지니신 예수님
1) 종이신 예수님
예수님은 하느님과 사람들을 위한 종이시었다(마태 12,18; 사도 8,26-35; 3,13. 26; 4,27. 30 등). 사도 성 바울로는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종이신 그리스도께 대한 원초적인 믿음을 제시하고 있다. “그분은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노획물인 양 (중히) 여기지 않으시고, 도리어 자신을 비우시어 종(δούλος)의 모습을 취하셨으니 사람들과 비슷하게 되시어 여느 사람 모양으로 드러나셨도다”(2,6-7). 지상 생활의 시작에서부터 지상의 삶을 마칠 때까지 그분은 종과 봉사자의 삶을 사셨다. 사람들 가운데 거처하신 하느님의 말씀이신 그분(요한 1,14)은 당신이 사신 그 봉사의 삶을 통하여 아버지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참 제자다운 삶의 방식과 지상에서 참다운 공동체 건설의 모범을 보여주셨다고 볼 수 있다. 1)
그리스도는 “종”의 신분을 취하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셨다고 바오로는 말하고 있다(필립 2,5-10참조). 여기서 “종”이라고 번역된 원어 δούλος(doulos)는 “봉사자”라고 번역되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그 까닭은 예수께서는 자신의 자유 의지로 생명을 바치셨기 때문이다. 결국 예수의 권위와 능력은 아무에게도 지배되지 않고 완전히 사랑 때문에 자진해서 봉사자가 되었다는 사실에서 분명히 나타나는 것이다. 결국 예수님의 삶에서 그분의 권위가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그분이 봉사자로서 활동했을 때인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의 봉사가 없는 곳에서는 그리스도의 권위가 애매하게 되고, 생겨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2)
2) 위타존재(爲他存在)이신 예수님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다스림은 예수님 안에서 봉사라는 모습을 띠고 인격적으로 실현되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서 마치 시중드는 사람처럼 행동한다(루가 22,27 참조). 예수님을 뒤따른다 함은 바로 이 봉사에 있어서의 뒤따름이다. “누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모든 이 가운데서 말째가 되어 모든 이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르 9,35). 봉사, 원수의 사랑에까지 이르는 사랑, 한 마디로 다른 사람들을 위한 존재,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열어주고 가능하게 해준 새로운 존재방식(存在方式)이다. 이러한 실존(實存)에 있어서는 모든 것을 버릴 각오가 있어야 하며(마르 10,28) 자신의 생명까지도 무릅써야 한다(마르 8,34).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바친다는 것이야말로 – 그의 모든 활동이 그때까지 지향해 왔던 의미에 비추어 보더라도 – 다른 사람들을 위한 봉사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과연 예수님은 그 삶과 죽음에 있어서 오로지 다른 사람들을 위하는 분이시다. 이 위타존재(爲他存在)야말로 그분의 가장 심오한 본질을 이룬다. 그분이 마지막 죽음의 순간까지 하신 다른 사람들을 위한 봉사는 언약된 하느님 나라의 도래가 이제까지의 모든 도식과 예상을 완전히 뒤엎으면서 하나의 현실이 될 수 있는 유일무이의 장이 되었다.3) 그분은 확실히 죄인들과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버림받은 이들과 함께 하신 봉사자이셨다.
예수께서는 인자가 봉사를 받으러 오지 않고 오히려 봉사하고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속전으로”(마태 20,28)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고 말한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본질이 어떤 “독존적 자재”(獨存的 自在)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은 가령 희랍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완벽성으로 통하던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분의 본질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그를 편드는 데 있다. 그분의 본질은 자기 헌신이고 자기 포기이다. 성서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분이시다. 그분의 본질은 헌신과 사랑이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 사랑이라는 것에 있어서 그분은 우리에게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지배하는 구체적인 현존양식 그 자체이다. 이웃 인간을 지향하는 그분의 초월은 하느님을 지향하는 초월의 표현이다.4)
신약성서는 여러 곳에서 주 예수님의 행적을 고통받는 야훼의 종으로 묘하고 있다. 그분은 고통받는 야훼의 종을 익히 알고 계셨고 우리의 고통과 죽음을 대신하는 당신의 삶으로써 백성에게 구원을 가져오실 수 있었다(마태 12,18-21참조). 예수께서는 고통받는 야훼의 종의 역할을 수행하심으로써 인류에게 구원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당신의 모범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남을 위한 봉사의 삶을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5)

2. 봉사자로서 오신 주 예수님
(1) 봉사자이시며 종의 모습을 지니신 예수님
1) 종이신 예수님
예수님은 하느님과 사람들을 위한 종이시었다(마태 12,18; 사도 8,26-35; 3,13. 26; 4,27. 30 등). 사도 성 바울로는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종이신 그리스도께 대한 원초적인 믿음을 제시하고 있다. “그분은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노획물인 양 (중히) 여기지 않으시고, 도리어 자신을 비우시어 종(δούλος)의 모습을 취하셨으니 사람들과 비슷하게 되시어 여느 사람 모양으로 드러나셨도다”(2,6-7). 지상 생활의 시작에서부터 지상의 삶을 마칠 때까지 그분은 종과 봉사자의 삶을 사셨다. 사람들 가운데 거처하신 하느님의 말씀이신 그분(요한 1,14)은 당신이 사신 그 봉사의 삶을 통하여 아버지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참 제자다운 삶의 방식과 지상에서 참다운 공동체 건설의 모범을 보여주셨다고 볼 수 있다. 1)
그리스도는 “종”의 신분을 취하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셨다고 바오로는 말하고 있다(필립 2,5-10참조). 여기서 “종”이라고 번역된 원어 δούλος(doulos)는 “봉사자”라고 번역되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그 까닭은 예수께서는 자신의 자유 의지로 생명을 바치셨기 때문이다. 결국 예수의 권위와 능력은 아무에게도 지배되지 않고 완전히 사랑 때문에 자진해서 봉사자가 되었다는 사실에서 분명히 나타나는 것이다. 결국 예수님의 삶에서 그분의 권위가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그분이 봉사자로서 활동했을 때인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의 봉사가 없는 곳에서는 그리스도의 권위가 애매하게 되고, 생겨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2)
2) 위타존재(爲他存在)이신 예수님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다스림은 예수님 안에서 봉사라는 모습을 띠고 인격적으로 실현되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서 마치 시중드는 사람처럼 행동한다(루가 22,27 참조). 예수님을 뒤따른다 함은 바로 이 봉사에 있어서의 뒤따름이다. “누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모든 이 가운데서 말째가 되어 모든 이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르 9,35). 봉사, 원수의 사랑에까지 이르는 사랑, 한 마디로 다른 사람들을 위한 존재,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열어주고 가능하게 해준 새로운 존재방식(存在方式)이다. 이러한 실존(實存)에 있어서는 모든 것을 버릴 각오가 있어야 하며(마르 10,28) 자신의 생명까지도 무릅써야 한다(마르 8,34).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바친다는 것이야말로 – 그의 모든 활동이 그때까지 지향해 왔던 의미에 비추어 보더라도 – 다른 사람들을 위한 봉사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과연 예수님은 그 삶과 죽음에 있어서 오로지 다른 사람들을 위하는 분이시다. 이 위타존재(爲他存在)야말로 그분의 가장 심오한 본질을 이룬다. 그분이 마지막 죽음의 순간까지 하신 다른 사람들을 위한 봉사는 언약된 하느님 나라의 도래가 이제까지의 모든 도식과 예상을 완전히 뒤엎으면서 하나의 현실이 될 수 있는 유일무이의 장이 되었다.3) 그분은 확실히 죄인들과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버림받은 이들과 함께 하신 봉사자이셨다.
예수께서는 인자가 봉사를 받으러 오지 않고 오히려 봉사하고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속전으로”(마태 20,28)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고 말한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본질이 어떤 “독존적 자재”(獨存的 自在)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은 가령 희랍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완벽성으로 통하던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분의 본질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그를 편드는 데 있다. 그분의 본질은 자기 헌신이고 자기 포기이다. 성서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분이시다. 그분의 본질은 헌신과 사랑이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 사랑이라는 것에 있어서 그분은 우리에게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지배하는 구체적인 현존양식 그 자체이다. 이웃 인간을 지향하는 그분의 초월은 하느님을 지향하는 초월의 표현이다.4)
신약성서는 여러 곳에서 주 예수님의 행적을 고통받는 야훼의 종으로 묘하고 있다. 그분은 고통받는 야훼의 종을 익히 알고 계셨고 우리의 고통과 죽음을 대신하는 당신의 삶으로써 백성에게 구원을 가져오실 수 있었다(마태 12,18-21참조). 예수께서는 고통받는 야훼의 종의 역할을 수행하심으로써 인류에게 구원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당신의 모범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남을 위한 봉사의 삶을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