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와 선교학(Missiology)-선교역사(사도시대와 사도교부시대)

 

1. 사도(使徒)시대와 사도교부(敎父)시대




1) 사도행전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땅 끝에 이르기까지”(1,8) 복음의 개선 행진을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감동적이고 열렬한 포교활동과 사랑으로 충만한 원시교회의 내적 생활을 전해 주고 있다. 예루살렘의 원시교회는 예수의 활동과 죽음과 부활을 목격한 증인으로서 구원의 복음을 열렬히 전했다. 베드로의 설교의 주제는 예수의 부활과 구약의 예언의 성취이다(사도2,14-36; 3,11-26; 4,6-12). 유대인들에 대한 복음선포의 목표는 신(神)에게로의 귀화(歸化)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무든 사실이 하느님의 업적임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의 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어린 교회는 아직 자신을 유태교의 실현으로 자각하고, 유태교의 종교의식에 참여하고, 전통적인 유태교의 신심(信心) 형식에서 생활하고, 유태교 조직의 기본원칙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이방인그리스도신자는 유태교 율법의 구속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사도회의(50년경, 사도15,6-19)의 결정과 그리스도교의 세례, 그리스도를 주님(Kyrios)으로 부르는 기도, 성찬식 거행(사도2,46), 사랑의 공동체(사도2,44이하) 등은 불신과 거부, 박해를 불러일으켰고 100년경 유태인 회당에서 공식적으로 추방되었다.1)


2)바오로는 그리스도교를 유태교적 팔레스티나의 고향으로부터 분리시켜 헬레니즘의 희랍. 로마 문화의 중심지의 하나인 안티오키아로부터 세계에 전파하여, 처음으로 그리스도교인 또는 ‘그리스도인’(사도11,26)들의 독립된 종교단체로 불리게 되었다. 복음은 먼저 디아스뽀라의 유태교를 매개(Synagoga: 사도13,5, 14-43; 14,1))로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이방인’(외적으로는 유태교가 아니나, 내적으로 유태교를 신봉하는)의 교량을 너머 이방인에게 전파되었다(사도13,45-50; 14,2). 이로써 새로운 신학, 즉 유태인에 대한 배척과 이방인의 복음화를 위한 신학을 정립하는 동기가 되었다. 바오로는 로마제국이 지니고 있는 도시국가의 특성(공통된 언어와 문화, 도로와 해상로, 로마의 평화, 법정, 세계주의적인 전망과 호기심 등)을 유의하여 대도시에 들어가 설교하면서 공동체를 세우고 지도자를 임명한 후 자립교회의 모습을 확인하면 다른 도시로 옮겼다. 한마디로 현존하는 세계에 뿌리를 내리기 위한 적응과 복음선포의 모험, 그리고 지역조직이었다. 이들 교회들은 이슬람교의 출현(6-7C)까지 살아 남아야 했고 근동의 교회들은 공존해야만 했다.


3)2C에는 그리스도교가 지중해의 모든 연안에 전파되었고, 로마제국의 먼 지역까지 퍼져 나갔다(영국과 스코틀랜드, 페르시아만, 북아프리카 와 남유럽). 그리스도교는 통일된 제국의 평화에 힘입어 2C말까지 전 세계, 즉 전 문명세계에서 확고한 지반을 다질 수 있었다. 제국의 서방은 100년경 기 천명, 200년경에는 수 만 명, 300년경에는2백만, 400년경에는 4-6백만, 동방은 300년경 5-6백만, 400년경 1-1천2백만으로 추측된다(당시 로마인구 200년경 7천만, 300년경 5천 만 명). 급속한 성장과 발전에는 하느님의 은총이 있었겠지만(박해), 복음인 하느님의 말씀은 자체로 전파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4)교리의 우월성도 복음선포의 결실을 맺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리스도의 교리는 인간의 마음에 일어나고 있는 문제, 즉 신의 존재, 인생의 목적, 영혼의 불사불멸성 등에 대하여 그리스 철학보다도 명백한 대답을 제시하였고, 철학자들은 호교론의 저작에 굴복하였다.2) 또 그리스도교의 합리적 교리는 상류계층 지식인들의 개종의 동기가 되었고, 그들의 영향을 받던 이들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집단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스도교의 만인평등사상과 결혼의 신성성 및 가정의 숭고함에 대한 가르침은 교회가 부녀자들과 노예들에게 힘있는 옹호세력임을 보여주게 되었다. 당시의 로마인들은 옛 다신교에 염증을 느꼈고 일신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3) 박해 중에 신자들이 보여준 순교의 영웅적 용기는 그리스도교의 진정한 모습과 유일무이한 진리를 세계적으로 과시하는 데에 성공하여 외교인들이 개종하는 결정적인 동기가 되었다. 열성적인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재산을 나누어주는 등 사랑을 실천하고 선교의 사명을 실천하기 위하여 고향을 떠나기도 하였다. 초대 그리스도교는 선교의 교회였다. 초창기 신자들의 형제애는 외교인들에게 가장 힘있는 설교로서 선교가 성공할 수 있었던 첫 원인이었다. 또 유대인의 아람어가 아닌 희랍어를 사용함으로써 로마제국을 통하여 효과적으로 복음을 선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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