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의도 안에 나타난 그리스도론

1) 그리스도론의 본질적인 지침
(1) 역동적 그리스도론과 예수(의 인격)
우리는 그리스도의 위격과 업적을 더 깊이 알아들으려 노력하지만, 위격과 업적을 분리하지는 않는다. 그리스도에 대해 연구하면서 다만 그리스도가 역사적 존재라는 사실에 만족하지 않고 그 안에서 인류 구원의 실현을 원한 신적 행위의 역동성을 대상으로 삼는다. 이 역동성은 구세주를 세상에 개입시켰고 그의 구원적 사명을 자극한 더 근본적인 역동성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완전하게 하지는 못하므로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자칫 그리스도의 위격에 대한 연구가 업적보다 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과연 그런가?
일부 신학자들은 기능적인 그리스도론을 주장한다. O.Cullmann은 그리스도의 위격에 대한 것보다 업적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신약성서에서 그리스도는 누구인가에 대해 그는 그것을 그분의 기능에 대한 질문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의 위격이 중요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질문하신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Mt 16,15). 예수는 그들에게 당신이 누구인지를 물으신다. 이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한 것이다. 신앙은 예수의 기능, 업적을 보고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먼저 당신의 위격, 정체성에 일치하는 것이다. 예수의 정체성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 업적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이 질문은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다.
예수의 인간적 모습에서 신비스런 모습이 나타난다(Mt 16,13).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많은 가정을 하게 만들었다. 예수는 이런 신앙고백을 듣고 난 후 제자들에게 예수를 따르는 방법, 수난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수는 자신의 업적 이전에 당신의 정체성에 제자들이 일치하기를 바랬다. 예수에 있어서 실제로 업적보다는 역사의 현존이 더 중요시된다.

(2) 대화적 그리스도론
예수는 모든 인간들과 대화를 즐겨했다. 당신의 정체성을 밝히는데도 대화를 사용한다. 이는 사변적 학설이 아니라 對인격적인 관계에 있다. 예를 들면 “너희는 나를 누구하고 생각하느냐?..당신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가장 단순한 형태로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생각합니까?”라고 물으셨다. 과연 이 질문이 가능한가? R.Bultmann은 여기에 대해 좀 어색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와 직접 대화하기보다는 예수의 제자들과 더 많은 대화를 했을 것이다. 제자들은 여론에 따라 스승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고 가정할 수 있었다. 따라서 예수는 제자들을 통해 여론과 함께 제자들의 생각을 알고 싶었다. 이런 교육적 의도에도 불구하고 Bultmann같은 신학자들은 교육적 의도를 부인한다. 그러나 제자들의 대답은 하나의 신앙고백이었다. 이를 통해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제자들에게 알리고 은연중에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왜냐하면 메시아의 수난을 이해시키기 위해 당신이 메시아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당신에 대해 직접 분명하게 말한 적은 없다. 그러나 제자들은 아직도 신앙고백의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 즉 개인적으로는 있었지만 공동체의 신앙고백이 없었던 것이다. 예수는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질문을 자주 하시는데 여기서 제기하는 질문은 이전의 업적, 말씀과 연관되어 있다. 예를 들면 폭풍우를 가라 앉히신 다음 한 대화이다(Mk 4,35-41).
모든 기적, 표징, 가르침은 예수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요건을 충분히 제공해 주었다. 예수는 항상 당신에 대해 스스로 정의하기를 꺼려하신 대신에 그들이 스스로 깨닫기를 원하셨다. 이는 당신의 위격이 형식 안에 맡겨지기를 원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어떤 형식 안에 자신을 드러낼 때 이는 습관적인 표현에 그치고 말게 된다.
예수는 대화를 원하셨다. 모든 사람들 개개인이 그리스도가 누구인가를 스스로 대답하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다.

(3) 예수의 지상생활에서 태어나는 그리스도론
예수는 지상에서 사는 동안 당신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한다. 또한 부활로써 그것이 충만히 드러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 앞서 예수는 질문을 하시고 자신을 알 수 있을 만큼의 기적과 업적과 말씀을 선포하셨다. 예수가 역사에 살아있는 동안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한 질문은 예수에 대한 신앙이 이미 예수의 죽음, 부활 이전에 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즉 부활을 통해 새로운 신앙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 이전의 예수 당시에 이미 신앙이 더 굳건하고 견고해진 것이다. 예수의 부활 후에 생긴 신앙은 예수의 위격에 대한 이해를 부족하게 만든다. 따라서 지상삶 자체 안에서의 삶, 존재의 신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 안에서의 예수를 살펴보아야 한다.

(4) 신비를 추구하는 그리스도론
예수의 질문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모든 그리스도론은 인간을 향하고 있다. 예수는 제자들을 신비속에 끌어들이기 위해 질문하시는데 그 질문자체가 일상적 질문이 아니라 신비를 암시하고 있다.
“예수께서 혼자 기도하시다가 곁에 있던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하고 물으셨다”(Lk 9,18). 고대하는 대답을 제자들로부터 듣기 위해 예수는 아버지께 기도한다. 제자들에게서 처음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을 유출한 것은 기도였다. 그리스도에 대한 연구는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기도하고 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예수가 기도했다는 것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Mt 16,15). 인간적 기원을 초월하는 어떤 정체성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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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의도 안에 나타난 그리스도론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1) 그리스도론의 본질적인 지침
    (1) 역동적 그리스도론과 예수(의 인격)
    우리는 그리스도의 위격과 업적을 더 깊이 알아들으려 노력하지만, 위격과 업적을 분리하지는 않는다. 그리스도에 대해 연구하면서 다만 그리스도가 역사적 존재라는 사실에 만족하지 않고 그 안에서 인류 구원의 실현을 원한 신적 행위의 역동성을 대상으로 삼는다. 이 역동성은 구세주를 세상에 개입시켰고 그의 구원적 사명을 자극한 더 근본적인 역동성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완전하게 하지는 못하므로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자칫 그리스도의 위격에 대한 연구가 업적보다 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과연 그런가?
    일부 신학자들은 기능적인 그리스도론을 주장한다. O.Cullmann은 그리스도의 위격에 대한 것보다 업적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신약성서에서 그리스도는 누구인가에 대해 그는 그것을 그분의 기능에 대한 질문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의 위격이 중요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질문하신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Mt 16,15). 예수는 그들에게 당신이 누구인지를 물으신다. 이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한 것이다. 신앙은 예수의 기능, 업적을 보고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먼저 당신의 위격, 정체성에 일치하는 것이다. 예수의 정체성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 업적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이 질문은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다.
    예수의 인간적 모습에서 신비스런 모습이 나타난다(Mt 16,13).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많은 가정을 하게 만들었다. 예수는 이런 신앙고백을 듣고 난 후 제자들에게 예수를 따르는 방법, 수난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수는 자신의 업적 이전에 당신의 정체성에 제자들이 일치하기를 바랬다. 예수에 있어서 실제로 업적보다는 역사의 현존이 더 중요시된다.

    (2) 대화적 그리스도론
    예수는 모든 인간들과 대화를 즐겨했다. 당신의 정체성을 밝히는데도 대화를 사용한다. 이는 사변적 학설이 아니라 對인격적인 관계에 있다. 예를 들면 “너희는 나를 누구하고 생각하느냐?..당신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가장 단순한 형태로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생각합니까?”라고 물으셨다. 과연 이 질문이 가능한가? R.Bultmann은 여기에 대해 좀 어색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와 직접 대화하기보다는 예수의 제자들과 더 많은 대화를 했을 것이다. 제자들은 여론에 따라 스승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고 가정할 수 있었다. 따라서 예수는 제자들을 통해 여론과 함께 제자들의 생각을 알고 싶었다. 이런 교육적 의도에도 불구하고 Bultmann같은 신학자들은 교육적 의도를 부인한다. 그러나 제자들의 대답은 하나의 신앙고백이었다. 이를 통해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제자들에게 알리고 은연중에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왜냐하면 메시아의 수난을 이해시키기 위해 당신이 메시아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당신에 대해 직접 분명하게 말한 적은 없다. 그러나 제자들은 아직도 신앙고백의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 즉 개인적으로는 있었지만 공동체의 신앙고백이 없었던 것이다. 예수는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질문을 자주 하시는데 여기서 제기하는 질문은 이전의 업적, 말씀과 연관되어 있다. 예를 들면 폭풍우를 가라 앉히신 다음 한 대화이다(Mk 4,35-41).
    모든 기적, 표징, 가르침은 예수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요건을 충분히 제공해 주었다. 예수는 항상 당신에 대해 스스로 정의하기를 꺼려하신 대신에 그들이 스스로 깨닫기를 원하셨다. 이는 당신의 위격이 형식 안에 맡겨지기를 원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어떤 형식 안에 자신을 드러낼 때 이는 습관적인 표현에 그치고 말게 된다.
    예수는 대화를 원하셨다. 모든 사람들 개개인이 그리스도가 누구인가를 스스로 대답하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다.

    (3) 예수의 지상생활에서 태어나는 그리스도론
    예수는 지상에서 사는 동안 당신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한다. 또한 부활로써 그것이 충만히 드러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 앞서 예수는 질문을 하시고 자신을 알 수 있을 만큼의 기적과 업적과 말씀을 선포하셨다. 예수가 역사에 살아있는 동안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한 질문은 예수에 대한 신앙이 이미 예수의 죽음, 부활 이전에 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즉 부활을 통해 새로운 신앙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 이전의 예수 당시에 이미 신앙이 더 굳건하고 견고해진 것이다. 예수의 부활 후에 생긴 신앙은 예수의 위격에 대한 이해를 부족하게 만든다. 따라서 지상삶 자체 안에서의 삶, 존재의 신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 안에서의 예수를 살펴보아야 한다.

    (4) 신비를 추구하는 그리스도론
    예수의 질문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모든 그리스도론은 인간을 향하고 있다. 예수는 제자들을 신비속에 끌어들이기 위해 질문하시는데 그 질문자체가 일상적 질문이 아니라 신비를 암시하고 있다.
    “예수께서 혼자 기도하시다가 곁에 있던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하고 물으셨다”(Lk 9,18). 고대하는 대답을 제자들로부터 듣기 위해 예수는 아버지께 기도한다. 제자들에게서 처음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을 유출한 것은 기도였다. 그리스도에 대한 연구는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기도하고 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예수가 기도했다는 것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Mt 16,15). 인간적 기원을 초월하는 어떤 정체성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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