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서의 은총 이해-요한 복음: 생명과 친교(나는 생명을 얻게하려고 왔다(상))

 

4.2.1. “나는 생명을 얻게하려고 왔다”(요한 10, 10)




        요한 복음사가가 예수의 메시지를 종합하여 소개하고, 복음의 케뤼그마적 선포를 종합하고 있는 요한 3,13-21, 31-36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다. “위에서 오신 분은 모든 사람 위에 계신다… 하늘에서 오신 분은 모든 사람 위에 계시며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신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 하시는 말씀은 곧 하느님의 말씀이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그의 손에 맡기셨다. 그러므로 아들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며…”(요한 3, 31-36).


        성부로부터 파견된 성자는 하느님의 초월 세계에 속하신다. 성자는 성부로부터 모든 것을 받을만큼 사랑받으신다. 구원적이고 계시적인 능력 전체를 한계없이 성령의 선물로 받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신적 세계에 관련된 모든 증언 진실하고 직접적이고 유일무이한 것이다. 그의 말씀이 곧 하느님의 말씀이시다. 요한 복음사가는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자성을 보며, 성령을 통한 그분의 구원의 활동 안에서 성부와의 친교를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 케뤼그마적 호소가 뒤따르고 있다. “성자를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요한 3, 36). 성자를 파견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선사하며 성부께서 지향하는 목적과 의도는 천상적 세계와 거리가 먼 지상적 존재인 사람들로 하여금 그 본연의 삶에 참여하게 하는 것임을 드러내고 있다. 3,16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말씀,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 이 구절은 예수의 십자가의 구속적 죽음을 통한 구원의 형식을 상기시키고 있다. 요한 1서 4,9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 주셔서 우리는 그분을 통해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넘겨주다(paradokein)”, “건네주다”라는 동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수난이 언급되고 있다. 사랑하는 아들을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에 반대하는 자에게 건네준다. 그 목적은 바로 “세상을 단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시켜 구원하시려는 것이다”(요한 3, 18). 여기에는 하느님 아버지의 성자에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즉 은총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생명을 제공하는 하느님의 은총의 제공은 그 충만한 실현을 위하여 우리의 신앙을 요구하고 있다. 신앙으로 성자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은 곧 생명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이다. 즉 파멸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결판은 지금 여기서 발생한다. “그를 믿는 사람은 죄인으로 판결받지 않으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죄인으로 판결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벌써 죄인으로 판결받았다는 것을 말해준다”(3, 18-19). 하느님의 은총이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상호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보이고 있다.


        요한 복음 5장에서도 은총의 이해를 발견할 수 있다. 베자타 연못에서 반신불수를 치유하는 ‘표징’(5, 1-15)과 유다인들과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권한 즉 그리스도론적이고 구원론적 계시에 대한 논쟁(16-30)이다. 안식일에 노동이 금지되었는데 안식일에 치유활동을 한 예수가 고발된다. 예수는 이러한 고발에 대해서 안식일에도 하느님을 위해서 일해야한다고 맞서며 자신의 활동을 정당화하고 있다. 여기서 유다인들은 예수가 자신의 활동을 하느님의 활동과 동일시하고 자신을 하느님과 동일시하는 데 분노를 터트린다. “예수께서 안식일법을 어기셨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자기 아버지라고 하시며 자기를 하느님과 같다고 하셨기 때문이다”(요한 5, 18). 사실 유다인들은 예수의 언행을 고발함으로써 그르쳤다. 성자는 무릇 성부의 뜻을 따라 행동하며, 성부께서 원하고자 하는 것을 실현하고 드러내신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예수는 성부로부터 모든 것을 받았기 때문에 ‘보여지게 된’것들을 수행하고, 그 아들이신 예수에게서 ‘보게’되는 것이다. 여기서 주도권은 항상 하느님의 것이다. 예수는 철저하게 하느님 중심주의로 사셨다. 이렇게 하느님의 구원 또는 은총으로 표현되는 생명은 성부와 성자 사이의 형언할 수 없는 친교 안에서 베풀어지는 것이었다. “성부는 성자를 사랑하셔서 친히 하시는 일을 모두 아들에게 보여주신다”(요한 5,20). 그러한 방식을 통해서 성자는 신적 권위를 지니시고, 따라서 원하는 자에게 생명을 주신다(요한 5, 21). 성자는 성부와 함께 “생명의 근원 자체”이시기 때문이다(요한 5, 26:아버지께서 생명의 근원이신 것처럼 아들도 생명의 근원이 되게하셨다). 하느님의 아들의 목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바로 생명의 세계에 참여하게 된다(요한 5, 24-25).


        반신불수의 치유를 전하는 ‘징표’사건에는 죄의 용서가 아울러 드러나고 있다. 육체적 치유가 일어나는 곳에 동시에 영혼의 치유가 발생하고 있다(요한 5, 14).  하느님의 은총은 한 인간이 온전히 되살아나는 일을 통하여 드러난다. 육체적인 것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생명이 주어지는 은총이 드러나고 있다. 요한 복음사가는 단지 프쉬케(phsyche)라는 지상적 생명을 회복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조에(Zoe)라는 영원한 생명이 선사되고 있음을 진술하고 있다. 생명은 죽음과 반대되는 것이고 죽음을 넘어선다. 그것이 ‘부활’이다. ‘생명을 위한 부활’이다. 그것은 ‘심판’과 ‘단죄’와 구별된다(요한 5,30). 인간의 근본적인 삶의 변화를 의미한다. 죽음의 영역에서 생명의 영역에로 넘어가는 것을 뜻한다. 그 모든 것이 지금 여기에서 발생하는 현재적인 것이다. 아울러 부활과 마지막 심판을 암시한다. 그 때는 생명 혹은 단죄가 마지막으로 결정적으로 다시는 뒤집을 수 없는 방식으로 완성된다는 것이다(요한 5,24-25. 29). 그러한 징표로 나타나는 것이 나자로의 부활이다(요한 11, 41-44). 이러한 부활 신학은 신학은 마르타와의 만남에서 그 절정을 이루고 있다(요한 11, 28-32). 나자로의 죽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는 사흘간 무덤 속에 있었다. 마르타의 간청에 대해서 예수는 미래적 부활을 선언으로 응답한다. 마르타는 당시 유다인들이 지니고 있었던 생각을 대변하고 있다. 마지막 날에는 생명에로 되돌아오게 되리라는 생각이다. 예수는 그 생명과 부활이 이미 지금 여기서 발생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요한 11, 25: ego eimi ). 예수에게는 하느님의 기원적 생명이 있고 인류에게 그 생명을 선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덤의 나자로를 부르는 예수의 외침은 하느님 아들로서의 능력있는 목소리를 암시한다. 신앙으로 그의 목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죽음으로부터 살아날 수 있는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예수는 죽은 친구 나자로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면서 그것을 훨씬 넘어서는 어떤 것을 지시하고 있다. 즉 영원한 생명에 대한 보증으로 나자로의 부활을 제시하고 있다. 아울러 신앙의 현재적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 예수가 참으로 생명이시라는 것을 장엄하게 드러내는 표현은 요한 14, 6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아무도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버지에게 가지 못한다”. 예수는 성부께 가는 유일한 길이시다. 성자에 대한 인식이 성부께 다가가는 유일한 길이다.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시다”(10-11). 성자 안에서 그분의 말씀과 활동 안에서 성부께 도달한다.  예수가 성부의 충만한 계시이다. 예수는 육화하신 하느님의 말씀이신 만큼, 하느님의 독생성자이신 만큼 진리이시다. 로고스 찬가에서 표현하고 있듯이 예수는 “하느님의 품안에 계신 외아들, 하느님과 똑같으신 분”이기에 하느님을 온전히 계시하실 수 있다. 예수는 성부로부터 우리에게 오는 진리로서의 길이시며, 또 우리로부터 하느님께로 상승하는 생명으로서의 길이시다. 신자들에게 신적생명을 주시는 생명 자체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부를 계시하는 만큼 그분의 신적 생명을 준다. 이러한 계시는 신앙 안에서 수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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