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1. 그리스도 사제직의 역할
3. 1. 1. 목자
“나는 착한 목자이다”(요한 10, 11. 14). 목자의 직책을 여러 관점에서 다양하게 얘기할 수 있겠지만, 그 기본적인 것은 신약의 사제직에서 잘 나타난다. 사제는 양떼를 인도하는 목자의 상(像)을 따라 공동체를 지도하는 권위를 가진 자이다. 이것은 사제의 고유한 직무를 정의해 준다. 목자는 양들로 하여금 자기 목소리를 듣게 하는 자로서 가르치는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 예수는 양 우리밖에 있는 다른 양들에 대해서 “나는 그 양들로 데려와야 한다. 그러면 그들도 내 음성을 알아듣는다”(요한 10. 16)고 말씀하셨다. 양떼를 인도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목소리를 들려줘야 하는 것처럼, 말씀의 봉사는 목자로서의 책임이다. 따라서 사제의 사명 안에 ‘사도적 활동’이 포함되는 것이다. 사제는 자기 양들에게만 듣게 할 것이 아니라 다른 양들도 불러모으기 위하여 그들에게도 목소리를 전달해야 한다. 그는 기존 공동체를 돌보기 위해서 뽑힌 것만은 아니다. 복음을 전파하고, 공동체를 육성하는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왔다”(요한 10, 10). 예수의 묘사대로 목자는 양들을 양육하고 생명을 풍성하게 보장해 주는 자이다. 공동 생활에 대한 영감을 주어 성화시키는 일, 자기에게 맡겨진 사람들의 신앙과 사랑을 북돋아 주는 일, 성사 특히 성체 성사를 통한 천상 생명의 전달 등, 결국 사제직의 모든 역할은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생명을 양육하는 것이고, 그러므로 목자의 역할은 사제직의 기능 전체를 묘사하기에 적합하다.1)
목자의 성격은 하느님의 선하심, 인자하심, 자비하심을 드러내고 있으며, 예수 안에서 그것이 구체적으로 실현되었다. 이는 목자의 성격이 단순히 예수의 인간적 의지나 감정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서의 기본적 자세를 표현한 것임을 뜻한다. 여기에서 사제직 신학의 두 가지 주요한 관점이 밝혀진다. 하나는 성부와 그리스도의 위격적 관계에 관한 것이며, 또 하나는 그리스도가 의도한 사제직의 설립에 관한 것이다.
착한 목자가 최고의 목자이신 하느님을 표현한다면 예수는 자기가 실천한 목자의 역할을 통하여 성부를 계시하는 것이다.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요한 14, 9)라고 하신 말씀이 여기에 적용된다. 그렇다면 사제직의 개념을 먼저 성부께 두어야 하며 그분에게서 사제의 본질적 성격들을 찾아야 한다. 성부는 최고의 목자로 계시며 자기 양들에게 목자로서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보여 주신다. 그분은 최고의 통치권에 사랑의 형태를 부여하여 동정심과 자비심에 따라서만 권한을 행사하려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사제직의 풍요로운 마음은 성부 안에서 행해져야 할 것이다. 그분은 모든 사제적 행위를 위한 반성의 기초가 된다. 다른 한편, 성자 그리스도는 성부의 목자상을 나타내신다. 이 점에서 볼 때 성부의 사제직은 육화의 신비에 연결된다. 그것은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로서 사람이 되셔서 인간적인 감정 표현과 말과 행동으로 하느님이신 목자의 모습을 보여 주셨기 때문이다. 성자는 그의 성품에서 성부의 살아있는 모습을 나타내셨으며 완전한 목자의 성격을 지님으로써 그것을 인성(人性)에서 구체화하셨다. 성자의 인성은 신성(神性)만으로는 표현하기 불가능했던 최고 목자의 행동 태도, 즉 양에 대한 목자적 사랑의 정점인 목숨을 바치는 희생을 가능케 한 것이다. 야훼를 백성의 목자라고 한 예언자들의 표현에서 신적 사랑의 자애로움과 자상함이 나타나고 있지만 거기에서는 착한 목자는 자기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는 복음적 묘사가 정확하게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육화 신비의 가치는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로서 하느님이신 목자의 칭호에 맞게 완전한 사랑에 투신할 수 있었다는 데에 있다. 그는 인간성 안에서 자기 희생이라는 최고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었다. 그의 사제직은 한 인간으로서가 아니었더라면 참된 것이 못 되었을 것이고, 또한 예수가 하느님이 아니었더라면 그것은 완전한 것이 못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하여 그리스도의 사제직의 새로운 특성을 수립한 것이다.
육화 그 자체가 그리스도의 첫 번째 목자적 행위-봉사-였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에제키엘의 예언대로 아훼가 헤매는 양을 찾아내고 상처입은 양을 치유하려는(에제 34, 16) 목자로서의 의지는 바로 “사람의 아들은 잃은 사람들을 찾아 구원하러 온 것이다”(루가 19, 10)라는 말에서 나타난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의 신분으로 세상에 오셨다는 것은 목자의 본질적인 태도를 취하신 것이라 하겠다. 사제직은 인간성에 바탕을 둔 것이므로 육화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육화를 첫 번째 사제직 행위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육화는 예수가 사제직을 수립하고 그것으로써 자신의 근본의지를 표현하려는 행위였다. 그것은 또한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으로서의 목자와 사제가 되시는 행동이었다.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