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신약성서(그리스도의 사제직)

 

2.2.1 그리스도의 사제직




   공관복음에서 예수는 자신의 죽음을 하느님의 종이 바친 속죄의 제사(마르 10,45; 14,24)나 시나이 산의 모세가 바친 계약의 제사와 비교하며, 사제직과 관련된 용어로 표현한다.1) 바오로도 예수의 죽음을 과월절에 희생된 어린 양의 상징(1고린 5,7)이나 자신을 낮춘 종의 상징(필립 2,6-11)등으로 제시하여, 그리스도의 피가 구속의 힘을 지니고 있고(로마 5,9; 골로 1,20; 에페 1,7; 2,13), 신자들을 하나가 되게 한다고(1고린 10,16-22)가르치지만 예수를 사제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요한의 저서들은 예수의 사제적 모습을 한층 강하게 묘사하여, 대제관의 제복을 입으신 모습(요한 19,23; 묵시 1,13)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수난기의 도입을 사제의 기도로써 시작하는 것으로(요한 17장) 표현한다.2)


   사실 예수는 유다 부족 출신으로 구약관점에서 사제가 아닌 평신도였으며, 신약성서도 그를 구약의 종교적 사제로 지칭하지 않는다. 이는 초기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일반적 의미의 경신례적 사제로 인식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3)


   그런데 초대교회에서 예수의 삶과 죽음, 부활의 의미를 숙고하면서 예수를 경신례적 사제로 대하려는 관점이 점차 형성되었다.4) 그래서 에페소서는 예수의 구원행업을 경신-사제적 진술양식으로 표현(에페 5,2)하는가하면, 신약에서는 유일하게5) 히브리서는 그리스도를 대사제라 지칭하면서 십자가 사건을 새로운 희생제사로 분명히 제시한다.


   히브리서에 따르면, 예수는 아론보다 뛰어나게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며(히브 5,1-4) 아론의 사제직을 능가하고 멜키세덱의 사제직(창세 14,18-20)을 따라 영원한 대사제이시며 거룩하고 유일한 사제(히브 7, 26-28)로서 구약의 사제직에 종지부를 찍는다. 그래서 단 한번으로 당신의 제사를 완전히 바치셨고 영원히 인류를 위한 중개자가 되시고,(히브 7,24-25) 새로운 계약의 중개자가 되신다.(히브 8,6-13; 10,12-18)6)


   히브리서의 강조점은 세 가지 차원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7)


   첫째는, 구약에 대한 유형론적 해석이다. 이는 단순한 상징으로서의 알레고리가 아니라, 오히려 진지한 역사로서 그 자체를 넘어서서 종말을 지시해주는 이스라엘 역사의 구세사적 관점을 말해준다. 히브리서는 모든 역사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구원의지를 직시한다.


   둘째는, 그리스도 중심적이다. 그리스도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궁극적이고 결정적인 마지막 말씀으로 그의 대사제직은 하느님의 결정적인 인간 구원행위이다. 히브리서는 예수의 인성을 풍부히 강조하면서 동시에 하느님의 아들임을 증언한다.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희생제사가 실질적이고 영원한 중요성을 띠며 다른 모든 사제직을 대체한다. 나아가 육화한 그리스도의 인성(고통과 승리, 하느님께 대한 순명과 충실, 천상에 오름)은 그의 백성들에게 모두 해당한다. 사제로서 그리스도의 오심이 육화의 동기로서 제시된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인격과 업적 안에서 완전한 중개자로 제시된다.


   셋째는, 종말론적 의식이다. 신앙의 결단과 참된 회개를 촉구하는 히브리서의 목소리는 그리스도의 도래와 희생, 대사제로 천상에 오르심으로써 참으로 마지막 시대가 도래했다는 긴박한 사실에 근거한다.


   이와 같이 히브리서에 나타난 구세사적 관점, 그리스도 중심적 관점, 종말론적 의식을 고려할 때 이제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경신-사제적 관점에서 역으로 그리스도 중심의 구세사적 관점으로 폭넓게 이해할 수 있다. 즉, 그리스도의 인격과 업적은 긴밀히 일치하고 있으므로 예수의 공생활 자체도 사제적 활동으로 볼 수 있다. 예수의 희생적 죽임이 예수의 사제직의 핵심이라면, 예수의 생애는 사제직을 수행한 삶이요, 이 삶 자체가 경신례가 되는 것이다. 예수의 경신례적인 생애는 성전 안이 아니라 군중과 함께하는 세속을 배경으로 채워져 있다. 따라서 언덕에서 때로는 배 위에서 혹은 식사하면서 일상사에 임하는 군중들과 삶을 나눈 것이고, 마침내 당신의 시간(καιρος)이 닥쳤을 때, 사형선고를 받고, 수난 당하며, 십자가에 처형된 것도 군중 가운데의 공개석상이었다.8) 특히 자신의 결정적으로 사제직을 수행한 장소는 성전이 아니라 ‘성문 밖’의 세속인들의 삶과 죽음이 이루어지는 무대였다.(히브 10,45)9)


   이상 신약성서에 드러난 그리스도의 사제직의 핵심을 요약하면, 예수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참되고 유일한 중개자로서 제물봉헌자와 희생제물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가 됨으로써 그의 생애자체가 경신례가 되며, 그의 생애는 물론이거니와 결정적인 십자가 사건 또한 일상으로부터 분리된 성역이 아니라 일상생활공간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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