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너의 은총 이해-은총과 본성의 관계

 

14.4. 은총과 본성의 관계


이처럼 하느님은 스스로를 인간에게 내어주고 계시고,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있다. 즉 인간 안에 받아들여진 하느님 자신이 곧 ‘은총’이다. 은총은 인간과 관계없이 저 너머에 머물고 있는 별도의 실재가 아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에 부여되는 단순한 신적 도움만도 아니다. 은총은 인간의 본성과 자유를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본성과 자유에 선행하는 하느님의 원초적 무상의 선물이며, 조건없는 호의이다. 바로 하느님 자신인 것이다. 그러므로 라너는 은총을 ‘하느님의 자기 양여’ ‘하느님의 자기전달’이라고 간명하게 정의한다.  하느님은 자신의 일부를 인간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스스로 인간 존재 구성의 심오한 핵심이 되도록 ’스스로를 내어 주신다는 것이다. 하느님이 먼저 자기 자신을 인간 안에 내어주고 베푸시는 까닭에 인간은 하느님을 향할 수 있게된다. 이처럼 인간은 절대 ‘너’이신 하느님을 향해 개방되어 있다는 것이 인간의 본질을 규정해준다는 것이다.


        라너의 입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은총은 인간에게 자신을 내어주기 위한 사랑과 자유 속에서 내린 하느님의 결정이다. 둘째, 역사나 계시 또는 그 밖의 수단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신적인 결정의 전달이다. 셋째, 하느님과 인간의 새로운 관계의 기초이다. 물론 이것은 단계적 구별이 아니다. 라너에 의하면 인간이 인간이기 시작한 그 곳은 하느님이 자신을 내어주신 곳이라고 말한다.


        하느님의 자기 전달을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자체도 하느님이 미리 그러한 기회를 제공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은총을 수용하는 것도 그 자체가 이미 은총 사건’이라는 뜻이다.


        “하느님의 자기 전달을 수용하는 행위는 피조물로서의 주체적 행위이기는 하지만, 당신 자신을 전달하고 또 피조물에 의해 수용된 하느님께서 이미 이 행위를 지탱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면, 이 행위는 하느님을 참으로 하느님답게 하지 않는 것이다. 하느님 자신이 이 행위를 지탱할 때 비로소 이 행위는 하느님을 대상화해서 피조적인 존재로 끌어내리려는 불손함을 피할 수 있다”([그리스도교 신앙 입문], 166).


        인간은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구원 의지에 따르면서 하느님의 인도를 받는다. 하느님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은 인간에게 부여되는 하느님의 외적도움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기 전달 안에 내재하는 힘에 따르는 것이다. 이 힘이 인간의 길을 인도한다. 라너에게 참된 인간화는 그대로 신화이다. 하느님의 자기 전달인 은총은 참된 인간의 관심사에서 아무것도 더해주거나 빼지 않는다. 인간 자유의 수행조건으로 이미 앞서 주어져 있으면서도 인간의 자유를 존중한다. 인간 본성에 앞서서 주어져 있는 것이면서도 인간의 본성을 해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은총은 무조건 무상으로 주시는 하느님의 선물이다. 이 무상성이야말로 은총의 본질이다.


        인간은 언제나 유한한 현실을 넘어서고자 한다. 이것은 하느님의 자기 전달에 근거한다. 또 인간은 하느님의 자기 전달이라는 놀라운 선물을 수용할 수 있도록 정향되어 있다. 이것이 ‘안으로부터의 초월’이다. 이 초월은 신비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 글은 카테고리: catholicdictionary3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라너의 은총 이해-은총과 본성의 관계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14.4. 은총과 본성의 관계

    이처럼 하느님은 스스로를 인간에게 내어주고 계시고,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있다. 즉 인간 안에 받아들여진 하느님 자신이 곧 ‘은총’이다. 은총은 인간과 관계없이 저 너머에 머물고 있는 별도의 실재가 아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에 부여되는 단순한 신적 도움만도 아니다. 은총은 인간의 본성과 자유를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본성과 자유에 선행하는 하느님의 원초적 무상의 선물이며, 조건없는 호의이다. 바로 하느님 자신인 것이다. 그러므로 라너는 은총을 ‘하느님의 자기 양여’ ‘하느님의 자기전달’이라고 간명하게 정의한다.  하느님은 자신의 일부를 인간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스스로 인간 존재 구성의 심오한 핵심이 되도록 ’스스로를 내어 주신다는 것이다. 하느님이 먼저 자기 자신을 인간 안에 내어주고 베푸시는 까닭에 인간은 하느님을 향할 수 있게된다. 이처럼 인간은 절대 ‘너’이신 하느님을 향해 개방되어 있다는 것이 인간의 본질을 규정해준다는 것이다.

            라너의 입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은총은 인간에게 자신을 내어주기 위한 사랑과 자유 속에서 내린 하느님의 결정이다. 둘째, 역사나 계시 또는 그 밖의 수단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신적인 결정의 전달이다. 셋째, 하느님과 인간의 새로운 관계의 기초이다. 물론 이것은 단계적 구별이 아니다. 라너에 의하면 인간이 인간이기 시작한 그 곳은 하느님이 자신을 내어주신 곳이라고 말한다.

            하느님의 자기 전달을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자체도 하느님이 미리 그러한 기회를 제공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은총을 수용하는 것도 그 자체가 이미 은총 사건’이라는 뜻이다.

            “하느님의 자기 전달을 수용하는 행위는 피조물로서의 주체적 행위이기는 하지만, 당신 자신을 전달하고 또 피조물에 의해 수용된 하느님께서 이미 이 행위를 지탱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면, 이 행위는 하느님을 참으로 하느님답게 하지 않는 것이다. 하느님 자신이 이 행위를 지탱할 때 비로소 이 행위는 하느님을 대상화해서 피조적인 존재로 끌어내리려는 불손함을 피할 수 있다”([그리스도교 신앙 입문], 166).

            인간은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구원 의지에 따르면서 하느님의 인도를 받는다. 하느님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은 인간에게 부여되는 하느님의 외적도움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기 전달 안에 내재하는 힘에 따르는 것이다. 이 힘이 인간의 길을 인도한다. 라너에게 참된 인간화는 그대로 신화이다. 하느님의 자기 전달인 은총은 참된 인간의 관심사에서 아무것도 더해주거나 빼지 않는다. 인간 자유의 수행조건으로 이미 앞서 주어져 있으면서도 인간의 자유를 존중한다. 인간 본성에 앞서서 주어져 있는 것이면서도 인간의 본성을 해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은총은 무조건 무상으로 주시는 하느님의 선물이다. 이 무상성이야말로 은총의 본질이다.

            인간은 언제나 유한한 현실을 넘어서고자 한다. 이것은 하느님의 자기 전달에 근거한다. 또 인간은 하느님의 자기 전달이라는 놀라운 선물을 수용할 수 있도록 정향되어 있다. 이것이 ‘안으로부터의 초월’이다. 이 초월은 신비 안에서 이루어진다.


guest에 답글 남기기 응답 취소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