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가톨릭 선교 역사에 대한 간략한 평가(19항-23항)

 

제4장 예수 그리스도 : 구원의 복음(24항-30항)


그리스도에 대한 교회 안의 몇 가지 인식


  예수님(하느님의 아들) : “어느 시대에도 그렇지만 특히 현대에 교회가 할 근본 역할은 인류의 시선을 똑바로 돌리는 것, 전 인류의 의식과 경험을 하느님의 신비를 향하여 방향 잡아 주는 것, 만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나는 구속의 심연에 친근해지도록 돕는 것입니다. 동시에 인간의 가장 깊은 영역, 곧 인간의 마음과 양심과 사건들의 영역에 관여하는 것입니다.”1)


  즉, 그리스도교 메시지가 단순히 일련의 가르침이 아니라,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곧 창조의 순간부터 인류를 위해 생명을 주시고 지탱해 주시고 완성하신 분과 맺는 역동적인 관계라고 상기시킨다.


  어떤 지역에서 교회의 일부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오로지 신적인 시각으로만 보는 것은 그분을 세상의 문제와 어려움에서 분리시켜 놓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어려움에 대처하기 위해 성서와 수세기에 걸친 교회 전통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의 위격을 온전하고 완전하게 제시하는 교리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동의하듯이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가장 강력한 선포는 그분의 제자들이 보여주는 증거이다.


  구세주이신 예수님 : 구원의 결정적인 행위는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 곧 그분의 수난과 죽음, 부활의 신비를 통해서 완성된다. 시대를 통해 주님께 순종해 온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믿고 세례 받은 모든 사람에게 이 선물을 주었다. 십자가 위에 높이 달리심으로써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당신께로 끌어들이셨다(요한 13, 32 참조). 그분의 몸은 죽음으로 쪼개어졌고 그분의 피는 모든 사람의 죄의 용서를 위해 흘려졌다(마태 26, 28 ; 마르 14, 24 참조).


  그리고, [의제 개요]에 대한 답변서들은, 제자들이 인류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명과 관련하여 그리스도께 우선적으로 부여하는 명칭은 구세주이며 구원자라고 지적한다. 즉,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식한다는 것은 단순히 죄의 고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변화, 곧 지속적인 회개 과정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삶의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단순히 교회의 개별 구성원들을 가르치기 위한 교리교육 프로그램만이 아니라 전체 공동체를 위한 양성 계획이 필요하다는 데에 동의하고 있다.


  이 주제에 대해, 많은 답변서가 그리스도께서는 단순히 수많은 아시아 종교와 철학의 여러 “구세주” 가운데 한 분이 아니라. “한 분이시고 유일하신” 구세주라고 언급하고 있다. 어떤 답변서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단지 구세주이실 뿐만 아니라, 아시아인의 사고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구세주이심을 더욱 명확하고 솔직하게 설명하고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 점에서, 그리스도를 칭할 때 “해방자”라는 말은 피해야 한다고 어떤 답변서들은 경고하고 있는데, 이 말은 세속적인 철학과 견해에 너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이 충분히 제시하지 못했다고 언급하는데, 아시아적 방식으로 이 주제를 제시할 방법 가운데 하나는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와 비유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제안하였다.


  예수님, 사람이 되신 하느님 : “성자께서는 사실 당신의 강생으로 어떤 의미에서 당신을 모든 사람과 일치시키신 것이다.”2)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예언자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자녀이며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의 형제인 모든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성을 가르치셨다. 그분의 행동은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 사랑, 선하심을 체현하며, 그분의 가르침은 가정과 사회의 올바른 질서를 위한 토대이다.


  [의제 개요]에 대한 일부 답변서들은, 교회 구성원들 가운데 그리스도를 보는 시각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그분을 “사람의 아들”로 보기 때문이라고 언급한다. 즉, 죄를 제외한 모든 점에서 인간의 조건을 취하심으로써 죄를 제외하고 세상과 모든 인간적인 것을 축성하신 인간이 되신 하느님, 곧 인성을 가지신 분으로 보려는 시각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따라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아시아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몇 가지 인식


  그리스도께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으며 그분을 깊은 영성과 연민, 사랑을 지니신 분으로 본다고 지적한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제시할 때 구원 역사라는 더 넓은 맥락에서, 또한 우주에 대한 창조주 하느님의 주된 계획 곧 그리스도의 강생과 구원을 통해 성취되었고 지금 이 시간에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계획안에서 그분을 제시하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아시아에서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오직 한 분이시고 유일하신 구세주이시며 아시아의 다른 위대한 종교 창시자들과 구별되는 유일한 중개자이시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를 하느님으로 믿는 사람들조차도 그리스도교는 물론 교회를 받아들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즉, 그들 사이의 거리는 철학적이고 전례적으로 극복된다. 결국, 강생하신 하느님의 말씀이시며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위의 역설들은 수렴점을 찾는다3).


  그러나 많은 답변서는, 지성적인 논쟁을 넘어서서 종교와 봉사의 간격을 극복할 때, 다시 말해 신앙인들이 영신적 육체적으로 자비 행위를 실천함으로써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표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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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가톨릭 선교 역사에 대한 간략한 평가(19항-23항)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제4장 예수 그리스도 : 구원의 복음(24항-30항)

    그리스도에 대한 교회 안의 몇 가지 인식

      예수님(하느님의 아들) : “어느 시대에도 그렇지만 특히 현대에 교회가 할 근본 역할은 인류의 시선을 똑바로 돌리는 것, 전 인류의 의식과 경험을 하느님의 신비를 향하여 방향 잡아 주는 것, 만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나는 구속의 심연에 친근해지도록 돕는 것입니다. 동시에 인간의 가장 깊은 영역, 곧 인간의 마음과 양심과 사건들의 영역에 관여하는 것입니다.”1)

      즉, 그리스도교 메시지가 단순히 일련의 가르침이 아니라,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곧 창조의 순간부터 인류를 위해 생명을 주시고 지탱해 주시고 완성하신 분과 맺는 역동적인 관계라고 상기시킨다.

      어떤 지역에서 교회의 일부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오로지 신적인 시각으로만 보는 것은 그분을 세상의 문제와 어려움에서 분리시켜 놓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어려움에 대처하기 위해 성서와 수세기에 걸친 교회 전통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의 위격을 온전하고 완전하게 제시하는 교리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동의하듯이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가장 강력한 선포는 그분의 제자들이 보여주는 증거이다.

      구세주이신 예수님 : 구원의 결정적인 행위는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 곧 그분의 수난과 죽음, 부활의 신비를 통해서 완성된다. 시대를 통해 주님께 순종해 온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믿고 세례 받은 모든 사람에게 이 선물을 주었다. 십자가 위에 높이 달리심으로써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당신께로 끌어들이셨다(요한 13, 32 참조). 그분의 몸은 죽음으로 쪼개어졌고 그분의 피는 모든 사람의 죄의 용서를 위해 흘려졌다(마태 26, 28 ; 마르 14, 24 참조).

      그리고, [의제 개요]에 대한 답변서들은, 제자들이 인류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명과 관련하여 그리스도께 우선적으로 부여하는 명칭은 구세주이며 구원자라고 지적한다. 즉,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식한다는 것은 단순히 죄의 고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변화, 곧 지속적인 회개 과정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삶의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단순히 교회의 개별 구성원들을 가르치기 위한 교리교육 프로그램만이 아니라 전체 공동체를 위한 양성 계획이 필요하다는 데에 동의하고 있다.

      이 주제에 대해, 많은 답변서가 그리스도께서는 단순히 수많은 아시아 종교와 철학의 여러 “구세주” 가운데 한 분이 아니라. “한 분이시고 유일하신” 구세주라고 언급하고 있다. 어떤 답변서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단지 구세주이실 뿐만 아니라, 아시아인의 사고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구세주이심을 더욱 명확하고 솔직하게 설명하고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 점에서, 그리스도를 칭할 때 “해방자”라는 말은 피해야 한다고 어떤 답변서들은 경고하고 있는데, 이 말은 세속적인 철학과 견해에 너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이 충분히 제시하지 못했다고 언급하는데, 아시아적 방식으로 이 주제를 제시할 방법 가운데 하나는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와 비유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제안하였다.

      예수님, 사람이 되신 하느님 : “성자께서는 사실 당신의 강생으로 어떤 의미에서 당신을 모든 사람과 일치시키신 것이다.”2)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예언자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자녀이며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의 형제인 모든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성을 가르치셨다. 그분의 행동은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 사랑, 선하심을 체현하며, 그분의 가르침은 가정과 사회의 올바른 질서를 위한 토대이다.

      [의제 개요]에 대한 일부 답변서들은, 교회 구성원들 가운데 그리스도를 보는 시각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그분을 “사람의 아들”로 보기 때문이라고 언급한다. 즉, 죄를 제외한 모든 점에서 인간의 조건을 취하심으로써 죄를 제외하고 세상과 모든 인간적인 것을 축성하신 인간이 되신 하느님, 곧 인성을 가지신 분으로 보려는 시각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따라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아시아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몇 가지 인식

      그리스도께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으며 그분을 깊은 영성과 연민, 사랑을 지니신 분으로 본다고 지적한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제시할 때 구원 역사라는 더 넓은 맥락에서, 또한 우주에 대한 창조주 하느님의 주된 계획 곧 그리스도의 강생과 구원을 통해 성취되었고 지금 이 시간에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계획안에서 그분을 제시하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아시아에서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오직 한 분이시고 유일하신 구세주이시며 아시아의 다른 위대한 종교 창시자들과 구별되는 유일한 중개자이시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를 하느님으로 믿는 사람들조차도 그리스도교는 물론 교회를 받아들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즉, 그들 사이의 거리는 철학적이고 전례적으로 극복된다. 결국, 강생하신 하느님의 말씀이시며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위의 역설들은 수렴점을 찾는다3).

      그러나 많은 답변서는, 지성적인 논쟁을 넘어서서 종교와 봉사의 간격을 극복할 때, 다시 말해 신앙인들이 영신적 육체적으로 자비 행위를 실천함으로써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표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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