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계약
성서의 또 다른 이름이 약속(Testament)이다. 하느님은 인간과 약속을 건넴으로써 인간을 점차 희망으로 이끌었다. 그렇기 때문에 유다-그리스도교 신앙의 역사는 시초부터 희망의 역사다. 오늘날 우리가 희망으로 지니는 부활 신앙, 하느님 나라, 영혼의 불멸성, 자아실현, 행복, 구원, 낙원, 완성은 이스라엘 신앙의 초기에 아주 작은 약속으로부터 출발한다. 아브라함에게 유목민으로서 차지하게 될 땅과 자손과 하느님과의 특별한 관계가 약속된다.“야훼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선조들에게 주겠다고 맹세하신 땅”에 관한 약속은 이스라엘 백성을 에집트로부터 탈출을 가능하게 하였다. 노예생활로부터 해방인 출애급 사건은 다시 한 번 약속과 초대가 반복된다. 하느님은 불타는 가시덤불에서 해방과 차지하게 될 땅을 언급하신다(출애 3, 7-12). 여기서 약속은 아브라함의 약속을 초과한다.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뭇 민족 가운데서 특별한 보호와 은총을 약속하신다(출애 19,4-6).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약속 땅과 후손의 번성과 하느님과의 특별한 관계는 계속 희망해야할 약속의 내용을 이루며 계속 반복되는 가운데 성장하고 있다. 가나안 정착후 하느님은 “계약의 궤”를 통하여 함께 하신다. 다윗 시대에 와서 예언자 나단을 통해 자손의 번성은 자손이 영원한 왕권을 장악하게 되는 것으로 약속된다(2 사무 7, 8-16). 이러한 예언은 마침내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의 탄생으로 이어진다(이사 9, 1-6).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 하느님의 아들이 태어나신다는 것이다. ‘차지하게 될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 희망의 내용이 커져가고 마침내 ‘새 하늘 새 땅’ ‘천상 예루살렘’을 꿈꾸게 된다. “‘장차 어느 날엔가 야훼의 집이 서 있는 산이 모든 멧부리 위에 우뚝 서고, 모든 언덕 위에 드높이 솟아 만국이 그리고 물밀 듯이 밀려 들리라. 그 때 수많은 민족이 모여 와서 말하리라. 야훼의 산으로, 야곱의 하느님께서 계신 전으로! 사는 길을 그에게 배우고 그 길을 따라가자. 법은 시온에서 나오고, 야훼의 말씀은 예루살렘에서 나오느니’ 그가 민족간의 분쟁을 심판하시고, 나라 사이의 분규를 조정하시리라.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민족들은 칼을 들고 서로 싸우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훈련도 하지 아니하리라. 오, 야곱의 가문이여, 야훼의 빛을 받으며 걸어가자”(이사 2, 2-5; 참조: 이사 65,17-25).
이러한 계약의 반복과 성장은 이스라엘 백성을 마침내 종말론적 희망으로 이끌었다. 사실 선조들과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선택과 계약에 주저했다. 모세도 그랬고, 이사야도 그랬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친히 설득하시고 격려하셔야 했다. 이러한 희망의 성장은 역사적 체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예언자들은 과거를 반성하면서 이스라엘을 새로운 신앙으로 이끌고 있다. 모든 과거의 역사적 체험에서 하느님의 주도권을 인식하고 이스라엘의 마지막 희망의 뿌리를 성실하게 약속을 지키신 하느님께 두고 있는 것이다. 희망의 근거를 하느님에게서 찾는 것은 인간이 적극적인 참여 없이 그저 약속의 성취를 인내롭게 기다려야만 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하느님의 약속은 자주 인간으로 하여금 행동하도록 초대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고향과 친척을 떠나 미지의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했다.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기 위해 먼저 망명지 광야의 삶을 통하여 준비해야 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위해서 이스라엘은 ‘착한 길을 익히고 바른 삶을 살아야 했으며, 억눌린 자를 풀어주고 고아의 인권을 찾아 주며 과부를 두둔해야 했다(이사 1,17 이하). 이처럼 하느님의 계약은 인간에게 행동하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 인간의 자유를 열어 주고 있다. 이런점에서 계약사상은 하느님의 은총을 잘 드러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