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초대교회 신자들의 평신도 사도직
1. 평신도 사도직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신도 사도직’이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어원적 고찰을 통해 살펴보면 ‘사도직’(Apostoatus) 안에 임무와 파견, 또는 이를 위임받은 사람의 의무, 파견의 상태와 직위를 나타내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도직은 ‘사도’라는 호칭이 사용되기 전에 직무로서 수행되고 있었으며 사자, 파견된 사람, 사신등의 뜻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또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거나 하느님의 파견에 의해 보내져서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모든 이가 사도(使徒)이며 그들의 직무수행이 또한 사도직(使徒織)임을 알게하며 공의회는 더 나아가 그리스도에게로 향하는 신비체의 활동 모두를 ‘사도직’이라고 한다(평신도 교령 제 2항)1)
평신도 사도직의 원천은 성부께로부터 파견된 그리스도이며(평신도 교령 제 3항),사도직의 근거는 ‘강생하신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있다. 따라서 이러한 사도직은 그리스도와의 일치인 성세와 다른 성사들에 의해 수행 될 수 있는 것이다.2)
예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하신 명령 안에서 세 가지 직무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즉“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예언직)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사제직), 내가 너희에게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왕직)”(마태 28,18-19). 여기에서는 이러한 예수의 명령안에서 나타나는 세 가지 직무를 초기 교회 신자들의 삶 안에서 재조명 해 볼 것이다.
1) 평신도 사제직
“세례받은 사람들은 재생과 성령의 도구로 축성되어 영적 집과 거룩한 사제직을 형성하는 것이다.”라고 교회헌장 제 10항에서 밝히고 있으며, 교회헌장 제 31항에서는 “세례로써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고 하느님 백성 중에 들고, 그들 나름대로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직과 왕직에 참여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평신도들은 사제직에 참여하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 세례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생활의 봉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희생제사에 결합되는 것이다. 이처럼 평신도사제직은 그리스도의 사명에 참여하여 하느님이 찬미 받으시고 사람이 구원되도록 영적 예배를 행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사제직 직능의 일부가 주어졌기에 이를 영적 사제직, 또는 공통적 사제직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러한 영적 예배의 근거는 평신도가 ‘그리스도께 봉헌되고 성신께 도유되었다’(Christo dicati et Spiritu Sancto uncti)는 것이다. 이는 곧 세례에 의한 그리스도에의 봉헌과 견진에 의한 성신의 도유이다.3) 즉 평신도 사제직은 그 존재와 전 생활을 통해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이다. 즉 평신도들은 사제로서 자신을 봉헌하고 자기가 살고 있는 세상 자체를 성화해서 하느님께 봉헌한다.
그런데 초기 신자들이 견진성사를 받을 수 있게된 것은 프랑스 선교사들이 들어오고 나서 부터이다 비록 초기 신자들은 견진성사를 받지 못했지만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성신의 힘으로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는 생활을 해 나갔다. 이러한 영혼의 축성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한 그들은 영적 열매를 맺게 하는 원동력을 얻었다. 즉 일체의 사업, 기도, 사도적 노력, 결혼 및 가정생활, 매일의 순교 심신의 앙양을 ‘하느님의 성신 안에서(in Spiritu)’ 행하며, 또 생활의 번민을 참을성 있게 인내하였으며,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 희생이(spirituaris) 되었다(1베드 2,5; 참조).4)
초기교회에서는 영세를 통해 본명을 가지는 것을 수세(受洗)혹은 수호(受號)라고 하였는데, 당시 교회의 중심 인물들은 대부분 수세, 수호하였으며, 수세, 수호한 자의 대부분은 관헌(官憲)에 의해 흔히 중죄인으로 간주되었다.5)
1783년 북경으로 떠난 이승훈이 그라몽 신부에게 베드로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이벽(요한), 권일신(프란치스코), 내포의 사도라고 불리는 이존창 등 초기 교회의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양반, 선비의 집안 뿐 아니라 농부, 노동자, 서민, 가난한 사람들에 까지 급속히 전교가 이루어 졌다. 이들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고 자신의 존재와 처한 삶안에서의 모범적인 생활을 하느님께 봉헌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사회를 성화하여 하느님께 봉헌하였다. 신유박해 당시 형조관계(刑曹官界)를 편집한 <사학징의>에 따르면 이들의 직업은 여러 가지 였으며6) 이들은 각기 박해 중에도 성신의 도우심에 의지하며 첨례를 통해 힘을 얻으며, 생활을 영위하였고 생활의 성화를 이루어 나갔다. 구체적인 예로 1801년도를 중심으로 한 신자들의 직업적 실태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12.2%가 의원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들은 신앙활동의 수행과 더불어 애덕을 실천하는데 한 몫을 차지함으로 생활의 성화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신자들은 교우촌이라는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여 구체적인 경제적 수단으로 옹기를 굽거나 담배를 재배하거나 박물장수로 생활을 영위하면서 어려운 처지에서도 열심한 생활과 더불어 불우한 이웃에 나눔을 실천하였던 것이다.7) 이처럼 초대교회 신자들은 사제로서 자신을 봉헌하고 자기가 살고 있는 세상 자체를 성화해서 하느님께 봉헌하였다. 바로 이 점이 그들을 사제직에 참여한 자들로 부를 수 있는 근거이다. 따라서 이들은 박해와 자연적 대 재해 속에서도 자신들의 삶 자체를 하느님께 봉헌하는 영적예배와 영적희생과 세상의 성화(concecratio mundi)를 이루어 나갔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2) 평신도 예언직
그리스도는 위대한 예언자이시다(루가 7,16). 그리스도께서는 생활의 증거와 말씀의 능력으로써 아버지의 나라를 전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영광을 완전히 드러내실 때까지 당신의 예언직을 수행하시되, 당신의 이름과 당신의 권한으로 가르치는 성직계를 통해서 뿐 아니라 또한 평신도들을 통해서”(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제 35항) 당신의 예언직을 행하게 하신다. 그리스도는 평신도를 증인으로 삼으시고, 신앙의 마음과 말씀의 은총을 주시어(사도 2,17-18; 묵시 19,10), 그들 가정과 사회의 일상생활 가운데서 복음의 힘이 빛나도록 하신다(35항).
이들은 자신들의 마음속에 살아있는 확실한 신앙 의식을 성신께서 주시는 카리스마, 즉 말씀의 은총을 통해 일상 속에서 실천해 가야 한다. 즉 평신도 각자의 처지와 능력에 따라 그리스도를 전하고 그의 가르침을 해명하고 전파하여, 충실히 고백한다. 신자들은 세상 안에서 말과 행동으로(testimonio vitae et vervo) 복음을 선포하여 주저하지 말고 용기있게 세상의 죄악을 밝히고 고발하는 역량과 책임을 부여받고 있다.
이들은 종말론적 희망을 기다리며(로마 8,25참조), 이 세상의 어두움에 항거하는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8) 또한 이들의 의무에 있어 특히 결혼과 가정생활은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결혼은 하느님과 사람의 일치의 상징이며, 그리스도와 사람과의 또한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일치의 상징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적 결혼을 한 부부는 상호간에, 또 그들의 자녀들에 대해 그리스도의 신앙과 사랑의 증인이 되는 독자적 사명을 갖는 것이다(교회헌장 11,35항 참조). 또한 그리스도교적 가정을 그리스도에의 신앙과 사랑과 희망의 표지가 된다.(교회헌장 11항 참조). 그러므로 평신도는 ‘세상의 빛과’,‘소금’으로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비추어 주는 것이다(교회헌장 35항 참조).
초기 교회의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세상안에서 그리스도의 은혜로 얻은 신앙의 마음과 말씀의 은총으로 복음의 힘을 빛내는 삶을 살았다. 특히 이 점은 이들의 순교정신 속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이들은 성령의 은혜로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와 일치함으로 다른 이들의 복음화와 성화를 위하여 교회에 풍요로운 유익을 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9) 순교 직전 이들은 인간적인 두려움을 넘어 자신들의 신앙을 분명하고 자신에 넘쳐 고백하고 있다.
1790년에 입교한 최필공(崔必恭;토마스)은 천주교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 이내 입교하여 크나큰 열성으로 영신의 일만을 생각하여, 두려움 없이 공공연하게 전교하기를 그치지 않았고, 한길 가운데서 군중 속에 멈추어 “천지의 천주를 반드시 섬겨야 합니다. 만물의 위대한 주를 어찌 섬기지 않겠습니까?” 하고 외치는 일도 있었다. 그는 1971년 신해박해 때 서울 인근 지방에서 체포되어 刑曹에 끌려나가 그의 종교에 대해 질문을 받자 과감하게 “사람은 누구나 천주의 법을 지켜야 합니다. 저는 언제나 천주께 대한 본분을 다할 용의가 있습니다”라고 대답했고 그에게 가해진 형벌도 그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지는 못했다. 그는 항상 한결같은 소리로 같은 신앙고백을 되풀이하여 마지않았는데, 어떻게나 순진하고 솔직하고 확신있게 말하였던지 구경군들이 모두 감탄할 지경이었다. 임금 자신도 그런 감정을 느끼고 동정심이 생겨 그의 목숨을 보존하고자 그를 달래어 몇 마디 굴복하는 말을 얻어내도록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라고 할 정도였었다. 그러나 간계(奸計), 달램, 재산의 약속등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고, 왕의 명령으로 그의 늙은 아버지와 형이 불려와 눈물과 간청으로 호소하자 그는 크게 감동되어 인성의 모든 감정이 일었으나 그는 굴하지 않고 신앙 고백을 계속하였다. 마침내 최종 판결 순간에 대신(大臣)도 동정심이 일어 시키는 대로 그가 순종하였다고 왕에게 아뢰고 그는 풀려났다. 그는 후에 이를 크게 뉘우치고 마침내 신유박해 때 순교의 영광을 받게 되었다. 같은 시기에 박취득(朴取得;라우렌시오)가 교우들이 여러 달째 갇혀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의 옥으로 자주 찾아가 보고 위로하는 용기를 가졌었다. 하루는 그가 관문을 두드리고 과감히 들어가 官長앞에 서서 외쳤다. “무죄한 사람들을 사납게 매질하고 여러 달 동안 옥에 가둔다는 것은 무서운 죄가 아닙니까?” 그는 그 후로도 게속하여 불의에 항거하여 용감히 신앙을 고백하였던 것이다. 또한 원 베드로는 홍주고을 을전 마을의 돈 많은 양민의 집안에서 태어나 1788년 에 그의 나이 55세가 넘어서 천주교에 대한 말을 듣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즉시 입교하였다. 하루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집을 떠났다. “나는 50년 이상을 무익하게 살아왔다. 내가 돌아오면 내가 떠난 까닭을 알 것이다.” 그는 1년 이상 아무 소식이 없다가 다시 나타나니 친척과 친구가 몰려와 사정을 물으니 “50여년 동안 나는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으나 지금은 수천년 동안 목숨을 보존하게 해 주는 약을 가지고 있다”라고 대답하고 다음날 그는 모든 친척들을 모아 놓고 이 세상의 시초와 마지막 만물을 창조하고 보존하시는 하느님의 존재, 원죄, 강생, 하느님의 계명, 천당과 지옥 등에 대해 설명하고 덧붙여 “자 이것이 착한 뜻을 가진 사람 누구나가 영원히 사는 방법이오, 여러분은 모두 내 말을 유언으로 알고 나처럼 천주교를 신봉하시오” 은총이 그의 말과 병행하여 모든 이가 그날 부터 천주를 섬기겠다고 약속하였고 그는 그간 불같은 성격으로 호랑이란 별명으로 불리었으나 자신의 성격을 완전히 정복하여 온화함을 보여주었고, 재산을 나누며 교리를 가르쳐 30가구 이상을 입교시키고 입교한지 2년쯤 뒤 그 집안 전체가 입교하게 된다. 이 소리가 군장에게 들려와 체포당한 그는 무수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견디었고 매를 맞으면서도 “천주께서 여기서 저를 직접 굳세게 해 주십니다.”라고 하였고 매질이 소용이 없자 물을 부어 추운 밤중에 내놓아 얼려 죽이라고 명한다. 그는 온 몸에 얼음이 뒤덮여서도 오직 주의 수난만을 생각하였고 “나를 위해 온몸에 매를 맞으시고 내 구원을 위하여 가시관을 쓰신 예수여, 당신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내몸이 얼음에 덮여 있는 것을 보십시오.” 그런 다음 그는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목숨을 하느님께 바쳤다.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