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3. 성화은총과 조력은총
하느님의 은총이 절대적인 아우구스티노와 그의 추종자들에게는 과연 인간의 자유가 허용되는지, 얼마나 허용되는지 질문될 수 있다. 그들에 의하면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협력없이도 죄인을 과거와 죄로부터 해방시키고 구원으로 이끄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본성의 의미는 무엇이고, 인간의 자유의지, 정진력은 무슨 필요성이 있는가? 은총을 준비할 만큼인가? 중세기 신학에서는 “하느님은 자신의 능력에 미치는 것을 행하는 사람에게 당신 은총을 거절하지 않는다”는 공식이 있다. 이 원칙은 양의적이다. 인간이 자기 자유로써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인간이 그가 할 수 있는 것을 행하면 하느님이 당신 은총을 거절하지 못하고 선사한다는 의미에서 세미뻴라지아니즘의 입장이다. 그러나 기대와 희망, 신뢰에 넘친 확신의 표현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을 행할 때 하느님은 당신 은총을 선사하시리라는 하느님에 대한 신뢰일 수 있다.
토마스 이후 인간이 은총을 준비할 때에, 그가 행할 수 있는 것을 행할 때에, 그는 하느님의 자유에 선해하는 자기 스스로의 자유의 힘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이 은총을 준비하는 것 자체가 은총이다. 이렇게 인간의 준비를 가능하게 하는 은총을 조력성총(gratia actualis)라고 하고 이 은총은 하느님의 사랑을 통하여 이루어지 지속적인 내적 처지인 성화은총(gratia sanctificans)을 준비한다. 조력은총을 협력은총(gratia cooperans)라고도 한다. 이 은총은 인간의 자유와 함께 작용하고 인간으로 하여금 성화은총을 받아들이도록 협력한다. 다시금 문제가 제기된다. 인간 본성은 무엇을 이룩하고 하느님의 은총은 무엇을 이룩하는가? 이문제는 트리엔트 공의회 이전에는 명료하게 해결될 수 없었다.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개념의 구별이 없었기 때문이다.

5.6.3. 성화은총과 조력은총
하느님의 은총이 절대적인 아우구스티노와 그의 추종자들에게는 과연 인간의 자유가 허용되는지, 얼마나 허용되는지 질문될 수 있다. 그들에 의하면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협력없이도 죄인을 과거와 죄로부터 해방시키고 구원으로 이끄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본성의 의미는 무엇이고, 인간의 자유의지, 정진력은 무슨 필요성이 있는가? 은총을 준비할 만큼인가? 중세기 신학에서는 “하느님은 자신의 능력에 미치는 것을 행하는 사람에게 당신 은총을 거절하지 않는다”는 공식이 있다. 이 원칙은 양의적이다. 인간이 자기 자유로써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인간이 그가 할 수 있는 것을 행하면 하느님이 당신 은총을 거절하지 못하고 선사한다는 의미에서 세미뻴라지아니즘의 입장이다. 그러나 기대와 희망, 신뢰에 넘친 확신의 표현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을 행할 때 하느님은 당신 은총을 선사하시리라는 하느님에 대한 신뢰일 수 있다.
토마스 이후 인간이 은총을 준비할 때에, 그가 행할 수 있는 것을 행할 때에, 그는 하느님의 자유에 선해하는 자기 스스로의 자유의 힘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이 은총을 준비하는 것 자체가 은총이다. 이렇게 인간의 준비를 가능하게 하는 은총을 조력성총(gratia actualis)라고 하고 이 은총은 하느님의 사랑을 통하여 이루어지 지속적인 내적 처지인 성화은총(gratia sanctificans)을 준비한다. 조력은총을 협력은총(gratia cooperans)라고도 한다. 이 은총은 인간의 자유와 함께 작용하고 인간으로 하여금 성화은총을 받아들이도록 협력한다. 다시금 문제가 제기된다. 인간 본성은 무엇을 이룩하고 하느님의 은총은 무엇을 이룩하는가? 이문제는 트리엔트 공의회 이전에는 명료하게 해결될 수 없었다.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개념의 구별이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