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3.4 루터의 만인 사제론과 트리엔트 공의회의 단죄




  16세기 종교개혁가들은 성품 성사에 의해 주어지고 성찬을 거행할 배타적인 권한을 가진 특별한 사제직의 존재를 부정하였다.1) 직무사제직의 전통적인 이해에 관한 근대의 위기는 처음으로 루터의 항의에 의해 표면화되었다. 루터는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피라밋형의 교회 조직을 반대하고 성직을 부정하면서, 1520년 발표한 『기독교 귀족에게 보내는 글』, 『교회의 바빌론 포로』, 『그리스도인의 자유』에서 한결같이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직자이며 그들 가운데 직무 때문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한편 교역자들에 대해서 모든 사람이 다 섬기는 일을 할 것이나 다 공적으로 그런 직책을 행할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남을 대표하여 설교하며 성찬집행을 인정하였다.2) 따라서 신학적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사를 집전하고 설교할 자질이 있으나, 적절함과 질서 때문에 개인들이 공동체에 의해 이 직무들을 수행하도록 임명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아울러 최후만찬의 성사성을 부정하면서 서품된 사제의 봉사를 설교와 세례집전, 성찬의 봉사로 축소시켰다. 또한 설교하지 못하는 사제는 사제직을 기만한다고 주장했다.3)


   루터의 이런 주장은 영적인 직무의 존재를 말씀과 성사들의 봉사로서 부정한 것도 아니요, 그리스도에 의한 그것의 기원을 부정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루터는 어떤 특수한 종교적인 자질, 기능 수행을 위해 요구되고 성품성사로 수여되고 교회법으로 간직되는 자질의 필요성을 부정했다. 세례와 견진을 받은 그리스도인에게 이 기능 수행을 위해 갖추어야 하는 부르심은 충분했다. 기초적인 자질은 세례와 견진에 의해 제공되었다.4) 성찬의 제사적 특징의 부정은 집전 직무가 사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암시했다. 칼빈, 쯔빙글리, 크랜머 등도 성찬의 비성사성에 대한 각각의 관점을 유지하면서 루터의 관점을 따랐다.5)


   이에 반대하여 교회 교부들은 특별히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확언한다.6) 교회에는 그리스도의 제정에 따라 새롭고 가시적이고 외적인 사제직이 존재한다.(DS  1714, 1716, 1764, 1766, 1771, 1773) 이는 백성들이나 세속 권위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성품성사로부터 주어진다.(DS 1769, 1777)7)


   이처럼 트리엔트 공의회가 명백하게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구별없이 신약의 사제들이며, 또는 모두가 똑같은 영적인 힘을 부여받았다.”는 관점을 배척하자,(DS 1767) 공의회 이후 가톨릭 저자들은 신자들의 공통사제직에 대한 표현을 삼갔고, 어떤 이들은 심지어 교회는 단지 사제적인 힘을 갖춘 특별한 집단이 그 안에 발견된다는 의미에서만 사제적 공동체라고 확언함으로써 공통 사제직을 설명해 버리고자 하였다. 그러나 공통사제직이라는 성서적이고 전통적인 가르침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고 현대에 다시 부상하게 되었다.8)


   루터의 만인사제론의 의미와 그에 대한 평가는 개신교파들 사이에 다양하다. 칼 홀(K.Holl)은 만인사제론이 개인주의에 흘러갈 위험이 있었으나 루터에게 있어서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크레머(M.Kraemer)는 만인사제론이 개인주의로 전락하였다고 한다.9) 그리고 3가지 이유를 들어 만인사제론의 한계를 지적한다. 첫째,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해도 그들이 반드시 세례의 참뜻을 이해하고 사제가 될만한 자질을 구비했다고 할 수 없으므로, 전신자 사제직에 전적으로 찬동할 수가 없었다. 둘째, 의존적인 신앙생활을 해오던 신자들이 갑자기 영적으로 성장하여 사제의 위치에까지 올라가는 것에 대해 수용자세가 되어 있지 않았다. 셋째, 루터는 말씀 선포와 전례 주례를 위한 전문적 직무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어 스스로 만인사제론을 약화시켰다.10)


   루터의 만인사제론의 의미는 하느님 앞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간구하고 중재하는 것, 자기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것, 서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 세례를 주고, 성만찬을 거행하고, 열쇠직분을 관장하고, 교리와 영들에 대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 등이다.11) 그리고 개신교에서 만인사제론의 기능은 평신도의 자각적 생활과 교직의 전체적 치리(治理)에 대한 반항, 평신도의 근거있는 전도 행위 등으로 이해되고 있다.12) 특히, 교직의 타락을 견제하기 위해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라는 견해가 독특하다. 아울러 교계의 신적기원을 부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현실적인 제도적 측면을 무시할 수 없는 딜레마가 스스로 제시되기도 한다.13)




이 글은 카테고리: catholicdictionary3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역사-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3.4 루터의 만인 사제론과 트리엔트 공의회의 단죄


      16세기 종교개혁가들은 성품 성사에 의해 주어지고 성찬을 거행할 배타적인 권한을 가진 특별한 사제직의 존재를 부정하였다.1) 직무사제직의 전통적인 이해에 관한 근대의 위기는 처음으로 루터의 항의에 의해 표면화되었다. 루터는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피라밋형의 교회 조직을 반대하고 성직을 부정하면서, 1520년 발표한 『기독교 귀족에게 보내는 글』, 『교회의 바빌론 포로』, 『그리스도인의 자유』에서 한결같이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직자이며 그들 가운데 직무 때문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한편 교역자들에 대해서 모든 사람이 다 섬기는 일을 할 것이나 다 공적으로 그런 직책을 행할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남을 대표하여 설교하며 성찬집행을 인정하였다.2) 따라서 신학적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사를 집전하고 설교할 자질이 있으나, 적절함과 질서 때문에 개인들이 공동체에 의해 이 직무들을 수행하도록 임명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아울러 최후만찬의 성사성을 부정하면서 서품된 사제의 봉사를 설교와 세례집전, 성찬의 봉사로 축소시켰다. 또한 설교하지 못하는 사제는 사제직을 기만한다고 주장했다.3)

       루터의 이런 주장은 영적인 직무의 존재를 말씀과 성사들의 봉사로서 부정한 것도 아니요, 그리스도에 의한 그것의 기원을 부정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루터는 어떤 특수한 종교적인 자질, 기능 수행을 위해 요구되고 성품성사로 수여되고 교회법으로 간직되는 자질의 필요성을 부정했다. 세례와 견진을 받은 그리스도인에게 이 기능 수행을 위해 갖추어야 하는 부르심은 충분했다. 기초적인 자질은 세례와 견진에 의해 제공되었다.4) 성찬의 제사적 특징의 부정은 집전 직무가 사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암시했다. 칼빈, 쯔빙글리, 크랜머 등도 성찬의 비성사성에 대한 각각의 관점을 유지하면서 루터의 관점을 따랐다.5)

       이에 반대하여 교회 교부들은 특별히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확언한다.6) 교회에는 그리스도의 제정에 따라 새롭고 가시적이고 외적인 사제직이 존재한다.(DS  1714, 1716, 1764, 1766, 1771, 1773) 이는 백성들이나 세속 권위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성품성사로부터 주어진다.(DS 1769, 1777)7)

       이처럼 트리엔트 공의회가 명백하게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구별없이 신약의 사제들이며, 또는 모두가 똑같은 영적인 힘을 부여받았다.”는 관점을 배척하자,(DS 1767) 공의회 이후 가톨릭 저자들은 신자들의 공통사제직에 대한 표현을 삼갔고, 어떤 이들은 심지어 교회는 단지 사제적인 힘을 갖춘 특별한 집단이 그 안에 발견된다는 의미에서만 사제적 공동체라고 확언함으로써 공통 사제직을 설명해 버리고자 하였다. 그러나 공통사제직이라는 성서적이고 전통적인 가르침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고 현대에 다시 부상하게 되었다.8)

       루터의 만인사제론의 의미와 그에 대한 평가는 개신교파들 사이에 다양하다. 칼 홀(K.Holl)은 만인사제론이 개인주의에 흘러갈 위험이 있었으나 루터에게 있어서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크레머(M.Kraemer)는 만인사제론이 개인주의로 전락하였다고 한다.9) 그리고 3가지 이유를 들어 만인사제론의 한계를 지적한다. 첫째,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해도 그들이 반드시 세례의 참뜻을 이해하고 사제가 될만한 자질을 구비했다고 할 수 없으므로, 전신자 사제직에 전적으로 찬동할 수가 없었다. 둘째, 의존적인 신앙생활을 해오던 신자들이 갑자기 영적으로 성장하여 사제의 위치에까지 올라가는 것에 대해 수용자세가 되어 있지 않았다. 셋째, 루터는 말씀 선포와 전례 주례를 위한 전문적 직무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어 스스로 만인사제론을 약화시켰다.10)

       루터의 만인사제론의 의미는 하느님 앞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간구하고 중재하는 것, 자기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것, 서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 세례를 주고, 성만찬을 거행하고, 열쇠직분을 관장하고, 교리와 영들에 대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 등이다.11) 그리고 개신교에서 만인사제론의 기능은 평신도의 자각적 생활과 교직의 전체적 치리(治理)에 대한 반항, 평신도의 근거있는 전도 행위 등으로 이해되고 있다.12) 특히, 교직의 타락을 견제하기 위해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라는 견해가 독특하다. 아울러 교계의 신적기원을 부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현실적인 제도적 측면을 무시할 수 없는 딜레마가 스스로 제시되기도 한다.13)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