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트리덴텐 공의회의 의화 은총
종교개혁자들은 은총을 준비하는 인간의 본성에서 펠라지아니즘의 부활을 염려하고, 범죄한 인간은 자신의 자유를 완전히 상실한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여기서 “오로지 하느님만(Deus solus)”을 강조하였다. 인간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만사가 다 은총의 소산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은총은 인간을 변화시키지 않으면서도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이루시는 새로운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즉 하느님이 죄인을 의화시키는데 이 의화는 새로운 관계일 뿐이지, 인간의 변화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종교 개혁자의 입장을 거슬러 트리엔트 공의회는 가톨릭의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인간의 자력으로 구원에 이를 수 없다. 인간은 하느님의 은총을 통해서만 구원에 이른다. 이 점에서는 종교개혁자들과 의견이 일치한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의지가 수동적이거나 전적으로 소멸된다는 점에서는 반대하고 있다. 오히려 인간의 자유는 하느님의 은총과 협력할 가능성을 지닌 접점이다. 종교개혁자들과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성화은총에 의한 효과다. 하느님의 은총은 인간적 실재 속에서 인간을 관통하여 참으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기 위하여 인간을 변화시킨다는 점이다. 은총은 하느님의 처신으로서 ‘창조되지 않은 은총’이면서, 인간 실재에 이르러 변화시키는 ‘창조된 은총’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개혁자들은 인간 본성의 근원적이고 완전한 부패, 타락을 강조한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인간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인간 속에 머무르고 있는 자유를 주장한다.
2) 루터의 의화론은 인간의 전적인 수동성을 강조하고, 트리엔트 공의회는 은총을 준비하는 인간의 협력을 아울러 주장한다.
3) 개혁자들은 의화사건이 전적으로 하느님의 일인데 비하여, 트리엔트 공의회는 인간의 내적 쇄신을 권장한다.
4) 개혁자들에게 인간의 선행은 은총의 열매이다. 공의회는 인간의 행업의 공로성을 인정한다. 즉 개혁자들은 ‘하느님 홀로’를 강조하고, 공의회는 인격과 책임을 지닌 ‘인간의 협력’을 가르치고 있다.
인간의 실적주의를 반대하여 ‘은총만으로(gratia sola)’를 강조하는 루터는 죄로부터의 구원은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짐을 주장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극단적인 무력성, 수동성이 강조되고 있다. 공의회는 인간의 실제적 의화를 주장하며, 인간의 협력을 인정한다. 인간의 협력도 하느님의 은총 행위의 주도권과 우위성을 따른다는 입장을 보인다. 여기서 새롭게 조력은총이라는 용어가 계발되었다. 아우구스티노와 펠라지오가 서로 보완적인 입장이라면 루터와 공의회의 입장도 서로 보완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