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부들의 전통적 은총이해-동방교부들:그리스도교인의 신화(초기 그리이스적 사상: 오리게네스)

 

6.1.4.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


        거의 모든 교부들에게서 발견되는 이러한 이론은 안티오키아에서,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에서도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러나 전통적 양식을 반복하는 가운데 안티오키아 학파에서는 점차 윤리적 해석을 가함으로써 그러한 이론을 빈약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우리의 덕을 통하여 자녀가 된다.’


        치릴로는 전통적 양식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며 인간의 성화와 성령의 현존에 관한 놀라운 이론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그의 가르침은 ‘신화’에 집중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노와 펠라지오가 서로 대결하였던 서구에서는 오랜 세기동안 치릴로의 이론을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17세기에 와서 치릴로의 이론이 서구 세계에서 알려졌다.


        치릴로는 말씀과 성령의 신성을 세우기 위하여 우리의 신적 자녀됨의 개념을 사용하였다. ‘우리는 은총에 의해서 하느님의 자녀들이다. 그리고 예수는 본성상 하느님의 아들이시다’. ‘성령은 우리를 신화하신다. 그런 까닭에 그분은 피조물일 수 없다’. 이런 주장으로 아리우스와 마체도니우스와 대결하였다. 네스토리우스와의 대결에서도 이러한 치릴로의 생각이 이용되었다. 사도 바울로, 요한, 그리고 이레네오, 아타나시오, 그리고 가빠도치아의 교부들의 사상을 물려받으면서 치릴로는 우리에게 그리스도는 우리의 기원적 위엄성인 우리 안의 하느님의 모상을 되찾아주는 새로운 아담이심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하느님의 말씀은 인간을 신화하기 위하여 인간이 되셨다’. ‘우리와 같은 살을 취하심으로 그분은 그분의 현존과 더불어 인류의 모든 것을 완성하신다’. ‘성령은 세례 때 예수에게 내려 오셨다. 그것은 그분을 하느님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우리가 이미 그분 안에 있기 때문이다’.


        세례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업적인 역사적 행위를 통해서 새롭게 된다. 세례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일어남으로써 그분의 효과를 자신의 것이 되게 한다. 하느님은 그 안에 살기 위해서 오신다. 그는 하느님의 성전, 즉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하느님의 신적 본성을 함께 나누게 된다. 성령은 그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게 하신다. 그리스도는 모든 세례자 안에 살고 계시기 때문이다. 치릴로는 여기서 성체적 현존을 통해서 완성되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물리적 일치를 강조한다. 성체성사를 통해서 그리스도는 마치 밀가루 반죽 속의 누룩처럼 현존하신다. 그분의 살아 있는 육체를 통해서 그분은 마치 다른 왁스의 한조각처럼 우리 안에 융합되신다. 그처럼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와 함께 일치되어 있다. 마치 성부와 성자가 하나를 이루듯이. 그리스도인들은 하나의 몸을 이루고,, 하나의 성전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성화와 신화의 작업을 끝내게될 부활의 영광을 기다리면서.


        이와같은 치릴로의 이론은 풍요롭고, 새로우면서도 전통적이다. 그러나 거기에 문제점도 없지 않다. 육화 이래로 모든 인류가 신화되었다는 언급이다. 치릴로는 우주가 재생한다는 플라톤 철학의 희생자로 보인다. 치릴로가 구원으로부터 육화를 분리하지 않았다고 전제할지라도 어떻게 우리는 이러한 신비적 그리스도교적 일치를 이해할 수 있을까? 성령과의 우리의 일치에 대해서 치릴로의 입장을 훗날 쉐벤 등에 의해서 계속 시도되는 것을 보게된다. 이것이 앞으로 점차 문제가 되는 것을 보게된다. 그 때까지는 아직 분명하게 문제점으로 떠오르지 않았지만. 여기서 본질적인 것은 성 아우구스티노 이후 중요하게 남게되는, 은총 이론의 역사 안에서 그 자리를 규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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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6.1.4.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

            거의 모든 교부들에게서 발견되는 이러한 이론은 안티오키아에서,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에서도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러나 전통적 양식을 반복하는 가운데 안티오키아 학파에서는 점차 윤리적 해석을 가함으로써 그러한 이론을 빈약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우리의 덕을 통하여 자녀가 된다.’

            치릴로는 전통적 양식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며 인간의 성화와 성령의 현존에 관한 놀라운 이론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그의 가르침은 ‘신화’에 집중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노와 펠라지오가 서로 대결하였던 서구에서는 오랜 세기동안 치릴로의 이론을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17세기에 와서 치릴로의 이론이 서구 세계에서 알려졌다.

            치릴로는 말씀과 성령의 신성을 세우기 위하여 우리의 신적 자녀됨의 개념을 사용하였다. ‘우리는 은총에 의해서 하느님의 자녀들이다. 그리고 예수는 본성상 하느님의 아들이시다’. ‘성령은 우리를 신화하신다. 그런 까닭에 그분은 피조물일 수 없다’. 이런 주장으로 아리우스와 마체도니우스와 대결하였다. 네스토리우스와의 대결에서도 이러한 치릴로의 생각이 이용되었다. 사도 바울로, 요한, 그리고 이레네오, 아타나시오, 그리고 가빠도치아의 교부들의 사상을 물려받으면서 치릴로는 우리에게 그리스도는 우리의 기원적 위엄성인 우리 안의 하느님의 모상을 되찾아주는 새로운 아담이심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하느님의 말씀은 인간을 신화하기 위하여 인간이 되셨다’. ‘우리와 같은 살을 취하심으로 그분은 그분의 현존과 더불어 인류의 모든 것을 완성하신다’. ‘성령은 세례 때 예수에게 내려 오셨다. 그것은 그분을 하느님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우리가 이미 그분 안에 있기 때문이다’.

            세례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업적인 역사적 행위를 통해서 새롭게 된다. 세례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일어남으로써 그분의 효과를 자신의 것이 되게 한다. 하느님은 그 안에 살기 위해서 오신다. 그는 하느님의 성전, 즉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하느님의 신적 본성을 함께 나누게 된다. 성령은 그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게 하신다. 그리스도는 모든 세례자 안에 살고 계시기 때문이다. 치릴로는 여기서 성체적 현존을 통해서 완성되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물리적 일치를 강조한다. 성체성사를 통해서 그리스도는 마치 밀가루 반죽 속의 누룩처럼 현존하신다. 그분의 살아 있는 육체를 통해서 그분은 마치 다른 왁스의 한조각처럼 우리 안에 융합되신다. 그처럼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와 함께 일치되어 있다. 마치 성부와 성자가 하나를 이루듯이. 그리스도인들은 하나의 몸을 이루고,, 하나의 성전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성화와 신화의 작업을 끝내게될 부활의 영광을 기다리면서.

            이와같은 치릴로의 이론은 풍요롭고, 새로우면서도 전통적이다. 그러나 거기에 문제점도 없지 않다. 육화 이래로 모든 인류가 신화되었다는 언급이다. 치릴로는 우주가 재생한다는 플라톤 철학의 희생자로 보인다. 치릴로가 구원으로부터 육화를 분리하지 않았다고 전제할지라도 어떻게 우리는 이러한 신비적 그리스도교적 일치를 이해할 수 있을까? 성령과의 우리의 일치에 대해서 치릴로의 입장을 훗날 쉐벤 등에 의해서 계속 시도되는 것을 보게된다. 이것이 앞으로 점차 문제가 되는 것을 보게된다. 그 때까지는 아직 분명하게 문제점으로 떠오르지 않았지만. 여기서 본질적인 것은 성 아우구스티노 이후 중요하게 남게되는, 은총 이론의 역사 안에서 그 자리를 규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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