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념
1.1 평신도의 개념
평신도에 대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근본적인 이해는 교회를 하느님의 백성으로 보는 교회헌장 제2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1) 교회를 교계제도로 이해한 종전의 관점과는 달리, 평신자의 항목에서 하느님의 백성을 따로 떼어서 교계제도 앞에 두었다는 사실2)은 중요한 교리적 발전으로서,3) 그 핵심은 평신도와 사제가 본질적으로 동등한 관계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4) 이런 근본적인 평등원칙을 전제하고 교회헌장은 교계제도(제3장), 평신도(제4장), 수도자(제6장)에 대해 각각 언급하고 있다. 교회헌장은 평신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평신도는 신품에 속하는 이들과 교회 안에 공인된 수도신분에 속하는 이들 이외의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을 말한다.”5)
그러나, 사제도 아니요 수도자도 아닌 평신도는 세속적 성격이 그의 고유한 특징이다. “평신도들은 본래 현세적 일에 종사하며 하느님의 뜻대로 관리함으로써 하느님의 나라를 찾도록 불린 것이다.”6) 세속성을 중심으로 평신도의 개념을 설립하는 것은 1987년 세계 주교 시노드와 그 후에 발표된 사도적 권고 『평신도 그리스도인』에서 한층 강조되어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7) “세속은 평신도들이 자신의 그리스도인 소명을 성취하는 자리가 되고 수단이 된다.”8) 이처럼 평신도는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신자라는 일반적 요소와 성직자도 수도자도 아니라는 소극적 고유요소, 그리고 세속성이라는 적극적 고유요소의 세 측면에서 규정할 수 있다.9)
(1) 일반적 요소
평신도는 교회의 능동적 구성원이다. 성세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었으므로, 그리스도의 모든 생명과 역할에 참여한다. 따라서 생활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뿐 아니라, 구원의 성사적 제도인 교회의 일원으로서도 완전히 능동적 구성원이므로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직, 왕직에 참여한다.10)
(2) 소극적 고유요소
소극적이란 열등의 의미가 아니라, 성직자도 수도자도 아니라는 부정형이 그 자체로는 적극적인 요소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평신도가 교회의 사명에 참여하는 방식은 직무적(職務的, ministeriale)인 것이 아니고, 증험적(證驗的, testimoniale)인 것이다.11)
(3) 적극적 고유요소
세속성이 평신도의 고유성이라는 것은 두가지 전제를 포함한다.
첫째, 단순히 세속에 관련되어 있다는 점은 평신도의 위치를 규정하는 신학적 동기가 될 수 없기에 세속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관련을 해명해야 된다. 그냥 세속사정에 몰두한다면 비신자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 그리스도교적 관련성은 세속에 관여하되 하느님 백성의 공동목표인 하느님 나라의 구현과 완성을 향해 복음의 원리로써 세속사를 영위한다는 점이다. 이는 종말지향적인 서원과 그에 따른 수도생활이라는 삶의 방식을 통해 지상가치보다 천상가치가 더 위대함을 증거하는 수도자와 삶의 양식(modus)의 차이점이다.12)
둘째, 세속성을 평신도의 고유요소로 규정함이 성속의 이원적 분리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해명해야 된다. 카이저(M.Kaiser)는 “평신도 개념에 교회 구성원을 넘어서는 어떤 긍정적인 내용을 부여하려 하거나 이를 제한하려는-예컨대 세속의 성격- 시도는 필연적으로 좌절될 수밖에 없다.”고 하며, 켈(M.Kehl) 또한 이 견해에 동의하면서 “공의회 교회론을 바탕으로 직무자와 비교하여 긍정적으로 특수화되고 교의적으로 차별되는 신학적 의미를 평신도에게 부여한다는 무모한 것”이라고 주장한다.13) 더욱이 평신도와 성직자의 임무와 과제를 세계 봉사와 구원 봉사, 교회 영역 밖과 안에서의 봉사로 구분짓는 것은 공의회의 정신이 아니다.14) 사실 세속성 자체는 평신도들에게만 배타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며15)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 신앙인이 되는 인간의 특성이다. 이런 세속성의 본질 때문에 교회헌장에서는 평신도의 세속성에 ‘고유하고’(propria) ‘특별한’(peculiaria)이라는 부가어를 첨가하고 있다.16) 따라서 세속적 성격을 평신도의 고유한 특징으로 설명하는 교회헌장 31항은 평신도에 대한 정의(定義)보다는 평신도의 삶에 역점을 둔 경험적 현상서술이며, 종말지향적 요소를 포함한다. 즉, 모든 인간의 삶의 영역과 삶의 양식이 하느님에 의한 부르심의 장소가 될 수 있고, 이 때문에 모든 곳에서 복음화와 성화로의 요구가 채워질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17)
이런 의미에서 평신도의 세속성은 회칙『평신도 그리스도인』을 참조함으로써 그 정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교회는 본래의 내적 본성과 사명에 있어서 진정한 세속적 차원을 지니고 있다. 이는 말씀의 육화신비 안에 깊이 뿌리박고 있으며, 교회의 구성원들을 통하여 여러 가지 형태로 실현되고 있다.”18) 교회는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 하더라도(요한 17,16 참조) 실제로 세상 안에 살고 있으므로,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이 세속적 차원에 동참하고 있지만 서로 다른 방법으로 참여하고, 서로 분리되지 않으면서도 구별되는 생활 양식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19) 공의회는 교회헌장 31항에서 평신도들의 생활 양식을 외부적인 환경 구조측면에서 역동적으로 파악할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온전한 의미를 찾도록 운명지어진 현실로서 고찰한다.20) “혈육을 취하신 말씀은 사람들의 공동 운명에 참여하시고자 하셨다. … 인간 관계, 특히, 당신 조국의 법률을 자원으로 준수하셨다. 당신 시대와 당신 지방의 노동자 생활을 자원으로 택하셨다.”21) 이처럼 세상 그 자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도록 운명지어져 있기에, 세속은 평신도들이 자신의 그리스도인 소명을 성취하는 자리가 되고, 그리스도인은 죄의 영향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창조로써 창조 사업에 참여하면서 사회의 다양한 활동들 안에서 자신들을 성화하게 된다.22)
이는 구체적으로 “서품된 직무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부가적이거나 예외적인 임무가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평신도들의 전형적인 사명”23)이라는 것을 뜻한다. 또한 평신도는 성직자, 수도자가 들어가지 못하는, 또한 성직자주의로 인한 폐단으로 들어가서는 안 되는 광대한 분야에서 교회 자신의 것이다.24) 결국, “평신도의 교회 내 위치는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인 생활의 새로움에 의하여 규명되며 그 세속적 성격으로 구별된다”25)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