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이라는 용어의 의미(하)


 

4. 신약성서


        charis라는 명사는 요한 복음 1, 14-17에 세번 나타난다. “그분에게는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였다. 우리는 모두 그 분에게서 넘치는 은총을 받고 또 받았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진리를 받았다.”(pleres charitos kai aletheias… oti ek tou pleromatos autuu hemeis pantes elabomen, kai charin anti charitos he charis:  full of grace and truth… Indeed, from his fullness we have, all of us, recievied one gift replacing anothergrace and truth have come through Jesus Christ:


        charizomai라는 동사는 루가 복음에만 나타난다. 루가 1, 28: “은총이 가득히 받으신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게 계신다: kai eiselthon pros auten eiphen, chaire, kecharitomene, ho kurios meta su: He went in and said to her ” Rejoice, you who enjoy God’ favour! The Lord is with you.”.


        루가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자주 나타나는 이 용어는 구약성서의 hen의 의미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본래 신학적 용어가 아니었지만 서서히 신학적 용어로 정착되었다고 볼 수 있다.


        1. 호의의 의미로서의 은총: 루가 17, 9: charin: 그 종이 명령대로 했다 해서 주인이 고마워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 Must be grateful to the servant for doing what he was told? 사도 2, 47; 4, 33; 24, 27; 25, 3. 9.


        2. 구약성서와 관련된 종교적 용법으로서의 은총:


        루가 1,30: “두려워하지 말라. 마리아 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  “Mary do not afraid; you have won God’s favour“. 루가 2, 40: 2, 52; 6, 32. 33. 34; 사도 7, 46; 7, 10.


        3. 구원의 메시지. 하느님의 말씀과 관련된 은총: 루가 4, 22; 사도 20, 24(은총의 말씀).


        4. 동사 charizomai: 루가 7, 21. 42; echarisato. 사도 3, 14; 사도 25, 11. 16.



        은총이라는 용어는 무엇보다도 바울로 사도에게서 많이 만날 수 있다. 사도 바울로에게 charis는 구원 사건을 분명하게 이해케하는 중심개념이다. 그 용어가 단순히 감사를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로마 6, 17; 7. 25; 코린 전 15, 57; 코린 후 8, 16; 9, 15의 경우이다. 또는 감사와 봉헌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코린 전 16, 3; 코린 후 8, 1-3; 코린 전 10, 30.


        


        1) 바울로의 인사말에 잘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로마 1, 7(: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리시는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깃들기를 빕니다); 티모 전 6, 21(: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은총을 내려 주시기를 빕니다)이다. 바울로는 히브리인들의 전통적인 평화(샬롬)의 인사에 은총의 인사를 첨가하고 있다. 이러한 인사법은 바울로 이전의 전례적 형식에 기인하는 것으로 본다. 가령 관사가 사용되지 않고 있다든가 또 그 신학 역시 바울로의 것이 아니라고 본다. 관사없이 사용되는 것은 초기 그리스도교적 전례 형식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특히 바울로는 이 용어를 구원 사건의 구조를 심화시키는데 사용하고 있다. 본시 이 용어의 기본적 출발점은 “선물에 의해 기쁨을 느끼는 것(making glad by gifts)”이다. 바울로는 하느님의 본성의 의문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리스 안에서 구원의 역사적 드러남에 대해서 관심을 보였다. 그러므로 그는 은혜로운 하느님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현실화되어 나타나는 은총에 관해서 말하고 있다. 예컨대 갈라 2, 21(: “나는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게 하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은총은 율법과 대치되는 개념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얻게된 구원,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이다. 그것은 선포되고 있는 복음 안에서 현실화되는 것이기도 하다(로마 1, 17 참조). 만일 하느님의 호의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동일시되면 그 절대성이 정립되는 셈이다. 우리는 은총으로서만 구원되는 것이다. 은총은 죄인들에게 드러난다. 로마 3, 23-24(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사람을 죄에서 풀어 주시고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은총을 거저 베풀어 주셨습니다); 로마 5, 10; 갈라 2, 17-21; 로마 11, 32. 은총은 구원의 전체성이다 (코린 후 6, 1:여러분은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게 하지 마십시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은총을 지니고 있다 (코린 전 1, 4: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여러분이 받은 하느님의 은총을 생각하면서 나는 언제나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은총이라는 무상성을 드러낸다 (로마 4,4: 공로가 있는 사람이 받는 보수는 자기가 마땅히 받을 품삯을 받는 것이지 결코 선물로 받는 것이 아니다. 로마 3, 24: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은총을 거저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것은 신앙 안에서만 이루어진다. 이 무상성이 신앙을 율법과 대치시킨다 (갈라 2, 21; 5, 4:율법을 지킴으로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려는 여러분은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끊어졌고 은총에서 벗어났습니다). 은총은 믿음과 한 쌍을 이루어 율법과 대조되고 있다(로마 4, 14-16:…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은총을 베푸시며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에게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르는 사람들에게까지… 그 약속을 보장해 주십니다). 이러한 은총의 무상성이 바울로의 구원관을 잘 이해하게 한다. 이러한 은총의 무상성은 로마 11, 5-6에서 더욱 잘 나타난다. “이와 같이 지금도 은총으로 뽑힌 사람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자기 공로로 뽑힌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 뽑힌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무슨 공로가 있어서 뽑힌 것이라면 그의 은총은 은총이 아닐 것입니다”.


        3. 은총의 힘은 죄를 극복하게 한다( 로마 5, 20-21: 법이 생겨서 범죄는 늘어났지만 죄가 많은 곳에는 은총도 풍성하게 내렸습니다. 그래서 죄는 세상에 군림하여 죽음 가져다 주었지만 은총은 군림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있게 하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합니다). 이 은총의 초월성은 양적인 측면에서 다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질적인 차원에 속하는 것이다. 하나의 힘으로서 이러한 은총 이해는 역사적이다. 그것은 교회 안에서 현실화되고 있다 (필립 1, 7: “여러분은 내가 갇혀 있을 때나 복음을 수호하고 입증할 때에 나와 함께 은총을 나누어 받으며 고생을 같이 해 온 사람들로서 항상 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으니 내가 여러분을 그런 생각으로 대하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은총은 관대함을 가능하게 하는 힘을 지닌다(코린 후 8, 1; 9, 8). 은총의 목표는 “모든 좋은 일”이다(코린 후 9, 8: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모든 은총을 충분히 주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언제나 모든 것을 넉넉하게 가질 수 있고, 온갖 좋은 일을 얼마든지 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바울로의 특별한 은총은 그의 사도적 직무이다( 로마 1, 5: “내가 은총으로 사도직을 받은 것도 그분을 통해서였습니다”; 로마 12, 3: “나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으로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합니다”; 15, 15(: “하느님께서 내게 은총으로 주신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코린 전 3, 10:“나는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으로 능숙한 건축가가 되어 기초를 놓았고…”). 또 그러한 직무를 벗어나는 사실도 은총이다(코린 후 2, 12: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분의 뜻을 따라 솔직하고도 진실하게 살아왔다).


        5. 동사 charizomai는 명사의 정확한 의미를 되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항상 “주다”라는 기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갈라 3, 18: kecharistai: “ Dio invece concesse il suo favore ad Abramo mediante la promessa.하느님께서는 약속에 의해서 아브라함에게 호의를 허락하여 주셨다(하느님께서는 약속에 따라 아브라함에게 상속의 선물을 주신 것입니다). 로마 8, 32에서는 구원론적 문맥에서 사용되고 있다: charisetai: Egli che non ha risparmiato il proprio Figlio, ma lo ha dato per tutti noi, come non ci danera’ ogni cosa insieme con lui?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당신의 아들까지 아낌없이 내어 주신 하느님께서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이든지 다 주시지 않겠습니까?”) 여기서도 ‘주다’라는 동사와 관련하여 무상성의 행위가 드러난다. 




        이밖에도


        법률분야에서 ‘은총’이라는 말은 ‘사면을 베풀다’로 변역된다. 여기서 은총은 형량의 전체 또는 일부를 감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종교 영역에서 ‘은총’은 하느님의 자비와 그분의 용서를 뜻한다. ‘은총에 감사한다’, ‘고마워한다’는 것은 그러한 선물에 대한 인식을 의미한다. 즉 ‘은총’은 ‘선물’이다. 당연한 의무가 아니라 완전한 ‘무상의 베품’이다. 이러한 은총의 여러 가지 의미들을 다양하게 이해하면서도 하나로 통일할 수 있는 있는지 물음이 제기될 수 있다.


        은총이란 세계와 인간 안에 살아 있는 하느님의 현존을 의미한다. 은총은 한편으로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개방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은총은 항상 자신을 내주는 하느님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내맡기는 한 인간 사이의 만남이다. 바로 그 본질상 은총은 관계이고, 탈출이고, 친교이고 만남이며 개방성이고 그리고 대화이다. 은총은 두 자유의 역사이고, 두 사랑의 만남이다. 그리고 은총은 하느님의 성품이 아니라 하느님의 본질이다. 하느님이 은총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바로 은총이다(레오나르도 보프, “해방하는 은총”, 17-18).


        “은총은 ‘하느님이 나에게 어떻게 처신하는가?’하는 물음에 대한 ‘하느님은 자유롭고, 극도의 사랑으로서 자유로이 행동하신다’라는 대답 사이의 관계 개념이다. 즉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관계와 여기서 생겨난 하느님의 사랑에 직면한 인간의 자기 이해를 말한다”(그레사케, 은총 -선사된 자유). 그레사케는 인간의 관점에서 은총론을 ‘그리스도교의 자유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하느님을 주체로 보는 관점에서 그리스도교의 은총론이란 바로 하느님의 사랑론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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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이라는 용어의 의미(하)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4. 신약성서

            charis라는 명사는 요한 복음 1, 14-17에 세번 나타난다. “그분에게는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였다. 우리는 모두 그 분에게서 넘치는 은총을 받고 또 받았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진리를 받았다.”(pleres charitos kai aletheias… oti ek tou pleromatos autuu hemeis pantes elabomen, kai charin anti charitos he charis:  full of grace and truth… Indeed, from his fullness we have, all of us, recievied one gift replacing anothergrace and truth have come through Jesus Christ:

            charizomai라는 동사는 루가 복음에만 나타난다. 루가 1, 28: “은총이 가득히 받으신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게 계신다: kai eiselthon pros auten eiphen, chaire, kecharitomene, ho kurios meta su: He went in and said to her ” Rejoice, you who enjoy God’ favour! The Lord is with you.”.

            루가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자주 나타나는 이 용어는 구약성서의 hen의 의미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본래 신학적 용어가 아니었지만 서서히 신학적 용어로 정착되었다고 볼 수 있다.

            1. 호의의 의미로서의 은총: 루가 17, 9: charin: 그 종이 명령대로 했다 해서 주인이 고마워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 Must be grateful to the servant for doing what he was told? 사도 2, 47; 4, 33; 24, 27; 25, 3. 9.

            2. 구약성서와 관련된 종교적 용법으로서의 은총:

            루가 1,30: “두려워하지 말라. 마리아 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  “Mary do not afraid; you have won God’s favour“. 루가 2, 40: 2, 52; 6, 32. 33. 34; 사도 7, 46; 7, 10.

            3. 구원의 메시지. 하느님의 말씀과 관련된 은총: 루가 4, 22; 사도 20, 24(은총의 말씀).

            4. 동사 charizomai: 루가 7, 21. 42; echarisato. 사도 3, 14; 사도 25, 11. 16.

            은총이라는 용어는 무엇보다도 바울로 사도에게서 많이 만날 수 있다. 사도 바울로에게 charis는 구원 사건을 분명하게 이해케하는 중심개념이다. 그 용어가 단순히 감사를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로마 6, 17; 7. 25; 코린 전 15, 57; 코린 후 8, 16; 9, 15의 경우이다. 또는 감사와 봉헌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코린 전 16, 3; 코린 후 8, 1-3; 코린 전 10, 30.

            

            1) 바울로의 인사말에 잘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로마 1, 7(: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리시는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깃들기를 빕니다); 티모 전 6, 21(: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은총을 내려 주시기를 빕니다)이다. 바울로는 히브리인들의 전통적인 평화(샬롬)의 인사에 은총의 인사를 첨가하고 있다. 이러한 인사법은 바울로 이전의 전례적 형식에 기인하는 것으로 본다. 가령 관사가 사용되지 않고 있다든가 또 그 신학 역시 바울로의 것이 아니라고 본다. 관사없이 사용되는 것은 초기 그리스도교적 전례 형식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특히 바울로는 이 용어를 구원 사건의 구조를 심화시키는데 사용하고 있다. 본시 이 용어의 기본적 출발점은 “선물에 의해 기쁨을 느끼는 것(making glad by gifts)”이다. 바울로는 하느님의 본성의 의문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리스 안에서 구원의 역사적 드러남에 대해서 관심을 보였다. 그러므로 그는 은혜로운 하느님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현실화되어 나타나는 은총에 관해서 말하고 있다. 예컨대 갈라 2, 21(: “나는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게 하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은총은 율법과 대치되는 개념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얻게된 구원,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이다. 그것은 선포되고 있는 복음 안에서 현실화되는 것이기도 하다(로마 1, 17 참조). 만일 하느님의 호의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동일시되면 그 절대성이 정립되는 셈이다. 우리는 은총으로서만 구원되는 것이다. 은총은 죄인들에게 드러난다. 로마 3, 23-24(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사람을 죄에서 풀어 주시고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은총을 거저 베풀어 주셨습니다); 로마 5, 10; 갈라 2, 17-21; 로마 11, 32. 은총은 구원의 전체성이다 (코린 후 6, 1:여러분은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게 하지 마십시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은총을 지니고 있다 (코린 전 1, 4: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여러분이 받은 하느님의 은총을 생각하면서 나는 언제나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은총이라는 무상성을 드러낸다 (로마 4,4: 공로가 있는 사람이 받는 보수는 자기가 마땅히 받을 품삯을 받는 것이지 결코 선물로 받는 것이 아니다. 로마 3, 24: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은총을 거저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것은 신앙 안에서만 이루어진다. 이 무상성이 신앙을 율법과 대치시킨다 (갈라 2, 21; 5, 4:율법을 지킴으로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려는 여러분은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끊어졌고 은총에서 벗어났습니다). 은총은 믿음과 한 쌍을 이루어 율법과 대조되고 있다(로마 4, 14-16:…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은총을 베푸시며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에게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르는 사람들에게까지… 그 약속을 보장해 주십니다). 이러한 은총의 무상성이 바울로의 구원관을 잘 이해하게 한다. 이러한 은총의 무상성은 로마 11, 5-6에서 더욱 잘 나타난다. “이와 같이 지금도 은총으로 뽑힌 사람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자기 공로로 뽑힌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 뽑힌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무슨 공로가 있어서 뽑힌 것이라면 그의 은총은 은총이 아닐 것입니다”.

            3. 은총의 힘은 죄를 극복하게 한다( 로마 5, 20-21: 법이 생겨서 범죄는 늘어났지만 죄가 많은 곳에는 은총도 풍성하게 내렸습니다. 그래서 죄는 세상에 군림하여 죽음 가져다 주었지만 은총은 군림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있게 하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합니다). 이 은총의 초월성은 양적인 측면에서 다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질적인 차원에 속하는 것이다. 하나의 힘으로서 이러한 은총 이해는 역사적이다. 그것은 교회 안에서 현실화되고 있다 (필립 1, 7: “여러분은 내가 갇혀 있을 때나 복음을 수호하고 입증할 때에 나와 함께 은총을 나누어 받으며 고생을 같이 해 온 사람들로서 항상 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으니 내가 여러분을 그런 생각으로 대하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은총은 관대함을 가능하게 하는 힘을 지닌다(코린 후 8, 1; 9, 8). 은총의 목표는 “모든 좋은 일”이다(코린 후 9, 8: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모든 은총을 충분히 주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언제나 모든 것을 넉넉하게 가질 수 있고, 온갖 좋은 일을 얼마든지 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바울로의 특별한 은총은 그의 사도적 직무이다( 로마 1, 5: “내가 은총으로 사도직을 받은 것도 그분을 통해서였습니다”; 로마 12, 3: “나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으로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합니다”; 15, 15(: “하느님께서 내게 은총으로 주신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코린 전 3, 10:“나는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으로 능숙한 건축가가 되어 기초를 놓았고…”). 또 그러한 직무를 벗어나는 사실도 은총이다(코린 후 2, 12: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분의 뜻을 따라 솔직하고도 진실하게 살아왔다).

            5. 동사 charizomai는 명사의 정확한 의미를 되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항상 “주다”라는 기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갈라 3, 18: kecharistai: “ Dio invece concesse il suo favore ad Abramo mediante la promessa.하느님께서는 약속에 의해서 아브라함에게 호의를 허락하여 주셨다(하느님께서는 약속에 따라 아브라함에게 상속의 선물을 주신 것입니다). 로마 8, 32에서는 구원론적 문맥에서 사용되고 있다: charisetai: Egli che non ha risparmiato il proprio Figlio, ma lo ha dato per tutti noi, come non ci danera’ ogni cosa insieme con lui?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당신의 아들까지 아낌없이 내어 주신 하느님께서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이든지 다 주시지 않겠습니까?”) 여기서도 ‘주다’라는 동사와 관련하여 무상성의 행위가 드러난다. 


            이밖에도

            법률분야에서 ‘은총’이라는 말은 ‘사면을 베풀다’로 변역된다. 여기서 은총은 형량의 전체 또는 일부를 감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종교 영역에서 ‘은총’은 하느님의 자비와 그분의 용서를 뜻한다. ‘은총에 감사한다’, ‘고마워한다’는 것은 그러한 선물에 대한 인식을 의미한다. 즉 ‘은총’은 ‘선물’이다. 당연한 의무가 아니라 완전한 ‘무상의 베품’이다. 이러한 은총의 여러 가지 의미들을 다양하게 이해하면서도 하나로 통일할 수 있는 있는지 물음이 제기될 수 있다.

            은총이란 세계와 인간 안에 살아 있는 하느님의 현존을 의미한다. 은총은 한편으로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개방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은총은 항상 자신을 내주는 하느님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내맡기는 한 인간 사이의 만남이다. 바로 그 본질상 은총은 관계이고, 탈출이고, 친교이고 만남이며 개방성이고 그리고 대화이다. 은총은 두 자유의 역사이고, 두 사랑의 만남이다. 그리고 은총은 하느님의 성품이 아니라 하느님의 본질이다. 하느님이 은총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바로 은총이다(레오나르도 보프, “해방하는 은총”, 17-18).

            “은총은 ‘하느님이 나에게 어떻게 처신하는가?’하는 물음에 대한 ‘하느님은 자유롭고, 극도의 사랑으로서 자유로이 행동하신다’라는 대답 사이의 관계 개념이다. 즉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관계와 여기서 생겨난 하느님의 사랑에 직면한 인간의 자기 이해를 말한다”(그레사케, 은총 -선사된 자유). 그레사케는 인간의 관점에서 은총론을 ‘그리스도교의 자유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하느님을 주체로 보는 관점에서 그리스도교의 은총론이란 바로 하느님의 사랑론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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