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 형제적 친교(κοινωνια)
친교(koinonia)라는 용어는 사도행전 4.42에서 단 한번 나타난다.1)
여기서 ‘친교’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데 몇 가지로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2)
첫째, 빵을 뗀다는 것은 성체성사적인 의미를 지닌 것이므로 여기서는 성체성사적인 친교를 지칭하는 것일 것이다. 불가따 성서는 이런 의미에서 친교라는 의미를 받아들이고 있다.
둘째, 이것을 어원적으로 분석해보면 ‘교계적 친교’를 의미하는 것으로 즉 신자들간의 일치를 뜻하는 친교의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다.
셋째, 사도 바오로가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경우를 보면, 그는 모금의 실천적 행위에 이 용어를 연결시키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친교의 나눔을 의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넷째, 요약 부분이라고 칭하는 세 개의 텍스트가 제공해 주는 자료들은 오히려 가진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공동체 또는 그러한 모습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이 공동체의 정신이 하나가 된 모습에로 초점을 모아가게 해준다.
다섯째, 친교라는 용어는 단순히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모임’을 지칭하는데 불과한 것일 것이다.
요약문에서 살펴보면 2,42-27과 4,32-37절에 내용의 비교를 통해 친교에 대해 두 가지 관점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첫째는 물질적인 나눔에 대한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한마음 한 몸이 되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모습이다. 밑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이 두 가지는 서로 절대적으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신앙이라는 하나의 공동연대성안에서 물질적인 나눔과 정신적인 일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2.2.2. 형제적 친교(κοινωνια)
친교(koinonia)라는 용어는 사도행전 4.42에서 단 한번 나타난다.1)
여기서 ‘친교’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데 몇 가지로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2)
첫째, 빵을 뗀다는 것은 성체성사적인 의미를 지닌 것이므로 여기서는 성체성사적인 친교를 지칭하는 것일 것이다. 불가따 성서는 이런 의미에서 친교라는 의미를 받아들이고 있다.
둘째, 이것을 어원적으로 분석해보면 ‘교계적 친교’를 의미하는 것으로 즉 신자들간의 일치를 뜻하는 친교의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다.
셋째, 사도 바오로가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경우를 보면, 그는 모금의 실천적 행위에 이 용어를 연결시키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친교의 나눔을 의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넷째, 요약 부분이라고 칭하는 세 개의 텍스트가 제공해 주는 자료들은 오히려 가진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공동체 또는 그러한 모습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이 공동체의 정신이 하나가 된 모습에로 초점을 모아가게 해준다.
다섯째, 친교라는 용어는 단순히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모임’을 지칭하는데 불과한 것일 것이다.
요약문에서 살펴보면 2,42-27과 4,32-37절에 내용의 비교를 통해 친교에 대해 두 가지 관점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첫째는 물질적인 나눔에 대한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한마음 한 몸이 되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모습이다. 밑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이 두 가지는 서로 절대적으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신앙이라는 하나의 공동연대성안에서 물질적인 나눔과 정신적인 일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